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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최근 수십년 간 떨어져 지내온 친모가 공무원 자녀의 사망으로 유족급여 등을 수령한 사건이 알려지며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권을 제한하는 민법 일부개정법률안, 이른바 ‘구하라법’이 재조명 받고 있다.

구하라법은 안타깝게도 20대 국회에선 불발됐지만,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는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

자격 없는 부모일지라도

최근 법원이 이혼 후 연락두절 된 어머니가 소방관 딸이 순직하자 수십년 만에 나타나 유족급여를 수급한 이른바 ‘전북판 구하라 사건’과 관련해 어머니에게 자녀의 과거 양육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앞서 지난해 1월 수도권의 한 소방서에서 근무하던 A씨가 사망하고 같은 해 11월 공무원재해 보상심의위원회 결과에 따라 순직 유족급여가 지급됐다.

이 같은 사실이 32년간 떨어져 살아온 A씨의 친모에게도 통보됐고, 친모는 유족급여와 A씨의 퇴직금까지 약 8000만원을 수령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친모에게는 사망할 때까지 매달 지급되는 유족연금의 절반인 91만원도 지급될 예정이다.

이에 A씨의 친부는 자녀가 성장하는 동안 친모가 양육비를 전혀 주지 않는 등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며 이혼한 시점부터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의 기간에 해당하는 양육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7700만 원을 지급하라”며 A씨 친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에 따라 친부는 친모로부터 양육비 일부는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재판 결과와는 별개로 A씨의 친모는 유족급여, 유족연금 등을 수령하게 된다.

친모는 여전히 현행법에서 인정하는 ‘상속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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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과 상속은 별개

현행 민법 제1003조에서는 가족이 사망할 경우 상속인은 직계비속(자녀), 직계존속(부모), 형제자매, 4촌 이내 방계혈족(조카) 순으로 결정된다고 정하고 있다. 동법 제1004조에서는 상속 결격 사유를 고의로 피상속인 혹은 선순위 상속인을 살해하거나 피상속인의 유언을 방해한 경우로 규정한다.

즉, 현행법에서 자녀 부양 의무 미이행은 상속 결격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 부양과 상속은 별개의 의무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부양 여부와 무관하게 자녀의 재산을 상속할 수 있다. 부당하다고 느끼는 상속일지라도 유언을 남기지 않은 이상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현재로서는 전무한 셈이다.

이혼 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던 남편이 자녀의 사망보험금을 받게 되자 친모가 민법 제1004조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법재판소가 부양과 상속은 대응 개념이 아니라는 취지로 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린 판례도 있다.

현행법에서 규정한 상속 결격 사유는 이처럼 매우 엄격한 편이다. 그 까닭은 상속인의 기대권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법부법인 ‘바른’ 김상훈 변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피상속인의 의사에 따라 상속인의 재산 상속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에, 애초에 이 같은 상황을 방지하고자 유언 등의 방식으로 상속권을 원하는 방식으로 분배하라는 취지다”라며 “법이 상속 여부를 강제하는 시스템은 개인의 자유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이라는 판단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20일 故 구하라씨 오빠와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함께 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가졌다 ⓒ뉴시스

융통성 있는 ‘구하라법’ 요구돼

상속 결격 사유 논란은 지난해 故 구하라씨 가족의 갈등으로 크게 불거졌다.

구씨 사망 이후 20여년 만에 나타난 친모가 직계존속 순위를 근거로 구씨 상속재산의 50%를 요구했고, 구씨의 오빠는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권을 제한하는 취지의 민법개정안을 입법 청원했다.

당시 구씨 오빠 측은 “자녀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부모라는 이유로 재산적 이득을 가져가는 것은 보편적 정의와 인륜에 반한다”며 “현행법 문제로 자식을 버린 부모가 유산상속을 위해 갑자기 나타나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어린 시절 친모에게 버림받고 평생 외로움과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해당 청원은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하지만 끝내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한 채 20대 국회가 종료되며 자동폐기 됐다.

구씨의 오빠는 21대 국회에서 만큼은 구하라법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구하라법을 재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개정의 필요성이 인정된 법이니 만큼 반드시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의원은 “민법은 제정 이후 관습법처럼 내려왔을 뿐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개정되지 못하고 사회 변화도 반영되지 않고 있다. 법적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사회 변화에 발 맞춰 정비가 필요하다”며 “제정 이후 변화가 거의 없는 민법의 상속인 결격 사유를 바꿔 사회 전반적인 인권윤리의식 강화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상훈 변호사는 현행법은 현대사회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분명 바뀌어야 한다면서도 융통성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부양의무를 미이행한 부모에 대해 상속 자격을 박탈하는 규정이 생기더라도 부양의무 이행 여부 기준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는 법조문에 자세히 기록할 수 없다”며 “ 때문에 법원이 사례에 따라 부양의무 이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법원에 후견적 재량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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