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국립국어원 '표준 언어 예절'(2011)
<사진출처 = 국립국어원 '표준 언어 예절'(2011)>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다 큰 성인을 ‘아기’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을까요. 아마 연인들끼리 부르는 애칭 정도겠죠. 그런데 성인을 ‘아기’라고 부르는 또 다른 경우를 우리 일상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며늘아기’입니다.

며늘-아기 [명사] ‘며느리’를 귀엽게 이르는 말

국어사전에서 ‘며늘아기’를 찾으면 이 같은 설명이 달려 있습니다. 시부모가 며느리를 귀여워하며 이같이 부른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상합니다. ‘사위아기’라는 말은 없죠. 장인·장모는 사위를 귀엽게 보지 않아서일까요.

이상한 것이 또 있습니다. 여성이 남편의 부모를 부를 때는 ‘어머님·아버님’이라고 부르지만 남성이 아내의 부모를 부를 때는 ‘장모님·장인어른’으로 칭하죠.

물론 아내의 부모님을 ‘어머님·아버님’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많습니다. 국립국어원도 지난 2011년 펴낸 ‘표준 언어 예절’에서 “‘장모님·장인어른’이 원칙이되 ‘어머님·아버님’도 쓸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칙은 분명히 ‘장모님·장인어른’이고, 여전히 장인·장모에게 ‘어머님·아버님’ 호칭을 쓰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어른들도 많습니다.

한자를 살펴봐도 시부모의 시(媤)는 ‘남편의 집’을 뜻하지만 장인·장모의 장(丈)은 ‘아내의 집’이 아닌 ‘어른’을 뜻하며 춘부장(椿府丈), 존장(尊丈) 등 주로 남성 어른을 일컬을 때 사용됩니다.

장인·장모가 사위를 ‘사위아기’라고 귀엽게 이르지 않거나 사위가 장인·장모를 ‘어머님·아버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건 서로 거리를 둬야 하기 때문일까요.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남편 가족만 ‘~님’…불평등한 호칭

배우자의 가족을 부를 때 이상한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성이 남편의 남동생을 부를 때는 ‘도련님(미혼)·서방님(기혼)’으로, 여동생을 부를 때는 ‘아가씨’라고 부르죠. 남성이 아내의 언니는 처형, 여동생은 처제, 오빠는 형님(손위처남), 남동생은 처남으로 부르는 것과 비교하면 어감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남편의 자매와 형제를 칭할 때는 ‘~님’이라는 호칭이 대부분인 반면, 아내의 자매나 형제를 부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님’으로 부르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도 기준이 이상합니다. 남편의 여동생은 ‘~님’이 아닌 ‘아가씨’가 되죠. 남편 형의 아내(손윗동서)나 남편의 누나(시누이)는 ‘형님’이라고 부릅니다. 보통 남성이 남성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형님’이 여성에게 적용되는 거죠. 그런데 남편의 여동생은 여성을 ‘언니’라고 부르게 되죠.

반면 남성이 아내의 자매나 형제를 ‘~님’으로 부르는 경우는 아내 언니의 남편이나 오빠를 부를 때(형님)뿐입니다. 아내의 언니는 ’처형‘이라고 부르죠. ’~님‘이라는 호칭이 적용되는 건 남성 기준이라는 느낌이 든다면 지나친 걸까요.

‘서방님’이라는 호칭도 어색합니다. ‘서방’이라고 낮춰 부를 경우엔 사위나 여동생의 남편을 부르는 말이지만, ‘서방님’은 본래 남편을 높여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여성은 남편의 남동생을 남편으로 불러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에 국립국어원은 ‘표준 언어 예절’에서 ‘서방님’을 남편을 부르는 말에서 제외하고 남편의 남동생이 기혼일 경우 ‘서방님’으로 부르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서방님’은 남편을 이르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어 남편의 남동생을 ‘서방님’으로 부르는 건 어색해 보입니다.

