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극장 존폐 여부 두고 원강수 시장과 시민단체 갈등
원주시 문화예술과, “유지·보수비용에 따른 경제성 고려해야”
서교하 연구소장, “안전 등급 낮아도 보수하면 사용 가능해”

아카데미극장 정문에 걸린 ‘구조안전 위험시설물 알림’ 현수막과 ‘이곳은 주차장 20칸보다 위대합니다/ SHAME/ 시민들은 누구보다 위대합니다’라고 적힌 나무판자. ⓒ투데이신문
아카데미극장 정문에 걸린 ‘구조안전 위험시설물 알림’ 현수막과 ‘이곳은 주차장 20칸보다 위대합니다/ SHAME/ 시민들은 누구보다 위대합니다’라고 적힌 나무판자.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이주영 기자】 지난 11일 원주에 남은 마지막 단관극장인 아카데미극장을 찾았다. 원주시의회가 해당 극장을 철거하겠다고 결정한지 8일이 지난 후였다. 정문에 붙은 ‘구조안전 위험시설물 알림’ 현수막이 사람의 출입을 막고 있었고, 그 앞에 세워진 나무판자에는 ‘이곳은 주차장 20칸보다 위대합니다/ SHAME / 시민들은 누구보다 위대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지난 4월 11일 원강수 원주시장이 아카데미극장 철거 계획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철거 예산 심의 절차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5월 3일 철거 내용이 포함된 ‘공유재산 관리계획 변경안’이 표결 끝에 시의회를 통과했다.

지난 18일 열린 추경예산안 심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원강수 시장의 불통과 졸속 행정을 비판했다. 아카데미극장 철거 예산안은 오는 25일에 열리는 본회의에서 확정될 예정이다.

지난 11일 원주시청 2층에서 ‘아카데미의 친구들 범시민연대’가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문을 발표하는 모습.&nbsp;ⓒ투데이신문&nbsp;<br>
지난 11일 원주시청 2층에서 ‘아카데미의 친구들 범시민연대’가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문을 발표하는 모습. ⓒ투데이신문 

지난 11일 원주시청 2층에서 아카데미극장을 보존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단체 ‘아카데미의 친구들’을 만났다. 브리핑룸 앞은 당일 오전 11시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카데미극장 보존과 재생을 촉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 손에 든 팸플릿에는 ‘우리가 아카데미극장을 지키는 이유!/ 국도비39억 받아 원도심 살릴 뉴트로 관광자원으로!’라고 적혀있었고, ‘절차무시 위법철거/ 원주시는 각성하라’라고 적힌 종이 한 묶음이 준비돼 있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 및 지역 원로로 구성된 범시민연대는 극장을 둘러싼 주민 갈등의 원인으로 원강수 시장을 지목했다. 이들은 극장 보존 여부에 대한 시정 정책토론을 마련하고 철거 예산을 삭감할 것을 요구했다.

원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아카데미의 친구들’ 수호대장으로 활동하는 신동화씨(36)는 이곳의 문화적 가치에 대해 “원도심에 남은 문화유산 중 강원감영과 원동성당은 각각 조선시대 문화재와 종교시설이어서 시민이 일상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건물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아카데미극장은 모든 연령대의 시민이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뜻깊은 문화 관광자원이다”라고 설명했다.

아카데미극장 옆에 위치한 풍물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투데이신문
아카데미극장 옆에 위치한 풍물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투데이신문

아카데미극장 옆 풍물시장은 전날 끝난 5일장으로 인해 비교적 한산했다.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은 상태였고, 듬성듬성 열려 있는 가게 안에서 주인들은 더위를 피해 앉아있었다. 시장을 둘러보던 한 주민은 아카데미극장 철거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기자의 말에 “나는 잘 몰라요”라고 답하며 자리를 피했다. 극장 철거 문제를 두고 지속된 갈등이 지역 주민에게 피로감을 안겨준 듯했다.

풍물시장 내부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60대 A씨는 극장 철거 문제에 대해 “흉물스러운 극장은 빨리 없어져야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타지에서 사업장을 운영하다가 IMF가 닥치며 가세가 기운 후 원주에 정착했다는 A씨는 “아카데미극장을 유지한다고 해서 원도심에 다시 사람이 모이겠나”라며 다소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아카데미극장을 가본 적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A씨는 “서부영화나 중국 무협 영화를 많이 봤었다. 옛날에는 놀 만한 데가 거기밖에 없었다. <황야의 무법자>를 재밌게 본 기억이 난다”라며 추억에 잠겼다.

원주 원도심 풍물시장 옆에 위치한 아카데미극장 외관. ⓒ투데이신문
원주 원도심 풍물시장 옆에 위치한 아카데미극장 외관. ⓒ투데이신문

아카데미극장 정면으로 영사실과 테라스가 보였다. 2층 난간은 녹이 슬었고 건물 외벽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원주시의 폐쇄 조치로 내부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닫힌 매표소 유리창을 통해 안쪽을 들여다보니 2022년 10월 아카데미극장에서 진행된 전시 프로젝트 ‘연결-connect’ 팸플릿이 놓여있다.

2016년 평원로에 위치한 문화극장이 철거되면서 아카데미극장은 원주의 유일한 단관극장이 됐다. 그해 아카데미극장이 가진 문화적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담론이 시작됐고 시민 포럼과 모금행사 등이 진행됐다. 2020년에는 시민에게 다시 개방되면서 재생시범사업 ‘안녕 아카데미’가 운영되기도 했다.

문닫힌 매표소 유리창 안쪽으로 2022년 10월 아카데미극장에서 진행된 전시 프로젝트 ‘연결-connect’ 팸플릿이 놓여있다. ⓒ투데이신문
문닫힌 매표소 유리창 안쪽으로 2022년 10월 아카데미극장에서 진행된 전시 프로젝트 ‘연결-connect’ 팸플릿이 놓여있다. ⓒ투데이신문

아카데미극장은 산업화 세대의 문화생활을 책임진 단관극장의 원형을 잘 보존한 근현대건축물로써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청상을 받았다. 하지만 건물의 안전성 평가에서 D등급을 맞았고 원강수 시장은 유지·보수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근거로 철거 계획을 밀어붙였다.

원주근대도시건축사연구소 서교하 소장은 “모든 건물은 관리하지 않으면 노화된다. D등급이라고 무조건 철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극장으로 사용하는 데 부족함 없도록 보수해 장수명(長壽命)화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원주시 문화예술부 담당주무관은 “문체부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 신청 당시 예산을 60억으로 책정했지만, 물가상승률을 반영한다면 현재 80~100억가량 들 것”이라며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원주는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원도심 공동화(空洞化)현상이 가속되고 있다. 이를 타개해야 한다는 의견은 원강수 시장과 ‘아카데미의 친구들 범시민연대’ 모두 동의하지만 실현할 방법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아카데미극장을 둘러싼 대립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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