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강아지가 직접 안내하는 신비로운 섬 소두라도
기나긴 외면에 방치된 섬, 발 딛는 곳곳이 위험투성이
지자체 손길 닿지 않는 길에 하나, 둘 걸려 넘어지는 주민
태풍에 테트라포드 유실돼 파도 넘쳐도…“부족한 예산 탓”
학수고대하던 행정선 9월 중 운행…기다림 또다시 주민 몫

465中240. 전체 465개 유인도서(有人島嶼) 중 여객선이 경유하지 않는 미기항 도서는 240개로 조사됐다. 여객선이 경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의 발길이 끊겼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외딴 섬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보다, 섬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많다. 그 탓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도, 오고 갈 대중교통도, 아이들이 뛰노는 학교도, 장을 볼 마트도 없다. 말 그대로 불편투성이다. 그럼에도 사람 사는 냄새만큼은 물큰 풍겨온다. 465개의 섬 중 배가 닿지 않는 240개의 섬. 이 외딴섬에는 사람이 살았고, 또 사람이 살아간다. 여기, 사람이 산다. <편집자주>.

소두라도의 험한 길을 안내해주는 강아지. 강아지의 이름을 물어보니 이름이 강아지라고 한다.&nbsp;&nbsp;ⓒ투데이신문
소두라도의 험한 길을 안내해주는 강아지. 강아지의 이름을 물어보니 이름이 강아지라고 한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섬의 모양이 콩처럼 작고 둥글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아기자기하다. 휘황찬란한 도심의 불빛은 존재 하지 않는다. 은은하게 마을을 밝히는 작은 집들과 다소 어색한 신식 마을회관이 전부다. 섬 전체를 가득 메운 녹음이 우거진 길 곳곳은 도시에선 느낄 수 없는 상쾌함을 선물한다. 한입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공기 하나는 좋지’라고 말하던 황주환(65) 선장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섬, 소두라도에 처음 입도하면 마을회관을 지키는 강아지가 한달음에 달려와 황 선장과 외지인을 반긴다. 소두라도를 오고 가는 정기적인 행정선이 존재하지 않는 탓에 외지인이 마냥 낯설고 경계의 대상처럼 느껴질 법도 한데, 오히려 더욱 반갑다는 듯 꼬리를 흔들어 보인다. 한 발 더 앞서서 이 섬을 소개해주는 가이드 역할까지 수행한다. 이곳 소두라도에 살고있는 황 선장 그리고 강아지와 함께 둘러본 소두라도는 바다가 아닌 잔잔한 슬픔에 가로막힌 섬이었다.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소두라도는 마냥 아름다운 섬이다. 그러나 이토록 아름다운 섬을 직접 두 눈으로 가까이,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니 곳곳이 상처투성이였다. 엉망으로 설치된 테트라포드에 넘쳐흐르는 파도. 관리되지 않는 길에 하나, 둘 넘어지는 어르신들. 태풍이 올 적이면 내 집이 아닌, 다른 섬으로 피난 가야 하는 이들. 그렇다. 이곳에 거주하는 다른 어르신들은 이 섬 생활에 온전히 적응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이 상처를 꾹 참고 지내왔다.

외면도 아닌, 무관심은 이곳 거주민들의 삶을 더욱 고되게 만든다. 단순히 지형적인 한계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고립된 삶이라 치부하기엔, 이들은 너무나도 오래 방치돼 있었다. 소외도서의 숙명이라고 받아들이기엔 이들은 너무 연로하다. 이곳이 ‘소외도서 항로 운영 지원사업’ 대상지로 최종 선정돼 거주민들의 이동 문제는 가까스로 해결됐다 해도, 나머지 도사리고 있는 문제들은 도저히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섬 뒤편에 위치한 자그마한 텃밭을 향해 가는 황주환 선장&nbsp;&nbsp;ⓒ투데이신문
섬 뒤편에 위치한 자그마한 텃밭을 향해 가는 황주환 선장  ⓒ투데이신문

해안선 길이 7.5㎞·면적 0.189㎢…관리는 누가?

