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북핵문제에 역사가 던지는 교훈(1)
[칼럼] 북핵문제에 역사가 던지는 교훈(1)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9.2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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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으로 국내에서 대북정책에 대한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또한 미국과 북한은 서로 듣기만 해도 무서운 말들을 주고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일정한 불안을 느끼는 가운데에서도 사재기 같은 행위를 하지 않고 생활에 집중하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를 놓고 많은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본 칼럼에서 필자는 몇 가지 논점들에 대하여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답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우선 미국과 북한 사이의 평화협정이 수교에 관한 문제. 미국과 북한 사이에 수교가 이루어지면 현재의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만 하면 반대 진영에서는 종북이니, 좌파니 색깔론을 들이민다. 그러나 수교하더라도 미국이 마음을 먹으면 북한은 지도에서 지워질 수 있다. 그 사례를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미국과 이라크의 관계이다.

미국이 걸프전, 이라크 전쟁 등에서 이라크와 전쟁을 했고, 이라크 대통령인 사담후세인을 죽인 것은 유명한 얘기다. ‘불량국가인 이라크를 뜯어고치고 독재에서 이라크 국민을 구하겠다.’라는 식의 논법이 현재 북한을 향한 미국의 시선과 비슷하다는 것도 재미있다. 그런데 걸프전 이전까지 사담 후세인의 후원자는 미국이었다. 이란의 호메이니가 이슬람 혁명 정부를 세우면서 친미 정권을 몰아내자, 미국이 사담 후세인이 대통령으로 있던 이라크를 지원했는데,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나자 미국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빌미로 이라크를 공격한 것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지원했던 정부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이익이나 국제 정세가 바뀌면 언제든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이다. 이것은 북한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이다. 설혹 미국과 북한이 수교를 하더라도 북한이 미국의 이익에 반대되는 정책을 펴거나 우방인 한국이나 일본을 위협한다면 언제든 단교하고 공격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핵무장 문제. 우리나라에서 수구 세력을 중심으로 미국의 전술핵을 들여오자거나, 심지어는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자는 주장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반도가 핵무기가 대치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 ‘미-중-러 사이의 핵무기의 대리전의 장소가 될 것이다.’라는 원칙론에 가까운 예측은 당연히 지지한다. 그런데 조금 다른 시선에서 이 사안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에 미국의 전술핵을 들여온다고 가정해보자. 중국과 러시아가 가만히 있을까? 특히 중국의 경우 사드와 관련해서 우리나라와 미국이 아무리 “방어용”, ‘X밴더 레이더를 제한 운용한다.’고 강조해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중국은 우리나라에 대해 무형의 경제적 보복을 감행하고 있다. 하물며 미국의 전술핵이 들어온다면?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까지, 무형의 경제적 보복 뿐만 아니라 유형의 군사적 보복이 일어날 수도 있다. 우방으로서 미국이 한국을 지원하건, “그냥 다른 나라”로서 미국이 한국을 외면하건, 우리나라는 잿더미가 될 것이다.

위의 주장들의 근거 역시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우리나라가 특정 국가와의 관계를 가깝게 가지거나, 특정 국가가 우리나라에 개입하면 그것은 역사적 소용돌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정계에 복귀했던 대원군은 청나라 군대에 의해 납치됐고, 갑신정변(甲申政變)은 청나라의 위안스카이(袁世凱)의 빠른 개입으로 3일천하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정판은 갑오농민전쟁과 청일전쟁이었다.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났을 때 갑오농민군을 진압할 무력도, 조선 농민군의 개혁안을 받아들일만한 혜안과 능력도 없었던 조선 조정은 결국, 갑오농민군 진압을 위해 청나라 군대에 원군을 요청한다. 그리고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도착하자, 청과 일본이 맺은 텐진조약(양국 중 한 쪽이 조선에 군을 파병하면 이것을 상대 국가에게 통보해야 된다는 내용)으로 인해 일본군도 조선에 진입했다. 그리고 이 두 외국 군대가 조선에 대한 독점권을 놓고 한반도에서 충돌하면서 청나라와 일본 사이의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당시 청나라 군대의 상황이었다. 청나라 군대는 “양무운동”이라는 근대화 운동으로 인해 동아시아 최강의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다.(공군의 개념이 없었던 당시 해군력은 당시 최첨단 군사력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일본과의 전쟁이 임박하면서 전쟁 개시 여부를 놓고 고민했던 청나라 조정은 막강했다고 믿었던 청나라 해군이 “속빈 강정”이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했다. 청나라 해군의 북양함대 가운데 실전에 쓸 수 있는 군함은 8척 뿐이었고, “정원호”와 “진원호”라는 군함에 싣고 있는 포탄은 단 3발씩뿐이었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서태후가 섭정에서 물러난 후 여생을 보낼 별장인 “이화원”을 짓기 위해 북양함대에 들어갈 예산을 빼돌렸기 때문이다. 지난 9년 동안 수구세력이 정권을 쥐고 있을 때 드러났던 각종 군사 비리, 당시 집권세력과 현재 야당인 수구정당의 수많은 군 면제자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들이 주장하는 “안보”는 얼마나 헛된 말이며, 이들이 좋아하는 “종북”이라는 말은 결국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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