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13주기…빈곤사회연대 등 주최 ‘용산 다크투어’ 동행
용산역 광장·용산정비창·이촌고가교·용산참사 현장 방문
참사 돌아보고 용산정비창 부지 값진 개발 방향 그려보는 여정
참사 유가족들, 여전히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촉구 중
공대위 “용산정비창 부지, 공공성 목적으로 개발 이뤄지길”

용산정비창 부지 모습
용산정비창 부지 모습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유정 기자】 누군가에게는 상처로 남아 다시는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곳, 또 누군가에게는 100만 평의 선물. 마지막 남은 서울의 개발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으로 여겨지는 용산에 발을 디뎠다.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는 올해로 벌써 1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참사의 상처가 낫지 않듯 여전히 용산은 ‘비극의 땅’이었다.

빈곤사회연대는 용산참사 13주기를 맞아 올 1월부터 ‘용산 다크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용산 다크투어’는 용산참사를 기억하고 용산정비창 개발의 대안적 미래를 상상하는 시민참여 투어 프로그램으로, 공공택지의 개발이 민간과 기업의 소유로 넘어가는 방식이 단절돼야 한다는 의미로 기획됐다.

또한 서울 시민들이 눈으로 직접 땅을 보고 어떤 대안적 개발이 이뤄져야 하는지 목소리를 함께 내보자는 취지로, 본래 일회성 투어로 계획됐으나 호응이 좋아 약 20차례 가까이 진행 중이다.

투어는 개발현장의 민낯을 살펴볼 수 있는 ‘용산역 광장 - 용산역 구름다리 - 용산정비창 정문 - 이촌고가교 - 용산정비창 후문 -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하는 코스로 이뤄졌다. 

‘용산 다크투어’가 진행된 지난 25일, 더운 날씨 속에서 약 2시간 동안 걸어야 하는 투어임에도 20여명이 참여했다. 기자도 ‘용산 다크투어’에 동행해 용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다.

용산역 광장에 모여 해설을 듣고 있는 투어 참여자들 모습. [사진제공=용산 다크투어]
용산역 광장에 모여 해설을 듣고 있는 투어 참여자들 모습. [사진제공=용산 다크투어]

시민의 것 아닌 민자화 된 용산역 광장

투어 참여자들이 첫번째 코스로 모여든 용산역 광장은 시청역 광장과는 사뭇 다른 광경을 자랑했다. 지하철역 보다는 마치 쇼핑몰, 호텔 로비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광장의 크기는 광활해 진행자가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귀를 잘 기울여야 겨우 들을 수 있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공간임에도 사실 이곳은 시민들의 땅이 아니다. 그렇기에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서울역 광장에서 진행된 추모대회가 이곳 용산역 광장에서는 진행되지 못했다. 용산역 광장은 공공역사가 아닌 철도공사 소유의 땅에 현대산업개발이 운영하는 ‘민자 역사’이기 때문이다.

용산역은 광장의 사용 점유권까지 30년간 민간사업자에게 넘겨졌다. 용산역 광장을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경찰에 집회신고를 하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고 현대산업개발로부터 사용 동의를 구한 후 집회신고를 해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빈곤사회연대에 따르면 용산역은 전체 면적 중 90%는 상업시설, 10%는 역무시설로 이뤄져 있으며 철도와 지하철 이용객의 동선보다는 쇼핑몰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동선에 맞춰 설계돼있다.

기자가 투어 후 둘러본 대합실에는 승객들이 앉아서 대기할 수 있는 의자 등의 편의시설이 부족해 보였다. 그에 반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여러 상업시설들이 눈에 띄었다. 승객을 위한 편의시설 보다는 소비 공간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둔 방식으로 개발된 것이다.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이 같은 공간을 계속 민간사업자, 대기업에게 넘겨줄 것인지, 아니면 보다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구름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홈리스 텐트촌 모습 ⓒ투데이신문
구름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홈리스 텐트촌 모습 ⓒ투데이신문

개발로 내몰린 이들이 모인 텐트촌

용산역 광장을 지나 용산역과 서울 드래곤시티 호텔로 이어지는 용산역 구름다리 위에서 밖을 내다보니 다리 기둥을 세우는 작업이 한창인 공사장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옆 공간에는 가림막으로 대충 공사장과 구역을 나눠  텐트가 몇 개가 설치돼 있는 것이 보였다. 

