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에 개봉한 임순례 감독, 김태리 주연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멍 때리면서 보기 좋을 정도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힐링 영화’로 종종 언급된다. ‘겨울과 봄’, ‘여름과 가을’ 두 편으로 나눠진 동명의 일본 영화가 원작이지만, 우리나라는 한국의 4계절을 한편에 또렷이 담아냈다. 이리저리 치이며 일상에 지친 혜원(김태리)이 도시에서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돌아온 겨울의 고향은 서늘한 빈집과 오래된 난로, 텅 빈 찬장만이 그녀를 반겨준다. 쌀과 사과가 유명하지만, 간단한 찬거리조차 살 곳 없는 이 자그마한 농촌 마을에서 혜원은 직접 재배하고 기른 재료들로 소박하고도 정갈한 밥상을 매 끼니 차려낸다. 

이처럼 큰 갈등 없이 눈 덮인 텃밭에서 따온 배추로 끓여낸 배춧국, 쌀가루를 직접 체 쳐 쪄낸 삼색 시루떡, 가을 산에서 주운 밤으로 만든 밤 조림 등 흘러가는 계절에 따라 바뀌는 음식들과 잔잔하게 이어지는 일상을 보고 있자면, 원작이 무엇이었는지 혹은 이것이 리메이크작이었는지도 까맣게 잊어버릴 만큼 혜원의 ‘삼시 세끼’ 자급자족 농촌 생활에 함께 빠져든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뉴시스
영화 <리틀 포레스트> ⓒ뉴시스

식혜의 엿기름은 단맛을 내지만 막걸리의 누룩은 어른의 맛을 낸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中

긴긴 겨울 가끔 막걸리를 만들어 먹던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식혜잔을 들고 함께 건배하던 어린 혜원이 호기심에 맛 본 인생 첫 막걸리의 기억은 ‘시큼하고 쿰쿰한 어른의 맛’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엄마처럼 고두밥에 누룩을 얹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며 정성스레 술을 빚어내는 혜원에겐 막걸리는 더이상 어른의 맛이 아니다. 이제는 “이맛이지.”를 외치며  먹음직스럽게 부쳐낸 두부와 김치전을 곁들인채 친구들과 연신 술잔을 부딪힐만큼 훌쩍 자라버렸다.

K-wave가 들썩이고 레트로 열풍이 휩쓴 요즘, 옛것을 찾아 소환하는 움직임이 많은 가운데 전통주 또한 깔끔하고도 세련된 라벨로 젊은 사람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서는 모양새다. 

양조장이 위치한 지역 이름을 따거나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전통주로 지역별 대표 전통주들이 조금씩 알려지고, 전통주로 칵테일을 만들거나 프리미엄 전통주들을 선보이면서 정기적으로 새로운 전통주를 배송받는 전통주 구독 서비스까지 관심을 받고 있다. 

전통주는 크게 곡류를 원료로 해 발효시킨 양조곡주와 발효시킨 술을 증류한 증류주, 그리고 약재나 과실 등을 넣어 빚은 혼양곡주로 나뉘는데 하위 제조 방식에 따라 많은 전통주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 가장 친근하고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전통주는 바로 막걸리라고 할 수 있다. 

막걸리는 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넣어 일정 온도에서 발효시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주로서 달콤함과 함께 느껴지는 균형 잡힌 산미는 기분 좋은 목 넘김을 선사한다. 

특히 막걸리는 낮은 도수에다 쌀이나 찹쌀, 보리 등 전분질이 다량 함유된 곡주로서 도수가 높은 일반 주류들에 비해 간에 부담이 덜하고,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식이섬유, 비타민 등이 풍부해 영양학적으로도 그 가치가 인정된다. 또한 생막걸리는 유통기한이 짧다는 단점이 있지만 청량감과 함께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살균막걸리는 열처리로 인해 향은 덜하지만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든든하게 마실 수 있는 막걸리는 과거부터 새참을 즐겨먹던 농민들에겐 흘린 땀을 식혀주는 존재였으며, ‘비 오는 날엔 막걸리에 파전’이라는 공식은 오늘날까지 변함이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고의 안주는 알싸한 추위와 같이 나눠마실 사람

‘긴 겨울을 뚫고 봄의 정령들이 올라오는 그때까지 있으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혜원의 대사는 마치 팬데믹 상황을 겪고 있는 지금 우리들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영화에서 언급되듯 작년보다 매서운 추위가 한껏 다가왔음에도, 푸짐하고도 맛있는 음식과 술을 함께 나눠 마시며 소소한 즐거움조차 공유할 수 없는 현 상황이 못내 아쉬운 현실이지만 막걸리를 직접 빚어볼 수 있는 수제 막걸리 키트도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한 만큼 이 구역의 애주가라면 ‘집 콕 생활’이 필수인 이번 겨울, 막걸리를 직접 직접 빚어 보며 새로운 취미 활동을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삼켜보자. 

▲ 김지우 칼럼니스트
-프리랜서 방송인

영화에서 언급되듯 작년보다 매서운 추위가 한껏 다가왔음에도, 푸짐하고도 맛있는 음식과 술을 함께 나눠 마시며 소소한 즐거움조차 공유할 수 없는 현 상황이 못내 아쉬운 현실에 ‘긴 겨울을 뚫고 봄의 정령들이 올라오는 그때까지 있으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혜원의 대사는 마치 팬데믹 상황을 겪고 있는 지금 우리들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이제는 막걸리를 직접 빚어볼 수 있는 수제 막걸리 키트도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한 만큼 이 구역의 애주가라면 ‘집 콕 생활’이 필수인 이번 겨울, 막걸리를 직접 직접 빚어 보며 새로운 취미 활동을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혹시 아는가, 봄의 정령들이 올라오고, 막걸리 속 밥알이 떠오를 때 쯤이면 이 길고 길었던 출구가 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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