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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떡집 노동자들
“경영 철학? 작은 일에 최선 다하는 것”
문 닫을 때… 열심히 만든 떡 남으면 속 쓰려

쌀은 오랜 시간을 걸어 목적지인 떡에 도착한다. 쌀이 걸었던 길의 이름은 ‘사람의 손길’이다. 노동자의 손 덕분에 작은 쌀알은 한 덩어리의 맛있는 떡이 된다. 씻고, 빻고, 찌고…. 그만한 수고를 거쳐야 쫄깃한 떡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이런 노동을 보통 사람이 알 방도는 없다.

이에 기자는 지난달 23일, 부천 원미구 역곡시장에 있는 한 떡집으로 향했다. 이날 하루의 노동 현장을 보여줄 여섯번째 ‘땀으로 쓴 노동일기’를 지금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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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역곡시장 안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기자는 차가운 입김을 뿜으며 새벽 시장길을 걸었다. 주변에는 몇몇 가로등이 반짝였고 고요함이 짙게 깔려있었다. 깊숙이 들어가니 저 멀리 홀로 빛을 내는 떡집이 보였다.

새벽 5시 30분, 떡집에 들어서자 앞치마를 두른 윤석원(45)사장이 환한 미소로 인사했다. 쌀 씻는 소리가 노동의 시작을 알렸다. 민속 대명절 추석을 이틀 앞둔 터라 그의 손은 평소보다 더 바쁘게 움직였다. 먼저 윤 사장은 씻은 쌀을 체에 넣어 물을 뺀 뒤 기계로 빻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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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전날 저녁에 준비해둔 쌀가루를 냉장고에서 꺼내 떡 시루에 쪘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숙성이 돼서 맛이 좋고 시간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맞은편 하얀 천이 덮인 시루에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구석에 찬물이 담긴 대야에는 사과 두 개가 동동 떠 있었다. 사과를 건져 올려 물기를 닦던 윤 사장은 “저는 주로 아침밥을 이걸로 대신해요”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둘 중에서 가장 크고 빨간 사과 하나를 기자에게 건넸다. 우리는 마른 입속에 사과를 한입씩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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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가루가 부리는 마법

사과를 먹은 뒤 윤 사장은 물을 조금씩 넣으며 쌀가루를 버무렸다. 허리를 90도로 꺾은 채로 반죽에 몰두했다. 쌀반죽은 시루에서 쪄진 뒤 기계로 들어가 쫀득한 떡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새하얀 가래떡이 기계 구멍에서 줄기차게 쏟아져나왔다. 그럴 때마다 윤 사장은 떡이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아래 놓인 찬물 속에서 그것들을 휘저었다. 물에 담긴 가래떡들은 마치 국수가락이 확대된 형상을 띠었다.

가래떡은 한 번 더 기계 안으로 들어간 뒤 나올 때 쟁반에 놓고 길이에 맞춰 자르면 완성이다. 쌀을 씻고, 빻고, 반죽하고, 찌고…. 그는 요리조리 움직이며 이 모든 과정을 홀로 감당했다. 절편의 경우 가래떡과 과정이 엇비슷한데, 다만 물을 조금 넣고 한 번 더 빻는다. 그러면 말랑함이 오래가고 식감이 쫄깃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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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윤 사장은 남동생과 함께 19년째 공동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아버지가 10년가량 해오던 일을 형제가 물려받은 것이다. 그는 “아버지, 참 열심히 사셨죠”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2대째 내려오는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 떡집은 역곡시장 안에서도 유명하다. 형제 우애가 좋다는 것은 단골 손님과 주변 상인들에게 이미 소문나있다. 이 집의 또 다른 자랑은 국산쌀만 사용한다는 점. 수입쌀은 값이 저렴하지만 빨리 굳고 냄새가 난다는 단점이 있어 오직 국산쌀만을 고집한다.

● 화려하고 예쁜 떡의 향연

새벽 6시가 넘어갈 무렵, 직원 김정순(여‧58‧가명)씨가 출근했다. 김씨는 윤 사장과 잠시 이야기꽃을 피우더니 잽싸게 빨간색 앞치마를 두르고 손을 씻었다. 그가 오자마자 하는 건 만들어진 떡을 포장하고 곡식류를 내놓는 일이다. 이곳은 떡뿐만 아니라 기장, 수수, 콩 등 여러 곡식류도 팔고 있다.

오전 7시쯤 화려한 색을 띤 송편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송편을 가리키며 “송편은 식어야 제맛이에요. 이따 한 번 먹어보세요”라고 윤 사장은 말했다. 초록은 쑥, 보라는 자색고구마, 분홍은 복분자, 노랑은 치자를 이용해 천연색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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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에게 일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오히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터가 있어 좋다고 답했다. “저는 운동도 하고 돈도 번다고 생각하면서 일해요. 이 나이에 일할 수 있어서 행복하죠”. 무지개떡을 가장 좋아하는 김씨는 무슨 일이든 재미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왕 일하는 거 재미있게 해야 해요. 뭐든 마음먹기에 달려 있어요. 떡을 포장해놓고 보면 얼마나 예뻐요?”. 그 마음가짐이 무지갯빛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뽀얀 설기 위에 검은콩이 박힌 백설기가 가장 먼저 나왔다. 이어서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감자떡과 모시송편도 모습을 드러냈다. 켜켜이 쌓인 알록달록한 쌀가루가 찜기 속으로 들어가더니 몇 분 뒤 무지개떡이 되어 돌아왔다. 아울러 찰떡, 모둠 백설기, 쑥설기, 호박시루떡, 약밥 등도 줄줄이 눈앞에 펼쳐졌다. 김씨는 형형색색의 떡을 상에 쭉 펼친 다음 열기를 식힌 후 포장했다. 더불어 모둠백설기 위에 대추를 하나씩 박거나 약밥 위에 견과류를 뿌렸다. 그 사이 윤 사장은 다양한 종류의 떡을 찌고 자르기를 반복했다. 시루떡을 오차 없이 정확히 등분해 자르는 게 신기했다. 그는 “예전에는 못해서 자를 대고 잘랐어요”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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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는 찌고 누구는 담고

