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암학원 채현국 이사장 <사진출처=뉴스타파 '목격자들' 캡처>

2014년 한겨례 신문에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봐두어라”는 다소 강해 보이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인터뷰의 주인공은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 선생이었다. 1935년생인 이 할아버지는 젊은이들에게 “아비들도 처음부터 썩지는 않았다. 노인 세대를 절대로 봐주지 마라.”고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적지 않은 어른들이 젊은이들한테 ‘노력’을 강요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이른바 ‘꼰대 짓’을 하는데 반해 이 할아버지는 오히려 젊은이들한테 ‘살아있어 주어 다행이다’, ‘고맙다’고 한다. 동시에 이 시기를 사는 젊은이들이 들을 만한 충고를 넌지시 해 주기도 했다.

『삼국지』의 등장인물 사마휘는 은둔하고 있으면서도 천하의 인재들과 교유했고, 특히 유비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이다. 이 시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길 잃은 ‘유비’라면 채현국 선생은 유비를 도운 ‘사마휘’라고 할 수 있겠다.

● 사마휘(司馬徽)

영웅을 도운 은둔자

200년, 유비는 조조와의 싸움에서 패해서 종친인 유표가 다스리는 형주로 도망쳤다. 유표는 유비한테 신야성에 살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러나 유비의 세력 확장을 두려워한 유표의 부인과 부하들은 유비를 죽이려 했다. 유표의 부하 채모는 군대를 이끌고 유비를 공격했다. 유비는 또 패했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긴 했으나 부하들과 떨어져 버렸다. 혼자서 산 속을 헤맨다. 한참을 가는데 어린 소년이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이쪽으로 온다.

“휴우, 피리 소리 참 좋네. 내 팔자가 너만 못하구나.”

소년은 소를 멈추고 유비를 한참 보더니 소에서 내린다.

“장군은 혹시 황건적을 무찌른 유비 장군이 아니십니까?”

“너는 산골에 사는 아이인데 내 이름을 어찌 아느냐?”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만, 제 스승님이 장군의 모습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유비는 소년의 스승을 만나고 싶었다. 둘은 한 참을 걸어 그 사람의 집 앞에 도착했다. 집 안에서 한 사람이 껄껄 웃는다.

“좀 전 까진 거문고 소리가 맑고 그윽했는데 갑자기 높고 강한 곡조가 일어나는 걸 보니 내 소리를 당대의 영웅이 듣고 있구나!”

유비와 수경선생 사마휘(司馬徽)는 이렇게 처음 만났다. 사마휘가 말했다.

“저는 예전부터 장군의 명성을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해서 지금까지 이런 신세로 산다고 생각하십니까?”

“운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장군의 옆에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요.”

“제 비록 부족한 사람이지만, 제 부하 중에 글 잘하는 선비로 미축과 간옹이 있고, 무사로는 관우, 장비, 조자룡이 있습니다.”

“하하하, 관우, 장비, 조자룡은 모두 만 사람을 상대할 장수입니다만, 아쉽게도 이들을 잘 부릴 사람이 없습니다. 미축 같은 사람들은 백면서생일 뿐, 세상을 구하고 천하를 다스릴 재목은 아닙니다.”

“저도 훌륭한 선생을 찾고 있으나 아직도 그런 분을 만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공자님은 ‘열 집 사는 고을에도 반드시 충신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째서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하하.”

“저는 어리석어서 모르겠사오니 선생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지금 천하의 인재가 모두 이 양양 지역에 모여 있습니다. 장군께서 한 번 찾아가 보십시오.”

“어디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복룡(伏龍, 숨어 있는 용), 봉추(鳳雛, 봉황의 새끼) 둘 중 한 사람만 얻으면 천하를 평정할 수 있습니다.”

“복룡, 봉추는 어떤 분들입니까?”

“하하하, 좋은 사람이죠.”

“그 분들이 누구입니까?”

“하하. 날이 저물었군요. 오늘은 이곳에서 주무시고, 내일 다시 이야기 합시다.”

다음 날이 되었는데도 사마휘는 복룡과 봉추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복룡은 제갈공명이고, 봉추는 방통이다. 유비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사마휘와 헤어지고 신야성으로 돌아갔다. 이후 유능한 참모 서서가 유비의 휘하로 들어왔으나, 조조가 서서의 어머니를 볼모로 잡고, 어머니의 필체를 흉내 내어 서서에게 조조한테로 오라는 편지를 쓰는 바람에 서서는 유비를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서서는 떠나면서 유비한테 제갈공명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이즈음에 사마휘가 유비를 찾아왔다.

