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화 <헬프>

2011년 개봉한 영화 ‘헬프(The Help)’는 캐서린 스토킷이 쓴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1960년대 남부 미시시피주에서 있었던 인종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그려내고 있다. 참고로 지난 6월 말, 126년 만에 주 깃발에서 남부연합 문양을 삭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미시시피주는 올해까지도 인종차별의 상징인 남부연합기를 미국 50개 주 중에서 유일하게 사용해왔다. 과거 시대상을 감안하더라도 미국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손꼽히며, 유색 인종을 향한 편견과 혐오가 매우 심했던 곳이기도 하다.

흑인과 백인이 거리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바라보던 이 시대, 상류층 백인 여성의 삶을 사는 친구들 사이에서 별종으로 취급당하던 스키터 역으로 배우 엠마 스톤이 등장한다. 작가를 꿈꾸던 스키터는 같은 마을에서 일하는 흑인 가정부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들이 겪어온 인생을 책으로 쓰고 싶어 하지만 백인들의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그 누구도 쉽사리 증언에 나서지 못한다. 그러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들을 같은 인간으로조차 봐주지 않는 백인들에게 설움을 느낀 가정부 에이블린(비올라 데이비스)이 기꺼이 용기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써 내려간다.  

흑인 남자가 입원해 있는 병동에 백인 여자 간호사가 근무해서는 안된다. 
백인 학교와 유색인 학교 간에 책을 교환해서는 안되며, 같은 피부색끼리만 쭉 사용해야 한다.
유색인 이발사가 백인 여자 머리를 손질해서는 안된다.
백인에 대한 유색인의 동등권을 주장하는 글을 인쇄하거나 출판, 배포하는 자는 체포, 투옥된다. 

* 미시시피 소수 민족 행동 강령 中


고상함과 천박함을 함께 드나드는 백인들의 선민의식은 영화 내내 비춰지는데, 투표소에 갔단 이유로 차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유색인은 이상한 병이 있어 화장실을 함께 쓰는 것조차 불결하기에 백인 가정은 유색인 가정부용 화장실을 따로 둬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하는가 하면, 지나가는 행인이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총을 쏜 일 등으로 당시 뿌리 깊게 내린 흑백 차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편 서슴없이 인종차별적인 언행을 일삼는 마을 최고 인종차별주의자 힐리(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그리고 그녀의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 미니(옥타비아 스펜서)는 토네이도가 몰아치던 어느 날 집 밖에 떨어져 있는 가정부 전용 화장실을 쓰라는 힐리의 명령을 거역하고 집 안의 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고 만다.

“Frying chicken just.. tend to make you feel better about life.
At least me, anyway.
I love me some fried chicken.” 

“닭을 튀길 땐.. 왠지 좀 살 맛이 나요.
적어도 나는요.
난 정말 튀긴 닭이 좋아요.”


동네 가정부들 사이에서 ‘미시시피주 최고의 요리사’란 칭호를 받는 미니는 그 후, 결혼으로 인해 새로 이사  왔지만 주변 이웃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셀리아(제시카 차스테인)의 가정부로 새롭게 취직하게 된다. 

요리라고는 옥수수빵과 옥수수죽 그리고 삶은 감자 밖에 만들 줄 모르는 셀리아에게 미니는 마법의 제품인 마냥 쇼트닝을 꺼내 보이며 첫 요리로 ‘프라이드 치킨’ 조리법을 알려주는데, 이때 종이 백에 파우더와 닭을 넣고 마구 흔들어대며 꺄르르 웃는 셀리아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없어 함께 미소를 짓게 만든다.

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같은 식탁에 마주 앉은 셀리아가 ‘바사삭’ 소리와 함께 잘 튀겨진 닭 다리를 한입 베어 무는 장면은 ‘헬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 중 하나이자 동시에 침을 꼴깍 넘길 수밖에 없는 장면이기도 하다. 여느 백인우월주의자들과는 달리 가정부와 식사 공간조차 구분하지 않는 셀리아의 태도와 함께 흑백의 여성이 한 식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일상 내내 차별을 일삼는 다른 백인들과 대비되는 것도 인상적인 요소다. 이어 남편 몰래 가정부를 고용했던 셀리아가 미니가 만든 수준급의 치킨 맛에 남편이 눈치를 챌까 염려하며 자신이 한 것 마냥 어설퍼 보이게 치킨을 조금 태우지 그랬냐고 하지만, 이에 미니는 단호하게 자신은 닭을 태우지 않는다는 또 하나의 명대사를 내뱉는다.  

 

“Maybe we ought to burn the chicken a little.”
“Minny don’t burn chicken.”

“닭을 좀 태우지 그랬어요?”
“나는 닭 안 태워요.”

그래서일까 영화 후반부, 마을 가정부들의 생생한 증언들로 가득찬 스키터의 책 <헬프(The Help)>가 발간되고, 미니가 책과 원고료를 동봉한 스키터의 편지를 읽다 요리하던 치킨을 태우고 마는 장면은 기분좋은 웃음을 자아낸다. 

이처럼 영화 속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하면서도 오늘날 어른, 아이 상관없이 모두가 좋아하고 즐겨먹는 치킨은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일반적으로 프라이드 치킨은 조각낸 닭을 밀가루나 반죽에 묻혀 180도에서 190도 사이의 기름에서 튀겨내는 요리를 뜻하는데, 이에 대한 유래를 살펴보면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로 올라가며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한 미국 남부지역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로부터 시작됐다고 알려졌다. 특히 남부는 더운 날씨로 인해 음식물이 잘 상하므로 다른 조리법들에 비해 튀겨 먹는 조리법이 알맞았는데, 닭가슴살과 같이 살이 많은 부위는 주인들의 식사상에 올라갔으며, 흑인 노예들은 목이나 날개 등 비교적 살이 적은 부위를 모아 기름에 바짝 튀겨 먹었다. 이렇게 튀긴 닭은 과거 많은 노동을 해야 했던 노예들에겐 단백질 보충원이자 고열량 음식으로 힘이 돼주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여러 향신료가 더해지면서 우리가 흔히 먹는 치킨이 된 것이다.

▲ 김지우 칼럼니스트-프리랜서 방송인
▲ 김지우 칼럼니스트
-프리랜서 방송인

뗄래야 뗄 수 없는, 진정 한국인들의 소울푸드로 자리 잡은 우리의 ‘후라이드 치킨’은 이제 원조인 미국보다 더 잘나가는 모양새다. 국내에선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로 매일 바꿔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다양한 맛의 치킨 상품들이 부지런히 출시되고 있고, 우리나라 치킨 브랜드들이 해외로 진출해 현지인들에게 각광받고 있단 소식을 들으면 자연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올여름엔 예년과 달리 극장가에서 찾기 힘들어진 블록버스터들 대신, 편안한 안방 1열에서 영화 <헬프>와 함께 시원한 치맥을 곁들여보는 건 어떨까. 늘 친근하게만 접했던 치킨의 숨은 이야기를 가볍게 곱씹어 보는 것도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한 이들에겐 꽤나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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