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더 이상 노인성 질환 아냐
젊은 치매 환자 늘어나는 추세
노년층 치매보다 빨리 악화돼
젊은 환자 늘지만 지원은 부족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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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산다’는 말은 치매에 걸릴 때까지 오래오래 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치매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노인성 질환으로 여겨져 왔다.

치매 환자는 65세 이상의 노인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최근 몇년 사이 유전과 음주, 흡연, 스트레스, 스마트폰 사용 증가 등 사회·환경적 요인의 영향으로 30~50대 젊은 치매 이른바 ‘초로기 치매’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드물게는 10~20대에서도 치매 증상을 보이기도 해 젊다는 의미의 ‘Young’과 치매를 일으키는 퇴행성 뇌질환 ‘Alzheimer’s(알츠하이머)’를 결합한 ‘영츠하이머’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노년층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퇴행성 치매와는 달리 초로기 치매는 전형적인 증상이 드문 데다가 진행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태가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아직까지 젊은 치매 환자들을 위한 사회적, 국가적 차원의 지원책이 미비해 치료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A씨가 출연한 방송화면 일부 캡처 ⓒ투데이신문
A씨가 출연한 방송화면 일부 캡처 ⓒ투데이신문

내 나이에 벌써 치매라니

# 30대 남성 A씨는 고모부의 심부름으로 돼지고기 두 근과 밀가루 한 포대를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집에서 불과 5분 남짓한 거리지만 A씨는 마치 처음 온 낯선 곳인 듯 두리번거리며 길을 헤매다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심부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A씨에 손에 들린 건 두 근이 훌쩍 넘는 돼지고기뿐이었다.

모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된 A씨의 일상은 여느 30대와는 달랐다. 밥을 먹고 반찬뚜껑을 닫는 남들에게 평범한 일상이 A씨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A씨는 자다 깨 화장실을 찾지 못하고 냉장고 앞에서 소변을 보는 실수도 저질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해 동네 공원에서 보름 동안 노숙 생활도 했다.

하지만 치매 환자인 A씨는 이 모든 걸 기억할 수 없다. A씨는 하루하루 머릿속이 백지가 돼가는 자신의 모습에 “뒤 돌면 방금 전까지도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고, 열 개를 말하면 그중 두 개만 기억나 스스로가 답답할 노릇”이라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A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치매는 어떤 병일까.

‘치매’란 여러 가지 원인으로 발생한 뇌손상으로 인해 기억력을 위시한 지능과 학습, 언어 등 인지기능 장애가 생겨 이전과 같은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를 의미하는 복합적 증상이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기억력을 상실하거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 관심 및 의욕저하로 매사가 귀찮고 짜증을 내거나 시간과 장소를 혼동하는 경우다. 또 돈 계산을 자주 틀리고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기도 하고 익숙한 일을 처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 밖에도 판단력이 저하돼 그릇된 판단을 자주하기도 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헛것을 보거나 헛소리가 들린다면 치매를 의심해볼 수 있다.

치매 발병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뇌에 쌓여 뇌세포나 신경망이 약해지거나 죽어 생기는 퇴행성 치매, 즉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알츠하이머가 있다. 또 뇌의 앞과 옆 세포가 우선적으로 파괴돼 발병하는 전두측두엽 치매,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혀서 생기는 혈관성 치매, 이 외에도 술이나 약물중독, 비타민 부족, 종양, 내분비질환 등이 치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개 알츠하이머 치매가 50∼60%, 전두측두엽 치매가 20%, 혈관성 치매가 15∼20%를 각각 차지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치매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2011년 약 29만5000명에서 2015년 약 45만9000명으로 5년 전에 비해 약 16만4000명이 증가해 11.7%의 연평균 증가율을 기록했다. 2024년에는 치매 환자가 100만명을 넘어설 거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2013~2017년 연령별 치매 환자 현황 <자료 제공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승희 의원실 재정리>

특히 젊은 층의 치매, 초로기 치매 발병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초로기 치매란 주로 65세 미만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치매로, 뇌에 독성물질이 쌓여 기억력이 저하되고 지적능력, 운동능력까지 상실해 결국 사망에 이른다.

심평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체 치매환자 수 45만9421명 가운데, 65세 미만의 환자 수는 1만8622명으로 전체 치매환자의 약 4%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06년~2015년 치매 세부질환 별, 연령별, 성별 진료실적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내 병·의원에서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를 받은 30대 이하 환자가 연평균 21.8명씩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06년 14명, 2007년 13명, 2008년 17명, 2009년 16명, 2010년 12명, 2011년 15명. 2012년 40명, 2013년 37명, 2014년 28명, 2015년 26명이다.

심지어는 10대 이하 소아청소년에게서 초초로기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2006년과 2007년에 각각 3명, 1명 발생했고 2010년 3명, 2011년 2명, 2012년 4명, 2013년 6명, 2014년 4명, 2015년 7명이 ‘조기발병 알츠하이머병에서의 치매’, ‘상세불명 알츠하이머병에서의 치매’, ‘기타 알츠하이머병’, ‘상세불명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

확실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 가족력, 중금속노출 등 여러 가지 유해 환경에 노출되고 나쁜 생활습관이 젊은 층의 치매 발병 증가의 원인이라는 게 학계의 시각이다.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김희진 교수에 따르면 젊은 층에서는 전두측두엽 치매와 혈관성 치매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김 교수는 본지에 “혈관성 치매는 노인층에서 주로 나타나는 퇴행성 치매와는 달리 뇌혈관 질환이 누적돼 나타나는 것인데, 이는 흡연을 하거나 고혈압, 당뇨, 고지질증, 심장병, 비만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고 전했다.

