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의 훈육을 가장한 가혹한 학대
‘사랑의 매’ 체벌에 관대한 유교문화
국제 사회 “모든 아동 체벌 금지해야”
피해아동 사후 관리도 예방만큼 중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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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최근 의붓어머니가 훈육을 앞세워 9살짜리 아들을 가방 안에 가둬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이른바 ‘가방 학대 사망’ 사건이 논란이다.

의붓어머니 뿐만 아니라 피해아동의 친부 역시 장기간 학대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돼 더 큰 충격을 안겼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학대 수준의 자녀 체벌 논란은 국내에서 오래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온 문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법률상 부모의 자녀 체벌까지 인정하고 있다.

학대 이후 피해아동에 대한 사후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가해자와 피해아동을 완전하게 분리하는 한편 전문 인력의 지속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리 조치가 또 다른 아동 문제를 발현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고,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도 있어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가방 학대 사건’ 피의자 B씨 ⓒ뉴시스
‘가방 학대 사건’ 피의자 B씨 ⓒ뉴시스

가방에 가두고, 개 목줄 채우고

지난 1일 충남 천안시 소재 한 아파트에서 9살 짜리 A군이 여행용 가방 안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A군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사망했다.

A군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은 함께 살던 의붓어머니 B씨였다. B씨는 A군을 물 한모금 주지 않고 7시간가량 여행용 가방에 가뒀다. 또 B씨는 가방에 가둔 A군을 두고 외출하고, A군이 가방 속에서 소변을 보자 더 작은 캐리어 속에 넣은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A군이 게임기를 고장 내놓고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훈육 차원에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세 살 난 아들을 상습적으로 학대해 사망케 한 부모도 있다. C씨 부부는 지난 2016년부터 1년여간 말을 듣지 않는다며 세 살배기 아들을 플라스틱 빗자루나 쓰레받기 등으로 폭행하고, 밥을 주지 않는 등 학대했다.

끊임없는 학대가 계속되는 가운데 2017년 7월 12일 C씨 부부는 침대 위를 어지른다는 이유로 평소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의 목줄을 아들 목에 채웠고, 아이는 결국 질식해 숨졌다.

아동학대의 가해자는 부모인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부가 발행한 ‘2018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로 판단된 2만4604건에 대한 학대행위자와 피해아동과의 관계는 부모가 76.9%(1만8919건)으로 절대적으로 높았고, 대리양육자 15.9%(3906건), 친인척 4.5%(3906건), 기타 2.7%(665건) 순으로 뒤를 이었다.

이는 ‘가방 학대’, ‘개 목줄 학대’ 등과 같은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 사례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에는 다수가 학대 행위를 ‘훈육을 위한 체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아이를 부모의 화풀이 대상으로 여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게 아동복지 전문가의 지적이다.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이배근 회장은 “교육심리학자 스키너 박사가 말하길 부모가 자녀를 체벌하는 이유는 ‘체벌 외 다른 방법을 몰라서’, ‘체벌이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고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훈육을 가장한 화풀이’ 등이다”라며 “마지막 이유가 차지하는 비율이 80%다. 자녀에 대한 물리적 체벌은 잘못된 화풀이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체벌은 자녀 훈육에 효과적이기는커녕 되레 신체적, 정서적 발달을 저해한다.

2018년 굿네이버스의 아동권리실태 조사 결과 아동이 보호자 및 성인 가족으로부터의 학대 경험이 있다고 보고된 아동이 그렇지 않은 아동보다 우울, 불안 정서, 공격행동, 자살 경험 등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숙명여대 아동복지학 강지영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사랑의 매’라는 게 존재했기 때문에 문화 자체가 부모의 자녀 체벌에 관대한 편”이라며 “일부 유럽 국가도 그런 문화가 있지만 법적으로 금지하자는 게 현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모도 어릴 적 체벌을 겪으며 성장했기 때문에 그것이 정당한 훈육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부모 교육의 부재로 쉽게 자행되고 있는 방식”이라며 “체벌이 훈육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밝혀진 바도 없고 오히려 장기적으로 아이의 발달을 저해한다”고 부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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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에 관대한 한국 유교문화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수백년 전부터 법적으로 체벌을 금지해 왔지만, 앞서 언급했듯 유교 문화가 뿌리 깊은 우리나라는 자칫 부모의 자녀 체벌을 합법화할 우려가 있는 법 조항을 제정 이래로 개정하지 않고 유지 중이다.

