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우의 Culture & Flavor] 홍차 향기가 가득한 오후의 정원으로 오세요
[김지우의 Culture & Flavor] 홍차 향기가 가득한 오후의 정원으로 오세요
  • 김지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4.1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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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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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날씨를 만끽할 수 없어 안타까운 요즘, 계절의 뒤바뀜에 싱숭생숭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따뜻한 차 한잔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하지만 습관처럼 마시는 한국인들의 커피 사랑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어도, 아직 ‘차(茶)’에 대한 관심은 커피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차(茶)라고 하면, 찻잎을 우려서 마시는 음료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의 녹차, 영국과 인도의 홍차, 일본의 말차, 중국의 우롱차 등 나라별로 대표하는 차는 모두 제각각 다르다. 하지만 이처럼 각자 다른 이름을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차들은 모두 같은 차나무의 찻잎으로 만들어진다. 차의 종류는 찻잎이 발효된 정도에 따라 나뉘는데 우리나라에서 즐겨 먹는 ‘녹차’의 경우 발효된 잎을 사용하지 않고 생잎을 말리거나 증기로 쪄서 만들어내기 때문에 깔끔한 맛이 돋보이고, 우롱차는 20~60% 정도 발효된 상태의 반발효차로 지방 흡수를 억제해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중국에서 식후차로 즐겨 마신다. 
 
가장 많이 발효된 홍차의 경우, 세계 차 소비량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한 원산지의 찻잎만을 사용한 스트레이트 티(Straight Tea)와 여러 종류의 찻잎을 혼합한 블렌드 티(Blend Tea), 그리고 꽃이나 과일 등의 향을 입힌 가향차(Flavor Tea)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어느 카페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얼그레이차 또한 베르가못 향을 첨가한 가향차로 구분된다. 이 외에도 청차, 백차, 보이차, 허브차 등 많은 종류의 차들이 시판되고 있다. 다만 녹차에는 커피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카페인이 들어있고, 홍차에도 상당한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어, 카페인을 이유로 커피 대신 차를 선택하는 사람이라면 유의할 필요가 있다.

홍차의 주요 생산국은 중국과 인도, 스리랑카 등이 있지만, 홍차에 대한 소비와 문화는 영국에서 단연 돋보인다. 17세기부터 이어져온 영국의 티타임은 왕실과 귀족, 서민 나눌 것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현재까지도 높은 차 소비량을 보여준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진 트와이닝, 립톤, 포트넘 메이슨뿐만 아니라 위타드 오브 첼시, 테일러 오브 헤로게이트, 피지팁스 등 많은 홍차 전문 브랜드들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특히 영국에서는 홍차의 특유의 쓴맛을 중화하기 위해 홍차에 크림이나 설탕, 우유 등을 첨가한 밀크티가 발달했는데, 이로 인해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홍차에 우유를 넣느냐’와 ‘우유에 홍차를 넣느냐’와 같은 논쟁도 종종 벌어지곤 한다. 

영국인들은 이른 아침 침대에서 마시는 얼리모닝티(Early Morning Tea)부터 시작해 아침 식사에 곁들이는 브렉퍼스트티(Breakfast Tea)와 상류층의 대표적인 티타임 문화인 애프터눈티(Afternoon Tea), 그리고 저녁 식사와 함께하는 노동계층의 하이티(High Tea)와  애프터디너티(After dinner Tea), 잠들기 전에 마시는 나이트티(Night tea)등 하루 평균 7-8회가량 티타임을 즐기곤 했는데, 이런 문화는 티타임이 영국인들의 일상 속에 얼마나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현대에 들어서는 차 문화 구분을 계급이 아닌 시간에 중점을 두면서 애프터눈티와 하이티와 같은 티타임이 하나의 관광 코스로 자리 잡게 됐다.

