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사회부】 2021년은 성범죄 피해자들의 호소와 가해자들의 징역형 확정이 끊이지 않은 해였다.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사건의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이뤄졌으며, 이와 같은 사건들을 방지 할 수 있는 법안들이 하나 둘 마련되기도 했다. 아울러 여성가족부는 그들을 둘러싼 가짜뉴스에 정면 반박하는 강수(強手)를 두기도 했으며, ‘생식능력 제거수술’을 하지 않아도 성별정정이 가능하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본보는 올 한 해 동안 있었던 다양한 젠더 이슈를 돌아보기 위해 <2021 투데이신문 젠더 10picks>를 기획했다.
객관적 증거 없다?…재판부, 고(故)박원순 성폭력 사실 인정
동료 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울시장 비서실 전 직원이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지난 1월 재판부는 피해자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실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판사 조성필)는 서울시장 전 비서실 직원 A씨의 준강간치상 혐의 재판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또 재판부는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도 함께 명령했다. 이 사건 피해자는 박 전 시장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해 고소한 인물이기도 하다. A씨는 법정에서 피해자의 PTSD가 자신의 범행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박 전 시장의 지속적인 성추행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반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 측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사실로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결정 근거를 모두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다만 인권위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근거로 구체적인 공개가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에 대한 심리를 이어간다. 강 여사가 인권위를 상대로 낸 권고 결정 취소 소송의 3차 변론은 내년 1월 18일 오전에 진행될 계획이다.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온라인 그루밍’ 막는 첫 발걸음
아동·청소년을 유인해 성착취하거나 성적인 행위를 유도하는 ‘그루밍 성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지난 3월 여성가족부는 이 같은 내용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 일부개정법률’이 공포됐다고 밝혔다. 개정된 청소년성보호법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거래·공유한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 가운데 하나다. 이전까지는 아동·청소년이 채팅앱이나 SNS 등에서 피해자를 유인하고 길들이는 ‘온라인 그루밍’에 노출돼 있음에도 성폭력 또는 성착취물 제작 범죄 등이 발생하기 전에는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에 따라 온라인에서 아동·청소년을 성착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 혐오감을 유발하는 대화를 지속적·반복적으로 하거나 성적 행위를 유인·권유하는 그루밍 행위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무분별한 신상공개…‘디지털교도소’ 1기 운영자 징역 3년6월
성범죄자 등 강력범죄자의 신상을 무단으로 공개한 혐의로 기소된 ‘디지털교도소’ 운영자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지난 4월 대구지법 형사8단독 박성준 부장판사는 디지털교도소 1기 운영자 A(34)씨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 재판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하고 추징금 818만원을 명령했다. 그간 재판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피의자들에 대한 무분별한 신상정보 공개가 이뤄지는 것 뿐만 아니라 민간의 기준에 의한 신상공개는 법의 영역을 벗어난 불법행위여서 실정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 된 바 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9월 3일 디지털교도소에 개인정보가 노출된 한 대학생이 억울함을 호소하다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사이트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반복되는 젠더갈등…이번엔 ‘설거지론’
올해 온라인상을 달군 젠더갈등에는 ‘설거지론’이 있다. 설거지론은 연애경험이 적거나 없는 사람이 젊은 시절 ‘문란한’ 생활을 한 상대와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설거지론은 지난 10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여성 캐릭터를 비판한 게시글이 퍼지면서 회자됐다. 이 게시글을 두고 설거지론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온라인상에서 확산되며 큰 호응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설거지론의 비판 대상은 주로 여성이다. 사회통념상 남성은 고백을 하는 쪽이고, 여성은 고백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쪽이기에 여성이 연애상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이 같은 시각은 한국 사회에 많이 퍼져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소득이 높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과 결혼한 전업주부를 두고 ‘취집’이라고 표현하며 비난하는 인식이다. 이렇듯 설거지론 자체도 문제지만, 이와 같은 주장이 주목을 받는 현상은 더욱 큰 문제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그만큼 이런 인식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이유다. 이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여성혐오가 만연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가부 둘러싼 ‘가짜뉴스’…강수(強手)로 대응
