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 펴낸 심리연구소 ‘함께’ 김태형 소장

▲ 심리연구소 ‘함께’ 김태형 소장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히틀러 미래도 맞춘 심리분석…대선주자에 적용 필요
박근혜 반면교사 삼아 심리 건강한 후보 선택해야

'촛불 민심' 꺼지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될 것
대한민국 시대정신, 격차해소 통한 관계 회복

기층 민주주의 없는 게 큰 문제 
국민이 권력 주체로 나서야 할때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1940년대 초 미국의 전략사무국 OSS(CIA의 전신)은 히틀러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정신분석의 권위자인 월터 랑거(Walter C. Langer)에게 심리분석을 의뢰했다.

의뢰를 받은 랑거는 히틀러의 가계(家系)와 유년시절 등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보원들을 면담해 그의 심리를 파헤친 극비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는 히틀러가 우울증, 신경증과 함께 절대 권력에 집착하는 증세를 보였다고 기록됐다. 랑거는 히틀러가 위기 상황에 몰리면 ‘극적인 자살’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는데, 이후 이 예측은 현실이 됐다.

OSS는 심리분석을 공인에게 적용해 분석하고 이를 이용했다. 이외에도 외국에서는 공인에 대한 심리분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정치인에 적용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2015년 4월, 김태형 심리학자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심리를 분석해 인터뷰한 것이 국정농단 사태가 밝혀지면서 적중한 것이다.

그가 심리분석을 정치인, 공인에게 적용해서 자격검증 도구로 활용하고자 책을 펴냈다. 문재인, 안철수 등 유력 후보들을 분석하고 19대 대선과 관련해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을 분석해 책에 담았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11일 서울 낙성대의 한 카페에서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의 저자인 심리연구소 ‘함께’ 김태형 소장을 만나 대선주자들에 대한 분석과 한국 사회의 집단심리에 대해 들어봤다.

▲ 심리연구소 ‘함께’ 김태형 소장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공인에 대한 심리분석 적극 활용 필요

Q. 그동안 많은 저서를 내셨는데 대선주자들을 분석해 책을 출간하신 것은 처음이다. 심리분석을 정치인들에게 적용한 이유는.

원래 생존해 있는 사람은 분석하지 않으려고 했다. 심리를 분석해 공개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상처가 악화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5년 4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심리에 관한 질문에 간단히 언급만 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공인들에 대한 심리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대통령이 되려면 그런 분석을 받을 각오하고 나와야 한다. 다음 대선엔 준비를 더 잘해서 후보 검증 툴로써 확실한 분석을 해보려고 한다.

Q. 외국에서는 공인에 대한 심리분석 활용사례가 많은지.

외국은 심리분석 책이 자유롭게 나온다. 국가 공인이나 대통령에 대한 심리분석을 하려는 풍토가 발전돼 있다. 정치인 중에도 심리분석에 많은 관심을 둔 사람들이 있다. <부시의 정신분석> 등 한국에 번역된 책도 많이 있다. 심지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도 심리분석 내용이다. 심리분석을 거쳤기에 오바마가 대통령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Q. 국정농단 사태 이후 많은 이들이 공인에 대한 심리분석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은데.

공감대가 생겼다고 본다. 좋은 일이다.

Q. 후보들을 분석하면서 부모와의 관계를 가장 중점적으로 본 것 같다. 어떤 관계가 있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적인 욕구가 있다. 이 본성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되는데, 어른은 주도적인 위치에서 환경을 개혁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릴 때는 환경을 개혁할 힘이 없다. 이 환경에 일방적으로 노출을 당할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받아들여 훌륭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게 도와줄지는 부모가 결정한다. 때문에 심리형성발전에 부모가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Q. 심리학적 측면에서 볼 때 실패와 고난을 경험한 인물이 더 위대한 인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가.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 없다. 고난을 어떻게 극복했는지가 중요하다. 고난을 겪지 않아도 성숙과정을 잘 거쳤다면 문제가 없다.

박 전 대통령 정신감정 해야

Q.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구치소에 수감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정신감정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본다. 박씨의 정신건강이 상당히 의심스럽다.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기 힘든 정도일 수 있다. 만약 정신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처벌의 의미가 없다. 치료를 먼저 하고 그다음에 처벌을 해야 한다.

