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자 하는 자 살고 살고자 하는 자 죽으리”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킬러 본능으로 중무장한 존 윅. 올봄 더욱 화려해진 액션과 볼거리로 중무장한 〈존 윅4〉로 돌아왔다. 이번에 펼쳐지는 존 윅의 주요 혈전지는 프랑스 파리다. 트로카데로 광장부터 개선문, 생뙤스타슈 성당, 포르트 데 릴라 지하철역, 베르사유 궁전 등 파리의 대표적인 명소가 모조리 등장한다. 그 중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라몽 후작과 윈스턴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예술을 좋아하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들라크루아의 대표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장면은 명화가 영화 속에서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는 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존 윅은 과연 그림 속 인물처럼 자유를 얻을 수 있을 수 있을까. 아니면 고통 속에 또 다시 갇히게 될까. 

〈존 윅4〉에서 에펠탑이 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주인공들이 결투 방식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 (왼쪽부터) 윈스턴(이언 맥셰인), 존 윅(키아누 리브스), 전령(클랜시 브라운), 그라몽 후작(빌 스카스가르), 케인(견자단). [사진제공=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br>
〈존 윅4〉에서 에펠탑이 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주인공들이 결투 방식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 (왼쪽부터) 윈스턴(이언 맥셰인), 존 윅(키아누 리브스), 전령(클랜시 브라운), 그라몽 후작(빌 스카스가르), 케인(견자단). [사진제공=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Q. 〈존 윅4〉는 169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김선 비평가님은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액션 영화가 또 다시 있을까요. 그동안 액션영화를 많이 봐왔지만 이처럼 리얼한 현장이 그대로 느껴진 작품은 오랜만이었던 거 같습니다. 액션이라고 하면 폭력적이고 총기, 싸움, 피, 죽음이라는 단어로 얼룩진 그야말로 야만적이고 거친 세상에 대한 도전적인 느낌이 강한데 <존 윅4>는 한마디로 ‘예술적이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투라는 거대한 테두리 안에서 인간이 가지는 광기, 열정, 분노, 배신의 극적인 감정 서사가 무엇보다도 감각적인 장면 연출과 만나면서 더욱 돋보였던 거 같습니다. 에투알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따라 파리의 랜드마크의 낭만성이 폐허로 뒤덮이다가 다시금 그 속에서 평화를 되찾는 과정은 잔잔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Q. 특히 ‘루브르 박물관’을 배경으로 등장한 장면들, 각종 명화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어땠나요.

〈존 윅4〉는 실제를 방불케 하는 리얼한 결투 장면에 속도감을 더해 실시간 라이브라고 생각할 만큼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인 유리 피라미드가 등장하는 순간 존 윅의 결투가 더욱 의미 있는 이유로 다가왔다고 할까요. 루브르 박물관에서의 장면은 새로운 단서의 실마리를 제공해준 셈이었죠. 파리의 웅장하고 거대한 예술의 역사와 색채적 화려함, 상징적인 의미가 맞물린 훌륭한 연출이었습니다. 윈스턴과 그라몽 후작의 대화가 이뤄진 몰리앵(Mollien) 77호 방(Room 77)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77호 방은 프랑수아 니콜라스 몰리앵 (François Nicolas Mollien) 재무부 장관의 이름을 딴 방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걸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 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장면 중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와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1793-1824)의 작품이 눈에 띄었습니다. 낭만주의 회화가 주는 역동성과 잔혹함, 그리고 격렬한 혁명과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인지 최후의 도전장을 내미는 존 윅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Q. 프랑스의 대표 관광명소이자 세계 최고의 미술 박물관으로 꼽히는 ‘루브르 박물관’에 실제로 가본 적 있으신지.

네, 루브르 박물관에 가봤습니다. 파리 하면 루브르죠. 무엇보다 유럽미술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가려면 루브르 박물관은 필수 코스인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루브르 박물관의 77호 방 방문은 꼭 추천 드립니다.