전두측두엽 치매는 기억력과 관련된 뇌의 안쪽 해마는 정상이지만 판단을 조절하는 전두엽과 언어를 담당하는 측두엽이 망가지면 나타난다. 감정 조절이 어려워 불같이 화를 내는 일이 잦고, 측두엽의 언어 중추가 망가져 말이 어눌해지거나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증상을 보인다.

전두측두엽 치매는 알코올 섭취와도 연관이 높다. 술을 섭취할 경우 전두엽이 가장 먼저 손상되기 때문에 술만 마시면 공격적으로 변하거나 폭력성을 보이거나, 술 마신 다음 날 기억이 끊기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될 때도 알코올성 치매를 의심해볼 수 있다.

전두측두엽 치매는 퇴행성 치매처럼 서서히 나타나지만 발병 시기가 빨라 주로 45~65세에서 나타나며, 21세 발병 보고 사례도 있다.

김 교수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초로기 치매가 최근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젊은 층에서 발병하는 치매의 경우 노년기에 발병하는 치매보다 조금 더 빨리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치매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자료 출처 =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김희진 교수 제공, 투데이신문 재정리><br>
치매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자료 출처 =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김희진 교수 제공, 투데이신문 재정리>

내가 진짜로 치매일까?

치매를 의심해볼 수 있는 증상은 다양하다.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한 정확한 진단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간단한 자가진단법으로 자신의 치매 여부를 의심해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최근 6개월간 위 20개 체크리스트 중 10개 이상 해당 사항이 있다면 치매를 의심해 볼 수 있다고 했다.

흔히들 치매 초기(경도인지장애) 증상과 건망증을 오인한다. 둘의 구분이 쉽지 않아 건망증을 치매로 착각하거나, 치매 증상을 방치해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다. 두 질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지기능 여부다. 인지기능이 남아있으면 건망증, 인지기능이 떨어져 집중력이나 언어 문제가 나타난다면 경도인지장애로 무게가 실린다.

예컨대 건망증은 ▲ 열쇠, 지갑, 세금 고지서 등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안 나 한참 만에 찾는다 ▲ 전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만 그 자세한 부분들은 기억하기 힘들다 ▲ 기억력이 자꾸 감소하는 것 같아 메모를 하면서 가능한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경도인지장애는 ▲ 며칠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잊어버려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 귀띔을 해줘도 기억하지 못한다 ▲ 어떤 일이 일어났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한다 ▲ 자기가 한 일도 기억하지 못한다 ▲ 기억력이 나빠지는 것을 자신이 모르거나 부인한다 ▲ 시간, 장소, 사람에 대한 기억이 나빠진다 ▲ 과거 기억에 비해 최근 기억이 현저히 나빠진다. ▲ 전화 왔다는 내용을 전해주지 않는다 ▲ 간단한 돈 계산을 잘 못한다는 등 증상이 나타난다.

연령별대별 시설급여 등급판정자 대비 시설이용자 비율 현황
연령별대별 시설급여 등급판정자 대비 시설이용자 비율 현황 <자료 제공 =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승희 의원실 재정리>

젊은 치매 환자 늘지만 지원은 미비

정부가 치매 조기진단부터 예방, 상담·사례관리, 의료지원 등 국가가 함께 책임지는 ‘치매 국가책임제’를 약속했지만 젊은 치매 환자를 위한 사회·국가 차원의 지원 시스템은 여전히 미비하다.

국내에서는 2008년 7월부터 고령 및 질환으로 일상생활을 홀로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신체활동과 가사지원, 장기요양 급여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65세 미만의 초로기 치매나 노인성 질병을 가진 자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장기요양등급(1~3급) 판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지기능 장애만으로는 등급 판정이 어려우며 행동장애까지 나타나야만 가능하다. 치매 환자에게 행동장애가 나타났다는 것은 이미 중기 이상 진행된 것으로 등급 판정을 받은 뒤 치료를 시작하면 한발 늦은 셈이다.

젊은 치매 환자들의 장기요양기관 이용 비율도 높지 않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젊은 치매 환자의 장기 요양 등급 판정자 대비 장기요양기관 이용자 비율은 30대 이하 치매 환자가 2013년 18.8%, 2014년 21.4%, 2015년 11.8%, 2016년 19.2%, 2017년 16.7%로 조사됐다. 80대 이상 치매 환자의 기관 이용률이 2013년 62.2%, 2014년 59.7%, 2015년 58.5%, 2016년 59.1%, 2017년 54.4%인 것에 비해 턱없는 수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은 40대 이하의 치매 환자들의 시설 입소 비율이 낮은 이유를 ‘환자 본인’과 ‘장기요양기관’의 양측의 부담이라고 봤다.

김 의원은 “장기요양기관이 흔히 노인요양시설로 인식되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가 이용을 꺼려하거나, 인지 기능은 부족하지만 신체 나이는 젊은 환자들을 통제하기 쉽지 않아 환자 당사자와 장기요양기관 양측이 모두 부담을 느낀다는 게 복수 관계자들의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치매국가책임제 전환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는 젊은 치매 환자들이 많다”며 “복지부가 젊은 치매 환자들을 수용하는 장기요양기관에 적정 수가를 책정하고, 이들이 입소할 수 있는 기관을 지정하는 등 모든 치매 환자들이 차별 없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도 “젊은 치매 환자들은 행동장애가 심하기 때문에 다른 환자들과 어울려 지내기 어렵고 기관의 수용이 힘들다”며 “이들이 놓인 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치매 안심병동을 통한 특별의료지원기관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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