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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윤혜경 기자】 “우리는 ‘이란성 쌍둥이’ 일회용 컵 형제입니다”

본격적으로 일회용 컵 형제의 얘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일회용 컵 형제는 ‘이란성 쌍둥이’다. 피부(재질)가 플라스틱으로 돼 차가운 음료를 몸에 담는 ‘차니’와 종이로 만들어져 따뜻한 음료 전용으로 쓰이는 ‘여리’. 흔히 차니와 여리를 묶어 일회용 컵 형제로 부른다.

이 형제의 어머니는 ‘자연’이다. 형제는 이란성 쌍둥이답게 어머니의 자궁 속 각기 다른 난자들이었다. 차니는 ‘석유’라는 DNA를, 여리는 ‘나무’라는 DNA를 가졌다. 이렇게 난자였던 차니와 여리는 아버지의 ‘가공’이라는 정자를 만나 수정돼 일회용 컵으로 탄생했다.

▲ 플라스틱 컵 밑면에 기재된 PET, PS 표시 ⓒ투데이신문

“플라스틱 컵 ‘차니’. 세상에 나오다”

차니의 탄생부터 꼼꼼하게 되짚어 보자.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컵 차니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차니와 같은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추출된다. 화학 공장 등이 석유에서 아주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를 뽑아내면 다른 공장은 이를 받아 종이나 천처럼 하나의 플라스틱 원단을 제작한다.

컵 공장은 대형 기계로 이 원단에 공기를 주입하거나 혹은 플라스틱이 손상되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열을 가하고 눌러 컵의 모양을 만든다.

차니는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이런 차니에도 종류가 있다. 커피전문점 등에서 보통 차가운 음료를 몸에 품는 차니는 주로 PET(Polyethylene Terephthalate,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나 PE(Polyethylene, 폴리에틸렌)가 가장 많다. 간혹 PS(Polypropylene, 폴리프로필렌)도 있다. 모두 석유에서 추출된 플라스틱이지만 경도가 조금씩 달라 컵에 사용되느냐, 이음재로 사용되느냐 등의 용도가 조금씩 다르다. 당신의 손에 쥐어진 차니가 어떤 플라스틱인지 궁금하다면 당장 컵을 들어 밑면에 그려진 삼각형 모양의 재활용 표기를 확인해보자. 각각의 컵에는 ‘PE’, ‘PS’ 등의 표기가 돼 있을 테니.

▲ 침엽수림 <사진제공=국립수목원>

“종이컵 ‘여리’. 세상에 등장하다”

이번엔 종이컵 여리의 탄생을 살펴보자.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여리는 일반 종이와는 재질이 조금 다르다.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A4용지가 1mm에도 한참 못 미치며 표면에 광택이 없다면 종이컵의 종이는 그보다는 조금 더 두껍고 안에 광택이 살짝 돌면서 매끈하다. 이는 액체를 담기 위해서다.

종이컵의 종이는 일반 종이보다 더 질기고 튼튼해야 하기 때문에 활엽수가 아닌 침엽수로 생산하는 천연펄프(Virgin Pulp, 나무에서 처음 만든 펄프)를 사용한다. 추운 지역에서 자라는 침엽수는 활엽수보다 천천히 성장하기에 나무의 조직이 견고하다. 여리를 만들기에 제격인 셈.

이러한 최고급 펄프를 생산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스웨덴, 핀란드, 독일, 미국 단 4개 국가뿐이다. 일반적으로 펄프를 생산한다 하면 무작정 나무를 베기 때문에 환경이 오염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나라들은 숲 조성에도 힘쓴다고 한다. 펄프 제작을 위해 벌목을 하면 기존에 심겨 있던 나무의 115%를 심는다. 매년 나무를 15%씩 더 심었기 때문에 환경을 무작정 해치지는 않는다는 게 해당 나라들의 전언이다.

이렇게 생산된 펄프는 표백 과정을 거쳐 하얗게 변한다. 최고급인 만큼 가격도 비싸다. 일반 펄프가 1t에 800~900달러(한화 약 90만9800원~102만3500원)라면 최고급 천연펄프는 1t에 1300~1400달러(한화 약 147만8800원~159만2200원)다. 최고급 펄프가 일반 펄프보다 평균 59% 정도 더 비싼 것이다.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 이 최고급 종이 원단은 종이컵 공장으로 옮겨지기 전 음료가 새는 것을 방지하는 라미네이팅 작업을 거친다. 전문용어로는 LDPE(Low Density Polyethylene, 저밀도 폴리에틸렌). 매끈매끈한 종이컵 안쪽 면이 될 종이 면에 플라스틱을 코팅하는 라미네이팅 작업이 끝난 종이는 종이컵 공장으로 옮겨진다.

