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은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 카라바조의 〈도마뱀에 물린 소년〉이다. 오른쪽은 영화 〈신들의 전쟁〉 스틸 컷으로 타셈 싱 감독은 카라바조처럼 빛과 그림자를 사용해 역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 왼쪽은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 카라바조의 〈도마뱀에 물린 소년〉이다. 오른쪽은 영화 〈신들의 전쟁〉 스틸 컷으로 타셈 싱 감독은 카라바조처럼 빛과 그림자를 사용해 역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미술계를 통틀어 천재이자 광인으로 불리는 비운의 예술가를 꼽자면 카라바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와 과감한 사실주의적 표현을 사용한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선보이며 명성을 얻었고,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끼치며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1571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카라바조는 1600년대 초반 뛰어난 실력으로 예술가로서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막달라 마리아를 임신한 채 물에 빠져 죽은 창녀로 표현하는 등 당시의 사회 통념에 어긋난 작품들을 그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게다가 살인까지 저지른 범죄자였음에도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유로 사면 받아 저주받은 재능을 가진 화가라고도 불린다. 그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 카라바조는 불과 38세의 나이인 1610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망 이후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20세기 들어 재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전시에서 메인 작품으로 소개될 만큼 카라바조의 인기와 위상은 날로 커지고 있다.  

영화계에서 카라바조만큼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가진 감독을 꼽자면 단연 타셈 싱일 것이다. 그의 영화 데뷔작 〈더 셀〉(2000)은 그로테스크하고 충격적인 비주얼로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데미안 허스트, 오드 네르드룸, H. R. 기거 등의 작품을 차용해 만든 영화 속 무의식의 세계는 관객들에게 공포심을 넘어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하 더 폴, 2006)에서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건축과 의상, 자연 등을 활용해 경이롭고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또 살바도르 달리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작품을 오마주하며 영화적 표현의 확장성을 재차 확인해줬다. 그리고 〈신들의 전쟁〉(2011)에서는 카라바조가 사용한 명암 기법과 무거운 색감을 사용해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을 매혹적으로 담아냈다. 영화는 바로크 시대의 미술을 스크린으로 옮긴 포스트모더니즘적 시도로 주목을 받았지만, 흥행적인 측면에선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둬 아쉬움을 남겼다.

매번 내는 작품마다 파격적인 시도로 호평과 혹평 사이를 오가며 논란의 중심에 있는 타셈 싱의 영화를 보고 있자면 마치 문제적 화가 카라바조의 환생을 보는 듯 하다. 이번 김선 미술비평가와 함께하는 세번째 [아트 토핑]에서는 〈신들의 전쟁〉에서 사용된 미술 작품과 표현 기법을 통해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타셈 싱 감독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 영화 〈신들의 전쟁〉 스틸 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 영화 〈신들의 전쟁〉 스틸 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 회화적 연출이 돋보인 작품

Q. 벌써 10년도 넘은 작품이네요. 영화 〈신들의 전쟁〉에 대한 감상평이 궁금합니다. 

전작인 〈더 셀〉, 〈더 폴〉과 같은 센세이셔널한 작품을 선보인 타셈 싱 감독이 과연 그리스 신화를 어떻게 그릴지 매우 기대됐는데 내러티브 면에서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으로 독창적인 테세우스의 신화적 재현을 기대했는데 영웅적인 위업이 느껴지는 표현에만 몰입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회화적인 연출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Q. 영화는 테세우스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주요 인물들의 특성만 가져왔을 뿐 이야기의 배경이나 전개, 결말 등은 재창조됐다고 볼 수 있는데요. 타셈 싱 감독이 만들어 낸 테세우스라는 인물과 영화 속 스토리는 어떻게 봤는지 궁금합니다.