“서서가 이곳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얼굴이나 볼 까 싶어 찾아왔습니다.”

실은 서서한테 유비를 찾아가라고 권한 사람은 사마휘였다. 드러내지 않으면서 유비를 도왔던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유비는 한숨을 쉬며 사연을 말한 뒤에 제갈공명에 대해 물어 본다.

“서서가 떠나면서 남양에 사는 제갈공명을 추천했습니다. 제갈공명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하, 제 갈 길이나 잘 갈 것이지, 왜 또 다른 사람을 끌어내서 피를 토하게 만들려 하는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갈공명은 자신을 춘추시대의 명재상 관중과 전국시대의 명장 악의에 비하고 있으나 제가 보기엔 그들 보다 뛰어납니다. 주나라 팔백년의 역사를 일으킨 강태공과 한나라 사백년의 터를 닦은 장량과 어깨를 나란히 할 사람입니다.”

말을 마치자 사마휘는 작별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문 밖으로 나서면서 하늘을 우러러 보더니 긴 탄식을 한다.

“허허, 와룡(臥龍)이 주인은 만났으나, 때를 얻지 못했으니 아쉽구나.”

사람을 알고 세상일을 꿰뚫었던 사람

사마휘는 제갈공명과 같은 인재들과 어울려 사람을 품평하거나 세상일을 논하며 시간을 보냈다. 학문이 깊어서 각 지역의 선비들이 사마휘를 찾아오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촉나라 황제 유선의 태자를 가르친 이선이라는 사람은 사마휘를 찾아와 그의 학문을 배웠다.

사마휘는 사람을 품평하는 일에 일가견이 있었다. ‘봉황의 새끼’ 방통은 젊은 시절에 사마휘를 찾아갔다. 사마휘는 뽕나무 위에서 뽕잎을 따고, 방통은 나무 밑에서 한 나절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사마휘는 방통을 높이 평가했고 이때부터 방통의 명성은 높아지게 됐다. 제갈공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아도 이 사람은 사람을 보는 눈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사마휘는 서서가 조조의 진영으로 넘어갔다는 유비의 말을 듣자 이렇게 말했다.

“가지 않았더라면 서서의 어머니가 사셨겠지만, 갔기 때문에 돌아가실 겁니다. 당신이 죽어야만 아들이 역적 조조 진영에 머물지 않고, 유비 장군께 돌아갈 거라 생각하실 겁니다.”

사마휘의 예언대로 서서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자 큰 소리로 꾸짖고는 목을 매 자결했다. 이처럼 사마휘는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사마휘는 전란을 피해 숨어 살면서도 세상을 바로잡을 뜻을 지니고 있었으며, 늘 세상일에 관심을 두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뛰어난 인재를 가르치거나, 그들과 교유하면서 세상에 나갈 뜻을 둔 사람한테는 방향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세상일에 관여했다. 유비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 주었으며, 서서가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자 유비를 찾아가라고 권하기도 했다.

“자네는 왕을 도울 수 있는 재주를 지닌 사람이야. 사람을 가려서 섬겨야지. 어째서 유표 따위한테 갔다는 말인가. 자네 눈앞에 훌륭한 사람이 있네.”

여러 영웅들한테 패전을 거듭하면서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유비한테 사마휘는 훌륭한 선생이었으며 조력자이기도 했다. 이래서 유비는 사마휘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저는 세상일에 뜻이 없습니다. 자연을 벗 삼아 살려 합니다. 저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장군을 도울 것입니다.”

● 채현국(蔡鉉國, 1935 - )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젊은이들 사이에 연애·결혼·출산, 이 세 가지를 포기했다는 의미를 지닌 ‘삼포세대’, 거기에 집과 친구까지 포기한 ‘오포세대’에 이어, 급기야 우리나라를 지옥에 비유한 ‘헬조선’이라는 말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특정세대가 만들어 낸 말이라는 점, 얼마큼 현실적이며 정확하게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가의 여부를 따져봐야 하겠지만,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사회는 병들어 있거나, 병들어 가고 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부모를 잘 만나서 그 후광으로 죽을 때까지 편하게 살다갈 게 거의 확실할 소수의 젊은이들을 제외한 대다수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몰락한 황실의 후예로 태어나 돗자리를 만들어 팔면서 연명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긴 했으나 독립하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전전하던 유비의 신세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반드시 유황이 끓고, 칼산이 솟아있어야 지옥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구실을 못하며 살아야 하는 이곳이 지옥일 수도 있다.

