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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우편물 배달 수 1000통 이상
종일 숨이 턱 끝까지 차도록 뛰어도 부족

연말과 선거철,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
평소보다 4배 이상 많은 우편물 쏟아져

대체 근무자 없어···인력 부족 가장 문제
어깨·무릎 통증, 집배원들 사이의 고질병

편지 받고 기뻐할 때 가장 보람 느껴
무사히 정년퇴임 때까지 일하길 바라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부르으응~’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집배원 김효(43) 씨가 빨간 바구니를 실은 오토바이를 타고 기자와 약속했던 인천 1호선 국제업무지구역 출구에 도착했다. 웃으면 반달 모양이 되는 눈매가 인상적인 김씨는 인사를 건네자마자 자신이 배달하는 구역 대부분은 고층 아파트가 많아 하루 종일 따라다니기 힘들 터이니 한두 군데만 동행하고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기자는 “업무에 방해만 안된다면 하루 종일 쫓아다닐 자신 있어요”라며 다음 배달지 입구로 향하는 그의 오토바이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 <사진제공=인천우체국 김효 집배원>

평소 김씨는 오전 7~8시 사이 우체국에 도착한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택배물을 동료들과 함께 구역에 맞게 배분하고, 등기처럼 당일 빠르게 전달해야 하는 우편물을 정리하다 보면 정신없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면 오전 9시 30분 무렵이 돼서야 비로소 우체국을 떠나 본격적인 우편물 배달에 나선다. 기자가 김씨를 만난 때는 이미 1·2구역 배달을 마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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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우체국’ 소속 집배원인 김씨는 최근 뜨겁게 떠오르고 있는 송도국제업무지구 일대를 담당하고 있다. 신도시답게 40층에 육박하는 고층 건물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한 건물만 배달한다고 하더라도 30~40분은 족히 소요된다. 김씨가 하루 평균 배달하는 우편물 수는 일반우편 1000통, 등기 300통, 택배 50개. 세대수로 따지면 2000~3000세대 정도다. 정녕 그것이 하루에 배달 가능한 양인가 싶지마는 대부분의 집배원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일뿐이다. 김씨는 “오늘은 금요일이라 그나마 적은 편이에요”라며 서둘러 오토바이에서 내려 우편물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등기를 가방 속에 넣고 일반우편과 택배 물품은 양손 가득 안은 채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와 기자가 처음 함께한 배달지는 업체들의 사무실로 많이 사용되는 곳이었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대부분이 오전 11시 30분에서 오후 12시 사이이기 때문에 그전에 배달을 마치려면 여유가 없다. 김씨는 1층에 놓인 우편함에 넣을 일반우편은 로비에 잠시 내려두었다. 그리고는 곧장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우편물을 배달할 가장 꼭대기 층을 눌렀다. 보통 택배가 있을 경우 무겁기 때문에 낮은 층에서부터 올라가면서 택배를 배달하고 내려오면서 등기를 배달하지만, 등기만 있을 경우 맨 꼭대기 층에서부터 내려오면서 배달한다고 한다. 이날은 다행히도 택배가 가벼운 것들뿐이라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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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체국입니다’

김씨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마치 경보를 하듯 빠른 발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갔다. 날다람쥐처럼 빠른 그를 따라다니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마치 발에 모터가 달린 것처럼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엄청 빠르시네요”라는 기자의 말에 그는 “그래도 오늘은 엄청 천천히 다니는 거예요. 원래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빠르게 다녀요”라며 여유 있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기자는 이미 그의 말처럼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헉헉’대던 찰나였다.

김씨는 배달지에 들어설 때마다 미소와 함께 힘찬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우체국입니다’를 외쳤다. 물론 나올 때도 ‘안녕히 계세요’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택배기사, 청소부 등 지나다니며 보이는 사람마다 인사를 건네기도,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김씨는 일 잘하고 친절하기로 건물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A씨는 “저 신문에 나와요. 취재한다고 기자님이 따라다니고 있어요”라는 김씨의 말에 “평소 얼마나 친절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다”며 칭찬을 늘어놓기도 했다.