이 영화는 테세우스 신화의 전형성을 탈피했어요. 본래 신화에서 테세우스라는 인물은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로 아테네 최고의 영웅으로 꼽힙니다. 크레타 섬의 미궁 속에서 소머리를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을 처치한 것으로 유명하죠. 그러나〈신들의 전쟁〉에서는 테세우스가 제우스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나옵니다. 또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 하리페리온은 신의 종족인 티탄 중 하나인데 영화에서는 인간으로 설정해 신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고 티탄 족을 해방시키고자하는 인물로 그립니다. 이에 맞서 신들은 테세우스를 앞장 세워 하이페리온과 싸웁니다. 그리고 선과 악의 극한 대립은 결국 선이 이긴다는 공식을 보여줍니다. 그 안에서 신들의 신비한 능력에 집중하기 보다는 신들의 인간적인 모습과 인간의 의로움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은 인상깊었습니다.

Q. 〈신들의 전쟁〉 속 의상이나 색채 등 미장센은 어떻게 봤나요.

저는 신화와 역사 속 인물의 모습을 극대화시킨 요소인 ‘복장’에 주목했습니다. 의복은 장면마다 신화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존재적 무게감을 더해줬습니다. 전쟁에 나가기 위한 전사의 모습을 잘 보여준 의복은 그들의 계급과 역할을 알리는 상징적인 암호입니다. 전사들은 보통 투구를 쓰고 청동 무릎보호대를 차고 이상적인 남성의 육체의 조각에서 유래된 근육 흉갑을 착용한 후 호프론이라 불리는 둥글고 무거운 방패를 듭니다. 공격무기로는 창과 날이 선 검을 선택해 적과 싸웠습니다. 적을 물리치는 이들의 외관에서는 이상적인 그리스 로마의 조각상이 떠올려지더군요. 예를 들면 폴리클레이토스의 〈창을 든 청년〉 조각상이 연상될 정도였습니다. 인체의 동적인 유연성과 정적인 균형을 살린 곡선은 전형적인 비례의 미였다고 볼 수 있죠. 영화는 어둠이 주는 짙은 명암의 색채가 주를 이루면서 몰입감을 줬습니다. 색채적인 측면에서는 극적인 대비효과를 통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황금색과 검정색을 주로 사용함으로써 빛과 어둠, 선과 악의 대립을 묵직하고 위엄있게 표현했습니다.

△ 카라바조의 〈성 마태의 소명〉 
△ 카라바조의 〈성 마태의 소명〉. 로마 산루이지 데이프란체시 교회에 있는 콘타렐리 예배당의 의뢰로 1599년~1600년 제작됐다. 예수가 마태를 제자로 부르는 성서의 장면이다. 카라바조의 작품 중에서도 종교적인 주제를 바탕으로 한 상징적이고 영향력 있는 그림이다. 예수의 극적인 제스처와 마태의 주의를 끌기 위해 그를 가리키는 베드로, 한 줄기의 빛이 들어오면서 대담하게 표현된 공 간구성으로 바로크 미술의 특징을 대표한다.

■ 타셈 싱이 카라바조를 만났을 때

Q. 타셈 싱 감독은 〈신들의 전쟁〉을 화가 카라바조와 영화 〈파이트 클럽〉의 만남과 같은 영화라고 한 바 있습니다. 그런 만큼 카라바조를 알아야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카라바조(본명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1571~1610)는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제리코 등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유럽에서 확산된 바로크 미술은 빛과 그림자를 사용해 역동성, 운동감 등 극적인 효과에 집중한 회화 양식입니다. 이를 테네브니즘(명암대비화법)이라고 부르며 카라바조가 창시자입니다. 연극적인 무대에 조명을 비추듯 빛과 어둠의 대조를 극대화는 기법으로, 인물들 간에 주는 긴장감의 묘미를 잘 전달하도록 합니다. 카라바조는 명암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과거의 사건을 현장감 넘치는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표현하는데 능숙했습니다. 대비되는 선명한 색채로 인물 간의 표정과 시선을 강조해 현실적인 감정을 고조시켰죠.