이처럼 힘겨운 삶을 살면서 활로를 찾는 오늘의 유비들에게 길을 제시해 주는 사마휘가 있다. 채현국(蔡鉉國) 효암학원 이사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걱정할거 하나도 없어. 우리가 아는 역사적 지식과 경험을 포함해서, 나는 젊은이들이 잡스처럼 자신들의 방법을 찾아내길 기대하는 거지. 생명의 기적처럼, 낙천적인 생각을 하는 거지. 이 위기에서도 찾아낼 겁니다. 위기를 위기로 알거고. 해결은 안 돼도 해결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고요.”<2015. 1. 5. 참여연대 홈페이지>

이른바 ‘먹고사니즘’이 화두인 젊은이들에게 이 말은 무척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현국은 젊은이들의 미래를 낙관한다. 어디에서 낙관의 근거를 찾았던 것일까. 지난 2013년 코레일 노조가 파업을 하는 일이 있었다. 이 때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주현우 씨는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써서 학교 후문에 붙여 놓았다. 주현우씨는 우선 정부의 철도민영화 방침과 밀양송전탑 문제,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 뒤 이렇게 말했다.

“……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2013. 12. 15. 뉴스 1>

이 글은 젊은 세대 뿐 아니라 기성세대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혹자는 ‘그래봐야 소용없다’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으나 대부분 이 젊은이한테 박수를 보냈다.

“아주 고마워! 젊은 사람들 그렇게 하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살아 있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날조 조작하는 이 언론 판에 조종당하지 않고 그렇게 터져 나오니 참 고마워. 역시 젊은 놈들이 믿을 만하구나. 암만 늙은이들이 잘못해도 그 덕에 사는구나 하고….”<2014. 1. 3. 한겨레신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 또는 약한 사람들에게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다.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내 삶은 나아지지 않는 것인가.

“사실 여러분들은 너무 많이 알고 있습니다. 사실 아는 게 아는 게 아닙니다. 삶 자체는 기적입니다. 아는 지도 모르게 16년을 교육 받아 왔습니다. 생각을 바꾸세요. 효모가 되는 길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질까?’를 항상 고민하는 것입니다. …… 걱정하지 마세요. 생명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발효 할 수 있는 데 자신이, 스스로가 안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소박한 마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소박한 마음을 가지세요. 정말로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소박한 마음만 가지시면 이미 훌륭한 효모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좀 예쁘게 봐 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소박할 수 있습니다.”

채현국은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소박해지라’고 한다. 얼핏 ‘가난하게 살아가라는 것인가’,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라’는 소리로 들리기도 하고,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질까’를 끊임없이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말이므로 가볍게 넘겨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채현국은 19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 소득세 납부액이 국내 10위권 안에 드는 거부였다. 흥국탄광 등 24개 회사를 운영하다가 박정희가 유신헌법을 선포하자 돌연 사업을 정리하고, 사원들한테 재산을 모조리 돌려주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할 수 없는 일도 아닌 것이다.

“착하다, 바르다, 예의 있다, 얌전하다, 옳다 등 학교에서 교육한 모든 수식어에 저항하라……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재발했을 때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이 저항만이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기 때문이다……국가가 민초를 길들이는 어휘에 항상 의심하고 삐딱하게 바라봐야 한다.……부디 행동하고 분노할 줄 아는 국민이 되길 바란다.”<2015. 4. 5. 평화뉴스>

그러니까 이 지옥을 벗어나려면 우선 생각을 바꾸고, 지옥의 간수들이 들이미는 몽둥이와 창에 분노하고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남이 좋다는 책은 의심부터하지 않으면 인문학은 불가능합니다. 모든 것은 남의 지식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나의 태도에 달렸습니다. …… 의심만이 배움의 자유, 지식의 자유를 가능케 합니다. 그러나 학교는 질서만 가르치지 방황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의심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저는 과학도 믿으면 미신이라고 합니다. 확실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2015. 3. 3. 다음 뉴스펀딩>

유비는 자기한테 훌륭한 무장이 있어도 그들을 움직일 제갈공명이 없어서 힘겨웠다면, 우리 젊은 세대들은 그들한테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기득권층이 쌓아 놓은 벽 때문에 삶이 힘겹다. 채현국은 젊은 세대에게 스스로 제갈공명이 되라고 말한다. 기득권층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저항하고 그들이 내세우는 가치를 의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2015. 2. 16. 오마이뉴스>