빼곡한 나무 사이로 텐트 두어개 동과, 빨래줄에 널린 옷가지들을 보니 사람의 흔적이 느껴졌다. 인부들이 작업하다 쉬는 공간인가 싶었지만, 이곳은 ‘홈리스 텐트촌‘이었다.

텐트촌에는 2000년대 초반부터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살았지만 이 땅은 이제 철도공사의 땅이 됐다. 다리 기둥을 세우는 작업이 한창인 공사장도 본래는 텐트촌 일부 구역이었다고 한다.

홈리스행동 안형진 상임활동가에 따르면 공사 구역에 텐트를 치고 살고 있던 이들은 공사가 막 시작되던 당시에도 해당 구역이 공사 구간에 포함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시공사는 공사를 시작하면서 보름 내로 텐트를 안쪽으로 이동하라는 얘기를 전했다.

이에 텐트촌 주민들은 안전한 주거 대책과 이주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청의 소극적인 행위들을 규탄하기도 했다. 결국 구청의 행정을 기다리던 남은 텐트촌 주민들은 공사장과 떨어진 안쪽으로 텐트를 짓고 살게 됐다.

용산역과 용산전자상가 방향 외부를 이어주던 공중보행교는 이제는 외부가 아닌 서울 드래곤시티 호텔과 이어지게 됐다.

용산구는 구름다리의 관리, 책임을 호텔 측에 위임한 상태다. 위임 당시 텐트촌 주민들은 민간 자본인 호텔이 수익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텐트촌 주민에게 퇴거조치를 내리지 않을까 우려했다.

텐트촌 주민들은 공사 완료 후에도 호텔 측이 유·무형의 퇴거 위협을 할 수 없도록 조치를 해달라고 구청에 요구했으나 구청은 왜 그런 것을 우리가 신경써야 하느냐 라는 식으로 답변했다고 한다.

현재 텐트촌 주민 중에는 목동 재개발 현장 텐트촌에서 쫓겨나 이곳까지 오게 된 이도 있으며, 구름다리 내에서 잠을 자다 텐트촌으로 내려간 이들도 있다.

안 활동가는 “이곳 공간이 고급스러워지고 점점 더 좋아지고 있지만 그러한 공간은 사회의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을 내몬 장소에 지어진다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용산정비창 정문에서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투어 참여자들. [사진제공=용산 다크투어]
용산정비창 정문에서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투어 참여자들. [사진제공=용산 다크투어]

용산정비창, 누구의 것인가

구름다리를 지나 약 10분 정도 걷다 약 50만㎡ 규모의 용산정비창 부지 현장에 다다랐다.

이곳은 과거 열차를 정비하거나 보관하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으로 인해 토지 정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축구장 70개를 합쳐놓은 것과 맞먹는 크기의 대규모 공공토지에 해당하는 용산정비창은 개발 이익을 둘러싼 정쟁 한가운데 있는 땅으로도 유명하다.

2005년부터 여러 차례 개발 계획들이 수립됐다가 무산되기를 반복했으며 개발 사업자 등이 2013년 최종 부도를 맞게 된 이후 현재까지 빈 땅으로 방치되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개발 계획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개발 사업의 주관사였던 한국철도공사, 코레일은 긴 소송 끝에 2018년 용산 정비창 부지 등 국제업무지구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100% 확보하게 됐으며 현재 코레일은 서울시의 용산 개발 마스터플랜 발표에 발맞춰 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이처럼 용산정비창 부지를 보며 그저 개발 이익의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이들이 있는 반면 시민의 삶을 위한 공공목적의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서울지역의 주거·빈곤·노동·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는 10년 전 실패한 오세훈 표 투기 개발의 반복인 용산국제업무지구로의 개발을 강력히 반대하며 서울시의 용산정비창 개발 가이드라인에 시민을 위한 100% 공공 주택 공급방안이 담기길 촉구하고 있다.

이 집행위원장은 “이 넓은 공공택지를 민간이나 기업의 소유로 넘겨줄 것인지, 우리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며 마이크를 꼭 쥐었다.

정말 ‘시민‘을 위한 땅이란 무엇일까. 이 땅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공간, 시간이었다.