Q. 가장 눈길을 끈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사실 루브르 박물관 하면 많은 분들이 〈모나리자〉(1503~1506)부터 떠올립니다. 르네상스 전성기를 이룩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으로 알려진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죠. 이에 비해 들라크루아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들라크루아는 낭만주의 대표화가입니다. 낭만주의 시대를 이해하려면 그의 작품을 빠뜨릴 수 없죠. 18세기~19세기 낭만주의의 등장을 기점으로 화가의 작품의 주제, 색채, 구도 면에서 여러모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어요. 말 그대로 혁신이었죠. 과감한 색채나 극적인 장면의 구도를 연출하기 위한 역동적인 움직임이 그림에 표현됐어요.  들라크루아는 그리스와 터키의 분쟁, 단테, 바이런의 문학, 전쟁, 여행 등 문학, 신화, 사회를 배경을 반영한 〈단테의 배〉(1822), 〈키오스섬의 학살〉(1824),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1827) 등 걸작을 남겼습니다.

Q.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신다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1830년경 제작된 들라크루아의 대표적인 명작 중에 하나입니다. 들라크루아는 인간의 극단적인 감정, 과장된 자세, 강렬한 색채, 대담한 구도를 사용해 고통, 비극, 폭력을 바탕으로 한 죽음의 공포를 극명하게 반영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기도 하고요. 이 작품은 1830년 7월 28일 일어난 7월 혁명을 주제로 프랑스 사회에 발생된 사건에 영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7월 혁명은 샤를 10세가 입헌군주제를 거부하고 왕정 체제로 회귀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봉기입니다. 당시 샤를 10세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알제리에 해외 원정을 단행하고 투표권 행사에 제한을 두자 그의 몰락을 위한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파리 시내에 바리케이드까지 설치됐습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7월28일), 325×260㎝, 1830년 작,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br>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7월28일), 325×260㎝, 1830년 작,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

이제 시대적 배경을 살펴봤으니 그림 속을 살펴보겠습니다. 삼색기 깃발을 든 자유의 여신을 중심으로 혁명이 일어난 모습이 보입니다. 혁명엔 곧 희생이 뒤따름을 알 수 있습니다. 희생자 발생과 함께 폐허가 된 도시가 온통 뿌연 연기로 자욱합니다. 화염의 고통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창백한 시체 더미, 버려진 잔해가 한눈에 보입니다. 살기 위한 자들과 죽은 자들이 전진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위해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거죠. 붉은색 프리지아 모자를 쓰고 반쯤 나체로 벌거벗은 여신의 이름은 마리안느(Marianne)로 로마 신화의 리베르타스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자유를 향한 여신은 한 손에는 깃발을, 또 다른 손에는 총을 들고 시민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희생된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프랑스 국기를 들고 세상과 맞서 싸웁니다. 혁명이 필요한 프랑스 사회에 강인한 혁명가의 모습을 보여준 거죠. 죽음과 극명하게 비교되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 모습입니다. 총을 든 어린 소년과 함께 총과 칼을 든 시민들의 돌진은 죽음 앞에서도 자신이 처한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자유를 위해 맞서 싸우는 인간, 이러한 세상과의 마주함에서 죽음은 용기이자 대가였습니다. 

Q. 그렇다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존 윅과의 연결고리가 궁금합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 리더로 앞장선 여신이 자유를 외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여성과 남성의 존재를 넘어서 죽음을 무릎 쓰고 자유를 향한 격한 돌진입니다. 그야말로 존 윅과 닮아 있죠. ‘최고 회의’의 구제도 관행을 무너뜨리기 위한 존 윅의 반격은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 자유의 여신과 흡사합니다. 샤를 10세는 영화 속 그라몽 후작과는 닮아 있고요.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차용한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앨범, 뮤지컬 ‘레 미제리블’ 공연 장면,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 포스터, SK이노베이션의 그린픽쳐 캠페인.<br>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차용한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앨범, 뮤지컬 ‘레 미제리블’ 공연 장면,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 포스터, SK이노베이션의 그린픽쳐 캠페인.

Q.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광고 등에서도 많이 차용됐습니다. 

혁명과 혁신을 동시에 겸비한 들라크루아의 표현방식과 주제는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보여주는 웅장한 구도의 연출력은 전쟁영화를 상기시킵니다. 인간의 감정과 거대한 에너지를 마음속 깊숙이 불어넣어주죠. 회화적으로는 살아있는 생동감을 더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실제 다가오는 듯한 극적인 장면이 주는 현장감이 매력이 아닐까요.

