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가상’ 환경 속 실시간 상호작용
빅테크 도전에도…기술 상충 ‘딜레마’
흥행 성패 관건은 ‘킬러 콘텐츠’ 발굴
통합 생태계 편입 ‘애플 메타버스’ 기대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기술은 나날이 발전합니다. 이른바 “기술이 세상을 구한다”는 테크 오타쿠들의 신앙고백(?)처럼, 다양한 첨단 기술들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도리어 인간은 기술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물질 문화의 변화 속도를 비물질 문화가 따라잡지 못하는 ‘문화 지체’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죠. 이에 <투데이신문>에서는 다양한 신기술들을 알기 쉽게 풀어보며 이 같은 지체 현상을 해소해보고자 합니다. 서구권 엔지니어들의 잇(IT) 아이템인 덕테이프(덕트 테이프)처럼, 기술과 사람 사이 벌어진 틈을 잘 막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애플 Dominik Hofacker 휴먼 인터페이스 디자이너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맥OS 콘셉트 티저 트레일러 영상에 따르면, MR 헤드셋을 통해 책상 위에 가상의 창들과 위젯, 키보드를 띄우고 손 제스처 등으로 조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Dominik Hofacker 유튜브]
애플 Dominik Hofacker 휴먼 인터페이스 디자이너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맥OS 콘셉트 티저 트레일러 영상에 따르면, MR 헤드셋을 통해 책상 위에 가상의 창들과 위젯, 키보드를 띄우고 손 제스처 등으로 조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Dominik Hofacker 유튜브]

【투데이신문 변동휘 기자】 애플이 오는 6월로 예정된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MR 헤드셋을 공개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400만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격부터 외장 배터리팩, 메타버스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MR, 다시 말해 ‘혼합현실’은 도대체 뭘까요? 이는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폴 밀그램 교수가 1994년 발표한 논문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 class of displays on the reality-virtuality contimuum)’에서 비롯된 용어입니다. 그는 ‘현실-가상 연속체(Reality-Virtuality Contimuum)’라는 스펙트럼 상에서 이를 설명했는데요, 이 연속선상의 양 극단에는 현실과 가상환경이 있고, 그 사이에 증강현실(AR)과 증강가상(AV)이라는 차원이 존재합니다. 

증강현실은 현실세계에 가상의 객체를 더한 것으로,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포켓몬GO’가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가령 강원도 속초라는 현실의 공간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가상의 정보인 포켓몬을 띄워 이를 수집하는 것이죠. 반대로 증강가상은 가상공간에 현실의 객체를 추가한 것인데요, 날씨예보나 인터넷 방송 등에서 자주 사용하는 크로마키가 대표적입니다. 가상공간에 기상정보나 게임 화면을 배경으로 띄워놓고, 실제 사람을 그 안에 투영하는 방식입니다. 혼합현실은 이 둘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종합하자면, 혼합현실이란 현실과 가상이 결합된 공간 속에서 사용자가 환경과 실시간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과 가상 사이 어딘가’라는 개념부터가 너무 모호해서 아무리 설명을 쉽게 하려 해도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 영화 포스터 [이미지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레디 플레이어 원’ 영화 포스터 [이미지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 지점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떠올려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영화를 살펴보면, 주인공인 ‘파시벌’ 웨이드가 가상현실 게임 ‘오아시스’에 접속해 창시자 할리데이의 미션을 수행하고, 마지막 미션을 해결하는 과정은 현실세계에도 생중계되죠. 또한 그는 가상세계에서 ‘아르테미스’ 사만다를 비롯해 다양한 동료들을 만나고, 현실에서도 이들과의 인연을 이어가는 등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한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이 같은 영화 속 세계관 전체를 혼합현실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이 예시로 자주 활용하는 영화이고, 우리에게 친숙한 대중문화 IP(지식재산권)들도 다양하게 등장하니 직접 보시는 것을 적극 추천합니다.

