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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 4구역 철거민들이 한강로 2가 남일당 빌딩 옥상에서 이주대책을 보상을 촉구하는 농성을 벌였다. 경찰이 살수차와 특공대를 동원해 강제진압 작전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철거민 5명, 경찰특공대원 1명이 숨졌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용산참사 당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생존 철거민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평소 트라우마로 힘겨워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5일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후 용산참사 생존철거민 김모(49)씨가 도봉산에서 목을 맨 채 주검으로 발견됐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다만 김씨가 사망 전날 가족에게 전화로 “내가 잘못돼도 자책하지 말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의 가족들은 그가 용산참사 출소 이후 다른 사람에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혼자 끙끙 앓아왔다고 전했다.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에서는 용산4구역 재개발에 반대하는 철거민과 이를 제지하려는 경찰이 대치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9명과 경찰특공대원 21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목숨까지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는 재개발 강제철거에 내몰려 망루농성을 벌인 철거민 중 한명이었다. 당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아비규환 속에서 김씨는 4층 망루에서 뛰어내려 겨우 목숨을 건졌다.

살아남은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등 혐의에 따른 구속이었다. 김씨는 3년 9개월에 걸친 수감 생활을 마치고 지난 2012년 10월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출소 이후 김씨는 배달 일을 하며 노모와 함께 살았다. 평소 다른 생존 철거민들에게는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가족들은 그가 잠을 잘 이루지 못할 만큼 혼자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트라우마로 높은 건물로 배달을 갈 때는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으로 괴로워했다고 한다. 최근 증세가 악화된 김씨는 병원 치료를 받으며 우울증 약까지 복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상규명위는 김씨가 결단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닌, 국가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규탄했다.

진상규명위는 “10년이 지나도록 과잉진압도 잘못된 개발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다”며 “오직 철거민들에게만 참사라 불리는 죽음의 책임을 온전히 뒤집어쓴 채 살아가도록 떠민 경찰과 검찰, 건설자본(삼성)이 김씨를 죽였다. 경찰과 검찰 과거사 조사에서 과잉진압과 편파수사 일부가 드러났음에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공소시효가 지났다’ 등의 편파적인 법이 김씨를 죽였다. 경찰 조사위의 경찰청장 사과권고가 나온 지 10개월이 흘렀지만 사과 한마디 없는 경찰이 김씨를 죽였다. 진상규명도 되지 않고 책임을 물을수 없다고 종결된 10년 만의 경찰과 검찰 진상조사가 그를 죽였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가는 그의 죽음에 응답해야 한다. 우선 조사위의 권고가 이행돼야 한다”며 “경찰청장과 검찰총장은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뭉뚱그려서 언론에 유감을 표명하고 피해자들이 사과를 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정부는 국가차원의 독립된 진상조사 기구를 구성해 부족한 진상규명을 추가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무일 검찰총장 ⓒ뉴시스
문무일 검찰총장 ⓒ뉴시스

검찰총장 사과·제도개선 권고
자체 조사단 한계 여실히 드러나

지난달 31일 검찰과거사위원회(이하 검찰과거사위)는 용산참사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과거사위는 경찰의 무모하게 농성진압작전을 벌였으며 체포과정은 가혹했다고 판단했다. 또 검찰 수사본부가 경찰 집압의 위법성 여부 등과 관련해 경찰 지휘부 수사를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재권자인 당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등을 서면조사하는 데 그치는 등 소극적인 수사로 의혹을 가중시키고, 관련 기록 확보를 위한 강제수사에 미진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당시 화재 원인을 밝힐 수 있는 망루 내부를 찍은 동영상 원본 등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 사망자들을 영장 없이 긴급 부검한 점, 용역과 경찰의 유착관계를 부실수사한 점 등도 인정했다.

다만 사건의 검찰 수사가 진상을 은폐하거나 왜곡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검찰총장의 사과와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잘못은 있지만 책임은 물을 수 없는 결론이었다.

앞서 지난해 9월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경찰청조사위)도 용산참사와 관련해 숨진 철거민들과 경찰관에 대한 사과, 재발 방지 및 인권증진을 위한 제도 개선 등을 경찰청에 권고했으나 이행된 바는 없다.

게다가 과거사위 발표 이후 용산참사 당시 특별수사본부 소속 검사들은 “사법절차를 통해 명예훼손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적반하장으로 조사결과에 반발하는 상황으로 국가차원의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통한 재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진상규명위의 주장이다.

이원호 사무국장은 “잘못에 대해서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인데 잘못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 절망스럽다. 용산참사의 책임을 단일화할 수는 없다. 철거민들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무리한 진압과 잘못된 개발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고, 처벌도 할 수 없다는 결과는 참사의 모든 책임을 평생 철거민들이 짊어지고 가라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아 더 실망스럽다”고 전했다.

이어 “경찰청조사위와 검찰과거사위가 본인들의 잘못을 스스로 밝혀내는 방식인데다 조사나 수사권이 없는 등 한계가 있었다. 단적으로 진압작전의 책임자였던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과거에도 조사도 받지 않고 서면답변 만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지난 10년 동안 단 한차례의 조사도 받지 않았다는 것은 조사 기구의 법적, 제도적 한계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조사나 수사의 권한이 있는 조직이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특별권이 부여돼야 하고, 위법사실이 밝혀지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나면 처벌이 어렵기 때문에 특별법을 제정해 소급적용 돼야 한다”며 “때문에 진상규명위에서는 국가차원의 조사기구와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25일 문무일 검찰총장은 과거사위 권고에 따라 용사참사 관련 검찰 부실수사와 인권침해에 관해 사과하는 한편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총장은 “과거사위의 결과를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공정한 검찰권 행사라는 본연의 소임을 다 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큰 고통을 입은 피해자분들과 가족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아울러 “검찰은 향후 권한을 남용하거나 정치적 중립성 및 수사의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제도와 절차를 개선해나가는 한편 형사사법 절차에서 민주적 원칙이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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