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팔에는 주사를 맞을 혈관도 찾기 어렵다.

수액을 맞기 위해 두세 시간씩 주사를 맞고

오랜 시간을 고생해야 했다.

혈관이 숨어버린다는 말도 들었다.

그건 죽음의 암시일까.

2015년부터 암과 함께 살아왔다.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이었지만 성찰과 진여자성의 뜻깊은 시간이기도 했다. 2020년 말 두 번째 암이 성대 쪽으로 전이돼 지방의 병원들을 전전하다 결국 상경했고, 이후 1년여간의 병원 생활이 이어졌다. 하인두 암으로 인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단절과 침묵의 시간이었다. 나는 병원 일지를 쓰며 고통과 희망, 통증과 무의식으로 점철된 시간을 즐겼다. 음식 없이 주사만으로 보내기도 했던 병원의 나날들, 나는 십여권의 스케치북에 지난 시간들에 대한 회한과 반성을 그림과 글로 옮겼다. 사계절을 보내고 올해 늦여름 또 한번의 암 전이가 있었다. 세 번의 수술과 항암 방사선 치료에 이어 세 번째 치료를 진행 중이다. 낯선 생에서 여덟 해 동안 끊임 없이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고 정리해 왔다. 나는 여전히 일상에 없던 낯설고 새로운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

김호연 화백은 뉴욕 주립대 초청교수를 거쳐 26년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신과 인간에 대한 호기심, 생사에 대한 의문을 가지며 현재 작품세계의 원류라 볼 수 있는 ‘샤머니즘’을 캔버스에 담아 왔다. 대표적으로 무녀들의 수호신인 ‘바리공주’, 죽은 이를 위한 노래인 ‘황천무가’, ‘십장생’시리즈 등을 선보였다. 경주 풍경과 달마, 백호 등도 즐겨 그렸다. 미국 뉴욕을 비롯해 독일, 일본, 서울 등지에서 총 66회 개인전을 열었다. 선재미술관 초대전(1997), 백남준 추모전 등 다수 단체전에도 참여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