한참 배달을 하던 김씨는 “아차” 소리와 함께 방금 내려왔던 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우편물 하나를 빼먹었던 것. 배달 구역에 맞게 우편물을 분류하는 작업을 손수 하는데 종종 이런 실수를 하곤 한단다. 김씨는 짧은 한숨 소리와 함께 “이런 실수가 많은 날에는 흐름이 끊겨 하루 종일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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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등기와 택배를 배달할 때면 쉴 새 없이 적어 내려가는 것이 있다. 바로 ‘우편물 도착 안내서’다. 집주인의 부재로 우편물을 전달하지 못했을 때 다음 방문 예정 일시를 알리는 것인데, 가끔 고객의 요청에 따라 로비나 경비실에 맡기기도 하지만 중요한 서류나 고가의 물건일 경우에는 번거롭더라도 재방문한다. 만약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발생하는 민원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집배원이 안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급하다며 다시 좀 가져다 달라는 사람들도 있다. 거절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막무가내로 나올 때는 여유만 있다면 그냥 갖다 주고 끝내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하다.

모 업체에 등기를 배달하러 들어갔던 김씨는 커다란 택배 하나를 들고 나왔다. ‘이게 뭐지’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기자에게 “접수했던 물건 수거하는 건데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좀 크네요”하며 웃었다. 집배원들은 물건을 배달하기도 하지만 일반 택배업체처럼 접수 들어온 물건을 수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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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를 모두 배달한 김씨는 로비에 잠시 내려뒀던 일반 우편물을 집어 들고 우체통으로 향했다. 김씨는 40층에 가까운 높은 건물을 빠르게 내려오던 속도보다도 더 빠른 손놀림으로 우편함에 편지를 꽂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능숙했던 것은 아니다. 일하다 보니 우편물을 어떻게 정리하면 더 빠르고 정확하게 넣을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 노하우다. 김씨는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우편함의 배열도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일하기 편하게 배치돼있으면 훨씬 많은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축 건물이 세워지는 경우에는 우편함 설치와 관련한 협조 공문을 보내기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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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항상 손에 끼고 있는 빨간 목장갑도 신속한 배달을 위한 일종의 노하우라고 볼 수 있다. 날씨가 추운 탓이라면 더 따뜻한 털장갑도 있을 테지만 굳이 목장갑을 사용하는 이유는 손바닥면이 고무로 코팅돼있기 때문에 우편물이 미끄러지거나 겹쳐 잡히지 않아 유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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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까지 해야죠’

오전 11시 50분 무렵, 3구역까지 배달을 마친 김씨는 그제야 한숨 돌리고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30~40분 정도되는 점심시간 동안 동료들과 모여 정도 밥을 먹고 담배 한 개비 태우며 오전 업무의 고단함을 날려버리지만 이날은 기자와 중국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으로 대신했다.

김씨가 처음 집배원 일을 시작한 것은 2003년. 20대 후반 청년이 40대 중년이 되기까지 14년이란 시간을 꼬박 집배원으로서 보냈다. 김씨는 6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근무한 끝에 비로소 정규직이 될 수 있었다. 비정규직일 때보다는 봉급도 오르고 주말에도 쉴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안정적이어 졌다고 한다. 기자가 요즘 집배원으로서 어떤 부분이 가장 큰 고민인지 묻자 김씨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인력 부족’이라고 답했다.