이 섬의 전체 면적은 0.189㎢. 평수로 환산하면 약 5만7172평에 달한다. 놀랍게도 이토록 넓은 땅을 관리하는 것은 오롯이 황 선장의 몫이다. 대다수 주민이 연로한 탓에 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는 길을 정비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황 선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실제로 황 선장은 아내와 함께 섬 곳곳에 얽히고설킨 줄기들을 직접 제거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소두라도에 직접 방문한 기자와 황 선장이 섬 곳곳을 다녀본 결과, 섬마을 뒤편에 있는 자그마한 텃밭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우거진 수풀을 지나야 했다. 이 과정에서 황 선장은 길에 얽혀있는 줄기에 발이 걸려 크게 넘어지기도 했다.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하는 황 선장이 아닌, 마을의 노인들이 넘어졌을 경우,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 황 선장은 길바닥에 숨어 있는 뱀을 조심하라고 귀띔했다. 평범한 길의 경우 바닥이 보여 아래에 수상한 물체가 있으면 피할 수 있지만, 바닥이 전부 풀로 가득한 까닭에 미처 뱀을 보지 못하고 물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섬 곳곳을 돌아다니기 위해선 늘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는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이러한 위험을 항상 지닌 채로 마을을 돌아다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황 선장은 “섬을 둘러보는 길을 직접 걸어보면 알겠지만, 바닥에 가득 자라난 풀들과 얽혀있는 줄기로 인해 발이 걸려 넘어지는 경우는 다반사고, 운이 나쁠 경우 뱀을 마주할 수도 있다”라며 “몇 년 전만 해도 공공근로 사업의 일환으로 사람들이 섬마을의 길을 닦아줬는데, 지금은 이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됐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틈틈이 마을의 길을 직접 닦아나가고 있다”며 하소연했다. 

공공근로사업은 각 지자체 실정에 맞는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사업을 발굴해 청년 실업자의 일자리 창출과 저소득층 가정의 생활안정에 기여하고자 만들어진 제도다사업내용으로는 정보화사업, 서비스지원, 환경정화사업, 기타 사업 등 4대 사업이 있다소두라도 주민들은 해당 사업을 통해 그간 환경정비를 지원받았으나, 최근 수년간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여수시는 공공근로 사업을 통해 도서지역 환경정비를 실시하는 것은 사실이나, 소두라도의 경우 관광지가 아니라 파견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다만, 관련 민원이 들어와 소두라도에 인력이 파견된 적은 있다고 답했다. 또, 소외 도서지역의 경우 별도의 출장소와 상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에 정기적인 환경정비는 사실상 어렵다고 인정했다.

여수시 청년일자리 창출과 관계자는 공공근로 사업을 통해 도서지역 인도를 관리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지역의 경우 공공근로 사업을 활용해 해당 도서 환경정비를 시행하고 있다. 소두라도 인근에 위치한 대두라도의 경우도 공공근로 사업의 일환으로 근로자들이 파견돼 환경정비 사업을 진행한 사실이 있으나, 소두라도의 경우 해당 면사무소에 직접 문의해 공공근로 파견 사실 및 활동 전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고 답했다.

여수시 남면사무소 관계자는 “공공근로 사업 중 남면 주요 관광지 환경 정비 사업에 소두라도는 포함이 돼 있지 않다. 관광지의 해안 도로와 비렁길을 정비하는 것이 환경정비 사업이기에 소두라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민원이 들어와 소두라도에 인력이 파견돼 인도를 정비한 사실은 존재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섬마다 출장소가 마련돼 있지 않고, 인력이 상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에 민원이 들어오면 여수시 환경정비팀과 공공근로자들로 구성해 파견한 뒤 환경 정비를 실시하고 있다”며 “소외 도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도움을 전부 줄 수 있으면 저희 입장에서도 좋지만 상시 출장은 어려워 관련 요청이 있을 경우 최대한 빨리 인력을 파견해 고충을 해결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소두라도의 중턱에서 바라본 접안 시설. 상당히 견고하게 쌓아 올려진 좌측 테트라포드와 달리 우측의 경우 엉성하게 설치돼 있다. 소두라도의 경우 조류가 접안 시설 내부로 흘러 테트라포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nbsp;ⓒ투데이신문
소두라도의 중턱에서 바라본 접안 시설. 상당히 견고하게 쌓아 올려진 좌측 테트라포드와 달리 우측의 경우 엉성하게 설치돼 있다. 소두라도의 경우 조류가 접안 시설 내부로 흘러 테트라포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투데이신문

섬에 사는 것도 서러운데…여름엔 부랴부랴 피난살이 까지

소두라도 주민들의 슬픔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곳 주민들은 여름이 되면 정든 집을 떠날 ‘피난’을 준비한다. 여름철 기승을 부리는 태풍의 직접적인 피해 위험 지역이기 때문이다. 매년 태풍이 올적이면 인근에 위치한 금오도, 화태도, 대두라도로 피난 가거나 이마저도 어려우면 육지에 살고 있는 친인척 집에 잠시 신세를 진다.