Q. 박 전 대통령의 심리가 재판에는 어떤 영향을 줄지.

지금 박씨는 모든 혐의를 부정하고 있다. 마치 암 선고를 받은 환자의 반응 중 부정하는 단계 같다. 그런데 이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은 암 선고를 받아도 ‘암이구나. 열심히 치료 받아야지’ 하고 바로 수용한다. 그러나 정신건강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부정하는 단계를 거친다. 박씨가 그런 경우다. 그래서 다른 인터뷰에서 “박씨는 한동안 혐의를 부정할 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나 ‘도저히 상황을 뒤집을 수 없다’고 판단해 포기하는 단계에 도달하면 그제야 서서히 심경의 변화가 올 것이다.

Q. 국민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박 전 대통령의 행동은 바로 세월호와 관련해서다. 가족 잃은 아픔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실망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석한 바에 기초해 말하자면, 박씨는 세상을 무서워하기에 사람과의 접촉을 꺼린다. 독자적인 정치력을 가지고 있어도 하고자 하는 일이 없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나서 박씨가 주도적으로 구조를 지휘 하진 않았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박씨를 끌어내서 기자회견 하기까지 컨트롤했을 것이다. 박씨가 과연 자기 실력으로 구조를 지휘할 수 있었을까. 어려웠을 거라고 본다. 박씨의 정치스타일을 보면, 그는 맡은 바 배역을 끝내고 관저에 들어가 쉬는 사람이다. 각본을 짜주는 대로 한 것이다. 

Q. 대통령이라는 자리와 심리상태의 관계는.

대통령은 국가에서 가장 힘이 있는 자리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증폭효과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총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난사해 다 죽인다. 이는 일반적인 총기난사범의 심리다. 총을 얻는 순간 마음속 분노가 살인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권력에도 그런 위험이 있다. 좋게 쓰면 아주 좋겠지만 문제가 있으면 증폭돼 나타날 수 있다.

Q. 후보들을 분석하면서 ‘내적 동기’를 중요하게 살폈는데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내적 동기란 진짜로 원하는 것, 무의식에서 원하는 것이다. 무의식에서 원하는 것은 의식에서 원하는 것보다 훨씬 강렬하다. 너무 강렬해서 의식조차 하지 못하게 됐다면 체질화돼 그 지배를 받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 예로 2015년 인터뷰에서 박씨에 대해 ‘대통령 하기 싫어하는 대통령’이라고 했는데, 박씨의 ‘대통령직 사퇴’ 발언은 무의식에서 원하는 것이 나타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뉴시스

대권의지 부족한 文, 개인적 성취 위해 출마한 安

Q. 각 당의 후보가 확정됐다. 주요 후보 5명(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의 심리는 건강하다고 보는지.

건강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홍준표 후보가 그렇다. 유승민 후보도 건강한 편은 아니나 보수 후보 중에서는 양호하다.

Q. 문재인 후보에 대한 평가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다. 문 후보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그 이전에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러다보니 정치를 안 하는 쪽으로 심리가 형성됐다. 실제로 문 후보는 정치하기 싫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반복해서 해왔다. 문 후보의 대선도전 동력은 지지율이다. 문 후보는 외적으로 국민적 지지가 없다면 내적으로는 정치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정계은퇴를 말한다. 지지가 있어서 한다는 것은 지지가 없다면 안 한다는 말이다. 만약 대통령이 되고 나면 지금처럼 대세론이 이어질 것도 아니고, 사방팔방 욕먹을 일이 많다. 일의 하중이 커지고 피곤해지면 의욕이 뚝 떨어질 수 있다. 그러면 ‘너희가 알아서 해’라고 할 수도 있다.

Q. 문 후보에 대해 주변 사람이 눈과 귀를 막아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고 했는데.

문 후보는 측근에 의존할 위험이 있다. 이번에 특전사 사진으로 논란이 된 것도 “캠프에서 준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런데 보통 대선후보들은 그렇게 대응하지 않는다. 캠프에서 줬다고 해도 자신이 보고 판단해 들고 나온다. 그리고 문제가 됐을 때 캠프 탓은 안한다. 하지만 문 후보는 캠프에서 주는 대로 들고 나왔다고 했다. 본인이 직접 고르지 않은 것은 그만큼 열정적으로 임하지 않고 측근에게 일을 맡긴다는 것이다.