사실 현실과 연결된 가상세계를 구현하려는 시도가 처음은 아닙니다. 애플을 포함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소니 등 빅테크 기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펼쳐 보이려 했던 적이 있습니다. 구글 글래스나 홀로렌즈 같은 제품들이 대표적이죠. 메타 퀘스트2나 HTC 바이브, 플레이스테이션 VR(PS VR) 같은 VR HMD(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상업적 혹은 대중적으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례는 없었습니다. 시장 관점에서의 문제도 있지만, 기술적으로는 서로 상충되는 요소들을 동시에 구현해야 하는 난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메타의 VR 헤드셋 ‘메타 퀘스트2’ [사진 제공=메타]
메타의 VR 헤드셋 ‘메타 퀘스트2’ [사진 제공=메타]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높은 주사율을 지원하는 고화질 디스플레이와 고사양 프로세서가 필요합니다. 더욱 실감나는 경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인지부조화(시청각적 경험과 신체 경험 간 부조화로 뇌가 혼란을 겪는 현상)로 인한 어지럼증 등의 증상도 막기 위함이죠. 이러한 하드웨어들은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전원 공급도 중요합니다. 휴대용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당연히 일정 수준 이상의 용량을 가진 배터리가 탑재돼야 할 것입니다. 몸에 주는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 크기와 무게를 일정 수준 이하로 억제하는 것도 관건이겠죠.

허나 이 같은 조건들을 모두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습니다. 현재 기술 수준에서는 ‘트레이드 오프(Trade-off)’, 즉 하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충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고성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전력과 소형화 등의 문제로 휴대성을 포기해야 하죠. 설령 반도체 기술의 놀라운 성취로 고성능과 저전력을 동시에 구현한다고 해도, 소형화 과정에서 배터리를 탑재할 물리적 공간이 부족해져 사용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애플로 돌아와서, 일단 이들이 선택한 형체는 메타 퀘스트2와 같은 헤드셋으로 추측됩니다. 헤드셋 내에 설치된 디스플레이를 통해 가상세계 요소들을 보여줌과 동시에, 장착된 카메라를 활용해 현실세계를 디스플레이로 보여주는 ‘패스 쓰루’ 기능을 더하는 방안이 유력합니다. 맥과 아이패드에서 선보여 호평을 받은 애플 실리콘 M2 프로세서가 탑재된다는 설도 있는 만큼, 성능과 저전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다만 여기까지만 보면 접근 방식에 있어 다른 빅테크와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오는 6월 5일(현지 시간)로 예정된 애플 WWDC 티저 이미지 [이미지 제공=애플]
오는 6월 5일(현지 시간)로 예정된 애플 WWDC 티저 이미지 [이미지 제공=애플]

관건은 킬러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기존 제품들도 각자 기술적 성취로 무장하고 나왔지만, 결정적으로 ‘이걸로 뭘 해야 해?’라는 질문에서 모두 막혀버렸기 때문이죠. 특히 애플 제품의 경우 400만원이 넘는 고가를 자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답이 더욱 시급합니다. 

다만 애플의 경우 강력한 독자 생태계를 구축해온 경험이 있어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조심스레 나옵니다. 플랫폼 전체의 흥행을 견인할 킬러 콘텐츠가 나올 때까지 버틸 여력이 있을 것이란 뜻이죠. 그런 점에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전략은 기존 애플 생태계와의 연계입니다. 애플은 아이클라우드(iCloud)를 중심축으로 자사의 다양한 제품군과 각종 OS를 상호 연동하는 통합 생태계를 추구해왔는데요, MR 헤드셋 역시 편입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애플TV+ 콘텐츠를 마치 극장에서 보듯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거나 스포츠 경기 중계를 실감형 콘텐츠로 만들어 경기장에서 직관하는 느낌을 주도록 하는 식이죠. 애플 아케이드에 실감형 게임이 들어와 헤드셋을 착용하고 즐길 수도 있을 거고요. AI(인공지능) 기반 텍스트 인식 기능을 활용, 다이어리에 적어둔 미팅 일정 메모를 헤드셋 내장 카메라로 스캔하고 캘린더 앱에 추가하거나 하는 형태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페이스타임(영상통화)에 접목하면 3D 미모지 등을 활용할 수도 있겠죠. 현실 세계에 애플 생태계가 접목된 독특한 메타버스 공간이 열리는 셈입니다.

사실 애플이 글로벌 IT 업계를 호령하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새로운 시장을 열어젖혔다는 점에 있습니다. 대중들과는 한참 동떨어진 기술적 우월성보다는 일상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 수요층을 만들어냈다는 뜻이죠. MR의 경우 애플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지만, 만약 이들이 시장을 개척하는데 성공한다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세계가 우리 눈앞으로 성큼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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