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승수 작가글 써서 먹고삽니다.와인으로 가산 탕진 중입니다.
▲ 임승수 작가
글 써서 먹고삽니다.
와인으로 가산 탕진 중입니다.

내가 주식, 코인, 부동산 등 재테크 열풍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계기는 좀 독특했는데, 그 얘기를 좀 하련다. 내가 쓴 책 중에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 있는데,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쉽게 풀어 쓴 해설서다. 마르크스 <자본론>은 인류 지성사의 기념비적 명작으로 꼽히는데, 알다시피 처음부터 끝까지 자본주의에 대한 서슬 퍼런 비판과 저주로 가득하다.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책이지만, 굳이 요약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심한 빈부격차와 인간성 상실의 근본 원인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해 착취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자본가의 몫으로 배정되는 거대한 이윤은 사실 일터에서 노동자에게 빼앗은 시간에서 나온다는 ‘잉여가치론’이 자본론의 핵심내용인데,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시간(인생)을 빼앗겨서 가난하고, 반대로 자본가는 노동자로부터 시간(인생)을 빼앗아 부자가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다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 재테크 학습 교재로 곳곳에서 꾸준히 활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 이상하다? 주식, 코인, 부동산 투자 방법을 다룬 적이 없는데? 왜 자본주의 비판 서적을 재테크 모임에서 읽을까? 알고 보니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본격적인 재테크 공부에 앞서 동기부여를 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마르크스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부를 축적할 수 없으며 늘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삶을 살아야 하니, 한 개인이 착취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면 재테크만이 유일한 동아줄이라는 결론에 다다르는 것이다.

진보 성향의 노동조합이나 사회단체에서 내 책을 교재 삼아 공부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재테크 모임에서 이런 방식으로 활용하리라고는 털끝만큼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독자 저변이 넓어지고 인세 수입도 증가하니 생계형 작가에게는 고마운 일이지만, 어쨌든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어안이 벙벙했다. 사회주의 혁명가인 체 게바라의 얼굴이 이런저런 상품에 인쇄되어 팔릴 때는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마르크스 <자본론>까지 재테크 땔감으로 동원되다니. 전설적인 체조선수 나디아 코마네치도 울고 갈 자본주의의 유연함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그러고 보니 한 젊은이와의 대화가 기억난다. 강의를 마친 후였는데 키가 훤칠한 청년이 다가와 질문을 했다.

“작가님, 저 경희대학교에서 작가님 수업 들었던 아무개입니다.”

“오랜만이에요. 기억합니다. 반가워요.”

“제가 요즘에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데요. 20대 때는 재테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음... 솔직히 얘기하면 저는 재테크 경험이 없어요.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합니다. 다만 젊은 시절에는 통장 잔액을 늘리는 것보다는 스스로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어떨까요. 그게 진짜 남는 장사거든요.”

최근 청년들이 무리하게 빚까지 내며 주식과 코인에 올인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아무리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라지만 통장 잔액에서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게 되면, 숫자 변화에 일희일비하며 인생을 통째로 저당잡히기 십상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 돌아본 삶의 기억 대부분이 주식과 코인 그래프로만 점철되어 있다면 그 삶이 얼마나 빈한하고 허망하겠나.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능한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좋은 사람들과 두루두루 교류하자. 무심코 사용하는 일상의 물건들이 내 돈 주고 구입한 상품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물임을 깨닫고, 타인의 수고와 노동 덕분에 지금의 삶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자. 하나뿐인 지구에서 모든 생명체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삶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자. 그런 과정을 통해 인간은 품격을 갖추게 된다.

재테크 통장 잔고와 명품 옷으로 애써 누추한 모습을 가린다 한들, 그런 식으로는 인간 명품이 될 수 없다.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이의 생가라면 허름한 초가집이더라도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자취, 그리고 남겨진 향기다.

낑낑대며 이 글을 쓰다가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 가 일을 보는데, 언젠가 모 청소년단체 건물 화장실에 붙어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추장이 했다고 여겨지는) 다음과 같은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화장실에서 만난 최고의 문장이다.

“마지막 나무가 잘려 나가고, 마지막 강이 오염되고, 마지막 물고기가 죽으면, 우리는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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