▲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얼마 전 기자는 인천우체국 집배원 김효(43) 씨를 하루종일 동행취재한 적이 있다.

김씨는 온종일 40층짜리 고층 아파트를 수시로 오르내렸다. 아무리 서둘러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밥 한 끼도 편히 먹을 수 없었다. 그러니 위험한 걸 알면서도 오토바이 액셀러레이터를 당겨댈 수밖에. 배달을 마치고 복귀하니 책상에는 또다시 우편물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퇴근을 미뤄야 했다.

고작 하루에 불과했지만 이렇게 계속 일하다가는 과로로 쓰러지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겠다 싶었다. 지금도 죽었다 깨어나도 집배원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어느 취재보다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기자는 지나가는 집배원을 볼 때마다 진심으로 그들이 안녕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 바람이 하늘에 닿기도 전에 또 한 명의 집배원이 쏟아지는 업무에 짓눌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난 6일 아산영인우체국 소속 15년 차 집배원 조만식(45) 씨가 거주하던 우체국 인근 원룸에서 돌연 숨진 채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소견 결과 사인은 ‘동맥경화’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이하 집배노조)는 동맥경화는 장시간 노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조씨의 죽음은 장시간중노동으로 인한 ‘과로사’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인력 부족’에 있다고 지적했다.

숨지기 전날 조씨는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7시 30분경 우체국에 출근해 약 3시간여 동안 우편물 분류작업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도시 개발로 아산테크노밸리 입주와 미군 기지 이전 등으로 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것으로 알려지며 우편물 물량 폭주가 충분히 예상됐지만 오히려 일손은 부족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따른 우정사업본부(이하 우정본부)의 인력 충원은 없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우정본부 측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과로사라는 주장은 노조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부정했다. 부검 결과 드러난 사망원인은 동맥경화로 확인됐다는 것. 최근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0·50대에게 심혈관질환은 치명적이며, 주원인은 당뇨·고혈압·고지혈증 등으로 ‘과로’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전국 집배원에게 할당되는 우편물 수가 약 980통인데 반해 조씨는 820여통밖에 되지 않았고, 최근 5년간 국내 우편물 수가 55억톤에서 36억톤으로 줄어들었지만 집배 인력은 약 872명 증원됐기 때문에 노조의 주장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했다.

하지만 ‘과로사 산재 전문 지원센터’에 따르면 과로사는 ‘과중한 노동이 요인이 돼 고혈압과 동맥경화를 악화시키고 뇌출혈, 지주막하출혈, 뇌경색 등의 뇌혈관질환과 급성 심장마비 등을 유발해 영구적인 노동 불능이나 사망에 이른 상태’라고 정의된다. 즉, 조씨도 장시간중노동의 영향으로 동맥경화가 악화돼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충분히 볼 수 있다.

집배원의 돌연사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달 31일에도 파주위탁택배원 안모(54) 씨가 배달 중 갑작스럽게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밝혀졌다. 유가족들은 최근 2년 사이 안씨가 병원 진료를 받은 기록이 없다며 과로사라고 주장했다.

집배노조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16~2017년 순직 집배원 9명 가운데 7명이 업무 중 자택 혹은 업무 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와 관련해 집배노조는 그간 집배원 돌연사의 원인을 장시간중노동으로 보고 절대인력부족 충원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정본부는 되레 각 지방우정청에 마치 장시간노동이 집배원들의 책임인 마냥 ‘과도하게 일찍 출근하지 말라’는 내용의 지침을 내려보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이다.

우정본부는 무책임한 방관을 멈춰야 할 때가 왔다. 중노동의 주범인 토요택배 부활 재협상과 무료노동 관행 중단 등 올해도 어김없는 집배원 죽음 릴레이를 끝내기 위해 적극 나서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

또한 국가도 문제 해결은커녕 책임을 회피하려는 우정본부를 상대로 특별감독을 실시해 법적·사회적 제재를 취해야 할 것이다.

숨 한번 고를 틈 없이 바쁘게 움직이던 와중에도 늘 웃으며 ‘안녕하세요, 우체국입니다’를 외치던 집배원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당장 본인의 안녕조차도 알 수 없으면서 말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을 전국의 집배 노동자들이여, 내일도 안녕하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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