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열린 오프라인 축제…참여자들로 문전성시
인근에선 ‘맞불 집회’ 이어져…갈등 봉합 제자리걸음
각국 대사관도 축제 참여…퀴어축제 지지 의사 밝혀
폭우 속 퍼레이드 장관…참여자 얼굴 미소로 가득 차

펄럭이는 무지개빛 깃발 앞에 수많은 퀴어축제 참여자들이 서있다. ⓒ투데이신문
펄럭이는 무지개빛 깃발 앞에 수많은 퀴어축제 참여자들이 서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흐린 날씨를 비웃기라도 하듯 서울광장에는 무지개가 폈다. 이따금 빗방울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의 웃음꽃을 폈다. 제23회 서울퀴어문화 축제가 개최된 서울광장의 모습이다.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개최된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됨에 따라 온라인 및 대면으로 진행됐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2019년 이후 온라인으로 열렸으나, 서울 광장에서 다시 개최된 것은 3년만이다.

불쾌감을 자아내거나 과한 노출로 비난 받던 의상은 극히 드물었다. 축제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뽐냈지만,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으로 스스로를 꾸몄다. 초록빛 서울광장 잔디밭이 무지개 색으로 물든 이유를 엿볼 수 있었다.

이날 서울광장에는 성소수자에게 연대 의식을 표하는 여러 기관과 단체 부스 72개가 설치됐다. 아울러 국내 인권단체와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 및 종교단체도 각각의 부스를 마련했다. 부스 곳곳에선 형형색색의 참여자들이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있다.

함박 미소를 띄고 있는 커플 ⓒ투데이신문
함박 미소를 띄고 있는 커플 ⓒ투데이신문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에서 만나던 성소수자를 같은 자리에서 만날 수 있게 돼 참여자들의 얼굴에는 함박 미소가 가득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생 A씨는 “그간 온라인으로 진행되던 행사가 내심 아쉬웠지만, 올해는 이렇게 서로를 직접 마주보며 연대할 수 있어 기쁘다”며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 라는 슬로건과 같이 서로를 인정하고 보다듬어줄 수 있는 사회문화가 얼른 자리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인과 함께 행사에 참여한 B씨는 “울타리 밖에 축제를 반대하는 외침이 지나치게 커 아쉬움이 들지만 이번 축제가 이렇게 성공적으로 개최된 것 자체가 행복하다”며 “서로를 혐오하기 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혐오표현에 귀막은 참여자들 ⓒ투데이신문
혐오표현에 귀막은 참여자들 ⓒ투데이신문

퀴어 축제 겨냥한 혐오표현 “동성애, 나라 무너뜨려”

서울광장 일대에는 경찰 통제가 강화되는 등 긴장감이 맴돌았다. 퀴어축제가 개최된 서울광장 외곽에선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맞불 집회가 열렸다. 퀴어축제에 방해가 되는 시끄러운 음악과 더불어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 ‘정의로운 사람들’ 등 수많은 단체가 차레대로 연설을 하며 퀴어축제를 강력히 반대했다.

퀴어축제 입구에선 ‘동성애는 죄악, NO 인권’ 이라는 팻말을 든 남성이 경찰에 의해 제지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울러 퀴어축제 현장을 향하는 여성들의 귀에 서슴없이 혐오표현을 뱉어대는 이들도 존재했다.

특히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손팻말이 가장 많이 보였다. 해당 팻말을 든 인원들은 노년층에 국한되지 않았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이들부터 20대 청년층까지 다양한 이들이 팻말로 그들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었다.

차별금지법 반대 부채를 들고 있는 반대집회 참여자 ⓒ투데이신문
차별금지법 반대 부채를 들고 있는 반대집회 참여자 ⓒ투데이신문

반대 집회에 참석한 C씨는 “올바른 성윤리가 이 나라에 자리 잡길 바란다”며 “서울시의 퀴어축제 조건부 허용은 오세훈 시장의 큰 실수”라고 주장했다.

