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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땀으로 쓴 노동일기’ 코너를 통해 노동 체험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방송국 무대제작 편에 이어 이번 호에는 커피 로스팅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하루를 그렸다.

좋은 원두와 성실한 근로자가 모인 <커피지아>는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땀 흘리는 착한 일터다. 그곳에서 써내려간 향긋한 노동일기, 지금 시작한다.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이번에는 커피 향기 가득한 노동현장이다.

지난달 28일, 기자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자리한 원두공장 <커피지아>로 향했다. 오전 9시, 근로자들이 하나둘씩 작업장 안으로 들어섰다. 누구는 수건, 다른 누군가는 청소기를 들고 작업장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30여분 동안의 청소가 끝나자 직원들은 하얀 위생복으로 갈아입었다.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삐져나오지 않게 모자를 꾹꾹 눌러쓰고 장갑과 마스크도 말끔히 착용했다. 기자 역시 이 대열에 동참했다. 위생복을 갈아입은 장애인 근로자들은 자리에 앉아 임정실(31)사회복지사의 설명을 기다렸다. 이곳은 장애인표준사업장이기 때문에 사회복지사가 함께 일하고 있다. 잠시 후 복지사가 큰 소쿠리에 갓 볶은 원두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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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핸드픽할까요”

복지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두 장갑을 낀 하얀 손을 갖다 대며 나쁜 콩을 골랐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한 곳으로 향했고 누구도 커피 한 알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갓 태어난 병아리를 만지듯, 사람들은 투박한 손끝으로 원두를 어루만졌다.

불량 원두를 감별하고 골라내는 일은 발달장애인 근로자의 몫이다. <커피지아>에서는 이들을 일명 “초능력 콩 감별사”라고 부른다. 감별사들은 생두일 때 1번, 로스팅할 때 1번. 총 두 번 불량 콩을 골라낸다.

투박한 손끝에서 피어나는… ‘초능력 원두 감별’

감별사의 손으로 결점두(상태가 나쁜 원두)를 일일이 골라내는 작업, 이를 일명 핸드픽(Hand Pick)이라 부른다. 핸드픽은 일반인이 하기엔 무료하고 지루한 작업이다. 쉬워 보이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일은 아니다. ‘마늘 까는 일’처럼 단순하지만 지속해서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많은 콩 중에서 결점두 하나하나를 고르는 일은 인내와 꼼꼼함이 필수다. 그래서인지 원두를 대량으로 취급하는 큰 커피로스팅 공장일수록 핸드픽 작업이 힘들 수밖에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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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픽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불량 콩 한 알이 커피 맛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맛있는 커피를 만들려면 원두가 신선하고 품질이 좋아야 한다. 결점두 1~2개만 들어가도 커피 맛은 크게 좌우된단다. 특히 이 작업은 어떤 일을 집중력 있게 해내는 발달장애인에게 적합하다.

기자가 핸드픽 작업을 해봤는데 도무지 감이 안 잡혔고 ‘그 콩이 그 콩’으로 보였다. 머리를 긁적이며 허둥대자 황금산(25)씨가 친절하게 나쁜 콩 감별법을 알려줬다.

