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OECD 중 주당 최장 학습시간 가장 길어
쉼과 학습의 균형 회복 촉구하는 목소리 커져
‘휴일학원휴무제’ 도입 시동 건 서울시교육청
반발하는 학원계 “실효성커녕 풍선효과 야기”

지난 2017년 4월 26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열린 쉼이있는교육 시민포럼의 문재인 대선 후보에 대한 학원휴일휴무제 및 심야 교습 금지법 공약 수용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지난 2017년 4월 26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열린 쉼이있는교육 시민포럼의 문재인 대선 후보에 대한 학원휴일휴무제 및 심야 교습 금지법 공약 수용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교육열과 학습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학생들은 소위 ‘월화수목금금금’의 삶을 일상처럼 살아가고 있다. 학교뿐만 아니라 학원, 개인과외, 인터넷 강의 등을 넘나들며 낮밤, 주말 없는 그들의 일상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학생들을 이 같은 삶으로 내몬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해 국내에서도 부정 여론이 형성된 지 오래며, 심지어는 국외에서까지 부정적 시각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불필요한 지식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평하기도 했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량을 줄이고 건강권·수면권을 보장하고자 ‘학원휴일휴무제’ 도입을 추진 중에 있다. 적어도 일요일만큼이라도 학원 운영을 법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최소한의 휴식을 보장해주자는 취지다.

이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학생의 건강권 보장과 함께 사교육비 지출 감소 등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학원 대신 불법 개인과외 등으로 눈 돌릴 가능성이 높아 오히려 풍선효과를 야기한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공부 감옥에 갇힌 학생들

2009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OECD 최장 학습시간’ 자료에 따르면 15~24세 학생들의 주당 최장 학습 시간은 OECD 국가 평균 33.9시간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49.4시간으로 10시간 이상 차이를 보였다.

연령 별로 살펴보면 중학교 2학년은 52.4시간 고등학교 2학년 70.1시간, 특목고 2학년 80.6시간으로 입시에 가까운 학년일수록 학습 시간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학구열만큼이나 사교육 참여율도 만만치 않다.

서울시의회 김생환 교육위원장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한 ‘2017 학원 운영시간 관련 시민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3.1%가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31.2%가 매달 사교육비로 100만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으며 50~100만원 미만, 50만원 미만도 각각 44.8%, 24.0%로 나타났다.

사교육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좋은교사운동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요일에 학원 수강 여부에 대해 ‘거의 매주 다닌다’라고 응답한 중학생은 6%, 고등학생은 29%를 차지했고 ‘가끔 다닌다’는 경우까지 합하면 중학생은 44%, 고등학생은 63%를 차지했다.

학습량이 많은 만큼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이 2013년 발표한 ‘부유한 국가 아동의 주관적 웰빙’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29개국 학업 스트레스 평균 지수는 33.3%다. 그런데 한국 아동의 학업 스트레스 지수는 이보다 17.2%p 높은 50.5%으로 29개국 가운데 가장 높게 나타났다.

지난 2017년 11월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학원휴일휴무제 및 심야영업단축 촉구 청와대 청원운동 전개 기자회견에서의 ‘월화수목금금금’ 쳇바퀴 퍼포먼스 ⓒ뉴시스

일요일만이라도 쉴 수 있도록

이처럼 한국 학생들은 ‘쉼 없는 학습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평가될 정도로 지나친 학습 경쟁에 노출돼 있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은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고자 ‘학원휴일휴무제’를 추진 중에 있다.

학원휴일휴무제란 심야, 주말에 상관없이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을 위해 학원 휴일 휴무를 법으로 강제해 공부와 휴식의 균형을 맞추자는 취지의 제도다.

