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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해미(전종서 분), 벤(스티븐 연 분), 종수(유아인 분)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투데이신문 조원식 기자】 지난 2018년 개봉한 거장 이창동 감독, 유아인, 전종서, 스티븐연 주연의 영화 <버닝>은 그 시작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첫 국제적 작품으로 화제가 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가 원작이지만, 소설의 모티프만 가져오고 등장인물의 성격, 직업, 스토리에 변주를 준 영화다.

문예창작학과를 나와 소설가를 꿈꾸는 종수(유아인 분), 그의 꿈과 다르게 현실의 그는 하루하루 겨우 버티는 택배기사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던 날 종수는 거래업체에서 진행하는 경품 행사에서 내레이터 여자 알바생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을 종수의 어릴 적 동네 친구 신해미(전종서 분)라고 밝힌다. 그날 밤 둘은 술을 마시게 되고 해미는 자신이 배운 팬터마임을 보여주면서 아프리카 부시맨 족의 단순한 배고픔을 좇는 ‘리틀 헝거’, 삶의 의미를 좇는 ‘그레이트 헝거’에 대한 얘기를 한다. 그러곤 아프리카 여행을 갈 계획을 말하며 “그 동안 고양이를 봐달라”고 부탁한다.

해미의 집에서 보이는 남산 타워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이 집은 북향이어서 늘 춥고 어두운데, 하루에 딱 한 번 햇빛이 들어와.

남산 전망대 유리창에 햇빛이 반사 돼서 여기까지 들어와.

다음날 종수는 해미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간다. 서울을 상징하는 남산타워에 반사된 가짜 햇빛을 받으며 사는 해미는 저기 어딘가에 있는 진짜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녀는 또한 자신이 키우는 자폐증 고양이 '보일'를 부른다. 고양이가 나타나지 않자 종수는 팬터마임의 귤처럼 고양이도 없다는 걸 잊으면 되는 거냐고 묻는다. 이에 해미는 반문하게 되고 둘 사이는 입을 맞춘 후 성관계를 갖는다. 이때 그 빛이 단 한 번 둘을 처음 비춘다.

빛은 보통 희망을 뜻한다. 그러나 여기서 빛은 반사된 빛, 실체가 없는 허상에 지나지 않은 그 무엇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청춘들이여 분노하라’, ‘○○에 미쳐라’ 등 수많은 ‘꼰대’들은 청춘들에게 아픔과 분노, 노력과 같은 실체가 없는 그 무엇을 던져줬다.

 

종수의 집에서 함께 와인을 마시고 있는 해미와 벤<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난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취미가 있어요.

들판에 버려진 낡은 비닐하우스 하나를 골라 태우는 거에요. 두 달에 한번쯤?

그렇게 해미는 ‘그레이트 헝거’가 되기 위해 그렇게 아프리카로 떠난다. 보름 후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자신보다 여섯, 일곱 살이나 많은 벤(스티븐 연 분)이라는 남자와 함께 들어온 것이다. 하는 일이라곤 노는 것, 젊은 나이에 몰기 힘든 고가의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벤. 그는 흥미로운 일에 대해서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는 특징이 있다. 이 미스터리한 인물 벤과 해미, 종수는 종종 어울리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종수는 자신의 집에 온 벤과 해미와 함께 와인을 먹고 대마초를 피우며 시간을 보낸다. 먼저 잠든 해미를 두고 남은 벤과 종수, 벤은 들판에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 특유의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범죄일 수 있는 자신의 취미를 고백해버린 벤. 해미와 벤이 떠나고 며칠 뒤 해미는 말 그대로 증발한다. 종수는 벤을 찾아가 해미의 행방을 물으면서 비닐하우스는 어쨌냐고 물었지만 벤은 이미 종수의 집 근처에서 태워버렸다고 말한다.

비닐하우스는 영화의 키워드인 ‘모호함’, ‘불분명함’, ‘미스터리’다. 비닐하우스는 투명해보이지만 가까이서 안을 들여다보려고 가까이 갈수록 보이지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벤의 불법적 행위이자 모호한 단서를 종수가 알아내고 싶어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은 마치 어디서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쉽게 찾아낼 수 없는 세상의 진실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종수는 삶이 나아지지 않는 세상에서 미스터리를 대변하는 벤이나 벤의 비닐하우스에 집착을 하게 되고 결국 분노로 향해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저한텐 세상이 수수께끼 같아요.

이창동 감독은 “버닝은 청춘에 대한 영화이다. 특히 무력감과 분노를 품은 청춘들에 대한 영화”라고 한 바 있다. 이렇듯 영화 속 청춘들은 진짜 햇빛이 아닌 남산 타워에 아주 잠깐 반사되는 가짜 햇빛에 만족하고, 그토록 찾던 고양이가 어떤 이의 앞에서 현현하고, 비닐하우스에 집착하고, 보이지 않는 귤을 먹고 배고프지 않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은 영화와 다르게 그 분노를 표출할 직접적인 대상이 없다. 그들은 세상이 자기 삶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세계라고 생각하며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의심이나 두려움, 답답함으로 응축돼 있다. 

MZ세대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모든 ‘종수’들은 더 이상 비닐하우스를 찾지 않는다. 그들은 리틀 헝거이면서 그레이트 헝거인 것이다. 그들은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벤을 파괴하기 위해 투표라는 칼을 이용했다이번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통해 내로남불, 공정과 멀었던 정치인들의 행태에 무력감을 느꼈던 수많은 종수들은 이미 예전에 비닐하우스를 태운 것은 아니었을까

끊임없이 메타포(비유)를 던지는 거장 이창동 감독의 여섯번째 작품 <버닝>. 종수와 해미를 통해 수수께끼 같은 세상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안개로 가득찬 집 주변을 뛰는 종수의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이 공감되는 이유는 뭘까. 보일 듯 말 듯, 가까이 들여다 보면 볼수록 보이지 않는 해미의 행방을 우리는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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