영화 오만과 편견 한 장면
영화 <오만과 편견> 캡처

 

이와 같은 영국의 ‘차(茶)’ 사랑은 여러 예술문화 속에서도 드러난다. 19세기 여러 작가의 명화 속엔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난히 많이 등장하며, <동물농장>, <1984> 등으로 유명한 작가 조지 오웰은 <A Nice Cup of Tea>라는 홍차에 관한 에세이를 기고하며 홍차 사랑을 내비쳤다. 또 셰익스피어만큼이나 영국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작가 제인 오스틴도 열렬한 홍차 애호가로서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등과 같은 작품 속에 홍차나 티타임에 대한 애정을 대변하는 장면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제인 오스틴은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홍차와 차도구를 구매하는 것엔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지며, 구매한 차를 자물쇠를 걸어 보관할 만큼 홍차는 그녀의 인생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었다. 

또 영국은 전 세계를 사로잡은 수많은 뮤지션들을 배출한 나라로도 정평이 나 있는데 지금도 포털사이트에서는 프레디 머큐리, 비틀즈, 에드 시런 등 시대를 불문하고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영국 유명 뮤지션들의 사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며, 비틀즈의 멤버이자 살아있는 전설인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음악에서도 티타임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would you care to seat with me
for a cup of English tea
very twee, very me
any sunny morning

저와 차 한잔 함께 하시겠어요?
앙증 맞은 게 꼭 제 스타일이죠
화창한 아침이라면 언제든지 좋아요

what a pleasure it would be 
chatting so delightfully
nanny bakes fairy cakes 
every sunday morning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요
유모는 일요일 아침마다 맛있는 컵케익을 구워주죠

[중략]

As a rule the church bells chime 
when it’s almost supper time
Nanny bakes fairy cakes
on a sunday morning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 보니 
저녁 식사 시간이 거의 다 되었나봐요
일요일 아침, 유모는 맛있는 컵케익을 구워주죠


[Paul McCartney - ‘English Tea’ 가사 중]

경쾌한 피아노 반주와 익숙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시작하는 ‘English Tea’는 지난 2005년 가을에 발매된 폴 매카트니의 정규앨범 [Chaos And Creation In The Backyard]에 수록된 곡이다. 3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곡이지만 화창한 주말 아침, 버드나무가 쭉 뻗은 푸르른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크로켓을 치며 티타임을 즐기는 모습이 저절로 연상될 만큼 경쾌하고도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곡은 팬들 또한 가장 영국다우면서도 비틀즈스러운 음악이라 평가한다. 

가사에서 지칭하는 ‘fairy cakes’는 일반적으로 컵케익을 뜻하지만 티타임 문화가 발달한 영국에서는 컵케익뿐만 아니라 파운드 케이크나 샌드위치, 그리고 영국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티 푸드인 스콘, 쿠키 등 여러 디저트들을 차와 함께 곁들여 먹는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영국식 디저트를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한 영국식 베이커리에서는 파운드 케익과 스콘, 쿠키 등을 직접 구워내는데 영업시간이 길지 않은 데다 매니아층이 두터워 늦게 방문할 시엔 매진 행렬을 보게 될 수도 있다. 다만 이 곳은 테이크아웃 전문 매장으로, 부암동에서 머지않은 서촌에 카페와 함께 운영하는 분점이 있으니 구입한 디저트를 음료와 함께 바로 먹길 원한다면 서촌점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 김지우 칼럼니스트-프리랜서 방송인
▲ 김지우 칼럼니스트
-프리랜서 방송인

그리고 삼청동 골목길에 위치한 작지만 이국적인 인테리어가 눈에 돋보이는 한 테이크아웃 전문 디저트 가게에서는 영국에서 직접 배워온 레시피를 바탕으로 만든 스콘들을 모두 조금씩 시식해 볼 수 있다. 이 때 같이 조금 내어주시는 향긋한 차를 함께 곁들이면 굳이 영국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험이 가능하다. 또, 이런 영국식 애프터눈티를 우리나라의 전통차와 다과를 곁들여 새롭게 해석한 한국식 티타임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주목해볼 만하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으로 집에서 ‘달고나 커피’, ‘수플레 팬케이크’ 만들기가 유행하고 있는 만큼, 이번 주말은 불필요한 나들이와 꽃놀이 대신 테이크아웃 한 티 푸드와 향긋한 차를 즐기며 나만의 홈 카페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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