2008년 학원의 심야 영업시간 일부를 제한하는 조례가 합헌 결정되며 일부 지역에서는 학원 수업이 밤 10시로 제한됐지만 요일 관련 규정이 없다 보니 주말에도 수업하는 학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현행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에 대통령령으로 정한 교육을 하는 학교교과교습학원·교습소·개인과외교습소 등은 공휴일엔 휴무하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비슷한 취지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 바로 학원휴일휴무제다. 조희연 교육감은 2014년 첫 교육감 선거에 도전할 당시 이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첫 임기에는 무산됐고 교육감 재선에 도전하며 다시 약속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학원휴일휴무제 추진을 본격화했다. 지난 6월 24일 서울시교육청 공론화 의제선정위원회는 학원 일요휴무제 도입 여부를 최종 의제로 선정하고 공론화 추진위원회와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추진위는 지난 9~10월 학생과 교사 학부모 등 시민 3만4655명을 대상으로 사전여론조사를 실시 했다. 그 결과 찬성 59.6%, 반대 25.1%, 유보 15.2% 로 학원휴일휴무제에 찬성하는 여론이 더 우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171명의 시민참여단이 1·2차에 걸쳐 숙의한 결과에서도 학원휴일휴무제 찬성 62.6%, 반대 32.7%, 의견 표명 유보 4.7%,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시민참여단은 학생들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환경 조성, 사교육 의존도 감축 등을 위해 학원휴일휴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서울시교육청에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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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건강권 우선” vs “실효성 없어”

2020년 법제화를 목표로 둔 학원휴일휴무제에 대한 찬반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찬성 측은 한국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시간 문제를 지적하며 쉼과 학습의 균형 회복이 절실한 시점에 법적인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좋은교사운동 김진우 공동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실제 한 학생을 지정해 일과를 따라가보면 한국 학생들의 학습량이 과도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며 “통계는 평균치일 뿐 실제로는 더 많은 시간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학원 심야 교습을 일부 지역에서 제한하고 있는데 상당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20%가량은 몰래 심야 수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10시가 되면 수업을 정리하는 추세”라며 “심야 교습을 제한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난 상태다. 이를 확장하자는 게 학원휴일휴무제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또 “설문조사 결과 국민 다수도 학원휴일휴무제에 찬성하는 입장”이라며 “주위에서 모두 사교육을 시키다 보니 불안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시키곤 있지만 다 함께 멈출 수 있다면 멈추고 싶다는 바람이 드러난 셈이다. 때문에 상당 부분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제도”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 제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하고, 시행됐을 때 처벌이나 단속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사교육 없는 학습에 불안함을 느끼는 학부모에게 공교육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습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한 보충학습, 지나친 상대평가 해소 등 공교육 체제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반대 측은 학원휴일휴무제가 쉼 있는 교육을 보장할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오히려 과외 등이 실효성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학원총연합회 박종덕 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13세 미만의 초등학생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면시간이 8시간 30분, 토요일·일요일은 9시간 30분 정도라는 통계가 있다. 더 많은 수면을 취하고 있는 셈”이라며 “한국 학생들의 학습량이 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주말에 학원을 다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긴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어 “심야 교습 제한 이후 스터디카페 등 변종 업종이 생겨나 불법 개인과외 등이 성행하고 있다”며 “필요에 의한 사교육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학원만 막으면 개인과외 시장의 범람을 가져올 것”이라고 풍선효과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박 회장은 “사교육이 필요해 주말을 이용해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의 학습선택권을 배제하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학생들의 휴식원이 충분히 보장하면서도 기회균등교육이 실현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진정 학생들의 학습량 부담을 줄이고 건강권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고 싶다면 공교육의 커리큘럼을 근본적으로 개선해 (사교육의) 필요성을 없애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 부연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학원휴일휴무와 관련해 다양한 찬반의견이 확인된 만큼 양측의 의견을 겸허하게 수용해 2020년 상반기에 관련 정책연구 결과와 더불어 종합적인 검토를 거친 후 향후 교육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새로운 교육 정책이 추진될 때마다 그 피해는 모두 학생들이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다.

보다 나은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휴일까지도 사교육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제도를 통하지 않으면 학생들의 건강권을 지킬 수 없는 교육 현실에 대해 반성과 더불어 학생들을 위한, 진정 그들이 원하는 정책이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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