△ 영화 속 제우스가 죽은 아테네를 안고 있는 장면 [사진출처=영화 〈신들의 전쟁〉 트레일러 캡처]
△ 영화 속 제우스가 죽은 아테네를 안고 있는 장면 [사진출처=영화 〈신들의 전쟁〉 트레일러 캡처]

Q. 그래서일까요. 영화는 마치 카라바조가 영화를 찍은 듯 테네브리즘 기법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요.

테네브니즘 기법은 거의 모든 매 장면에서 사용되고 있죠. 빛에 따라 생성된 황금색과 검정색이 주는 극명한 색감의 효과를 활용했습니다. 미디엄샷으로 촬영된 장면에서는 카라바조의 명화를 상기시키는 프레임을 보여줍니다. 인물들의 극적인 표정과 동작은 조명 아래 빛과 어둠을 통해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제우스가 죽은 아테네를 안고 있는 장면도 테네브리즘 기법을 사용한 장면입니다. 얼굴의 골조, 목선 그리고 표정으로 이어지는 인물의 윤곽선은 어두운 후경과 다르게 앞으로 돌출돼 도드라지게 되면서 제우스의 심리상태를 한층 더 가까이 느끼게 합니다.

Q. 말씀을 듣고 보니 왜 감독이 카라바조의 스타일을 영화에 도입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타셈 싱에게 카라바조는 현실적인 장면을 극대화시키는 연출에 필요한 빛(조명)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한 미술가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카라바조의 그림에서와 같이 미디엄 샷, 즉 화면 속에 배경보다 인물을 채워 등장 인물들이 모여 있을 때 동작과 표정을 분명하게 포착해 공감하기 좋은 연출 방식을 타셈 싱은 보여줬습니다. 특히 영화는 인물의 행동에 비중을 준 액션신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사용한 카라바조의 명암 처리 방식은 디테일을 살려주면서 웅장함과 함께 연극적인 느낌을 부여합니다. 극적인 장면 연출에 강했던 카라바조의 회화적 기법은 빛에 따라 사실주의적 표현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었습니다. 살아 숨 쉬는 듯한 현실 속 장면을 담아 그림의 경계를 깨부신 카라바조처럼 타셈 싱은 신화라는 환상적 존재와 인간이라는 현실적 존재를 영화 안에 완벽히 스며들게 해 관객들에게 예술적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어요. 

△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과 영화 〈신들의 전쟁〉 속 제우스 신전.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적인 표현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출처=픽사베이/영화 트레일러 캡처]
△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과 영화 〈신들의 전쟁〉 속 제우스 신전.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적인 표현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출처=픽사베이/영화 트레일러 캡처]

Q. 영화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폭을 도입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장면에서 이러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르네상스라고 하면 14세기 말 시대의 ‘혁신’, 인간중심 사상인 휴머니즘의 시작 알렸던 시대죠. 이 시절 자연의 재발견으로부터 과학적인 발명품 ‘원근법’이 탄생했습니다. 멀고 가까운 거리감을 느낄 수 있게 3차원적인 세계를 2차원적인 평면으로 옮겨서 표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화 속 제우스의 신전을 보는 순간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1510~1511)이 떠올랐습니다. 장소나 인물들의 제스처들이 유사하게 연결됩니다. 철학자와 학자들이 모여 있는 것과 같이 제우스와 아테네, 포세이돈 신들이 모여 있는 지상의 장소는 로마시대의 건축물 배경의 아테네 학당을 상기시킵니다. 또 공간의 깊이는 원근법적인 표현을 사용해 실제 3차원적으로 실현된 느낌을 받게 합니다. 

Q. 그렇다면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들을 어떻게 표현했나요.

고대 미술은 신들을 인간과 다른 우월적 존재로 표현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을 인간과 닮게 표현했습니다. 앞서 말했듯 인간중심 사상의 영향이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대표적입니다. 보통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이상적인 형태의 미를 보여줬습니다. 한쪽 발에 무게 중심을 두고, S자형 입상에 생동감을 드러냈습니다.  또 손등 핏줄부터 허벅지 근육 등 육체의 세세한 움직임까지 표현했습니다.  수학적이고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묘사 방식이나 인체 해부학에 대한 관심이 투영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들의 전쟁〉에서 신과 인간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게 담아낸 것처럼 말이죠.