Q. 안철수 후보에 대한 평가는.

안 후보 역시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다. 안 후보의 경우 콤플렉스가 아버지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안 후보는 어렸을 때 문 후보만큼 부모님께 반항해본 적이 없다. 한 번도 안 했다고 볼 수 있다. 반항을 하지 않으면 가슴속에 반항심이 억압돼있다 한 번에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반항을 하면서 어떻게 아버지한테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안 후보가 선택한 방식은 ‘명예’다. 아버지 때문에 서울시장 후보를 사퇴했다는 말이 있는 안 후보가 정치에 뛰어든 것도 반항이다. 막상 정치의 길로 들어섰는데 아버지가 인정 안 해줄 것 같아 불안했을 것이다. 그래서 명예를 얻으려 한다. 그가 생각한 정치의 명예는 대통령이다.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꿈이겠지만, 역사에 남으려면 일단 이겨야 한다. 때문에 승리에 대한 강박감이 강렬하다. 게다가 지난번에 한 번 포기했기 때문에 오기가 더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목소리도 바꾸고 노력을 많이 한다. ‘철수가 달라졌어요’가 보인다.

Q. 안 후보가 명예욕이라는 개인적인 동기를 가지고 나온 것으로 분석했는데 여기엔 어떤 장단점이 있나.

장점이라면 명예를 중시하기 때문에 너무 더러운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단점은 야합에 취약할 수 있다. 스스로 합리화만 할 수 있다면 승리하기 위해 바른정당이나 자유한국당과도 손잡을 수 있다. 꼭 실현해야 하는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명예 때문에 출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고한 정치철학을 가지지 못하고 좌고우면할 가능성이 많다.

▲ (왼쪽부터)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뉴시스

劉 ‘반항아’ 洪 ‘방화범’ 沈 ‘인정욕구’

Q. 유승민 후보에 대한 평가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강한 사람이다. 엄격한 아버지를 무서워했고 아버지가 사랑해주지 않는 것에 저항도 화끈하게 못했던 케이스다. 학창시절 가출사건을 보면 가출 후 집에 돌아갈 때 머리를 깎고 들어간다. 무서워서 반항을 끝까지 못한다는 말이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화끈하게 반항을 한 것도 아니고, 관계가 아주 좋아 반항을 할 필요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2인자 문제를 낳는다. 그의 정치 스타일은 권력실세로부터 2인자로 인정받아 상대편 권력실세를 공격하는 저격수다. 아버지(1인자)를 등에 업고 아버지(상대편 1인자)를 치는 격이니 유 후보 입장에서는 무의식적 쾌감이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곧 권력실세와 갈등이 생기고 반항하다 쫓겨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

Q. 유 후보의 반항적인 기질이 선거에 미칠 영향은.

공격적이고 전투력이 있어 선거에서 싸움을 잘할 것이다. 그런데 리더로서 검증된 적이 없다. 유 후보는 감정통제가 잘 안 돼 적을 많이 만드는 스타일이다. 리더들은 감정통제를 잘 하면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직을 꾸리고 전략전술을 짤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유 후보는 혼자 움직이는 사람이다. ‘과연 당을 이끌만한 지도력이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게다가 (등에 업은) 권위를 상실했을 때, 즉 갑자기 1인자의 역할을 맡게 됐을 때 어떻게 처신할지 아무도 모른다. 익숙한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할 수 없기 때문에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말이다.

Q.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홍준표 후보에 대해 ‘방화범의 심리’라고 했는데 홍 후보에 대한 평가는.

