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증권시장, 현재 적정가치 대비 40%
美 주도 공급망 재편, 일본 제조업 두각
향후 엔화 가치 상승 시 환차익은 덤
리츠(REITs)·산업용 로봇 관련주에 관심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펜데믹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대규모 유동성이 주식투자인구의 급증으로 이어진 현상은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라 불리며 증시 상승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후 국내 주식시장의 부진으로 미국 주식에 눈을 돌린 투자자들은 전통적인 개인투자자들과는 달리 매력적인 시장을 찾아 투자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역동적인 모습이다. 미국 주식시장의 과열을 예측한 ‘서학개미’들은 이제 새로운 시장으로 엔저와 지속적인 기업이익 성장률이 기대되는 일본 증시와 전 세계적인 인구 감소 속에서 유일하게 인구 보너스 기회가 있는 인도 시장에 좌표를 찍었다. 또한 중국의 성장률이 둔화하며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베트남의 경제 성장에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리는 현상을 보이는 바 <투데이신문>은 각 시장의 상황을 살펴보고, 전문가를 통해 투자가치를 전망해 봤다.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전 세계가 인플레와의 전쟁이 한창임에도 일본 정부의 일관된 금융완화 정책으로 역대급 엔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엔화 가치 약세로 인한 시장 저평가 매력이 부각되면서 한국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일본 투자 열풍이 일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이하 예탁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국내 투자자의 일본 주식 매수 건수는 4만4752건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1년 통계작성 이후 12년 만에 최고치다.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에 이어 이제는 ‘일학개미’들이 급부상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강력한 주주환원 정책과 살아난 제조업 업황, 여행수요의 가파른 증가로 연초 이후 일본 증시는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이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일본 경제가 지난 30년의 불황의 터널을 지난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Nikkei 225 지수 추이 [사진출처=인베스팅닷컴]
Nikkei 225 지수 추이 [사진출처=인베스팅닷컴]

엔저가 들어 올린 일본 증시 

올해 들어 일본 증시에 대한 투자의 높은 관심은 우선 엔저에 기인한다. 디플레이션에 트라우마가 있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2%의 물가 상승률과 초저금리 환경에 따른 기업 대출 증가로 경제 성장을 유도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일본 정부는 일드커브컨트롤(YCC) 정책으로 장기 채권을 매입해 금리를 낮추는 간접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과감한 금리 인상이 엔 캐리트레이드의 포지션 팽창 트리거로 작용했다. 즉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돈을 빌려 미국에 투자하는 행위가 겹치면서 엔저 현상을 심화시킨 것이다.

올해 4월만 해도 원/100엔 환율은 900원 중반대였으나 5월 이후 급락하면서 현재는 900원 초반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 같은 역대급 엔저 현상에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은 엔화 투자에서 일본 증시로까지 이어졌다. 원화 대비 엔화 가치가 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만큼 향후 엔화 가치 절상 시 환차익까지 노릴 수 있다는 셈법이다. 

일본 증권시장을 대표하는 닛케이(Nikkei)225 지수는 연초 이후 높은 상승세를 이어가며 지난 6월 19일 3만3772.89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연초 대비 30% 수준의 상승으로 주요국 상승률을 압도했다. 시장참여자 사이에서는 이번에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일본기업 매출 증감율 [사진출처=블룸버그, 한국투자증권]
일본기업 매출 증감율 [사진출처=블룸버그, 한국투자증권]

엔저만 있는 게 아니다

일본 증시의 상승 배경은 엔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이후 일본으로의 해외여행객들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서비스업 업황이 크게 개선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중앙은행(BOJ)의 오랜 저금리 정책 기조로 제조업 업황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일본 제조업의 회복 징후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주요 요인으로 엔저의 장기화로 인한 일본 제조업의 가격경쟁력 확보와 향후 미국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일본 제조업의 역할을 꼽았다.

나이스신용평가 최중기 기업평가본부 실장은 “그동안 누적돼 온 실질 기준 엔화약세 약세의 정도를 고려할 때 일본 제조업이 어느 정도 인건비와 가격경쟁력을 회복했고, 미국이 주도하는 고부가가치 제조업의 공급망 재편이라는 두 가지 호재가 함께 작용하면서 일본 제조업의 부활 전망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한투자증권 김성환 수석연구원도 “엔저는 일본기업들의 이익 개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일본 증시와 산업 구조가 수출주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엔화 가치가 10% 절하되면 일본기업들은 미국기업 대비 10% 가까이 실적 개선으로 이어져 증시 상승의 동력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기침체 우려가 만연했던 지난해 엔저가 자금이탈을 수반하는 상황이었다면 현재의 엔저는 일본기업 수익성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또한 프리즘투자자문 홍춘욱 대표는 “일본 증권시장의 밸류에이션은 현재 적정가치 대비 40% 정도의 수준”이라며 “해외로부터 관광객 수요와 더불어 경기가 회복세가 뚜렷해지면서 기업들의 실적도 좋아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여전히 저평가 매력이 부각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최보원 연구원은 “7~8월 실적을 발표한 닛케이 기업 중 절반 이상의 업체가 예상치를 상회하는 매출과 EPS(주당순이익)를 발표했다”면서 “이를 통해 연간 환율 가이던스를 상향하고 있는 점도 수출기업에 대한 투자심리를 개선시키고 있다”고 짚었다.