Q. 그 외에도 영화 속에선 다양한 명화들이 등장하는데요. 몇 개를 소개해주신다면.

이번 〈존 윅4〉에서는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모든 작품이 등장했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아요.  77호 방 장면에선 그라몽 후작의 뒷배경으로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1827)이 윈스턴의 뒷배경으로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1819)이 사용됐습니다. 특히 〈메두사호의 뗏목〉은 어떤 작품보다도 거대한 규모(491x716cm)로 시선을 압도합니다. 한편 지하철 촬영지 포르테 데 라일라 역에서 그라몽 후작에게 최후의 도전장을 내밀고 마지막 결투를 위해서 준비를 시작하는 존 윅은 이 장소에서 윈스턴과 바워리 킹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 사이에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1602)가 보이기도 하죠.

‘존 윅’을 반드시 없애기 위해 12개의 범죄 조직의 수장들인 ‘최고 회의’의 전폭적 신뢰를 받는 빌런 ‘그라몽 후작’(왼쪽). 그 뒤로 보이는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사진제공=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존 윅’을 반드시 없애기 위해 12개의 범죄 조직의 수장들인 ‘최고 회의’의 전폭적 신뢰를 받는 빌런 ‘그라몽 후작’(왼쪽). 그 뒤로 보이는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사진제공=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저는 그 중에서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과 〈메두사호의 뗏목〉을 좀 소개하고 싶은데요.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바이런의 희극을 소재로 고대 아시리아 왕 사르다나팔루스가 전쟁에서 적군에 참패한 후에 벌어지는 비극적인 최후의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들라크루아의 문학적 상상력이 더해진 작품이죠. 그림 속 침대에 기대앉은 사르다나팔루스는 무차별적으로 그의 노예와 정부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바라보며 어떤 죄책감도 갖지 않습니다. 공포스럽고 난폭한 장면으로 파괴와 학살이 난무하며 여성, 말, 보물들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 없이 부서지고 훼손된 모습입니다. 격렬한 움직임과 침대의 화려한 붉은 색채, 역동적인 인물들의 표정이나 자세가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메두사의 뗏목〉의 경우에는 실제 일어난 메두사호 사건을 바탕으로 재현된 작품입니다. 1816년 세네갈에 정착할 이주민과 관료들이 탄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가 모래톱에 걸려 난파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난파로 인해 벌어진 현장은 인육과 살인으로 끔찍하고 처참한 상황이었죠. 뗏목 위에서 인간의 비인간적인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제리코는 이러한 인간의 반란, 광기, 굶주림, 고통과 불안 그리고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그림에 담아냈습니다. 

Q. 정말 명화가 영화에서 중요한 ‘장치’로 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명화가 단지 아름다운 무대의 배경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가 교차되는 지점에서 배경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역할을 해준거죠. 즉 중요한 단서와 맥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만 해도 혁명기를 통한 작품의 주제를 보면 존 윅의 현실과 중첩되는 스토리들이 상기됩니다. 구제도의 폐허를 무너뜨리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길 원하는 존 윅의 혁명가적인 면모를 명화가 알레고리가 돼 힘을 실어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지금까지 언급된 작품 말고도 존 윅에 어울릴 만한 명화가 있다면.

그래서 저는 영화가 끝난 뒤에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아들을 먹어 치우는 사투르누스〉(1819-1823)가 생각났습니다. 사투르누스의 눈빛과 광기에서 화려한 액션의 잔혹한 서사가 느껴졌습니다.

Q. 이번 [아트 토핑]에서도 영화와 명화의 만남이 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존 윅4〉를 볼 관객들과 미술 애호가들에게 영화를 더욱 즐길 수 있는 팁 소개 부탁드립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영화 속 미술작품은 하나의 단서를 제공하며 극의 미래를 암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미술이 하나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게 재미있죠. 극적인 장면을 배가시키는 명화의 힘을 여러분들도 느끼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는 프랑스 미술의 황금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그림이 담고 있는 의미와 단서를 찾아가길 바랍니다. 예술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는 것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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