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이어져 온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
헌재, 대체복무제 규정 않는 병역법 ‘위헌’
내년까지 병역 종류 규정 법조항 개정해야
관할 기관·복무 기간 등 논의 활발히 이뤄져
형평성·공공성 반영된 대체복무제 도입돼야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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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는 종교적 신념 또는 양심 등을 이유로 입영·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는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단을 내렸다.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지만 대체복무제 도입을 통해 위헌 요소를 해소해야 한다며 이에 따라 병역의 종류에 대체복무제가 포함될 수 있도록 해당 법조항을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찬반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분단국가라는 현실과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뤄져 왔던 대체복무제를 하루빨리 도입해야 된다는 입장과 양심을 가장한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입장이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입법부는 내년까지 병역 종류를 규정하는 병역법 조항을 대체복무제가 포함된 내용으로 개정해야 한다. 기간 내에 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해당 조항은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때문에 이제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아닌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병역 복무자 모두에게 합당한 법조항 개정을 위한 사회적 논의·합의를 촉구하는 새로운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17년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에 열린 옥중 기자회견 퍼포먼스 ⓒ뉴시스

병역·집총 할 수 없다…‘양심적 병역거부’
5년간 실형 선고받은 청년 1000명 이상

‘양심적 병역거부자’란 개인적인 신념으로 군복무 또는 군인이라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역할을 거부하는 사람을 뜻한다. 개인적 신념이라 하면 대체로 종교적 신념인데, 한국에서는 주로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무청이 공개한 ‘2013~2017년 입영 및 집총거부자 발생 및 고발 현황’에 따르면 5년간 종교 및 기타 신념을 이유로 입영 및 집총을 거부한 청년이 ▲2013년 623명 ▲2014년 565명 ▲2015년 493명 ▲2016년 556명 ▲2017년(8월까지) 119명이다. 이 가운데 종교적 신념에 따른 입영 및 집총거부자는 연도별로 ▲615명 ▲564명 ▲490명 ▲554명 ▲118명으로 확인됐다.

시민단체 ‘전쟁 없는 세상’ 이용석 활동가에 따르면 한국의 병역거부 역사는 일제 식민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9년 일제가 조선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 38명을 치안유지법 및 불경죄로 체포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후 1961년 군사쿠데타로 들어선 박정희 정부는 노골적으로 군사주의와 독재를 강화했고 1973년에는 ‘병무행정 쇄신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침해는 나날이 심해져 갔다. 특히나 병역거부로 형을 살고 나왔음에도 다시 입영영장을 발부해 병역·집총을 거부하면 또 감옥에 가두는 등 중복처벌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실제 3차례에 걸친 중복처벌로 총 7년 10개월 형을 산 사례도 있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 가운데는 훈련소에서 집총 거부 때문에 구타당해 사망에 이른 사람도 있다.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며 지금의 ‘양심적 병역거부’ 개념이 등장했다. 그리고 2001년 불교신자이던 오태양씨가 공개적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한국 사회의 중요 인권 이슈로 급부상했다. 오씨의 선언을 시작으로 매년 4~5명이 여러 가지 이유로 병역거부에 동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이전에는 훈련소에서 집총을 거부해 군사 법정에서 군법으로 재판을 받았다. 보통은 군형법 44조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하는 ‘항명죄’를 적용해 징역 2~3년형이 내려졌다. 2000년 이후에는 불구속 수사와 민간재판으로 바뀌며 대체로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다.

병무청에 따르면 ‘2013~2017년 5년간 입영 및 집총거부로 인한 형 확정 현황’에 따르면 ▲징역 1693명 ▲기소유예 3명 ▲무혐의 7명 ▲재판계류 651명으로 5년간 실형을 선고받은 청년은 1000명 이상이다.

지난 2011년 8월 30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회원들이 서울 종로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병역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대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뉴시스
지난 2011년 8월 30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회원들이 서울 종로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병역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대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뉴시스

대체복무제 허용하라는 국제사회
‘시기상조’라며 미뤄온 한국 정부

한국과 같은 징병제 국가 가운데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라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국가는 2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모병제로 바뀐 대만의 경우 2000년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대상으로 사회치안, 사법행정, 공공행정 등에서의 대체복무제를 시행했다. 또 2011년 모병제로 전환된 독일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인정하고 사회 영역에서 공익에 기여하는 대체복무제를 시행했다. 

이처럼 국제사회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거부권’과 함께 대체복무제를 보편적 권리로 인정해왔다. 유럽연합(EU)은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를 회원국의 자격 요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 유엔(UN)은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병역거부권 인정 및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철폐를 권고해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그동안 이러한 국제사회 요구와는 반대의 입장을 고수해왔다. 2000년대 들어서며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외면했다.