   
▲ 기자가 금산 씨와 핸드픽 작업한 나쁜 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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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콩’. 건강하고 신선한 원두는 결국 맛있는 커피가 된다. 금산 씨는 “콩이 연한 갈색이거나 부서진 콩, 생김새가 이상한 건 나쁜 콩이에요”라고 했다. 반면 좋은 콩은 진한 갈색이며 윤기가 흐르고 모양도 부서진 곳 없이 동그랗다. 그가 좋은 콩과 나쁜 콩을 손 위에 올린 채 열심히 설명했다. 얘기를 마친 금산 씨는 까만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며 작업에 집중했다. 그의 손놀림은 누구보다 빠르면서도 정확하고 섬세했다. 발달장애인들은 반복적인 작업에 강하다. 그래서 이들은 장애 특성에 맞는 핸드픽, 스티커 붙이기, 원두 담기, 그램 수 재기, 포장 등의 작업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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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쿠리에서 나쁜 콩을 모두 고르면 감별사들은 포장지 안에 원두를 그램 수에 맞게 담는다. 이때는 투명한 컵을 사용하는데 그램 수에 모자라거나 넘치면 그 양을 다시 조절한다. 100g, 200g, 500g, 1kg… 소비자의 주문에 따라 포장하는 양도 달라진다. 전자저울 위에서 원두를 담고 나면 다음 사람이 그 포장지를 받아 기계를 통해 밀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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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원두를 담은 상자를 테이프로 포장한 다음, 보낼 주소와 함께 ‘칼로 뜯을 때 조심’이라는 문장을 적는다. 이때는 글쓰기 담당 문재한(24)씨가 투입된다. 지난 2006년부터 일해온 재한 씨는 에이스로 손꼽힌다. 그가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공정은 포장과 글씨 쓰는 일이다. 이곳 택배 상자 위에 적힌 글씨는 모두 그의 손을 거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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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포장지 겉에 원두 라벨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이 이어졌다. 작업장에서 가장 바삐 움직이고 있는 이인석(23)씨는 <커피지아> 초창기 멤버다. 복지사는 인석 씨가 일도 잘하고 굉장히 꼼꼼하다며 칭찬했다. 그는 눈치 빠르게 일을 척척 해냈다. 일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인석 씨는 “핸드픽이 제일 재미있어요. 썩은 콩 골라낼 때 기분이 좋아요”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복지사는 기자를 향해 “원래 진수 씨가 말이 많은데 기자님이 와서 그런지 말수가 줄었네요”라며 귀띔했다. 평소와 다르게 조용히 스티커를 붙이던 이진수(23)씨는 ‘분위기 메이커’로 불린다. 지난해 9월부터 일을 시작한 그는 예전에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패티 굽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가 일했던 패스트푸드점 주방은 늘 열기로 가득해 찜통이었다. 게다가 온종일 서서 패티를 구우니 다리도 아팠다. 그는 서서 일하는 게 힘들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반면 이곳 작업장은 에어컨도 나오고 작업환경도 쾌적해 진수 씨에게는 천국이다. 그는 “앉을 수 있고 시원해서 좋아요”라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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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배꼽시계가 울리는 점심시간이 돌아왔다. 기자는 사람들과 함께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회사 근처 분식점으로 향했다. 우리는 동그랗게 앉아 밥을 먹었다. 감별사 대부분은 이곳 인기메뉴인 치즈 돈가스를 시켰다. 식사를 마치고 회사에 돌아온 우리는 다시 동그랗게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기자가 “매일 맛있는 커피 마시며 일하는 게 부러워요”라고 하니 직원들은 “네, 맞아요”하며 빙그레 웃었다.

감별사들은 오전에 4명, 오후에 6명이 근무한다. 한 사람당 하루 3시간가량 일하고 50만 원 정도 월급을 받아간다. 퇴근하면 복지관에 가서 컴퓨터, 서예 수업 등을 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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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위한 일자리 많아졌으면”

오후 2시, 직원들은 커피로 재충전된 몸을 일으켜 노동을 시작했다. 기자는 로스팅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문을 열자 뜨거운 증기가 온몸을 에워쌌다. 로스팅은 일반 직원이 담당하는데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비닐하우스처럼 열기로 가득한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종종 한쪽에 설치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서 있곤 했지만 발은 바삐 움직였고 시선은 기계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담당자는 “겨울에는 추워서 기계에 최대한 가까이 있고 여름에는 멀리 떨어져 있어요”라며 까르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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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날씨, 계절, 습도에 따라 로스팅하는 시간과 온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커피 분쇄 작업은 복지사가 담당한다. 그가 원두를 갈기 시작하자 로스팅방 안에서 고소함과 향긋함이 진동했다.