오전 8시쯤, 또 다른 여성 직원이 출근했고 이어 남동생인 윤모(43)씨도 출근했다. 윤 사장은 쌀 두 가마니를 뜯어 쌀 씻는 기계에 넣었다. 작업을 끝낸 뒤에는 꿀떡을 만들고자 기계에 설탕과 깨, 쌀반죽 등을 넣었다. 기계가 꿀떡을 내놓으면 여직원이 서로 달라붙지 않게 기름을 발라 따로 담았다.

한 손님이 멥쌀가루를 사러 와서 윤 사장은 쌀을 갈아주었다. 그 사이 동생은 형에게 받은 쌀반죽에 콩가루를 묻혀 인절미를 만들었다. 이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한창 가래떡을 만들던 윤 사장은 이를 한 뼘만큼 잘라 먹어보라고 건넸다. 갓 뽑은 가래떡은 전자레인지에서 막 꺼낸 스트링 치즈처럼 쭉쭉 늘어났다. 젖소에게서 금방 짜낸 우유를 마시는 느낌이랄까. 처음 경험한 신선한 떡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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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30분, 작업장 청소를 마친 윤 사장은 오후까지 쉰다. 낮잠도 자고 운동도 하는 유일한 휴식 시간이므로 작업 공백은 남동생과 다른 직원이 메운다.

오후 3시 30분, 잠시 쉼표를 찍고 온 윤 사장이 다시 활기차게 일하기 시작했다. 장부를 살펴보며 내일 주문된 떡을 확인했다. 그러던 중 10년째 단골이라는 안경자(여‧65)씨가 바퀴 달린 가방에 쌀을 가져왔다. 이 쌀을 빻아 집에서 개떡과 쑥떡, 송편을 만들어 추석과 제사 때 사용하기 위해서다. 초등학교 4학년짜리 손주가 개떡을 아주 잘 먹는다며 그는 수줍게 웃었다. 이 떡집을 ‘믿음이 가는 곳’이라고 칭하던 안씨는 “두 사장님이 친절하고 꼼꼼하게 잘 해주세요. 떡도 맛있게 잘하시고요. 떡은 쌀이 좋아야 맛있는데 여기는 쌀이 좋아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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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집 경영철학, 정직과 성실

“오늘 예쁘고 맛있게 나왔어요~”
“떡, 세일합니다! 골라보세요”
“우리는 떡이 고급이에요. 진짜 떡은 자신 있어요!”

두 여직원이 한가득 놓인 떡을 두고 소리치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화려한 떡의 모습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사람들은 수많은 떡 위에 손을 갖다 대며 열심히 눈동자를 굴렸다. 명절을 앞둔 때라 그랬는지 이날 인기가 많았던 떡은 송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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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박금자(여‧60‧가명)씨는 “두 사장님이 우리 직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잘해주세요. 우리도 그 좋은 성품에 물들어가요. 여기 출근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해요”라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수산물 가게를 운영한다는 50대 상인 역시 “자기 일에 만족하고 자부심 느끼며 사는 형제”라고 인정했다.

문득 윤 사장의 경영 철학이 궁금했다. 그는 영화 <역린>에 나오는 명대사인 중용 23장의 일부를 보여주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중략)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윤 사장은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에요. 뭐든지 정직과 성실이 중요한 것 같아요”라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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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무렵인 오후 6시,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기자는 윤 사장과 근처 멸치 칼국수집에서 국수를 먹었다. 일이 많고 바쁠 때는 국수처럼 금방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최고다. 저녁을 먹고 돌아와서도 작업은 계속됐다. 오후 7시, 남동생은 집으로 향했고 박씨는 퇴근에 앞서 작업장 청소를 했다.

● 목, 허리, 무릎… 아픈 곳 많고 많지만

“떨이~ 떨이 세일!”

떡을 만들던 윤 사장이 가게 문앞에 서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7시 40분, 청소를 마친 박씨는 먼저 퇴근했다. 윤 사장은 “하도 소리를 질러서 목이 트였어요”라며 노래방에 가면 목소리가 잘 나온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감 떨이”를 외치는 꿈도 종종 꾼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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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그의 하루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무섭도록 단순했다. 일하고 먹고 잠자는 게 전부였다. 떡집을 운영한 지 6년이 됐을 무렵에는 과로로 병원에서 링거를 맞은 적도 있다. 건강과 운동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요즘, 관절에 무리가 덜 가는 운동인 수영을 배운다. 하지만 직업병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윤 사장은 목 디스크 증상이 있고 무거운 것을 많이 들어 허리와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마감 떨이~ 마감 떨이~ 3개 삼천원, 삼천원에 가져가세요”

8시가 넘자 가격이 달라졌다. 윤 사장에게 있어 떡을 다 팔지 못하고 집에 갈 때보다 찝찝한 것은 없다. 새벽부터 열심히 만든 떡이 남으면 속이 쓰리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9시 40분, 가게 문이 내려갈 때가 돼서야 비로소 그는 어깨를 돌리며 하루의 고단함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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