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위탁집배원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승소 확정
勞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권리 누릴 수 있게 돼 기뻐”
우정본부 “직고용 전환 등 관련 세부 계획 마련 중”

지난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우정사업본부 특수고용노동자 재택위탁집배원들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대한 대법원 근로자지위 인정 판결 관련 기자회견 ⓒ뉴시스
지난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우정사업본부 특수고용노동자 재택위탁집배원들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대한 대법원 근로자지위 인정 판결 관련 기자회견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일정한 지역에서 단시간 근무하는 재택위탁집배원도 우정사업본부 소속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특수고용노동자에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된 것인데, 이 같은 판결에 따라 재택위탁집배원들의 근무 형태나 처우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지난 23일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은 유모씨 등 5명의 재택위탁집배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 확인 등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준 원심의 판결을 확정했다. 근무 형태로 보면 노동자이지만 현행법상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던 재택위탁집배원을 비로소 근로기준법에 따른 노동자로 인정한 셈이다.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 재택집배원지회에 따르면 유씨 등은 우정본부와 도급 계약을 맺고 재택위탁집배원으로 근무해 왔다. 이들은 단시간 노동자이지만 우정본부의 관리·감독 아래 다른 집배원들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연장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도록 근무 시간을 하루에 8시간을 넘기지 못하게 하고, 계약 해지를 빌미로 병가·휴가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없게 하는 등의 차별을 받았다. 임금도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렀다. 2013년 4월에는 돌연 특수고용노동자로 전환되며 개인사업자로 분류, 사업소득세 3.3%를 내야만 했다.

이에 억울함을 호소하던 유씨 등은 “다른 집배원들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데 근무시간과 출퇴근을 다르게 하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며 “정부의 지휘 및 감독을 받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봐야한다”고 2014년 3월 이 같은 소송을 냈다.

이와 관련해 1심 재판부는 재택위탁집배원의 우편물 배달 업무 방식이 상시위탁집배원 및 특수지 위탁집배원 등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우정본부 소속 노동자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봤다.

2심 재판부도 재택위탁집배원을 종속적 관계에 있는 우정본부의 지휘 및 감독 아래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로 보는 것이 마땅하고, 사업소득세 제출만으로 근로자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유씨 등이 수행한 업무는 정부가 조직을 꾸려 국민에게 제공해온 본연의 업무이며 관련 법령에서 취급 자격 및 업무 처리 방식 등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우정본부의 상시위탁집배원이나 특수지 위탁집배원과 동일한 업무를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한다”며 유씨 등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지난 23일 재택위탁집배원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기뻐하는 재택위탁집배원들 ⓒ뉴시스
지난 23일 재택위탁집배원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기뻐하는 재택위탁집배원들 ⓒ뉴시스

“빠른 시일 내 직고용 이뤄져야”

대법원 판결 이후 우정본부는 노·사 민간 전문가가 함께하는 ‘재택위탁배달원 근로자 전환 TF(태스크포스)’를 꾸려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재원 및 정원 등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재택위탁집배원의 직고용 전환이 우선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전망되나 아직까지 이 외에 구체적인 세부 계획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해 재택집배원지회는 이번 판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우정본부의 세부 계획 마련과 재택위탁집배원 직고용 전환이 빠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택집배원지회 유아 지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소송을 제기한 이후 우정본부에서는 가장 먼저 신규채용 금지 조치를 내렸다. 기존의 재택위탁집배원의 계약이 해지되고 나면 신규채용이 이뤄져야 꾸준하게 정원이 유지되는데, 우정본부는 이를 금지함으로써 서서히 재택위탁집배원을 없애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했다. 이에 따라 5년 전 680명 정도였던 재택위탁집배원이 현재는 242명으로 줄어들었다”며 “대법원의 판결은 당연한 결과다. 오히려 판결이 너무 늦게 나온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판결을 계기로 근로 환경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며 “직고용 전환에 따른 도급계약이 폐지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함으로써 법의 테두리 안에서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이어 유 지회장은 “지난 23일 우정사업본부장과의 간담회에서 ‘세부 계획이 나오면 재택집배원지회와 논의 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기간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우선 우정본부에서는 재택위탁집배원 재계약 시 그 기간을 2019년 12월 31일로 정하라는 지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올해를 끝으로 도급계약을 없애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우리(재택집배원지회)는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계획이다. 세부 계획이 늦어도 6월 안으로 나오고, 노조와의 협의 시간을 감안하면 늦어도 추석 전까지는 모든 재택위탁집배원의 직고용이 완료돼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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