이들이 피난을 떠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접안시설 인근에 설치된 테트라포드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큰 파도가 들이치면 마을에까지 파도가 닿기 때문이다. 테트라포드는 방파제에서 파도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역할을 맡는데, 소두라도에 설치된 테트라포드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소두라도에 거주하고 있는 마을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이곳에 설치된 테트라포드의 경우 견고하게 설치되지 않고 중간중간 넓은 틈이 존재해 파도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실제 기자가 테트라포드가 설치된 접안 시설에 방문했을 때도 견고하다는 느낌보다 다소 엉성하게 놓여져 있는 문제의 테트라포드를 직접 마주할 수 있었다. 조류가 접안 시설을 따라 섬 내부로 향하는 소두라도의 특성상 설치된 테트라포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지만, 주민들의 증언처럼 아무렇게나 올려져 있는 실정이었다.

이곳을 지나던 마을주민 A씨는 “여기 테트라포드 설치된 것 좀 보라”며 “이렇게 엉성하게 설치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데, 대강 설치만 해놓고 떠나면 이 무거운 것을 우리가 어떤 힘으로 다시 설치하냐”고 하소연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아무렇게나 설치된 테트라포드는 태풍이 몰고 오는 거대한 파도를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또 “여기 주민들은 여름 태풍이 온다는 뉴스를 접하면 짐부터 싸기 시작한다”며 “행정선도 오지 않는 이곳에서 우리는 황 선장의 배를 타고 인근 섬이나 친인척이 있는 육지로 향해 간다”고 말했다. 이어 “소두라도라는 섬을 아는 이도 드물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렇게 테트라포드를 방치해서 되겠느냐”고 호소했다.

현장 사진을 직접 살펴본 여수시청 관계자는 태풍으로 인해 해당 위치에 설치돼 있어야 할 테트라포드가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테트라포드가 부실하다는 마을 주민의 주장을 인정했다. 시는 한정된 예산과 관리해야 할 도서지역이 많아 벌어진 일이며, 해당 사안을 보고한 뒤 보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여수시청 관계자는 “사진상으로 확인했을 때 해당 부분의 테트라포드의 경우 태풍으로 인해 유실된 것으로 추측된다”며 “테트라포드는 큰 파손이 아닐 경우 즉각적인 사업비 투입이 어려워 해당 사안에 대해 보고 한 뒤 사업비를 확보해 보강 공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테트라포드 설치의 경우 바다에서 진행되는 공사이다 보니 소두라도에 약 60억원 이상 투자를 했으면 눈에 띄게 효과가 있겠지만, 한정적인 예산에 관리해야 할 도서지역이 많다 보니 약 30억원 미만의 예산이 투입돼 테트라포드 설치가 진행됐다. 다만, 아예 관리가 되지 않은 것은 아니고 최근 3년간 해당 방파제 보강 및 연장 공사는 이뤄졌다”고 답했다.

소두라도에서 나고 자란 김창대씨&nbsp;ⓒ투데이신문
소두라도에서 나고 자란 김창대씨 ⓒ투데이신문

불행 중 다행 정기운항 선박 확보...소두라도 개선 신호탄?

이렇듯 불편투성이인 소두라도이지만, 마을 주민들은 단 하나의 희망을 보며 살아간다. 바로 소외도서 항로 운영 지원사업에 소두라도가 최종 선정되면서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선박을 이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마을 주민들은 조금이나마 마을이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자그마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소외도서 항로 운영 지원사업은 윤석열 정부 100대 국정과제 사업이다. 해당 사업을 통해 여객선 등이 다니지 않아 대체 수단이 없는 도서에 선박을 투입해 해상교통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소두라도의 경우 황 선장의 선박 외에는 별도의 교통 대체 수단이 없어 자격 요건을 충족한다.

특히 이번에 선정된 소두라도는 14명이 살고 있으나 정기 운항 선박이 없고, 고령의 마을 주민이 주를 이뤄 해상교통권 확보가 어려운 곳이었다. 다만, 이번 선정으로 선박확보 비용을 제외한 인건비, 유류비, 선박검사와 수리비 등 선박 운항에 필요한 지원을 받게 됐다.