지난 5월 투어에 참여한 한 참여자가 작성한 ‘우리가 바라는 도시 설계‘ ⓒ투데이신문
지난 5월 투어에 참여한 한 참여자가 그린 ‘우리가 바라는 도시 설계‘ ⓒ투데이신문

우리가 바라는 도시 설계

용산정비창을 보며 이 부지가 어떻게 쓰이는 것이 마땅한지에 대한 생각에 잠긴채 이촌고가교로 이동했다.

이촌고가교에 올라서니 용산정비창의 넓은 땅이 한눈에 담겼다.

이곳에서 용상정비창 전망을 바라보며 각자가 생각하는 용산정비창의 미래, ‘우리가 바라는 도시’를 글과 그림으로 설계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크투어에 참여한 시민 A씨는 “이 곳에 살고 있는 모든 시민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길 바라지만, 저소득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방 한 칸 구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약자들이 어떤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큰 땅에 그들을 위한 집이 지어진다면, 각자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참여자들은 시민을 위한,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가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용산참사현장에서 관련 설명을 듣고 있는 투어 참여자들의 모습. [사진제공=용산 다크투어]
용산참사현장에서 관련 설명을 듣고 있는 투어 참여자들의 모습. [사진제공=용산 다크투어]

용산참사,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마지막으로 도착한 2009년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는 현재 용산 센트럴파크 해링턴 스퀘어가 들어서 있다.

높은 새 건물이 지어져 있으니 이 곳이 13년 전 망루 농성이 이어지고 참사가 일어났던 장소라는 것이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2009년 당시 서울시 오세훈 시장의 국제업무지구단지 대규모 개발 계획들이 추진되며 용산 일대 개발 속도에 불이 붙었다.

빠른 인허가가 나며 적은 보상금만을 받고 쫓겨나야 했던 상가 세입자들이 건물 옥상에 올라가 점거 농성을 시작했고, 국가가 이 농성을 초기부터 진압하기 위해 테러 진압 전문 경찰특공대를 투입시켰다. 

이 과정에서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화재로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원 한 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용산참사‘다.

참사 당시 72세로 사망한 이상림씨의 유품 중에는 용산구청의 공문이 있었다.

해당 공문은 앞서 이씨가 관리처분 인가를 앞두고 법적인 보상협의회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으니 보상협의회가 개최될 때까지 관리처분 인가를 내주지 말아 달라는 민원에 대한 회신 공문으로, “보상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관리처분 인가를 미룰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씨는 해당 공문을 가슴에 품고 망루에 올라갔다 사망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10개월 후, 더욱 원통한 일이 발생했다. 2010년 1월 법원이 용산 4구역 관리 처분 무효 판결을 내린 것이다.

절차적 하자, 즉 동의를 제대로 구하지 않고 가짜 도장을 찍는 등의 행위로 서류를 제출한 것이 소송을 통해 드러나면서 관리처분 무효라는 판결이 났지만, 누구 하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용산참사 후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유가족들은 아직까지 용산참사의 원인과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홈리스 텐트촌이 보이는 구름다리 위에서 해설을 듣고 있는 투어 참여자들의 모습. [사진제공=용산 다크투어]
홈리스 텐트촌이 보이는 구름다리 위에서 해설을 듣고 있는 투어 참여자들의 모습. [사진제공=용산 다크투어]

용산다크투어를 주최한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는 용산 정비창 부지가 이윤만을 위해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위한 공공적 목적을 가진 개발이 이뤄지기를 촉구하고 있다.

공대위는 다크투어를 통해 용산지역의 역사와 현재를 돌아보고, 용산정비창을 둘러싼 이해관계에 대해 알아보며 시민들과 함께 우리에게 필요한 미래는 무엇인가 질문한다.

투어에 참여한 B씨는 “투어를 통해 용산의 역사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 코스를 돌고 해설을 들을 때마다 충격을 받지 않은 곳이 없다”며 “‘누구의 것도 아닐 때 모두의 것이 된다’는 투어의 취지에 대해 계속해서 곱씹어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시민들이 다크투어를 통해 공간에 대한 고민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며 “토지나 주택 같은 것들은 무한정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유권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 모두가 소유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산 다크투어 깃발 ⓒ투데이신문
용산 다크투어 깃발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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