오후 3시경이 되자 감별사 2명 정도가 퇴근했고 몇몇 사람이 출근했다. 오후에도 원두 라벨 스티커 붙이기 작업이 이어졌다. 원두별로 나눈 뒤 감별사들은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였다. 복지사는 한쪽에서 인쇄된 포장지에 제조날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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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를 붙이던 배영은(25)씨는 홍일점으로 감별사 중 유일한 여성이다. 영은 씨는 여러 가지 작업 중에서 원두를 포장지에 담는 일이 가장 재미있다고 했다. 그녀의 꿈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카페를 여는 것이다. 해서, 요즘 부지런히 돈을 모으고 바리스타 자격증 따는 법도 알아보고 있다. 커피지아에서 일하는 것을 부러워하는 언니와 동생들이 많다며 영은 씨는 뿌듯해 했다. 한식당에서 홀서빙했던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은 그녀는, 식당에서 일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다며 웃었다.

“여기는 차별하지 않고 일반인과 똑같이 대우해줘서 좋아요. 하지만 다른 데서 일했을 때는 차별을 느꼈어요”. 환했던 영은 씨의 얼굴에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어떤 차별을 당했는지에 대해 묻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큰 눈망울에 가득 고인 눈물이 그때 겪은 서러움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눈물을 닦아낸 뒤 영은 씨는 뼈있는 말을 던졌다. “장애인은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어요. 안 그래도 요즘은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잖아요. 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이랑 장애인 일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임정실 사회복지사 ⓒ투데이신문

임정실 사회복지사는 이곳에서 발달장애인 근로자와 함께 땀흘리고 있다. 그녀는 일의 진행 상태를 확인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준호 씨, 핸드픽할 때 집중해야 해요”
“물 한 잔 마시고 올래요?”
“힘들면 얘기해요. 바꿔줄게요”
“이번 휴가 어디로 가요? 친구들 안 만나요?”

임 복지사는 감별사들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돕거나 말을 건네며 분위기를 돋웠다. 복지사는 “이곳에서 일하는 감별사의 부모님이 좋아하실 때 참 뿌듯해요. 어떤 어머님은 아이가 일하고 난 뒤부터 집에서도 안정됐다는 말을 하셨는데 그때 참 기분이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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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30분이 되자 로스팅 기계는 작동을 멈췄다. 이들의 노동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로스팅방에 가니 청소기가 바닥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었다. 로스팅 담당자는 청소기를 통해 떨어진 콩, 가루, 먼지 등을 빨아들였다. 다른 방에서도 청소와 마무리 포장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얼마 뒤 하나둘씩 위생복과 마스크, 모자를 벗었다. 오후 5시, 복지사와 감별사들의 박수 소리가 노동의 종료를 알렸다. 이날 기자의 마음에 밴 기분 좋은 커피 향은 쉽사리 빠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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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물론, 발달장애인 최다 고용 기업될 것”

장애인표준사업장이자 사회적기업 <커피지아>. 이곳의 시작은 조금 특별하다.

2011년, 커피를 좋아하던 김희수(28)대표는 커피로스팅 공장인 <커피지아>를 세웠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발달장애인 특수학교 교사로 일하는 친구가 이곳을 방문했다. 그 친구는 김희수 대표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자신의 학교에 졸업반 학생 2명이 있는데 그 아이들이 이곳에서 실습해도 되겠냐는 것. 김 대표는 망설이지 않고 친구의 제안을 수락했다. 편견의 눈꺼풀을 벗기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는 말을 그녀는 실천한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일하는 솜씨는 일반인 못지않았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집중도와 꼼꼼함을 요구하는 핸드픽 작업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에 김 대표는 장애인 노동자 2명과 근로계약서를 체결했다. 당시 한 장애인 가족은 시골에서 올라와 김 대표에게 감사함을 전했고 심지어 해당 학교 교장, 교감 선생님도 함께 고마움을 표했다.

김 대표는 장애인 2명을 시작으로 장애인 고용에 첫발을 내디뎠다. <커피지아>는 맛있는 커피와 장애인 고용을 앞세우며 성장했다. 한 대기업 사내 카페에서 사원을 상대로 실시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가장 좋은 원두’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이를 볼 때 맛에 대한 김 대표의 자부심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일각에서는 장애인이 만든 커피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사회적기업 최초로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도 받았죠”.

그녀의 꿈은 발달장애인 최다 고용 로스팅업체이자 세계가 인정하는 커피회사다. 그 소망대로 <커피지아>의 향긋한 노동요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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