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육상 거치 준비작업中…목포시 ‘세월호 맞을 준비 완료’
보안 이유로 멀리서 보는 시민들…염원 담은 노란 리본
유가족 컨테이너 미설치·이어지는 선체 훼손 소식
가족들 “해수부 신뢰 못해…작업 투명하게 공개하라”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2014년 4월 16일 어두운 바다 속으로 침몰한 세월호는 지난달 31일에야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침몰 1080일 만이다. 세월호를 태운 반잠수식 바지선 화이트마린호는 그날 오후 목포신항만(신항) 앞 해역에 도착했다. 곧 세월호는 신항 육상에 거치돼 선체조사위원회의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3년 동안 기다려왔던 세월호 진상규명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세월호의 안전한 육상 거치를 위한 준비작업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세월호의 추정 무게는 1만3460톤에 달하는데, 이를 육상으로 옮길 모듈 트랜스포터는 계산 상 1만3000톤까지 감당할 수 있다. 안전한 선체 거치를 위해서는 460톤이라는 어마어마한 무게를 줄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를 위해 해양수산부(해수부)와 인양업체 상하이샐비지는 선체에 천공을 뚫어 안에 있는 물과 펄을 빼내는 방안을 택했다.

그렇지만 이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바라는 유가족들과, 유해나 유류품이 유실될까 걱정하는 미수습자 가족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다. 물에서 올라온 후 하루가 다르게 부식되고 있는 세월호를 두고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다.

세월호 육상 거치를 위한 준비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3일, 기자는 세월호가 도착한 신항으로 향했다.

▲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목포역에 내리자마자 노란 플래카드들이 눈에 띄었다. 시내에도 세월호를 기억하겠다는 플래카드들이 여기저기 걸렸다. 세월호를 보고자 하는 방문객들을 위한 안내소도 곳곳에 있었고, 렌터카 대여료 할인 이벤트도 진행 중이었다. 목포시는 세월호를 맞을 준비를 거의 끝낸 상태였다.

하루에 12대, 목포역에서 신항까지 임시운행하는 셔틀버스도 등장했다. 5~6명의 시민들과 함께 기자도 이 셔틀버스에 올라 신항으로 향했다.

▲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신항으로 향하는 다리인 목포대교에도 노란 리본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그 모습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자 열중하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 세월호가 보였다. 시민들의 눈도 자연스레 세월호를 향했다. 생각보다 거대한 모습, 그렇지만 기력을 잃고 시퍼런 밑바닥을 드러낸 채 화이트마린호에 누워있는 모습을 본 시민들은 묵묵히 입을 다물었다.

신항은 국가보안시설이라 평소엔 일반인들의 접근이 거의 없다. 그렇지만 세월호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에 목포시민들은 물론 전국 각지 사람들이 신항을 찾았다. 평일 오전인데도 추모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버스에서 내려 세월호를 좀 더 가까이 보려 다가갔다. ‘보안’이라는 이름 때문에 세월호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는 없었다. 그나마 세월호와 가장 가까운 곳은 500m가량 떨어진 곳에 설치된 철제 울타리 밖. 세월호를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고자 시민들은 너도나도 울타리에 얼굴을 갖다 댔다. 살짝만 옆으로 가도 항만 컨테이너들과 중장비에 가려 세월호의 전체적인 모습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화이트마린호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다만 거리가 멀어서 무엇을 하는지는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은 침묵했다. 더 가까이에서 세월호를 보고 싶었던 몇몇 시민들이 항만 출입구 직원에게 말을 걸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건 거절뿐이었다.

그들은 안타까운 마음과 자신의 염원을 적은 노란 리본을 철제 울타리에 매달았다.

‘진실은 분명 밝혀질 것입니다’

‘미수습자들 모두 이제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이제 영면하세요’

▲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얼핏 봐도 1000개가 넘는 리본들이 울타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목포의 짠 바닷바람에 리본들이 펄럭이는 소리만이 신항의 침묵을 깨웠다.

인천에서 온 정모(54)씨는 “세월호가 인천에서 출발했잖아요. 아무래도 더 관심이 갔고, 그래서 시간이 조금이라도 될 때를 빌어 이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왔어요.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죠. 노란 리본들을 보니 이곳에 온 수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갔을 거라고 느껴져요. 세월호 육상 거치도 참사 진상규명도 하루빨리 이뤄져야죠. 그렇지만 이 마음이 어디 유가족이나 미수습자 가족들만 하겠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미수습자 가족들은 행여 가족의 유해가 발견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3년 넘게 세월호를 지켜봐왔다. 이들을 위해 해수부는 울타리 안, 즉 항만 안쪽에 숙식 공간을 제공해줬다. 이들을 위해 마련된 이동식 주택 10개동은 바로 미수습자 가족들이 3년 동안 생활해왔던 팽목항의 이동식 주택을 옮겨온 것이다. 3년간 여러 모로 도와줬던 진도 주민들에게 고마움을 느낀 미수습자 가족들은 신축 주택 건설 제안도 거절하고 팽목항의 주택을 그대로 이곳으로 옮길 수 있도록 했다.