한국이 병역거부자와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논의를 미루는 사이 병역거부자가 감옥에 갇히는 상황이 반복되자 국제사회도 우려를 드러냈다. 2015년 1월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수감시키는 것은 자유권규약을 위반한 것이고 자의적 구금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또 같은 해 11월에도 한국 정부 자유권규약 제4차 보고서 심의결과에 대한 최종견해를 발표하며 병역거부자 수감자 전원을 즉각 석방하고 대체복무제 마련을 촉구해왔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남한과 북한으로 나뉜 휴전국이란 특수한 상황과 함께 반대 국민 여론 때문에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이에 따른 대책을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만 계속해서 반복했다.

 2016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72%가 ‘양심적 병역거부 이해도’ 항목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대체복무제 찬반’에 대해서는 ‘찬성’ 의견이 70%로 집계됐다.

그 이유로는 ▲‘대체복무제가 감옥보다는 낫다’ 26% ▲‘국민의 의무를 공평하게 수행해야 한다’ 16% ▲‘다른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14% ▲‘개인의 선택/인권/의견/종교 존중’ 12% ▲‘감옥은 가혹하다’ 8% ▲‘감옥을 보내는 건 국가적 손실’ 5% ▲‘대가를 치러야 한다’ 4% ▲‘군입대 강요사항 X’ 2% ▲‘입대 거부는 부득이한 일’ 1% ▲‘응답거부/모름’ 13% 등으로 확인됐다.

즉,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자 수감의 부당함을 인정하고 대체복무를 통해 의무를 수행할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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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제 둘러싼 갈등 여전
‘징벌성X·형평성O’ 위해서는?

최근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헌재는 앞서 2004년과 2011년과 마찬가지로 병역법 제88조 1항 ‘입영 통지를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로부터 3일이 지날 때까지 입대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을 합헌으로 판단하면서도 병역의 종류에 대체복무제를 포함하지 않고 현역, 예비역, 보충역, 병역준비역, 전시근로역 등 5가지로 규정한 ‘병역법 5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이례적인 결과를 낳았다.

대체복무제를 둘러싼 논쟁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헌재의 결정 이후 단순히 도입 여부에 대한 찬반 갈등이 아닌 형평성, 관할 기관, 복무 기간 등 대체복무를 어떤 방식으로 도입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박승철 이슈프로젝트팀장은 헌재의 결정을 반가워하면서도 징벌성 없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헌재의 결정을 매우 환영한다. 지금까지 국가 권력으로부터 침해받을 수 없는 개인의 천부인권적 양심이 고려되지 않았는데 이제야 이뤄졌다”면서 “대체복무제는 양심의 자유와 헌법상 국방의 의무의 불가피성을 인정해 찾은 타협점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국방의 의무만 생각하고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자세를 취해왔는데 한 발짝 나아간 것 같다”고 평가했다.

관할 기관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전쟁행위 집총뿐 아니라 전쟁에 기여하는 모든 행위를 거부하는 것까지 폭넓게 해석될 수 있다”면서 “공공성 있는 업무가 순수 민간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형평성 논란에 대해서는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은 기존의 군복무보다 대체복무가 편해서 상당한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는 상황일 미연에 방지하자는 뜻으로 그 입장에는 매우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대체복무가 징벌적 성격을 띠어서는 안 된다. 국방의 의무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대체복무가 이뤄져야 하며 동시에 병역 복무자의 인권도 획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군복무가 ‘힘들다’, ‘나쁘다’는 전제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체복무가 편하다고 할 게 아니라 병역 복무자의 인권 및 처우 개선을 통해 군복무 역시 징벌적 성격을 띠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폭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대국민 설득 작업을 병행하고 시민들의 인권의식을 향상시키는 시민사회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바른 군인권 연구소 김영길 대표는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도 국방부 관할 아래서 공공성을 띠는 대체복무가 이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대체복무제 도입 시 형평성과 전시상황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시기상조다. 지금 우리 사회가 모병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는데, 만약 모병제가 이뤄지면 대체복무는 자동적으로 해결될 문제다. 대체복무제가 잘못 운영돼 자칫 병역기피자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면서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대체복무제가 이뤄져야 한다. 다만 병역 복무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바람직한 대체복무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할 기관 논쟁에 대해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자 측이) 민간 대체복무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대체복무 기간이 길겠지마는 병역 복무자들은 자유권과 생명권을 담보로 하는데 이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어마어마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가 유공자나 유가족들이 정부 지원을 받는 보훈병원이나 민통선 내 지뢰 발굴, 참전용사 유해발굴 등 국방부, 병무청의 관할 아래 공익을 위한 대체복무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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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치권에서도 대체복무제 마련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우리 사회의 다원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환영할 일이라며 병역법 개정을 조속히 이행할 것을 약속했다. 정의당도 헌재의 결정에 따라 국회에서 서둘러 관련 논의를 진행해 우리 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대체복무제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뜻을 보였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은 대체복무제가 병역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면서도 국가 안보상황과 형평성 등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헌재의 권고에 따라 국회는 오는 2019년 12월 31일까지 병역법 5조 1항이 대체복무제를 포함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 데드라인까지 약 1년 5개월 남은 시점에서 여야의 대체복무제에 대한 이견으로 입법의 난항이 예상되는 가운데, 어떤 합의점을 도출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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