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감수성이란, 일상 속 작은 요소에서도 인권적 요소를 발견해 고려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그 안에는 다름과 차별을 구분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최근 들어 이 단어의 무게가 크게 느껴진다는 건 우리 사회가 인권을 바라보는 시각이 높아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사회는 장애인을 소수자, 약자로 인식하고 있다. 비장애인이 보기엔 어쩌면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이런 인식은 되레 장애인들의 자존감을 낮추고 상처를 줄 수 있다. 더 이상 약자로서의 장애인이 아닌,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춰 ‘다른 타인’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에 구립동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선 ‘펜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장애인과 장애 가족 그리고 주변인의 시선을 꾸밈없이 담아내는 출판 프로젝트로 장애에 대한 대중의 각인된 시선을 개선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기획됐다.

본보에서는 첫 번째로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구립동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 정은아 관장을 만났다.

정 관장은 “장애를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과제, 안타까운 시각 등이 아닌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춰 다양성과 다름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장애인은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에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려 한다”고 말했다.

세상의 잘못된 시선을 바꾸는 것, 장애 인식 개선이 곧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위한 것임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펜대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로서 남다른 목표와 포부를 갖고 있었다.

Q. 구립동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은 어떠한 분야에 초점을 맞춰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우리 복지관은 ‘장애인 치유와 회복’을 제1의 가치로 삼는다. 특히 장애인의 생애주기별 평생교육과 자립 생활에 초점을 맞춰, 장애인이 삶의 터전인 지역사회에서 참여구성원으로서 지역사회 내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상생활 훈련, 문화여가 교육, 권익옹호 활동, 직종개발 등을 통해 취업분야에 차별성을 두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요즘은 코로나라는 특수상황으로 인해 긴급돌봄이 필요한 위기장애인에 대한 지원 활동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Q. 현재 비장애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어떻다고 보는가.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온정주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본다. 장애인은 시혜나 배려의 대상으로 여겨지다 보니 장애인의 권리나 인권의 중심이 아니라 비장애인은 개인의 입장에서 도움을 줄지 말지를 선택할 대상의 입장으로 인식되고 있어 장애인이 여러 차별이나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Q. 그렇다면 이러한 비장애인들의 시선에 대한 관장님의 생각이 궁금하다.

사실 아쉬운 부분이 많다. 사회적 ‘약자’라는 프레임이 있다 보니 장애인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그러니까 항상 배려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이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되레 스스로 자존감이 낮아질 수도 있고 더 큰마음의 상처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때문에 기존에 각인된 시선을 변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애를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과제, 안타까운 시각 등이 아닌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춰 다양성과 다름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Q.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눠 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신다면.

아동, 청소년, 노인과 같이 생애주기나 특별한 사회 통념상 구분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을 폄하하기 위한 구분으로 사용되는 게 현실이라서 잘못된 인식의 문제가 심각하다.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 사회권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예를 들어 휠체어 장애인 A씨는 버스를 이용하지 못했다. 그러다 저상 버스가 도입된 후 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면 그동안 버스를 타지 못했던 건 A씨의 문제일까? 버스의 구조적 문제일까? 이처럼 사회에서 장애가 되는 환경이나 인식의 문제가 장애를 만든다는 인식이 개인의 문제로 낙인화 하지 않는다.

Q. 복지관에서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마련한 출판 프로젝트 ‘펜대 프로젝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린다.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프로젝트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자존감이 낮은 장애인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그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었다. 아무래도 장애는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에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독자들이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접한다면 장애에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번 프로젝트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이끌길 기대한다.

Q. ‘펜대 프로젝트’의 구성은.

펜대 프로젝트는 장애에 대한 시선을 주제로 2017년부터 기획한 프로젝트다. 먼저 1부 <펜대: 나를 찾다>는 ‘장애 당사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장애’를 이야기한다. 2부 <펜대2: 너라는 세상>는 장애 가족의 시선과 경험, 3부 <펜대3: 우리 함께>는 주변인의 시선에서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다른지를 다룬다. 장애인 당사자와 그들의 가족 그리고 주변인의 이야기와 그들의 생각, 시선 등 다양한 관점으로 다루기 위해 3부 연작으로 구성했다.

Q. 이번 프로젝트 기획 과정과 운영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아무래도 출판이 전문 영역이다 보니 그와 관련한 내용이 쉽진 않았다. 특히 복지관의 경우 사업을 연단위로 미리 계획하고 예산을 세워 움직이는데, 출판 분야를 접해보지 않아 세부적인 일정이나 각 부분의 예산 등을 별도로 세우지 못해 애먹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직원들과 참여 작가들, 도움을 주신 분들과 하나하나 차근히 준비하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며 즐겁게 준비했다.

Q. 참여 작가들이 모여 글쓰기 모임을 갖고 원고를 준비했다고 하는데.

단순히 원고를 받아 책으로 엮는 것 보다, 함께 모임을 가지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첨삭도 받는 등 소통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책이 출간되는 과정이 하나의 치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마침 서아책방의 최서아 대표도 같은 의견을 줬고 글쓰기 모임을 기획하고 이끌어 줬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Q. 준비 과정과 작가님들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내 지레짐작일 순 있겠지만 스스로 내적인 변화가 있었으리라 믿는다. 담담하고 진솔하게 내 이야기를 쓰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함께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공감하고 소통한다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혼자가 아니라는 든든함 같은 거 말이다. 작가님들의 활동을 보며 나 역시도 많은 감동과 위로를 느꼈다. 단순히 우리가 출간한 책이 아니라 공감의 매체를 만든 것 같아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Q. 많은 준비를 한 게 느껴진다. 이번 도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참여 작가님들의 이야기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큰 틀에서 ‘장애인 가족 구성원이라고 해서 삶 자체가 크게 다른 건 아니다’라는 게 핵심 메시지일 듯싶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장애인 가족 구성원이라고 해서 무조건 힘들고 불행하고 특별하게 생각하곤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저 조금 다를 뿐이다. 모든 가족이 그렇듯 사는 게 기쁠 때도 있고 아프고 힘들 때도 있지 않은가. 장애인과 그들의 가족 역시도 비슷하다.

Q. 그렇다면 앞으로 장애, 장애인에 관한 인식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보는가.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개인의 역량이 차이 날 수는 있다. 한데 이 부분은 비장애인 사이에서도 그렇다. 누군가는 업무 처리가 빠르지만 누군가는 느릴 수도 있고, 운동을 잘하는 반면 음치일 수도 있다. 장애인 역시 개인적 역량이 다 다르다. 장애인이라고 다 모자라고 불편해서 불쌍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가 가진 권리와 인격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공정한 사회가 돼야 한다. 육상선수와 일반인이 같은 출발 선상에서 출발해야 한다면 그건 이미 공정하지 않다. 장애와 비장애인이 같은 업무를 한다면 그 역할에 맞도록 형평을 고려해야 한다.

Q. 책 출간 외에도 준비 중인 다른 기획이 있는지.

출판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우리 복지관은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사업을 할 예정이다. 먼저 펜대 시리즈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의견을 수렴에 굿즈 제작도 함께 구상하고 있다. 단순히 굿즈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것보단,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또 다양한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자립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책을 접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생각해 주길 바란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특별하고 항상 도움이 필요하고 배려해 줘야만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시선과 생각이 상처가 되어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조금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모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취향도 생각도 모두 다르지 않은가. 장애 역시도 마찬가지다. 장애가 있어 조금 다를 뿐이니 조금은 다른 생각과 시선으로 감싸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