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준영이 지난 2019년 3월 29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과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가수 정준영이 지난 2019년 3월 29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과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언론의 보도를 심의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에서 반인권·성차별적 발언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2017년 5월부터 2019년 12월까지의 지상파(KBS·MBC·SBS·tbs), 종합편성채널(JTBC·TV조선·채널A·MBN), 보도전문채널(YTN·연합뉴스TV) 보도·시사프로그램에 대한 방통심의위 심의 결과와 심의 회의록에 대한 분석결과 보고서를 지난 24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종편채널인 채널A는 지난해 3월 가수 정준영의 성범죄 사건을 보도하면서 피해자를 추정할 수 있는 데뷔 시기, 직종 등 정보를 언급해 2차 피해를 유발했습니다. 방통심의위 사무처는 이 같은 보도에 대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1조(인권 보호) 제1항을 적용해 심의위에 상정했습니다. 해당 조항은 ‘방송은 부당하게 인권 등을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심의과정에서 일부 심의위원들이 ‘해당 보도로는 피해 여성의 신상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박모 심의위원은 “자막과 모자이크 처리된 화면으로 보도돼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하는데, 피해자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언급하는 것은 명백한 심의규정 위반입니다. 인권보도준칙 제21조의2 제1항은 피해자를 알 수 있는 내용(인적사항) 공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으며 제21조의3은 성범죄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해당 보도 외에도 채널A는 같은 사건을 다룬 <김진의 돌직구쇼>에서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거듭 노출했으며, 패널들은 선정적인 묘사를 반복했습니다.

방통심의위 사무처는 해당 방송을 심의위에 상정했으나 이를 심의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심의위원들의 부족한 의식이 드러났습니다. 전모 심의위원은 “취재경쟁 속에서 기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경쟁심”이라며 이 같은 방송행태를 두둔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자라면 부조리, 불합리한 것들을 밝혀내 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기자라는 직업을 택했을 것입니다. 인권을 침해하고 가해를 하는 것은 기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어쩌다 기자의 ‘본능’,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2차 가해가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한국기자협회의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 총강에는 ‘언론은 성범죄를 보도할 때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인권을 존중해 보도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항목이 있습니다. 또 실천 요강에도 ‘취재와 보도과정에서 성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의 2차 피해를 유발하지 않도록 피해자의 신상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돼 있습니다.

채널A의 해당 보도는 심의규정과 한국기자협회의 보도 권고 기준을 모두 어긴 보도입니다. 지키기 어렵다는 이유로 제재하지 않는다면 이런 기준은 유명무실할 뿐입니다.

서지현 검사가 지난 2019년 4월 25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노르디톡스(NORDtalks) 2019’에서 개막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서지현 검사가 지난 2019년 4월 25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노르디톡스(NORDtalks) 2019’에서 개막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심지어는 성범죄를 폭로한 피해자라면 어떤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심의위원도 있었습니다.

민언련에 따르면 박모 심의위원은 지난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를 보도하면서 선정적인 자료화면을 사용한 TV조선 <뉴스9>에 대한 심의에서 “서 검사가 폭로를 했을 때는 그 파급효과까지 다 감안을 했을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는 성범죄 가해자의 범행 수법에 대한 관심을 당연한 듯 여기고 이에 대한 묘사가 정당하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이 같은 인식을 가진 위원들이 있기 때문인지 방통심의위가 <김진의 돌직구쇼>에 내린 제재는 행정지도인 권고였으며, TV조선의 <뉴스9>에 내린 제재는 행정지도 중 가장 낮은 의견제시에 불과했습니다.

최근 한 종교언론이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모 신학대학교의 교수가 학문활동을 재개했다는 보도를 하면서 ‘미투 피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 언론은 해당 교수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이는 증거 불충분으로 인한 결과였습니다.

재판부는 “비록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가고 피고인이 인정하는 행위만으로도 도덕적 비난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위력으로써 추행에 나아갔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해당 언론은 무죄 판결이 나왔다는 이유로 ‘미투 피해’라는 표현을 써가며 가해자를 옹호했습니다.

미투운동은 자신이 당한 성폭력 피해를 증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피해자다움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침묵하지 않고 저항하겠다는 실천입니다. 미투 피해라는 말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바꿔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미투운동이 시작되던 시기에는 ‘무고’라며 미투피해와 같은 표현이 나왔으나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성인지감수성이 높아진 현재에는 적절치 않은 말입니다.

2차 피해를 유발하고 피해자를 가두는 이 같은 언론의 행태는 외부의 감시와 견제를 통해 개선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과했던 걸까요. 언론을 감시해야하는 방통심의위조차 수준 낮은 인식을 보이는 상황은 분노를 넘어 허탈감까지 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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