△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장면(왼쪽)과 프랑스 파리 튈르리 공원에 있는 조각가 에티엔 쥘 라미의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테세우스〉. 조각은 2021년까지 대중에 공개됐지만 지금은 복원 작업 중이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게티이미지뱅크] 
△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장면(왼쪽)과 프랑스 파리 튈르리 공원에 있는 조각가 에티엔 쥘 라미의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테세우스〉. 조각은 2021년까지 대중에 공개됐지만 지금은 복원 작업 중이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게티이미지뱅크] 

■ 그림을 뚫고 나온 고대 그리스 신들

Q. 영화 중간에서는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장면이 등장하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전투 장면을 담은 조각이 등장하는데요. 실제로도 존재하고 있는 조각이라 더욱 눈길이 갔던 것 같습니다.

네,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 테세우스 조각은 실제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는 장면을 포착한 조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조각가 에티엔 쥘 라미(Étienne-Jules Ramey)의 1826년 작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테세우스〉입니다. 테세우스가 황소의 머리를 가진 미노타우로스를 땅에 붙들고 난 뒤 무릎은 배에 얹고 왼손은 머리에 오른손은 몽둥이를 들어 그를 때리는 순간을 포착한 듯합니다. 힘과 에너지로 가득 찬 테세우스의 신화가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말이죠. 영화에서 조각의 좌대는 테세우스의 영화 속 이야기가 새겨진 부조가 새겨져 있고요. 

△ (왼쪽부터) 영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신들과의 전쟁 장면과 코르넬리스 반 하를렘의 <타이탄의 몰락>,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 (왼쪽부터) 영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신들과의 전쟁 장면과 코르넬리스 반 하를렘의 <타이탄의 몰락>,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Q. 신들이 하늘에서 전투하는 엔딩 신은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는 프레스코화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랬어요. 천장화나 벽면에 많이 표현됐던 프레스코화가 생각납니다. 프레스코 기법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이나 라파엘로의 바티칸 궁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데 영화는 천장화의 한 장면을 생생한 전투 장면으로 연출했습니다. 머리를 들고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12사도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회화적인 평면적 장면이 아닌 영화적 기법으로 신들이 마치 살아 숨쉬는 듯한 현장감과 더불어 입체감까지 선사합니다.

Q. 영화 속에서 등장하지 않았지만, 영화와 맞닿아 있는 조각이나 프레스코화를 소개해 주신다면.

먼저 트로이 신관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표현한 라오콘 군상이 떠오릅니다.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는 장면을 묘사한 고대 그리스 조각상으로 테세우스의 운명과도 많이 닮아있습니다.  회화적인 부분에서 생각을 해본다면 외형적인 모습과 다양한 포즈는 어딘지 모르게 코르넬리스 반 하를렘의 1588년 제작된 〈타이탄의 몰락〉을 연상시킵니다. 하늘에서 전투하는 엔딩 장면과 유사하다는 것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영화처럼 다양한 포즈의 남성 누드들이 공간의 여백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죠.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최후의 심판〉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늘로 올라가고 저주받은 사람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질서 있고 조화로운 하늘과 지상에서 일어나는 소란스러운 사건이 〈신들의 전쟁〉의 전투 장면을 떠오르게 하죠. 

△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Mae West Lips Sofa〉(왼쪽)을 차용한 타셈 싱 감독의 영화 〈더 폴〉 포스터 [사진출처=뉴시스/네이버 영화]
△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Mae West Lips Sofa〉(왼쪽)을 차용한 타셈 싱 감독의 영화 〈더 폴〉 포스터 [사진출처=뉴시스/네이버 영화]

■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타셈 싱의 작품 세계

Q.  〈신들의 전쟁〉은 미술에 대해 알면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이렇듯 타셈 싱이 재해석한 그리스 신화의 미술, 예술적인 부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영화는 그리스 신화, 르네상스 예술, 바로크 회화 양식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거 같습니다. 완벽한 균형미를 갖춘 조각과도 같은 인물들의 모습은 신화를 상기시키는 남성미를 보여줬습니다. 신화적인 소재를 다룰 때 특히나 깎아 놓은 듯한 외형에 치중하는 부분은 인물들을 현실과 거리가 있는 이상적인 인간과 신의 모습을 잘 반영했어요. 특히 카라바조적인 색감과 톤다운된 분위기는 인물의 표정을 더욱 잘 살려 극적인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빛과 어둠의 대비를 강조하는 방식은 영화의 회화적인 연출의 가능성을 살펴보게 했고요.

