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신탁운용, 러시아 ETF 상폐로 소비자 피해
주력업체들과 정면 대결 추진...AUM 정체 등 고심 커
ETF 시대, 소비자 교육 등 투자 파트너십 이미지 깨져

【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취임 후 보니 회사가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러시아 등 ‘니치마켓(틈새시장)’ 공략에만 주력하고 있었다. 이번 브랜드명 변경은 삼성이나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정면승부를 벌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한국투자신탁운용 배재규 대표, 지난해 9월 기자간담회 후 가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패시브 투자를 바탕으로 상장지수펀드(ETF)가 일반 공모펀드 시장을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투자신탁운용과 이 회사를 이끄는 배 사장이 서 있다. 하지만 정작 시장 변화 주도를 꿈꾸면서도 이들은 러시아ETF 상장폐지라는 부정적 이슈의 파장을 겪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배 대표는 삼성자산운용에서 맹활약하며 ‘ETF의 아버지’라 불려온 인물. 국내 ETF 시장을 이끌어온 그가 한국투자신탁운용 CEO로 자리를 지난해 옮긴 가운데, 이번에는 러시아 ETF로 발목이 잡히는 모습이다.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틈새시장’에서 일어난 일에 지나지 않는 문제인데, 막상 그의 ETF 철학과 겹쳐볼 때엔 문제가 간단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케팅과 고객교육을 중요 축으로 삼고 있는 특성에 저촉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해 2월 1일 취임 배재규, 불개미 손실 줄일 결단 책임?

한국투자신탁운용 배재규 대표. [사진제공=한국투자신탁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배재규 대표. [사진제공=한국투자신탁운용]

9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신탁운용은 국내 증시에서 유일하게 러시아 증시를 추종하는 ETF를 내놨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결국 이번에 상장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지난해 3월 7일 해당 ETF가 거래 정지된지 약 1년만의 일이다. 

문제는 투자자 손실이다. 비록 이 ETF에 막판 투자한 이들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추구한 일명 ‘불개미’들이지만 글로벌 전쟁이라는 거대 이슈를 놓고 해당 금융사가 소비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대두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소위 불개미들은 지난해 2월 21일부터 3월 4일까지 280억원어치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쟁 공식 발발 시점이 그해 2월 24일임을 고려하면 역발상 투자가 급격히 쏠린 셈이다. 1년쯤 후인 올해 3월 7일 집계 기준 러시아 ETF의 가격은 9590원, 하지만 INAV는 43.49원이다. 괴리율이 2만1951%가 조금 넘어 결국 막판 투자에 돌진한 이들은 자금을 상당 부분 손해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한화자산운용이 같은 해 2월 28일 자사 러시아 펀드의 신규 설정 중단을 결정한 것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의 러시아 ETF 조치가 발빠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지난해 2월 1일 취임한 배 대표의 지휘 책임 문제다. 새 회사 사령탑에 앉은 직후 세세한 문제를 모두 직접 처리하는 걸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관계자는 발빠른 신규 설정 중단 등을 단행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할 수 있는 조치를 가장 빨리 단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지수산출의 중단, 상관계수 요건 미충족, 장외파생상품 거래상대방 위험 등 발생시 상장폐지가 진행될 수 있다고 공시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라며 지난해 이 무렵의 당시 회사 측 노력에 대해 설명했다.

다만 문제는 해당 러시아 ETF의 거래정지라는 초유의 사태로부터 불과 6개월만에 연 기자간담회에서 위와 같이 ‘전임자의 ETF 틈새시장 정책쯤’으로 치부한 듯한 발언을 한 점이다. 아울러 이런 문제적 시각은 그가 줄곧 강조해 온 ETF 발전과 이를 통한 거대 경쟁사들 추격 전략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투자신탁운용 배재규 대표. [사진제공=한국투자신탁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배재규 대표. [사진제공=한국투자신탁운용]

‘공모펀드 대체 후 자산 배분 주도’ 꿈 빗나가나...순이익 감소도 우려

배 대표는 과거 액티브 위주의 운용시장에서 패시브를 선구적으로 도입, 히트시킨 산 증인이다.

그 스스로도 “패시브 운용을 들고 나와 변화를 주도한 경험이 있다”며 “이제는 국내 최고의 역사와 최고의 인력을 가진 (한국투자신탁운용) 조직에서 내 변화에 대한 경험과 전문지식을 결합해 다시 최고의 회사를 만들 것”이라며 ETF 주도 등 각종 변화의 바람을 공언한 바 있다.

이 같은 변화를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주도하는 데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과거 액티브 펀드가 인기를 끌던 시절엔 운용 부문의 중요성이 컸다. 하지만 시장이 패시브 펀드, ETF로 넘어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

‘상품 개발-운용-마케팅’의 삼각편대가 모두 고루 발전해야 제 역할이 가능하다는 전제가 강조된다. 

실제로 배 대표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패시브, ETF 시대엔) 운용 부문보다는 상품 개발이나 마케팅이 더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금융권에서는 배 대표가 근래 디지털ETF마케팅 부문을 사내에 새롭게 구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 지금까지 ETF가 공모펀드를 대체한 것을 페이즈(Phase) 1, 자산 배분이 페이즈 2라고 본다면 이런 배 대표와 한국투자신탁운용의 방향 설정은 옳다.

문제는 시장의 반응이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ETF 시장규모는 아직 100조원에 못 미친다. 시장 변동성에 따라 전체 ETF 운용자산(AUM)은 90조원선이다. 

상위 7개사에 전체 시장의 97%(86조7347억원) 정도를 과점하는 양상이다. 다만 ▲삼성자산운용 36조8915억원 ▲미래에셋자산운용 33조9027억원에 비해 ▲한국투자신탁운용 3조4617억원 등임을 감안하면 일명 상위 7개사간 비교 자체가 의미가 적다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 대비 한투 비중은 9.3%쯤이다. 

2019년에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이 1조9495억원, 삼성자산운용 26조8362억원으로 7.2%선이었던 데 비해서도 발전 속도가 빠르지 못하다. 

순이익으로 보면 지난해 삼성자산운용 756억원 대 한국투자신탁운용 311억원이다. 삼성은 2020년부터 줄곧 순이익이 늘고 있지만 한국투자신탁운용은 2020년 354억원에서 다음해 331억원, 2022년엔 311억원으로 감소세다.

원대한 꿈과 시대 맥락상 유효한 ETF 전략에도 좀처럼 거대 경쟁사들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을 꼭 ‘규모의 경제’와 ‘기존 아성의 벽’만으로 봐야 할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ETF 같은 사례를 접할 때 소비자 신뢰와 투자 선호도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

운용사들이 ETF 중심 시대로 갈수록 일반 투자자들에게 어떻게 투자하는지, 자산 배분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교육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일종의 파트너십, 배 대표식 ETF 철학은 시선을 모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런 배 대표의 지론이 이번 러시아 ETF 문제에 발목잡히는 양상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이번 일을 단순히 틈새시장에서 일어난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없고 장기간 유무형의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점쳐지는 이유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