채현국 스스로 ‘세상엔 정답이란 없다’고 했으므로 이 말을 존중한다. 채현국이 젊은 세대를 향해 하는 말은 ‘정답’이 아닐 수 있다. 다만 수많은 ‘해답’ 중 하나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의 말을 비현실적이라고 일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젊은 세대는 패기가 없다. 사회 변혁의지도 없다’는 말이 ‘정답’은커녕 ‘해답’도 될 수 없을 가능성이 높고, 조금 강하게 표현하자면 ‘헛소리’라는 것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으니 이들과는 다른 채현국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답을 알려 주지 않는 선생님

채현국은 1935년 일제강점기에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나왔고, 아버지를 도와 삼척에서 흥국탄광을 운영해서 거부가 되었다. 1972년 유신이 선포되자 이듬해 사업을 정리했다. ‘권력의 앞잡이가 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많은 재산을 종업원들한테 모조리 분배해 주었고, 사업을 하면서 정권의 탄압을 받는 많은 사람들을 음양으로 도왔다. 이후 채현국은 가난하게 살았으며, 보증불이행으로 신용불량자로 살고 있다.

채현국은 현재 경남 양산의 개운중학교와 효암고등학교에서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러나 개인소유의 재산은 없다. 아이들과 선생님들 틈에서 숨어 살면서 세상과는 잘 접촉하지 않고 있다.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인들이 저 모양인 걸 잘 봐 두어라’는 말로 유명해지기 전까지 채현국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다. 이후 유명세를 타게 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란 유명해 지는 순간에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시시한 삶만이 확실하게 행복한 삶이라는 대전제가 있습니다. 특별하거나 조금이라도 별나면 행복이 쭈그러지고 이상해집니다. 괴로움이 시작됩니다.”<2015. 2. 10. 다음 뉴스펀딩>

이래서 채현국은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를 제안해도 사양을 하며, 사람들 앞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눈과 마음은 세상에 있으며, 관심을 끊어 버리지 않는다. 채현국은 박근혜 대통령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난 신문도 안 보니까 모르지만, 이게 무슨 일인지 난 모르겠어요. 당장 7.4 공동성명 저희 아버지가 했으니까, 저희 아버지 굉장히 훌륭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건 해야 할 것 아니야. 그것도 하나 못 하는 사람이. 또 저희 아버지가 밤낮 가난한 민중 위해서 경제 개발한다고 그래서. 그건 해야 할 것 아니야. 부자 잘 살게 하는 법이나 자꾸 통과시키고 주물럭거리고 앉아 있으면 그거 딱한 일 아니오. 정말 딱한 대통령이에요.”

현 정부와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하는 야당한테는 이렇게 말한다.

“저런 엉성한, 계파 무마하기도 바빠 가지고 야당이 저러고 있는 한. 자기의 진정한 목소리는 없는 채로 남의 시선 봐가면서 인기 끌 발언만 여당 놈 비슷하게 야당이 하는 한, 진정성이 없는 야당이 어떻게 자꾸 이깁니까. 절망적인 여당 꼬라지가 그래서 이놈들하고 제2중대란 말이 또 나오게 생긴 겁니다. 여당의 허구적인 가식에 못지않은 게 야당이라고 본 것 아닙니까. ‘세월호 이후에 떠드는 걸 보니까 너희도 가식이다. 너희도 진정성이 없다’ 난 그렇게 보기 때문에 오히려 민중이 어리석기만 한 게 아니라 정말 정치 해먹으려면 야당이 정신 안 차리고는 해먹기 어렵다는 게 증거로 드러난 것 같습니다. 이건 구별해야 합니다. 민중이 야당의 진정성 약한 것을 더 엄격하게 바라본다는 걸.”<2014. 8. 20. 국민TV 뉴스 K>

여든 한 살 세상의 변화에 둔감한데다 신문도 안 보는 늙은 은둔자의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로 여기고 넘겨 버릴 것인가.

▲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삼국지인물전> 외 5권

“내가 탄광을 한 사람인데….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죽었다. 난 칭찬받는 일이나 이름나는 일에 끼면 안 된다.……(자서전을) 절대 쓰지 않을 거다. 주변 사람들한테도 부탁했다. 쓰다 보면 좋게 쓸 거 아닌가. 그거 뻔뻔한 일이다. 난 칭찬받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당신의 말씀을 존중한다. 그러나 ‘해답’을 넘어 ‘정답’일수도 있는 말을 몇 마디라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수많은 유비들에게 당신은 사마휘와 같은 선생이고, 조력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답을 알려 주지 않는 선생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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