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공교육 과정 밖 수능 출제 배제’ 지시
고난도 문항 없애기로…‘물수능’ 우려 증가
사교육업계 반발 이어져…섣부르다는 평가
당정 “기법 고도화 등으로 변별력 유지할 것”
대입 국장 이어 ‘수능 주관’ 평가원장도 사퇴

지난해 11월 17일 부산 남구 대연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1교시 시험을 앞두고 대기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해 11월 17일 부산 남구 소재 모 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1교시 시험을 앞두고 대기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약 5개월 앞둔 시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초고난도 문항을 출제 배제를 지시하는 등 출제 방향에 개입한 것에 이어 수능 출제를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까지 전격 사임하면서 교육·입시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지난 15일 윤 대통령은 업무보고에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공교육 과정 밖 수능 출제 배제’ 원칙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라며 “과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비문학 문항 등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는 것은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말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후 윤 대통령은 이튿날인 16일 대입 담당 국장인 이윤홍 인재정책기획관을 임명 5개월 만에 경질했다. 이 국장 경질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6월 수능 모의평가가 어렵게 출제돼 문책성 인사를 당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어 19일에는 이 부총리가 당정 협의 자리에서 수능에 초고난도 문항인 이른바 ‘킬러 문항’의 출제를 배제할 것이라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이번 수능이 변별력 없는 ‘물수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같은 날 수능 출제를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이규민 원장까지 전격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교육계는 큰 혼란에 빠진 상태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열린 지난 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종로학원에서 수험생들이 문제를 풀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열린 지난 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종로학원에서 수험생들이 문제를 풀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尹, ‘킬러문항 출제 배제’ 지시

국민의힘 이태규 의원은 전날 당정이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 협의회’를 통해 킬러 문항 출제를 배제하고, 수능의 적정 난이도 확보를 위해 출제 기법 등 시스템을 점검하기로 했다.

킬러문항은 초고난도 문제로, 대개 공교육 교과 과정 밖에서 복잡하게 출제되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킬러문항에 대해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며 “고도 성장기에는 사교육 부담이 교육 문제에 그쳤지만, 저성장기에는 저출산 고령화 대비 측면에서 치명적 사회 문제를 발생 시킨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날 당정은 킬러문항이 시험 변별력을 부여하는 쉬운 방법이지만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이라는 것에 공감하며, 향후 공정 수능을 위해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출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변별력 유지를 위해 수능의 적정 난이도가 확보되도록 출제 기법을 고도화하며, 수능 출제진을 위한 시스템을 점검하는 등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당정은 수능 입시 대형 학원의 허위 및 과장 광고로 학부모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일부 학원의 불법 행위에 엄중 대응하고,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예방하고 국가가 기초 학력을 책임지고 보장할 수 있도록 학력 진단과 이후 맞춤형 학습 지원을 강화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이 부총리는 회의 후 질의응답에서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는 것은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수십 년간 지적됐지만 해결 못 한 바 있다”며 “이 같은 핵심 문제의 해결은 아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이고, 이 부분을 교육부가 적극 대처하는데 무력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이 입시의 핵심 문제에 대해 직접 강조해 주셨기 때문에 교육부 수장으로서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이 문제만큼은 확실히 해결하겠다는 걸 직원들에게 말했다”고 덧붙였다.

킬러 문항을 배제시키면 상위권을 변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충분히 가능하다”며 “앞서 대학 교수도 풀지 못할 정도로 문제를 내는 등의 사례가 많는데, 이런 것들은 정말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정은 지난 정부가 그동안 사교육비 폭증을 방치한 것으로 보고,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 안으로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사교육비 경감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학원 간판. [사진제공=뉴시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학원 간판. [사진제공=뉴시스]

반발 나선 사교육계·정치권

수능을 5개월여 앞두고 교과과정 외 분야의 문제를 출제해선 안 된다고 지시한 것을 두고 사교육계의 유명 강사들이 비판에 나섰다.

학원가에 따르면 현우진·이다지 등 이른바 ‘일타 강사’로 불리는 이들이 정부의 방침에 대해 교육계에 혼란을 준다며 반발하고 있다.

수능 수학 강사인 현우진씨는 지난 17일 자신의 SNS에 관련 보도를 공유하고 “애들만 불쌍하다”며 “그럼 9월 모의평가와 수능은 어떻게 간다는 거냐. 지금 수능은 국수영탐 어떤 과목도 하나 만만치 않고, 쉬우면 쉬운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혼란인데 정확한 가이드를 주시길”이라고 작성했다.

학생들을 향해서도 그는 “매번 말씀드리듯 6·9월 모의평가, 수능은 독립 시행이니 앞으로는 더 뭐가 어떻게, 어떤 난이도로 출제될지 종잡을 수 없으니 모든 시나리오에 다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며 “시험에서는 모든 것이 나올 수 있다는 비판적인 사고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 등 사회탐구 영역 강사인 이다지씨는 SNS에 관련 보도를 캡처해 게재한 뒤 “학교마다 선생님마다 가르치는 게 천차만별이고 심지어 개설되지 않는 과목도 있는데 ‘학교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 수능을 칠 수 있게 하라’는 메시지라”라며 “9월 모의평가가 어떨지 수능이 어떨지 더욱더 미지수가 됐다”고 꼬집었다.

사회문화 강사인 윤성훈씨도 “교육은 백년대계인데 대통령의 즉흥 발언으로 모두가 멘붕(멘탈붕괴) 상태”라고 지적했다.

야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20일 윤 대통령의 수능 논란에 대해 수험생과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박 원내대표는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수능이 대혼란에 빠졌다”며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피가 마르는 심정”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올해 수능이 과연 정상적으로 치러질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다”며 “만 5살 초등학교 입학 논란에 이어서 최악의 교육 참사라고 불릴 만하다”고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사교육비 문제에 대한 근본적 인식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선 공교육 투자를 늘려서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고 대학 서열화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올해 수능은 지금까지 지켜온 방향과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준비하지 않은 전환은 혼란을 가져온다”며 “꼭 추진하고 싶다면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다음 해에 추진할 수 있도록 검토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지난 3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지난 3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6월 모평 책임…교육평가원장 사퇴

이러한 가운데, 수능 출제를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 이규민 원장이 전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윤 대통령이 공교육 교과과정 밖 수능 출제 배제 지시를 내린 지 5일 만, 6월 모의평가 난이도 조절 실패를 이유로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을 경질한 지 4일 만에 이뤄졌다.

특히 수능 출제기관 수장이 출제 오류가 아닌 모의평가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원장은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6월 모의평가와 관련해 기관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로 했다”며 “오랜 시간 수능 준비로 힘들어하고 계신 수험생과 학부모님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오는 2024학년도 수능의 안정적인 준비와 시행을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평가원은 수능 출제라는 본연의 업무에 전념해 2024학년도 수능이 안정적으로 시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로 인해 12대였던 이 원장은 지난해 2월 28일 취임한 지 1년 4개월여 만에 사임 의사를 표명하면서, 오는 2025년 2월 말까지였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또한 교육부는 교육과정을 벗어난 수능 출제 논란을 지적하며 평가원을 12년 만에 대대적으로 감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번에 경질된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은 지난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 비서실장으로, 이 원장 역시 지난 정부 말기에 임명된 지난 정부 요직을 지낸 인물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수능을 얼마 남기지 않고 평가원장이 중도 사퇴한 가운데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혼란은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능에 대비한 평가원의 9월 모의평가는 9월 6일에 시행된다. 수능은 올해 11월 16일 치러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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