방화범은 너무 화가 나서 세상을 불태우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들은 공격할 대상이 있어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해서 아무나 걸리면 친다. 홍 후보는 분노가 가득한 사람이다. 만약 이 분노가 시대적 사명감과 일치했다면 많이 해소됐을 것이지만 홍 후보의 분노는 개인적 동기다. 홍 후보 어릴 때 어머니가 사채업자들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 다니는 것을 봤다고 한다. 그래서 ‘힘을 얻어 그들을 때려잡겠다’는 마음으로 검사가 돼 인정사정없이 조폭들을 친다. 개인적 복수를 한 것이다. 홍 후보는 동기가 사회적으로 승화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관성 있는 정치행위를 하지 못한다. 힘 있는데 붙어서 누굴 칠까 고민한다. 지금은 ‘나 빼고 다’ 칠 대상이니 홍 후보에게 어울리는 상황이긴 하다.

Q. 홍 후보와 유 후보의 심리는 보수 후보 단일화에 어떤 영향을 줄지.

둘 다 분노덩어리인 사람들이니 단일화는 힘들 것이다. 만약 된다 해도 깔끔하게는 안 될 것이고, 단일화해도 지지율 변동은 크게 없을 것이다.

Q. 심상정 후보는 어떻게 보나.

심 후보는 근원적인 것은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인정욕구가 있다. 심 후보는 어릴 때 집에서 차별받으며 자랐다. 이 시기에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겼다. 이런 경우엔 대체로 권력이나 힘을 갈망하게 된다. 심 후보가 이 욕망을 잘못 컨트롤하면 야합할 가능성도 있다.

Q. 대통령이 되면 인수위도 꾸리지 못하고 급하게 처리할 문제들이 많다. 다른 당과의 연정이 필수라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후보들의 심리가 이에 어떻게 작용할까.

유력한 후보를 중심으로 말하자면, 누가 되든 후보의 심리보다는 캠프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리더들이 강한 의지가 있어 캠프를 통제하면서 추진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도 못한 일이다. 그런데 문 후보나 안 후보가 할 수 있을까. 둘 다 리더십이 강력한 사람은 아니다.

문 후보의 경우 대권동기가 약하고 비난에 취약하기 때문에 강력한 국무총리를 내세우지 않으면 고전할 것이다. 국무위원의 집단적 힘으로 밀어붙여야 상황이 조금씩 풀릴 것이다. 만약 측근 비선에 의존한다면 문 후보 혼자 짐을 다 져야한다. 최악의 경우가 되는 것이다.

만약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재명 성남시장 같은 개혁의지가 강한 사람을 국무총리에 앉혀야 개혁을 밀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극우보수 빼고 다 끌어다가 그 힘으로 밀어붙이면 성공적인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이해찬 전 총리 등 인재풀을 총동원해야 한다. 안 후보를 과기부 장관으로 임명할 수도 있겠다(웃음). 내가 생각한 유일한 해법이다.

Q. 대선후보로 거론됐는데 출마하지 않은 인물들은 어떻게 평가하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분석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반 전 총장은 ‘처세의 대가’다. 그는 대통령을 공무원으로 생각한 것 같다. ‘한국에서 계속 승진해 왔고 유엔까지 갔으니, 이제 대통령으로 승진해야지’ 이런 생각이다. 반 전 총장은 강한 사람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도 친구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 사람이다. 자기 마음대로 산 것이 아니고 남들 비위 맞추며 살아 그 반작용으로 어떤 부분에서는 못되게 굴기도 하고 독선적이기도 하다. 반 전 총장 생각에는 유엔에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오면 다들 환호할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여기저기서 비난이 쏟아졌다. 그 때 ‘이 사람은 완주 못할 것 같다’고 했는데 역시나 시작도 하기 전에 불출마했다.

▲ 이재명 성남시장(좌) ⓒ뉴시스 / 안희정 충청남도지사(우)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이재명, 다음 번에 큰 역할 할 것

Q. 경선과정에서 탈락한 후보 중 대통령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이 있다면.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만 분석했다. 나머지 인물은 자료를 안 봤기 때문에 평할 수 없다. 다만 내가 검토한 사람 중 정신건강이 가장 양호한 사람은 이 시장이다. 나는 이 책을 쓰기 전까지 이 시장을 잘 몰랐다. 그러나 분석해보니 그는 건강한 심리를 가진 사람이다. 기본계급(노동자와 농민) 출신이 정치인이 되면 국가적 재앙이거나 국가적 경사 둘 중에 하나다. 이는 계급배반을 하느냐 아니냐에서 갈린다. 이 시장은 계급배반의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다. 노동자라는 정체성이 분명하다. 물론 거칠다는 약점이 있지만 대권을 잡았을 때 문제를 일으킬 만한 치명적인 약점은 없다. 당장 대권을 잡을 순 없다고 하더라도 다음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차기 정부에서 제대로 못하면 이 시장에게 지지가 쏠릴 가능성이 있다.