Q. 타셈 싱은 전작인 〈더 셀〉, 〈더 폴〉 등 다수의 작품에서도 예술 작품을 차용해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가 그동안 영화 속에서 보여준 무의식, 상상의 세계는 미술작품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이러한 감독의 선택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요.

솔직히 타셈 싱의 도전정신이 부럽습니다. 영화 속에서 미술을 이렇게 연결시키면 어떨까, 갑자기 이런 장면이 나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하며 여러 시도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필터링을 거치지 않는 그의 과감한 표현 방식은 매번 놀랍습니다. 이를 통해 엉뚱하면서도 기발하고, 기괴하면서도 공포스러운 장면을 연출하는 그의 작품 세계는 누구도 따라가기도, 흉내내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어떤 놀라움을 보여줄 지 기대됩니다. 

Q. 그동안 타셈 싱이 예술작품을 재해석한 것들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더 폴〉의 경우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환상적인 풍경과 감각적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색채, 언캐니(uncanny)한 소품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을 한데 불러 모아서 논의해야 할 장면들로 이뤄졌지요. 특히 저에게 〈더 셀〉은 감탄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영화였습니다. 연쇄살인범과 스릴러라는 테마 자체에서 주는 공포를 넘어서 신체적 가혹행위로 유명한 행위예술가 스텔락이나 데미안 허스트의 〈모든 것에 있는 타고난 거짓말의 용인으로부터 얻은 얼마의 안락〉이 생각났습니다. 해당 작품들을 영리하게 해석한 타셈 싱은 찰나의 순간에 잔인함과 고통이 직접적으로 피부로 맞닿는 듯한 경험을 관객들에게 선사합니다.

△ 타셈 싱 감독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 타셈 싱 감독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Q.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순수예술을 사용한 점은 매우 흥미롭기도 합니다. 

회화와 미디어를 결합시키는 데 장점을 가진 감독이죠. 장르 간의 절충적인 혼합이 보편화된 시대에 더 이상의 경계는 없다는 것을 실천해 보여주는 대표적인 감독이 아닐까요. 매우 포스트모더니즘적이죠. 다만 순수예술에 대한 외형적인 표면을 그대로 복제하거나 단편적인 이미지의 차용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Q. 타셈 싱 감독은 오마주, 차용, 패러디, 리메이크, 재현 등을 과감히 사용합니다. 이러한 감독의 시도는 작품의 독창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요. 오리지널리티의 파괴는 아닐까요.

타셈 싱 감독은 창작과 모방의 경계를 자신만의 방식과 스타일로 결합을 시켰는데요. 무언가 만드는 창작물은 본질적으로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관념이 꽤 오래전 과거의 역사 속에서 시작됐지만 점차 우리는 오리지널리티의 의미의 중요성을 망각해가는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타셈 싱도 절충과 혼합이라는 이미지의 사용 방식이 소통이나 장식 역할의 한계를 넘어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Q. 이번 아트토핑에서 살펴본 타셈 싱의 작품 세계와 명화의 차용과 관련한 종합적 평가 등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독창적인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AI 예술가의 등장과 챗GPT시대에 현재 우리는 무엇을 창조적이라고 불러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인데요. 특히 트렌드와 장식적인 요소에 치중하는 이 시대에 내용은 없고 형식만을 중시하는 것에 주의할 때입니다. 타셈 싱의 세계는 콜라주적인 편집으로 가득하지만 미술과 영화 간의 결합이 자연스럽게 이뤄져 새로운 관점과 맥락을 제공하지요. 예술 영역의 구분없는 자유로운 표현과, 관념을 깨부수는 그의 작품 세계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다음 작품이 그 누구보다도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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