여가부가 언론·SNS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거짓 정보에 대해 해명하고 나섰다. ‘여성가족부에 대한 오해, 사실은 이렇습니다’라는 제목의 해당 자료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진, 여가부에 대한 비판론이 틀렸다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반박한다. 이는 여가부 폐지론이 제기된 상황에 대한 여가부의 강수(強手)로 해석된다. 여가부는 앞으로 사실과 다른 부분에 대해 적극 설명하는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시로 관련 자료를 내거나 설명회를 잡는 등 다양한 대응 방식에 대한 검토에도 착수했다. 여가부는 “앞으로도 부족한 부분에 대한 국민의 우려와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발전시켜 나가겠다”며 “다만 사실과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 설명하고, 성평등 가치 확산 및 사회적 약자 차별 해소,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가수 승리, 징역 3년에 때 아닌 ‘사필귀정(事必歸正)’
외국인 투자자 성매매 알선·해외 원정도박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승리(본명 이승현)에게 군사법원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지난 8월 지상작전사령부 보통군사법원(재판장 황민제 대령)은 승리의 성매매알선 등 혐의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법정구속하고 11억5000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승리 징역 3년 선고 당시 일부 팬들의 성명문이 눈길을 끌었다. 승리 갤러리는 같은 날 오후 공식 성명문을 통해 “팬들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사자성어를 마음 깊이 새기고자 한다”며 “승리가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했지만, 팬들은 언젠가 승리가 다시 우뚝 설 그날을 학수고대할 것을 다짐한다”고 적었다. ‘처음에는 시비(是非) 곡직(曲直)을 가리지 못해 그릇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正理)로 돌아간다’라는 의미가 담긴 사필귀정이라는 사자성어를 생각해보게 되는 사건이었다.
‘생식능력 제거수술’ 안 해도 성별정정 가능 첫 판단
생식능력 제거수술을 받지 않아도 성별정정이 가능하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지난 10월 수원가정법원 가사항고2부(부장판사 문흥주)는 B씨의 성별정정 신청 사건에서 성별정정을 허가했다. 한번 수술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인 제거가 성별을 인정받기 위해 꼭 필요한 요건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이처럼 생식능력까지 제거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조건이 충족되면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별을 정정할 수 있다고 법원이 결정한 것은 처음이다. 이는 오랜기간 동안 아무런 지원도 없는 호르몬 치료와 수천만원이 드는 외과적 수술에서 고통 받던 성별정정 대기자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 보인 사건이기도 하다.
최대 ‘징역 5년’ 스토킹처벌법 시행
지난 10월 그동안 경범죄로 분류돼 과태료 처분 등에 그쳤던 스토킹을 범죄로 규정해 형사처벌하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됐다. 스토킹처벌법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상대방 또는 그 동거인, 가족에게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우편·전화·팩스·온라인 메신저·SNS 등을 통해 글·말·그림·영상·화상을 전달하거나 제3자를 통해 이를 전달하는 행위 ▲주거·직장·학교 등상대방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에 있는 물건 등을 훼손하는 행위를 스토킹 행위로 정의한다. 다만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피해자 보호명령을 신청할 수 없고, 피해자의 회복과 관련한 조치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또 피해자의 동거인, 가족을 피해자 범주에 포함했으나 이들에 대한 보호조치가 없어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이처럼 피해자 보호 규정이 없어 반쪽짜리라는 비판도 면치 못하고 있다.
N번방 핵심 피의자 첫 확정판결
‘적극적 법해석’…‘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대법서 징역 42년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하고 범죄집단을 조직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텔레그렘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게 징역 42년이 확정됐다. 조주빈이 받은 형량은 이례적이다. 유기징역의 상한은 30년이고, 가중사유가 있을 경우 최대 50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대법원의 이번 선고는 조주빈 일당을 ‘범행을 목적으로 조직·활동한 범죄집단’으로 규정하고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한 적극적 법해석에 따른 것이다. 지난 10월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조주빈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범죄단체조직, 살인예비, 유사강간, 강제추행, 사기,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 상고심에서 조주빈의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4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에서 징역 42년을 확정받은 조주빈이 세상 밖으로 나올 땐 67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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