“인력이 좀 충분해졌으면 좋겠어요. 저도 작년에 연가를 이틀밖에 쓰지 못했어요. 내 일도 하기 벅찬데 한사람 빠지면 그걸 나머지 인원이 나눠서 하거든요. 그 부담이 상당해요. 그래서 아프거나 일이 있어도 피해주고 싶지 않아 하죠. 정확하게 측정된 데이터는 없지만 우리나라가 인구 대비 집배원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한 편이에요. 우리나라가 3000명 당 집배원 1명꼴이라면 다른 나라는 1/3 수준이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비정규직이 없어졌으면 좋겠죠. 아무래도 정규직은 공무원이다 보니 실제로 늘리기 어렵죠. 그렇다면 최소한 급여라도 같은 수준으로 지급했으면 해요. 동일 업무를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정규직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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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요즘 부쩍 어깨가 아프다. 매일 무거운 우편물을 짊어지고 다니다 보니 어깨 통증은 집배원에게 피할 수 없는 고질병과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씨는 아직까지 큰 사고를 겪은 적이 없다. 김씨 말에 따르면 지금도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동료들이 여럿 있다고 한다. 때문에 무엇보다 건강상의 이유로 주변 지인이나 후에 자녀가 집배원을 하겠다면 말리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정년까지 마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떤 마음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기 때문에 기자 역시 그가 지금처럼만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정년을 맞이하길 진심으로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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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이 끝이 아니에요’

점심을 다 먹은 후 김씨는 두 구역을 더 돌고 나서야 중간 우편물 보관함에 도착했다. 중간 우편물 보관함은 우체국가 거리가 먼 구역을 담당하는 집배원들이 오전에 다 싣지 못한 우편물을 채워가는 공간이다. 중간 우편물 보관함이 항상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명절이나 연말처럼 우편물이 많을 때는 보관함 밖으로까지 넘쳐나기 때문에 아파트 주민들의 반발로 쫓겨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또 어디를 찾아가 사정해야 할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중간 우편함을 열자 그 안에는 갖가지 택배와 우편물이 담긴 빨간 주머니 두개가 김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는 물건들을 꺼내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들에게 선물을 배달해주는 산타클로스 같았다. “빨간 주머니 들고 계시는 모습 보니까 꼭 산타할아버지 같아요”라는 기자의 말에 “택배는 반가운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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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한 마지막 배달 구역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상복합이었다. 이날은 유난히 부피가 큰 택배물이 많았다. 업체 사무실에는 늘 사람들이 있는 편이지만 일반 가정집일 경우 낮 시간에는 없는 경우가 많아 전화로 미리 집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한단다. 그의 말처럼 배달할 택배 가운데 절반은 로비에 두고 올라가야 했고 그는 “제 말이 맞죠”라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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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가 다 돼갈 무렵, 김씨는 이날 주어진 우편물을 모두 배달하고 우체국으로 들어왔다. 배달이 끝났다고 김씨의 일과도 끝난 것은 아니다. 오늘 배달한 우편물을 기록하고 배달을 기다리는 우편물들이 김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는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오늘 배달한 기록과 미배송, 반품 등의 기록을 전산에 입력했다. 전산 입력을 마친 김씨는 월요일에 배달할 일반 우편물을 구역별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기계가 좋아져 어느 정도 분류가 가능하지만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인 집배원의 손을 거쳐야 한다. 김씨는 우편함에 편지를 넣을 때처럼 빠르게 우편물을 분류해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흘러넘치도록 가득 찼던 노란바구니 3개가 뚝딱 동이 났다. 구역에 따라 잘 나눈 우편물들은 섞이지 않도록 노끈으로 잘 조여 맸다. 처음 집배원이 되면 끈 묶는 방법부터 배운단다. 별거 아닌 듯 보이지만 나름의 규칙과 방식이 존재했다. 김씨는 월요일에 보낼 편지들을 모두 묶고 나서야 이날 처음으로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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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우체국을 나오는데 ‘5대 집배서비스 품질향상 실천과제’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오배달 0% ▲주소이전·신고처리 100% ▲반송함 매일 수거처리 100% ▲자동이륜차 안전사고 0% ▲직원 유고시 책임배달제 100% ▲웃으면서 배달하기.

집배원들의 어깨 통증은 단순히 수천개의 우편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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