이른바 ‘친권자 징계권’이라 불리는 민법 제915조에서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구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여기서의 징계권은 자녀 훈육 과정에서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하지만, 마치 법적으로 부모의 체벌을 허용하는 것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과 폭언 등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아동복지법 제5조 2항과 상충되기도 한다.

국제사회는 훈육을 명목으로 아동을 신체적,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체벌을 금지하는 추세다. 우리나라처럼 자녀 체벌에 비교적 관대했던 일본과 이탈리아도 지난해 부모의 자녀 체벌을 금지하는 법안 시행을 예고했다.

UNCRC(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아동권리협약 이행 제5·6차 국가보고서 심의 결과를 토대로 한국 정부에 “특정 환경에서 여전히 체벌이 합법적으로 인정되고 있음에 우려를 표한다”며 “징계적 처벌을 포함한 모든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하라”고 권고했다.

소관 부처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그간 적극적인 대응은 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법무부가 보건복지부 등과 함께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통해 권위적 표현이라는 지적에 따른 징계권 용어 변경, 징계권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 등을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이후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최근 부모의 아동 체벌과 관련한 부정적 여론이 커지자 법무부는 또 다시 관련법 개정 의사를 밝혔다.

법무부는 지난 10일 부모의 자녀 체벌 금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4월 민법상 징계권 조항을 없애고 훈육으로 대체하라는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조만간 간담회를 열어 아동인권 전문가, 청소년 당사자들과 함께 구체적 개정안 마련을 위한 의견을 공유할 예정이다.

개정안 마련부터 시행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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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만큼 사후 관리도 중요

사전에 아동학대가 차단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사후 가해자로부터 피해아동을 보호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지난 11일 경기대학교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가 ‘제6회 아동학대 예방 공개 토론회’에서 공개한 아동학대 사건 판결문 분석 결과에 따르면 가족이 아동학대 가해자로 기소된 88건 중 무죄 5건(5.7%), 유죄 83건(94.3%)으로 조사됐다. 유죄 중 42건(47.7%)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즉, 가해자의 절반 가까이가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이다.

집행유예 사유로는 △생계 부양 필요(20건) △훈육 목적의 학대(13건) △보호 공백(12건) 등이 지목됐다.

이 교수는 가해자를 피해아동으로부터 격리하거나 접근을 제한하는 등 분리 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피해자의 생명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집행유예다. 피해아동과 가해자가 분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해자가 80~120시간의 교육을 이수한들 아동학대의 재발 가능성이 사라지긴 어렵다”며 “피해아동에 대한 보호명령과 친권 제한이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위험성평가의 절차가 부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실적으로 분리가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한번 분리되면 원가정으로 돌아가기가 어렵고 복지시설에서 가정에서만큼 제대로 된 양육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강지영 교수는 “당연히 필요하면 분리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상 여건이 충족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며 “분리 조치 이후에 피해아동이 갈 곳이 마땅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현재 우리나라는 대규모 양육시설이 많이 때문에 가정에서처럼 일대일 양육이 이뤄지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가정 내 아동학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관련 인력 확충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아동복지 전문가들은 말한다. 더불어 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 아동학대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강지영 교수는 “아동학대 사례가 반복되자 정부에서도 예방 차원에서 위기가정 발굴 조사 등을 실시하고 있는데 자원이 투입되지 않으면 제도나 법이 있어도 소용없다”며 “실효성 있는 정책 시행을 위해 인력과 자원이 적절히 배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배근 회장은 “현재 아동보호 전문 시설에는 적게는 13명 많게는 19명이 2교대 근무를 한다. 24시간 개입하기에는 인력이 매우 부족하고 상황도 매우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동학대는 부모들에 대해 자녀 양육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발생하기도 한다. 부모 예비 교육만 시행돼도 피해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며 “또 우리나라는 아동학대 신고율이 30% 수준이다. 주변인들의 신고 의식이 높아지면 아동학대 피해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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