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숙주가 되지 않는 방법
[칼럼] 숙주가 되지 않는 방법
  • 김종현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0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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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현 칼럼니스트
▲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대중서 ‘인류의 기원’을 쓴 이상희 교수는 인류에게 조부모가 급증한 시기를 다룬 논문으로 유명하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3만년 전 후기 구석기 즈음에 손주를 볼 만큼 오래 산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이 시기 노인의 증가는 그전 300만년 동안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한때 공존한 적 있는 바로 앞 시대의 네안데르탈인 보다 젊은이 대 노인의 비율이 5배나 높았다. 

조부모-부모-자녀로 이루어진 3대의 결합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크게 약진할 수 있었다. 부모가 먹거리를 구하는 일에 노동력을 충분히 쓰는 사이, 노쇠한 할머니 할아버지는 연약한 손주를 돌본다. 손주들은 조부모와 함께 있으면서 자연스레 도구의 제작과 사용법은 물론 평생 동안의 경험을 물려받는다. 

노동의 분산과 안정적인 보육 그리고 지식정보의 전달로 생존율이 오르면, 구성원이 늘어난 집단은 복잡한 친족 관계에 따라 사회적 관계가 강화되고 협업의 효율이 좋아진다. 

그러나 핵가족 시대를 넘어 1인 가구마저 늘어나는 현대의 우리 모습은 사뭇 다르다. 돈을 벌러 나가는 부모는 자녀를 맡길 곳을 찾아야 한다. 일을 마치고 귀가하면 육아와 가사에 들이는 노동을 이어가야 한다. 조부모 세대의 삶도 평안치 못해서 아이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기 어렵다. 한부모 가정에선 더 많은 곤란들이 넘쳐난다. 삶에 들이는 노동력과 시간을 오로지 각자의 체력과 생애에서 떼어와 스스로 충당해야 한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늘 불안하다. 행복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우리는 여러 복지제도와 공교육 등의 공공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보다 실질적인 해결은 수많은 ‘이모님’들이나 식당과 학원 등 민간의 외주시장이 담당하고 있다. 당연히 여기 저기에 돈이 든다. 결국 원자화 된 사회환경은 자본의 작은 차이로도 행복감의 격차를 크게 느끼도록 압박한다. 행복감의 격차는 계층간 위화감의 바탕이다. 우리가 ‘소확행’이나 ‘시발비용’등의 신조어를 쓰는 건 이 불길한 감정에 대한 나름의 저항이다.

최근의 코로나19 감염 확산처럼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협하는 일이 생기면, 일상의 불안이 증폭하고 행복감의 격차가 커지면서 계층간 위화감도 압력을 받는다. 불안을 해소시킬 대상을 찾아 혐오와 차별과 증오를 퍼붓기 좋게 상황이 변해간다. 

실제로 질병이 확산되자 평소 우리 사회에 잠복해 있던 중국인 혐오가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은 이를 비난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신체가 가족의 생존과 직결된 계층이 느끼는 공포감도 무시당했다. 그것은 공포감의 차별이었다. SNS에서는 학교나 직장이 멈춰도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한 이들의 여유로운 언행을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 비난하는 전선이 생겼다. 처지는 상대적인데 배려는 얄팍하고 칼날은 편리하게 겨눠지며 긴장은 광범위하게 지속됐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장면들이 이채로웠던 이유는 따로 있다. 당장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들이 쉽게 자정 됐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등이 필요이상의 혼란으로 번지는 걸 피했다. 중대한 문제일수록 혐오와 차별과 증오로 바뀌지 않도록 스스로 적정선에서 관리했다. 그건 좀 놀라운 광경이었다.

이보다 더 놀라운 건, 일부 야당을 비롯한 정치 세력과 일부 언론이 시민들의 자정 노력을 무위로 돌리려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나라 돌아가는 일에 불만이 있으면 누구나 비판을 넘어 과도한 비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마치 공동체를 연옥으로 끌고가기 위해 저주의 주문을 읊는 것 같다. 

잘하는 건 깎아내리고, 못하는 건 매국행위로 과장하고, 불안을 잠재우려 하면 공포심을 심어주고, 단결을 요청하면 갈등의 씨앗을 뿌린다. 희생정신으로 몸을 사르는 사람들에게 근거 없는 사상비판으로 일손을 놓게 만들고, 자긍심을 북돋아 용기를 내려 하면 자존감을 깔아뭉개 주저앉히려 든다. 이 정도면 거의 반사회적 세력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

이들의 언행을 보노라면 한국영화 ‘연가시’의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다. 원래 연가시는 물속에서 곤충의 체내에 들어가 성장한 뒤 숙주를 조종해 다시 물에 빠져 죽게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며 번식하는 기생충이다. 영화는 변종 연가시의 숙주가 된 사람들이 실성한듯 물에 뛰어들어 죽는 국가재난을 그렸다. 