그렇지만 유가족들을 대하는 해수부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유가족들을 위한 컨테이너는 신항 안에 따로 마련해주지 않은 것. 지난달 31일 신항에 도착한 유가족들은 해수부의 방침에 항의하며, 시민들이 마련해준 천막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농성을 벌여왔다. 목포시가 이들을 위한 컨테이너 3개를 마련해줬다. 유가족들은 보다 따뜻하게 이곳에서 지낼 수 있게 됐지만, 해수부는 여전히 이들을 울타리 안으로는 들여보내주지 않고 있다.

한 유가족은 “뭔가가 밝혀지는 게 겁이 나서 항만 안에 컨테이너를 제공하지 않는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아요. 더군다나 ‘너네 애들은 찾았으니까 (항만) 안쪽에 있을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오후 2시경, 유가족 10여명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하루에 두 번, 오전과 오후에 1시간씩 세월호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40분쯤 흘렀을 때 이들은 다시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그들의 표정엔 어두움이 서려있었다.

故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는 “관계자들이 설명은 하죠. (세월호) 가까이 가면 진행 작업에 대해 저희에게 브리핑해요. 그런데 그 설명을 상하이샐비지가 아니라 코리아쌀베지 사람들이 해요. 저희가 궁금한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답변도 못 주고 있어요. 왜 그 사람들이 설명하는지…”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코리아쌀베지는 해수부가 계약한 국내 선체정리업체다. 현재 화이트마린호에는 인양업체 상하이샐비지 인력 20명과 코리아쌀베지 인력 78명이 함께 작업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족 및 미수습자 가족들은 코리아쌀베지를 반갑게 여길 수만은 없었다. 코리아쌀베지와 해수부의 계약엔 ‘선체 절단’ 항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체 절단 및 훼손은 유가족들과 미수습자 가족들이 가장 막으려고 하는 것 중 하나다. 코리아쌀베지 측은 “선체 절단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가족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이미 세월호에 120개가 넘는 천공이 뚫렸지만, 세월호 무게를 줄이기 위해 선체 내부에 있는 물과 펄을 빼겠다는 취지에서 해수부는 천공 21개를 더 뚫기로 결정했다. 가족들의 한숨은 끊이지 않았다.

미수습자 조은화양 어머니 이금희씨는 “사람 9명이 아직 배 안에 있어요. 만약 저 배 안에 259명이 있다고 하면 이렇게 할 건가요? 9명은 사람도 아닌가요? 우리는 뼛조각 하나 놓칠까봐 노심초사하면서 매일매일 기다리고 있는데 지금 저 배에 구멍을 더 뚫는다면서요. 작업하면서 혹시 (유실되면) 어쩌려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오후 4시가 되자 해수부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추가로 뚫기로 한 천공 21개 중 15개에 대한 작업을 완료했으나 선체의 무게를 줄이는 데엔 큰 효과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구멍을 뚫은 부분에는 물 대신 굳어있는 진흙이 가득해 원활한 배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해수부를 향한 가족들의 불신은 더욱 커졌다.

故 오영석군 어머니 권미화씨는 “해수부는 아무것도 유실되지 않았다고 말해요. 그런데 저 배 좀 보세요. 구멍을 엄청 뚫었어요. 여기서 볼 땐 작아 보이지만 배가 크기 때문에 저 구멍들도 실제로는 엄청 크단 말이에요. 유류품이며 뼛조각이며 충분히 유실될 수 있는 상황이에요. 구멍을 뚫어서 물을 빼든 펄을 빼든 가족들이 참관할 수 있게 해야죠. 또 국민들이 (세월호) 올려줬잖아요. 국민들에게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데 오픈하지 않으니… 해수부를 못 믿어서 다들 이렇게 (목포에) 내려왔잖아요. 10개월이든 1년이든 다 찾을 때까지 우린 여기서 끝장 볼 거예요”라며 하소연했다.

또 다른 유가족은 “천공을 굳이 추가로 뚫지 않아도 모듈 트랜스포터를 더 추가하면 됐잖아요. 돈 아끼려고 추가로 구멍을 뚫는 걸로밖에 안 보이잖아요. 이게 말이 되는 건가요. 희생자와 미수습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우를 지켜야죠”라며 분노를 쏟아냈다.

오후 4시반,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컨테이너로 모였다. 해수부의 브리핑을 짚어보고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정리하고자 이날부터 매일 4시반에 가족회의를 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얼마 뒤 회의를 마친 가족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故 김용진군의 아버지 김철영씨는 “답답하죠. 해수부 말로는 6일이나 7일엔 본격적으로 육상 거치 작업에 돌입할 거라는데 정확히 언제 될지도 모르겠네요. (세월호가) 물에서 올라온 후에 많이 부식되고 있거든요. 곧 비가 온다는데 그럼 더 부식될 테고… 하루에 2번 세월호에 가까이 다가가긴 하지만 제대로 볼 수 있는 것도 없어요. 지면이랑 (세월호의) 높이가 생각보다 많이 다르거든요. 멀리서 보는 거랑 다를 바가 없어요”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신항에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바람도 훨씬 차가워졌다. 그렇지만 세월호 인양을 3년이나 기다려온 유가족 및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닐 테다. 샛노란 옷을 입은 채 500m 너머에서 세월호를 바라보는 유가족들의 뒷모습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을 돌린 기자의 마음은 결코 편치 않았다.

3번의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다. 신항을 떠나는 버스 안, 창밖 너머로 본 목포 곳곳에는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노란 리본이 나부끼던 신항의 모습이 겹쳐졌다. 3년 동안 바라왔던 진상규명을 이 봄도 기다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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