기시다 정권의 강력한 주주환원 정책도 일본 증시의 매력을 높였다. 그동안 일본의 대기업들은 소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고수해 왔다. 이는 글로벌 흐름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기업 저평가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도쿄증권거래소는 지난 4월 PBR(주가 순자산 배율) 1배에 미치지 않는 기업들에 대해 주가를 끌어올릴 방안을 요구했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등의 공시가 잇따르고 있어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엔화 실질 실효환율 [사진출처=CEIC, 나이스신용평가]
엔화 실질 실효환율 [사진출처=CEIC, 나이스신용평가]

엔저, 언제까지?

BOJ 입장에서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금리 인상에 대해 보수적인 정책을 고수해 왔다. 즉 BOJ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경기부양이 첫 번째 목표이자 과제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심리가 공고하게 자리 잡기 전에 급격한 통화 긴축으로 선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시장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그러나 최근 BOJ의 가이던스에 변화가 생겼다. 지난 7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1%와 YCC 상단 +0.5% 유지를 결정했으나 시장 상황에 따라 10년물 국채금리가 +0.5% 이상의 수준을 용인한다는 뜻을 밝히며 상한을 1%로 제시했다. BOJ 우에다 총재는 이번 결정이 긴축 시그널로 인식되는 것을 경계한다면서 해당 금리 구간(+0.5%~1%)을 벗어나는 경우 즉각적으로 개입해 금리 수준을 제한하겠다고 설명했다.

대신증권 문남중 연구원은 “YCC 변동 폭을 확대하는 것은 금리 인상과 유사한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BOJ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시장이 인지할 수 있는 가이던스를 줬다고 판단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동안 BOJ의 오래 지속된 YCC정책으로 10년 만기 국채 보유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 금리 인상에 따른 국채 가격하락 리스크가 크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해 통화완화 정책의 걸림돌이다. 실제 BOJ가 발표한 2022년도 말 결산 기준 보유 국채는 581조7206억엔(약 5486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 말 대비 10.6% 증가한 수준으로 최근 10년간 BOJ의 국채 보유 잔액은 4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현재 추세라면 올해 연말 BOJ의 장기 국채 보유 비중은 90%에 육박할 것"이라며 "2021년도 기준 45% 수준이었으나 YCC 정책 영향으로 지난해 말 70%대를 넘긴 데 이어 현재 80%에 가까운 수준까지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지난해 사업연도 국채 보유로 인한 평가손실은 2005년 이후 17년 만에 발생했다. 금리가 상승(국채 가격 하락)하면서 발생한 지난해 말 결산 기준 BOJ의 보유 국채 시가는 장부가(취득시 가격)을 밑돌아 1571억엔(약 1조4812억원)의 평가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이렇듯 BOJ의 YCC를 통한 통화정책이 제한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에서는 하반기 엔화가치도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신한투자증권 하건형 연구원은 BOJ 통화완화가 연말로 갈수록 점진적인 수정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일본 GDP 갭이 하반기로 갈수록 플러스가 확대되며 물가 상승 압력을 자극할 것”이라며 “이를 고려 시 연말에서 연초 경 YCC를 비롯한 완화정책의 일부 조정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오현희 연구위원도 “일본의 내수 경기가 좋아지고 있는 가운데 하반기로 갈수록 해외수요 회복으로 인한 경상수지 개선이 엔화 가치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TSE REITs 주택 지수 추이 [사진출처=일본동경거래소]
TSE REITs 주택 지수 추이 [사진출처=일본동경거래소]

거침없는 일본 증시, 어디에 올라탈까?

엔저로 인한 기업들의 이익이 개선되는 상황에 향후 엔화 가치 상승 시 환차익까지 추가로 노릴 수 있다는 점은 일본 증시 투자 매력을 한층 높이고 있다. 게다가 가치투자의 대가인 워렌버핏이 일본 상사주의 지분을 확대하면서 불(Bull)장에 기름을 부었다.

상사주는 그동안 전통적인 무역 중개에만 국한되지 않고 최근 주목받는 광물자원과 친환경 등의 사업으로 발을 뻗어 가치투자로서의 조건에 부합한다는 평가다. 실제 워렌버핏의 상사주 지분 투자 공시 이후 해외투자자들의 유입이 크게 늘었다.

최근 BOJ의 극단적인 경기부양 정책의 정상화 시그널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통화 긴축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부동산 리츠(REITs) 관련주도 주목받고 있다.

홍 대표는 “하반기까지는 YCC 정책의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현재 일본 경기가 좋다는 점에서 리츠가 매력적 투자 포인트를 갖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향후 일본의 금리 인상과 YCC 조정을 감안한다면 호텔과 주거 리츠 섹터로의 전략적 접근도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대신증권 장승우 연구원은 “호텔과 주거 리츠의 경우 이자 비용이 상승하더라도 임대료 상승분이 이를 상쇄해 견조한 배당 성장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현재 일본증시가 소수의 수출 대형주에 의한 상승이라는 점에서 시차를 고려한 투자전략도 제시됐다. 신한투자증권 하건형 연구원은 “올해는 수출주에 모멘텀이 국한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형수출주의 매력이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이어 “내년 하반기 내수 부문의 반등이 가시화된다면 내년 최선호주는 리츠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라 산업용 로봇을 취급하는 일본 산업 자동화 업체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리쇼어링(해외진출 기업 국내 복귀) 정책으로 반도체, 전기차, 신재생 에너지 분야 등의 대규모 투자를 예고해 향후 신흥국 대비 비싼 인건비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산업용 로봇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리쇼어링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 문제는 일본이 강점을 보유한 로봇·건설기계에 대한 수요 회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이미 일본기업들의 수주 잔고는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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