일부 야당과 정치세력과 언론의 행태에서 군중을 물가로 이끄는 연가시를 느낀다. 공포 바이러스의 숙주라도 된 걸까.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환란을 키운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 모습에 예능방송 스타일의 자막을 입힌다면 ‘숙주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라고 써도 될 것 같다. 비록 어떤 선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들의 행위는 인류가 오랫동안 해온 것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다. 

‘인류의 기원’에는 인류가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게 된 배경이 나온다. 네안데르탈인 화석 중엔 뇌를 다쳐 한쪽 몸을 못 쓰는 데다 실명까지 했음에도 장수한 경우가 있다. 어떤 화석은 관절염을 앓았으며 이가 모두 빠진 노인이란 결과를 보여줬다. 다치고 노쇠한 약자가 오래 살았다는 건 누군가 매일 보살폈다는 뜻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우리 호모속의 이타심은 180만년 전부터 발견된다. 그렇다면 노인이 압도적으로 증가한 후기 구석기의 조상들은 과연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무엇보다, 죽을 위기에 놓인 타인을 돕는 건 단순히 부축을 하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먹이는 일이 아니다. 상상컨대 위로의 시선과 희망 섞인 말들도 함께 건네야 했을 것이다. “내가 무슨 수든 써볼게, 넌 좀 쉬어” 또는 “걱정하지마, 우리가 널 살릴 거야”라고 말했을 것이다. “어차피 이번 겨울에 우린 다 죽을 거야”라든가 “넌 죽을 게 뻔한데 다들 거짓말하고 있어” 같은 말을 하면서 보살필 수는 없다.

어린시절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나 여러 나라의 설화와 영웅담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큰 재앙을 만나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나서야 하고 그러려면 용기와 희망을 나누라고. 180만년 전부터 겪어온 경험을 조부모들이 자손들에게 대를 이어 물려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코로나 19로 어지러운 지금도 우리 곁에서 일어난다. 

인천에 사는 한 70대 노인은 대구에 전해달라며 응원의 손편지와 돈봉투를 남기고 사라졌다. 포항의 한 건물주는 자신의 건물을 의료시설로 무상제공 했다. 고양시 일산의 한 청소년 남매는 저소득층 감염 예방에 사용해 달라며 40만1000원을 기탁했다. 대구의 한 의류 쇼핑몰 직원들은 땀에 젖은 의료진 사진을 보고 면 티셔츠 500장을 기부했다. 한 배우는 대구로 달려가 트럭 위에서 마스크 1만2000개를 나눠주며 힘내라는 응원을 했는데 이 사실은 SNS를 통해 며칠 뒤에야 언론에 알려졌다. 인천 한의사회는 비상근무중인 공무원들의 건강을 위해 인천시에 보약 50박스를 전달했다. 대한항공 일반직 노동조합은 절체절명의 혼란을 겪던 우한 교민 긴급수송 업무에 감염우려를 무릅쓰고 자원했다. 장애인 봉사 활동가 정지원씨는 자가격리된 장애인을 돌보기 위해 2주 동안 함께 살며 약과 식사를 챙기는 일에 자원했다. 이창수씨는 코로나바이러스보다 혼자 격리된 생활이 더 위험할 수 있다며 확진 판정이 난 장애인 돌봄에 자원했다. 대구지역 감염이 확산돼 의료인 모집을 한지 나흘만에 전국에서 간호사 247명, 의사 58명 등 850여명의 의료인들이 자원했다. 여의도의 한 상가 소유주들이, 인천지역 전통시장 건물주들이, 경북대 인근 건물주가, 묵호시장 상인회가 여러 달에 걸쳐 10~50%에 이르는 임대료를 자발적으로 인하했다. 대구 지역 한 식당은 직원들이 휴무까지 반납해가며 의료진에게 매일 150인분의 도시락을 나눠준다.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식당에 3만원, 5만원씩 소액의 후원금과 쌀 등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남을 돕는 이야기에 하트를 누르고 사방에 퍼 나른다. 행복감의 격차를 줄이는 건 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손을 잡는 것에서 온다. 공포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지 않는 방법은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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