소두라도가 소외도서 항로 운영 지원사업에 최종 선정됐다는 소식에 몇몇 마을주민들은 몇 톤급의 선박이 마을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는데 효율적일지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인구수가 적으니 자그마한 배가 낫다는 김창대(78)씨와 그래도 기왕이면 큰 배가 낫다는 황 선장의 의견이 대립했지만, 모두 다 웃는 얼굴이었다.

김씨는 “7월이나 8월 중 배가 새로 착수한다는 소식을 듣긴 했는데, 사람도 별로 없는 이 섬에 과연 큰 배가 필요할까 싶다”며 “마을 접안시설을 봤으니 알겠지만, 큰 배가 접안하기엔 어려운 곳이다. 그렇기에 효율적으로 선박을 운행하려면 큰 배보다는 작은 배가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황 선장은 “그래도 어르신들의 안전을 위해선 큰 배가 낫지 않겠느냐”며 “나라에서 어떤 배를 지원해 줄지는 모르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큰 배가 소두라도에 지원돼 어르신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오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웃으며 맞받아쳤다.

마을 주민들의 기대와 달리 소두라도를 오고 가는 행정선 착수는 좀 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현재 해양수산부가 소두라도의 접안시설에 적합한 선박을 구매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해수부는 마을 주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효율적인 선박 구매를 통해 마을 주민들의 편의를 최대한 생각하겠다는 입장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당장 소두라도를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행정선은 현재 운용 중에 있지 않다. 가급적이면 9월 중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라며 “선박 검사 및 지방청 등록과 같은 절차에 시간이 소요되고 있으며 지자체와 협의해 소두라도를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을 주민들이 소두라도를 운항하는 배의 규모에 대해 궁금하신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소두라도의 특성상 큰 배가 다니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소두라도에 알맞은 규모의 배를 운용할 계획이며, 하루 운항 횟수는 아직 정해진 바는 없으나 1일 3회 정도 운영 할 전망이다”고 답했다.

기나긴 기다림에 올해도 소두라도 주민들은 여름이 두렵다. 거대한 태풍이 몰고 오는 매서운 파도를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또다시 짐을 싼다. 이들을 지키기 위해 설치한 테트라포드는 태풍에 휩쓸려 온데간데없다. 두 발 딛고 다닐 평범한 길 마저 형편없는데, 거대한 테트라포드가 온전하길 바라는 것은 이들의 욕심일까. 이곳 주민들은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짐을 싼다. 예산과 인력의 문제로 기댈 곳 없이 덩그러니 방치된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택한 방법은 각자도생뿐이다. 

창대 할아버지 ⓒsosobongchan

창대 할아버지께

소두라도를 위한 행정선이 운행한다는 소식에 창대 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 밤’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처럼 웃으셨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얼굴에선 설렘이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셨죠. 이 섬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얼마나 기다렸던 소식이었기에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혼자 생각했습니다. 분명 7월엔 행정선이 도착한다고 했는데 소식조차 없었죠. 이윽고 늦어도 8월엔 우리 섬을 오가는 배가 생긴다는 소문도 그저 소문일 뿐이었습니다. 그토록 설레시던 표정을 앞에 두고 당연하다는 듯 또다시 기다리라는 말만 합니다. 참 많이도 참고 사셨는데, 어디까지 더 참고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그간 불청객 태풍이 찾아올 적이면 불평불만 없이 이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피난을 떠나셨습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이곳도 여느 곳과 다름없이 사람이 사는 곳인데, 기본적인 환경정비조차 받지 못하셨죠. 그럼에도 묵묵히 다 참고 사셨는데, 정부는 또다시 기다리고 참으라는 말만 합니다.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이런 속사정을 가만히 들어주는 이 하나 없었으니 말입니다. 씁쓸한 미소만 지으시던 창대 할아버지를 대신해 제가 대신 되묻고 싶은 마음입니다. 테트라포드가 유실돼 파도가 민가를 채찍질하고 있는데, 예산이 부족해 보수가 어렵다는 무책임함은 무엇이며, 관리되지 않는 길가에 걸려 넘어지는 어르신들을 앞에 두고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라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말은 도대체 무엇인지 말입니다. 저도 이리 답답한 심정을 숨길 수 없는데, 이곳에서 평생을 지내오신 할아버지께선 오죽하셨을까 싶습니다. 창대 할아버지, 올여름 부디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