▲ 종이컵이 될 두루마리 원단 ⓒ투데이신문

공장으로 옮겨진 종이 원단들은 가장 먼저 인쇄라는 이름의 타투를 시술받는다. 공장에서는 원단 겉면에 상호나 로고 등의 무늬를 인쇄한다. 최근에는 상호나 로고 등이 없는 무지 종이컵도 많이 사용되지만, 스타벅스나 투썸플레이스 등의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은 꼭 인쇄 작업을 거친다.

인쇄가 완료된 종이 원단을 재단할 때 두루마리 세 바퀴가량은 사용하지 않는다. 공장 관계자에 따르면 종이 원단의 바깥 면은 손상되거나 이물질이 묻어있기 쉽기 때문에 세 바퀴가량은 버리고 네 바퀴째부터 사용한다.

오염된 부분이 제거된 원단들은 컵의 형상으로 쉽게 조립할 수 있게 재단(펀칭)된다. 종이컵은 부채꼴 모양의 옆면과 원 모양의 밑면으로 구성된다. 공장에서는 옆면 재단을 30분 정도 먼저하고 밑면은 종이컵을 조립할 때 바로 재단한다. 이는 입에 닿는 부분을 포함한 옆면이 수분을 어느 정도 머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 종이컵 옆면 재단 모습 ⓒ투데이신문

이제 본격적으로 종이컵 여리를 만들 차례다. 원단을 기계에 넣으면 부채꼴 모양의 옆면이 눈 깜짝할 새 여러 개 재단된다. 순식간에 쌓여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재단된 옆면 종이들. 이 종이 윗부분(부채꼴 모양의 옆면, 넓은 쪽)이 될 부분에 물을 뿌려 수분을 머금게 한다. 물을 뿌려야만 종이컵에서 입에 닿는 윗부분을 동그랗게 돌돌 말 수 있다.

재단돼 수분을 머금은 종이들은 새로운 기계에 놓인다. 이젠 밑면이 될 종이 원단도 같은 기계에 놓인다. 기계는 순식간에 종이컵 여리들을 생산한다.

▲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기계에 놓인 종이컵 옆면, 옆면을 동그랗게 마는 과정, 옆면과 밑면 접합 과정, 밑면 재단 과정 ⓒ투데이신문
▲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옆면과 밑면 접합 과정, 컵 윗부분을 말아내리는 과정, 컵 검수 과정, 윗부분이 동그랗게 말린 컵 ⓒ투데이신문

복잡하면서도 작은 이 기계는 옆면을 동그랗게 말고 있음과 동시에 한쪽에서 원 모양의 밑면을 빠르게 재단한다. 기계는 순식간에 옆면과 밑면을 고정한다. 이때 옆면과 밑면의 접합 부분에 280도의 열이 가해진다. 그러면 종이 안쪽에 라미네이팅 돼 있던 플라스틱이 순식간에 녹아 단단히 고정된다. 접착제가 별도로 필요 없는 것이다.

끝으로 컵의 윗부분을 돌돌 말아내리면 일상에서 흔히 보는 종이컵 여리가 완성된다. 자판기에서 볼 수 있는 6.5온스짜리부터 카페에서 보는 10~16온스 컵, 영화관 매점에서 판매하는 팝콘 통도 이 제작과정을 거친다.

한쪽에서는 검수 작업도 병행한다. 우선 무작위로 컵을 뽑아 색소를 푼 액체를 담고 물이 새는지를 관찰한다. 물이 새는 것은 그 기계에 오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기계에서 생산한 컵은 모두 폐기한다.

▲ ⓒ투데이신문

“일회용 형제들은 정말 일회용인가요?”

검수까지 거친 여리들은 차곡차곡 쌓이고 포장돼 카페 등으로 옮겨진다. 그렇게 차니와 여리는 커피전문점 등에서 음료를 담은 채 테이크아웃 돼 우리의 손에 쥐어진다.

여러 공정을 거쳐 누군가에겐 피로를 풀어줄, 누군가에겐 휴식이 돼 줄 음료를 담고 있는 일회용 컵 형제들. 플라스틱 컵 차니는 차가운 얼음과 함께 음료를 품고, 종이컵인 여리는 속까지 데워주는 따뜻한 음료를 품는다. 이들의 태초라 할 수 있는 석유와 침엽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상태를 한 채.

이렇게 경이로운 탄생을 통해 세상에 나온 일회용 컵 형제들. 이들의 효용이 단순 ‘일회용’에 불과하다면 어떨까. 차니와 여리는 정말 일회용일까? 일회용 컵 형제와의 이번 동행이 비극으로 치닫지 않기를 바란다.

※ 본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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