Q. 안희정 충남지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안 지사는 무력감에 기초한 권력야망이 상당하다. 안 지사의 부모가 엄격하셨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다 놀러갈 때 고추밭을 매는 등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을 많이 겪은 듯하다. 이럴 때 아이들은 무력감을 느낀다. 무력감이 심한 사람은 힘을 과시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안 지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주먹질을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를 평정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시작하면서는 후배들을 때릴 수 없으니 소위 ‘말빨’로 과시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안 지사는 언어에 굉장히 집착한다.

안 지사에게는 무력감이 깔려있기 때문에 강한 힘에 부딪히면 빠르게 항복한다. 또 무력하기에 백그라운드가 필요한 사람이다. 무력감이 강한 안 지사가 정치자금법으로 구속되고, 참여정부 실패를 겪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볼 때 어땠을까. 겁이 많이 났을 것이다. 대연정은 안 지사가 논리적 사유에서 개발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밑에 ‘힘 있는 애들하고 맞붙으면 안 되겠구나. 잘 섞여서 협치를 해야겠다’는 무의식적 흐름이 있을 거라고 본다.

Q. 대연정 발언이 안 지사의 지지율 상승에 큰 역할을 했다. 정권교체를 꿈꾸는 마음과 함께 갈등을 끝내고 이제 더불어 가기를 바라는 국민의 마음이 숨어있다고 보는지. 아니면 단순히 갈 곳을 잃은 보수층의 유입이라고 보는지.

지지하는 후보가 없어 움직이는 표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후보는 확장성이 없다. 때문에 ‘문재인은 싫고, 누구 찍을까’하고 돌아다니는 표가 많다. 이 사람들이 반 전 총장에게 몰려갔다가, 안 지사에게 몰려갔다가, 이제 안철수 후보에게 몰려갔다. 민주당에서 이를 자꾸 보수표라고 하는데, 보수표가 아니다. ‘비 문재인표’의 이동이라고 봐야한다.

▲ 지난 3월 11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뉴시스

‘촛불 민심’ 앞으로도 지속될 것

Q. 대한민국은 지금 큰 혼란에 빠졌다. 탄핵부터 대선까지 쉴 틈도 없이 큰 이슈들을 겪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의 심리상태에 대해 진단한다면.

한국 사람들이 ‘이명박근혜’ 정부를 지나면서 고통의 극한까지 맛봤다고 생각한다. 지옥을 경험했다고 할 정도로 바닥을 쳤다. 그러다 각성하게 된 계기가 세월호였다. 당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은 ‘미안하다’였다. 바닷물에 빠졌는데 못 구해줬다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나도 잘못된 사회의 부역자였다’는 고백이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는 것을 알면서도 타협하면서 산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쌓여온 사회변혁에 대한 욕망을 일거에 분출시킨 계기는 국정농단 사태였다. 이 사건 관련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촛불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끝장을 볼 때까지 탈 것이다’라고 했는데 결국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냈다. 일시적인 분노가 아니라 오랜 기간 누적되면서 바닥을 치고 올라왔기에 지속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정권 교체가 돼도 사회개혁 의지가 있기에 계속 타오를 것이다. 정권교체 후에 제대로 개혁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다시 한 번 정치권을 칠 것이다.

Q. 박 전 대통령 파면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반대로 정치혐오가 더 심해지기도 했는데.

정치혐오가 생기기도 했지만 훨씬 많은 숫자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주체로 나설 곳이 광장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층(基層. 노동자와 농민 등 피지배 계급) 민주주의가 없는 것이 큰 문제다. 한국인들은 기층 권력을 부분적으로도 장악하지 못하고 무권리 상태에 머물러 있다. 국민이 주인인 영역이 거의 없다. 광장에서는 국가의 주인이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지만 학교나 회사에 가서는 ‘찌그러져야’ 하는 괴리가 있다.

