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운명공동체’ 구상 배경과 변화...미국 가치외교 vs 중국 실용외교

△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사)중국경영연구소 소장 

최근 인류운명공동체 구상 및 일대일로 사업관련 성과와 변화를 소개하는 중국 언론매체 보도가 많아진 듯하다.

올해가 중국 인류운명공동체 및 일대일로가 공식화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일대일로 사업이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에 비해 인류운명공동체는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인류운명공동체는 시진핑 주석이 2012년 11월 개최된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처음 언급했고, 일대일로는 2013년 9월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대학 강연에서 육상 실크로드, 10월 인도네시아 국회연설에서 해상 실크로드를 언급하면서 본격화됐다. 시기적으로 보더라도 일대일로는 인류운명공동체 구상의 배경 하에 탄생한 사업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인류운명공동체 담론은 시 주석의 대외관계를 관통하는 핵심 어젠다이다. 특히, 2015년 9월 시 주석의 UN총회 연설과 2017년 1월 다보스 포럼연설에서 언급되면서 본격화됐고, 2018년 3월 중국 헌법서론에 문구가 포함되면서 시 주석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따라서 글로벌 거버넌스 담론인 인류운명공동체가 지난 10년간 어떻게 진화되고 변화됐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향후 중국의 공공외교 및 대외정책 방향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이론적 배경이 될 수 있다. 최근 국제사회의 중국에 대한 평가가 강성외교 혹은 전량외교로 대변되면서 인류운명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인류운명공동체의 개념은 매우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성격을 가진 구상이다. 핵심은 인류는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인류의 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담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류운명공동체 구상의 숨은 배경과 변화를 크게 2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동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신형대국관계의 구축이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고,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UN 분담금을 많이 내고, WTO-WHO 등 국제기구 및 단체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미국주도의 글로벌 패권에서 벗어나 미중양국의 균등한 역할과 책임을 가지는 새로운 글로벌 리더십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는 결국 시 주석의 중국몽(Chinese Dream)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고 부르는 중국몽은 결국 과거 당나라, 청나라 등 역사 속의 강대한 중국으로의 회귀, 부흥을 의미한다. 신형대국관계는 2013년 6월 시 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당시 오마바 대통령에게 언급하면서 공식화됐다. 혹자는 당시 미국에 의해 신형대국관계가 무시당하자 새로 제시된 개념이 신형국제관계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시 주석의 신형대국관계는 인류운명공동체 담론과 함께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신형국제관계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되돌아보면 시 주석 1기 집권(2013~2017년)보다 미중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한 2기 집권(2018~2022년)기간에 신형대국관계론이 더욱 강하게 표출됐다. 인류운명공동체 구상이 발표된 지 10년을 맞이해 시에펑(谢锋)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최근 공개연설에서 ‘중국은 일부 강대국이 동맹을 무기로 특정 국가를 괴롭히고, 승자독식의 국제질서를 반대한다’라고 강변한 바 있다.

여기서 일부 강대국은 당연히 미국을 지칭한다. 중국은 표면적으로 신형대국관계 담론을 자제하는 분위기이지만 중국은 지속적으로 신형대국관계의 당위성을 강조할 것이고, 그에 따라 양국관계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주변국 및 개도국간 정치-경제-외교관계 방면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 바로 신형국제관계의 구축이다. 특히, 빈곤국 및 개도국에 대한 중국식 발전모델 공유, UN평화유지군 참여 등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다.

경제관계에서 개도국에 중국식 발전모델을 공유하는 일대일로 사업이 가장 대표적이다.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와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 구축을 통해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한다. 비록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하지만 발표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151개 국가 및 32개 국제단체와 MOU를 체결했고 인프라 건설, 인적교류 및 위안화 확대 등 그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커져가는 추세다.

한편, 중국굴기와 함께 대두된 중국위협론을 중국기회론으로 바꾸기 위해 개도국 및 국제사회와의 협력과 교류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브릭스 정상회의,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 중국-아세안 포럼, 중국-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국가 공동체 포럼, 중국과 아랍연맹(AL), 중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 간의 경제무역 협력포럼, 남남인권포럼 등 경제파워와 자본력을 기반으로 동맹은 아니지만 다양한 국가들과의 협력과 교류를 통해 중국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남남인권포럼은 개발도상국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 주도로 만들어진 포럼이다. 2017년 12월 제1회를 시작으로 2년에 한 번씩 진행되고 있다. 남남협력은 정치적 이슈 대화 및 재정적 협력과 동시에 개도국과 저개발도상국가들의 특정문제 해결을 위한 성격을 띠고 있다.

시 주석은 “세계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개발도상국들의 공동 노력이 없이는 전 세계의 인권 발전이 이뤄질 수 없다”며 인류운명공동체를 강조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주변국을 결집해 중국의 인권과 민주주의 이슈를 부각시키고 있는 반면, 중국은 막강한 경제력에 기반한 글로벌 리더십으로 미국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남남협력원조기금을 통해 50여 개의 개도국 및 저개발도상국가 대상 100여 건의 생계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중국의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인류운명공동체 담론이 매우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지만, 추구하는 방향은 매우 명확해 보인다. 시진핑 3기(2023~2027년)는 미국과의 직접적인 마찰을 피하기 위해 직접적인 신형대국관계를 주장하기보다는 내부결집을 통해 중국몽 실현을 위한 ‘3개의 반드시(三个必须)’를 더욱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3개의 반드시’는 첫째 반드시 중국식 길을 가야 하고, 둘째 반드시 중국정신을 확대-발전시켜 나가야 하고, 셋째 반드시 중국의 역량을 결집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중국은 최근 확산되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경제력과 군사력의 물리적 파워를 넘어 문화, 언론 등 소프트파워를 활용해 중국의 공공외교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 바로 인류운명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가치외교와 중국의 실용외교의 충돌은 향후 오랜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제3지대에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가치와 실용의 중간에서 국익을 위해 균형 및 생존외교를 펼칠 것이다. 우리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제3지대 국가 중 가장 역동적이고 역량이 있는 국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가치와 실용을 미중 양국이 아닌 우리 스스로 주도해 나가는 자강의 혜안과 지혜를 모색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 경제통상관/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했고, 3000여개가 넘는 기업을 지원했다. 미국 듀크대학 교환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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