꾸준히 제기되는 호칭개선 주장

이처럼 성별에 따라 호칭이 다른데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2006년부터 가족 내 평등한 호칭문화를 만들기 위한 가족호칭개선운동을 펼쳐왔습니다. 민우회는 “‘아가씨’와 ‘도련님’은 과거 종이 상전을 높여 부르던 표현’이라며 비판했습니다.

‘며느리’도 ‘며늘/미늘/마늘+아이’의 구조로, ‘며늘’은 기생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며 ‘내 아들에게 딸려 더부살이로 기생하는 존재라는 뜻이라며 개선을 주장했습니다. 다만 국립국어원에 이를 문의하자 “며늘의 어원정보가 없어 답변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민우회와 같은 여성단체 외에도 많은 시민들이 호칭 개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수년간 명절을 전후로 가족 간 호칭 개선이 필요하다는 온라인상의 의견과 언론의 기사가 줄을 이었죠.

사진출처 = 국민생각함 홈페이지 캡처
<사진출처 = 국민생각함 홈페이지 캡처>

여가부, ‘성별 비대칭적 호칭 개선’ 나서

이 같은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여성가족부도 호칭 개선을 위한 대안마련에 나섰습니다.

여가부는 지난달 23일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관계 실현을 위해 결혼 후 성별 비대칭적 가족호칭 문제가 개선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28일부터 ‘국민생각함’을 통해 가족호칭에 대한 국민생각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죠.

이달 22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설문조사에는 ▲여성은 배우자의 부모님을 ‘시댁’이라고 부르는 반면, 남성은 ‘처가’라고 부르는 것 ▲남편의 동생은 ‘아가씨’, ‘도련님(서방님)’이라고 높여 부르는 반면, 아내의 동생은 ‘처제’, ‘처남’으로 낮춰 부르는 것 등에 대한 의견을 묻는 항목이 있습니다.

또 외조부·외삼촌처럼 어머니의 가족들에게 ‘외(外)’자를 붙여 부르는 것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묻기도 했습니다.

14일 오후 중간투표 결과를 보면, 이 설문 중 ‘가족 내에서 부르거나 가리키는 말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 총 3만3412명 중 3만2035명(95.9%)가 ‘공감한다’고 응답했으며, ‘공감하기 어렵다’ 622명(1.9%), ‘생각해 본 적 없다’ 755명(2.3%)으로 나타났습니다.

호칭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죠. 이 외에도 ▲‘시댁’과 ‘처가’ ▲‘도련님(서방님)·아가씨’와 ‘처남·처제’ ▲‘아버님·어머님’과 ‘장모님·장인어른’ ▲‘할머니·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외할아버지’ ▲‘손자·손녀’와 ‘외손자·외손녀’ ▲‘형님(남편의 누나)’과 ‘처형(아내의 언니)’ 등의 호칭에 대해서도 90%가 넘는 응답자들이 ‘문제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사진출처 = 국민생각함 홈페이지 캡처
<사진출처 = 국민생각함 홈페이지 캡처>

설문조사에 달린 댓글 중에는 “별로 문제될 것도 없다. 바꾸면 오히려 혼란만 일어날 거다”라거나 “기존 호칭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등 호칭 개선이 필요 없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호칭이 곧 관계를 의미하는 만큼 꼭 바뀌어야 한다”, “호칭은 무의식중에 사람들 머릿속에 파고들어 상대를 대하는 언행을 달라지게 한다.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등 호칭 개선을 기대하는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성별에 따른 호칭 불균형에 대해 불편을 느끼고 있습니다. 결혼하는 순간 여성은 ‘아기’가 되고 남편의 가족들을 모두 높여 불러야 하는 반면 남성은 아내의 가족을 낮춰 부르는 불평등한 가족 간 호칭은 분명 개선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부르는 사람과 불리는 사람 모두가 편한 호칭으로 바뀌길 바라봅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