Q.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격차해소를 통한 관계회복이다. 시대정신의 핵심은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제시대에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일본이다. 그렇기에 당시의 시대정신은 독립이 될 수밖에 없다. 군부독재 시절의 시대정신은 군부독재 타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을 괴롭히는 것은 무엇인가. 불공정, 불평등한 시스템이다. 한국 사회는 시스템으로 소득·자산 격차를 계속 벌려 왔는데, 이때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인간을 돈으로 평가하고, 돈 없으면 무시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인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다. 돈 없어서, 못 배워서, 못생겨서 등 오만가지 이유로 사람대접을 못 받는다. 이렇게 만인이 만인을 학대하는 사회에서는 고통을 피할 길이 없다. 격차를 줄여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현상을 제거해야 그 다음으로 나갈 수 있다.

▲ 심리연구소 ‘함께’ 김태형 소장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일상 민주주의 실현 위해 싸울 때

Q.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심리는.

한국의 소위 보수층의 심리는 북풍, 색깔론 등 공포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무서우니까 가서 붙어있는 것이다. 이 경우 공포가 줄면 빠져나오게 된다. 그래서 박씨가 파면되면서 콘크리트 지지층이 붕괴된 것이다. 박씨를 몰아낸 것이 주는 효과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지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든 오랫동안 박씨를 지지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도 인정하지 못한다. ‘내 정치적 신념이 잘못됐구나’ 하는 순간 자기 삶이 부정되는 것이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내용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내용 중 아버지의 유일한 프라이드는 월남전 참전이었다. 그런데 그 전쟁이 죄 없는 사람들을 학살한 것이라고 했을 때 아버지의 인생이 공중분해 된다. 자기 삶이 부정되는 경험이다.

Q.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심리분석을 2012년 대선 전에 정리해 출판했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까.

공감대를 형성했다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심리분석의 중요성을 사람들이 이해했으면 한다. 이번에 책이 나와 호응은 좀 얻었지만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책을 후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Q.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당시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나왔다”는 발언을 한 뒤 불쌍하다는 이유로 박 전 대통령에게 투표하는 일이 있었다. 선거에 감정이 개입돼 판단력이 흐려진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모습을 어떻게 봤는지.

사람들은 흔히 지식에 의해 감정이 형성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감정이 일단 형성되면 거꾸로 지식을 주장하는 측면이 있다. 미운 사람은 어떤 얘기를 들어도 안 찍고 마음에 드는 사람은 무슨 소리를 들어도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다. 대선을 이해하려면 이를 먼저 알아야 한다. 박씨에 대한 강력한 심리적 유착이 있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고 ‘노인들을 위한 복지공약을 제시하면 이쪽으로 오겠지’, ‘특전사 옷 입고 코스프레하면 오겠지’ 해서 진 것이다. 그렇게 해도 절대 안 온다. 다른 전략을 세웠어야 했다. 만약 문재인 후보가 거세게 공격해 심리적 유착을 끊었다면 승리했을 것이다. 이정희 전 의원의 잘못은 아니다.

Q. 대선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누가 대권을 잡든 국민들이 많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왔다. 기층 민주주의, 일상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싸울 때가 왔다. 국민이 권력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에 대해 얘기했다. 노 전 대통령은 기득권들의 저항에 부딪히며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없으면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하는 고독을 느꼈다. 차기에 누가 대통령이 돼도 같은 고독을 느낄 것이다.

촛불 들고 광장에 나가는 것은 조직된 힘이 아니다. 일상에서 조직돼 있어야 한다. 그래서 노조, 협동조합 등이 필요하다. 국민이 주체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국정농단 사건 같은 일은 터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통령을 갈아치울 수 있는 자유는 주되, 진짜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주려 하지 않는다. 이 싸움이 돼야 누가 대권을 잡든 발전할 것이다. 민의는 기층권력을 쟁취하는 쪽으로 가야하고 정권은 이를 열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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