자녀와 함께 반대 집회에 참석한 D씨는 “동성애는 윤리와 도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이 자리에 참석했고,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동성애는 나라를 무너뜨리는 끔찍한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각국 대사들이 퀴어 축제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각국 대사들이 퀴어 축제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각국 대사관도 축제 참여...“누구도 두고 갈 수 없다”

이날 행사에는 캐나다·네덜란드·독일·미국 등 주요국 대사관도 축제에 참여했다. 이들은 직접 단상 위에 서서 퀴어 축제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필립 골드버그 신임 주한 미국대사는 연대발언자로 무대에 올라 “어느 곳에서의 차별도 반대하고,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미국의 헌신을 증명하고 싶다”며 “누구도 두고 갈 수 없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다”고 전했다.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 대사는 “21세기에 성 지향이나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며 “누구나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마리아 카스티요-페르난데즈 EU 대사는 “최근 성 소수 공동체에 대한 공격 등 성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편견과 혐오가 심해지고 있는데 이는 인권침해 행위”라며 “인권이 위기에 처한 지금, 어느 때보다 이런 행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지지연설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스웨덴, 아일랜드, 영국, 캐나다, 핀란드, 호주 등 총 13개 주한대사관 및 대표부에서 대사를 비롯한 외교관들이 함께했다.

퀴어축제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행사 관계자 ⓒ투데이신문
퀴어축제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행사 관계자 ⓒ투데이신문

‘무지개 빛 워터밤’...폭우 뚫은 행진

퀴어축제의 꽃인 퍼레이드는 예정시간인 4시를 다소 넘긴 4시 30분에 시작됐다. 시작과 동시에 떨어지던 빗방울은 서서히 거세졌지만 이들을 막지 못했다. 퍼레이드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다만 퍼레이드 종료 뒤 마련된 축하 공연과 지지 발언, 클로징 행사는 우천으로 취소됐다.

관계자들은 퍼레이드를 성공시키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행진 초반 경찰 인력과 퍼레이드 행진자의 오해가 있어 약간의 정체가 있었지만, 관계자가 투입 돼 곧바로 수습을 마쳤다. 이후 퍼레이드는 별다른 멈춤 없이 진행됐다.

도로 인근 인도는 퍼레이드를 촬영하는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시민들은 퍼레이드를 하는 참여자들의 모습을 저마다 담아냈다. 시민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참여자들은 서울광장을 시작으로 을지로 입구와 종각역 명동 등을 거쳐 서울광장으로 복귀하는 총 3.8km의 코스를 만끽했다.

경찰은 혹시 모를 충돌에 대비해 서울광장 주변에도 방어벽을 둘러쳤다. 아울러 퍼레이드를 동행하며 마찰을 사전에 예방했다.

폭우 속 흥겨운 행진 ⓒ투데이신문

거세게 쏟아지는 빗방울에 반해 무지개 우비나 우산을 준비해온 사람들부터 성소수자 권리 보호 팻말을 든 참여자들의 얼굴에는 미소만 자리 잡고 있었다. 퍼레이드 현장은 흠뻑 젖은 머리카락과 옷들로 가득했으나, 흥겨운 음악과 춤을 추는 참여자들의 모습은 마치 여름의 대표 축제인 워터밤을 방불케 했다.

기나긴 퍼레이드에 끝까지 동행한 E씨는 “경찰들의 안전한 통제 하에 퍼레이드를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거침없이 쏟아진 폭우가 방해가 되기보다 오히려 더욱 더 해방감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연인의 손을 꼭 잡고 행진한 F씨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있는 것 같다”며 “사랑하는 연인과 하염없이 비를 맞으며 감정을 교류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연인에게 잊지못할 추억을 선물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웃음을 띄었다.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성소수자는 혼자가 아니다. 여기에 함께하는 많은 사람이 그들의 삶을 응원한다”며 “10년 전만 해도 이렇게 많은 관심이 없었다. 혐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우리의 존재가 두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퍼레이드 참여 인원을 약 1만4000명으로 추산했다. 주최측은 이날 모든 행사에 참여한 연인원을 13만5000여명으로 추산했다. 많은 참여자들에도 불구하고 마찰과 충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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