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
(너의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여름날 열병 같은 첫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1983년 이탈리아의 한 시골 별장에서 펼쳐지는 열일곱 소년 엘리오와 스물넷 청년 올리버의 특별한 만남과 이별을 담고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그리스 조각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욱 깊어진다. 완벽한 비율과 아름다움을 가진 조각상과 달리 이 둘은 실패한 미완성 작품과도 같은 결말을 마주한다.

영화에서는 규범화된 남성성과 여성성의 표현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에 집중한 그리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청년 엘리오의 성장 과정처럼 그리스 조각의 탄생기를 엿볼 수 있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를 통해서 사랑과 예술의 조각을 발견하길 바란다.

△ 가르다호에서 건져 올린 프락시텔레스 조각 사본을 살펴보고 있는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와 올리버(아미 해머)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 가르다호에서 건져 올린 프락시텔레스 조각 사본을 살펴보고 있는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와 올리버(아미 해머)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Q.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여름 하면 떠오르는 영화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무더웠던 올여름, 더욱 생각나는 영화였습니다. 개봉 이후에도 숱한 화제를 뿌렸고, 지금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작품인데요. 어떻게 보셨는지요.

동성 간의 사랑, 퀴어를 소재로 한 영화 주제만으로도 특별한 작품이었습니다.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의 미스터리 오브 러브(Mystery of Love) 메인 테마 음악은 영화를 더욱 꿈같은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하면서 한 여름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1980년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소도시인 크레마와 시르미오네 등을 배경으로 올리버와 엘리오의 미묘한 감정선을 애틋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로 연출하며 잔잔한 여운을 줬습니다.

Q. 영화의 영상미도 단연 화제였는데요. 마치 수채화와 같은 아름다운 장면들과 두 주인공을 빼닮은 그리스 조각상까지 여러모로 눈길이 가는 작품이었습니다. 비평가님은 어떤 장면을 인상 깊게 봤는지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올리버와 그를 바라보는 청년 엘리오의 모습은 그리스 조각상처럼 서로 각기 다른 매력적인 외형으로 시선을 끌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탈리아 크레마라는 도시의 풍경에서 여유와 쉼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럽만이 가진 낭만적인 분위기의 장소에서 ‘사랑’이란 정의를 생각하게 만드네요.

특히 엘리오의 아버지이자 고고학자인 펄만과 엘리오가 조각 프로젝션을 보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남성 나체 조각을 연구한 펄만이 엘리오에게 조각이 가지는 사랑과 아름다움, 섬세하고 에로틱한 신체의 조각상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시기의 양식적 특징이기도 한 인간의 자유로운 포즈나 바디감의 움직임에 따른 곡선, 표정 등 현실감이 있는 사실적인 묘사를 주목했습니다. 에로스적인 측면이라고 할까요. 조각된 한 인간의 모습과 육체미로부터 인간의 에로티시즘적인 특징을 풀어내기 위한 장치가 됐습니다.

△ 프락시텔레스 조각 사본을 들고 이야기하고 있는 엘리오와 올리버.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 프락시텔레스 조각 사본을 들고 이야기하고 있는 엘리오와 올리버.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Q. 영화 첫 장면부터 고대 그리스 조각들의 사진이 등장합니다. 어떤 작품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헬레니즘 남성 조각의 컬렉션이라고 봐도 될 만큼 영화 인트로의 클로징 장면은 고대 조각상의 얼굴과 상반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고대 조각의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신화적 상징성이 문화적 상상력을 끌어올린 도입부였습니다. 특히 헬레니즘 남성 조각의 섹슈얼리티 모호성이 드러나는 중성적인 이미지를 더욱 부각했어요. 타인에 대한 욕망과 에로스적인 관점의 투영이 고전 조각을 통해 섬세하게 대입된 것 같습니다.

Q.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조각은 바로 호수에서 발견한 프락시텔레스(Praxiteles)의 작품일 것입니다. 해당 조각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펄만 교수는 가르다호에서 건져 올린 조각을 프락시텔레스의 사본이라고 설명합니다. 엘리오와 닮아있는 미소년 에로메노스를 상징합니다. 조각상의 유래를 보면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티볼리에서 한 쌍을 가지고 있었지만, 파르네세 교황이 그것을 녹여서 비너스를 제작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바다에 던져진 우라노스의 잘려진 생식기에서 비너스가 탄생한 신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하드리아누스에 대한 언급은 자연스럽게 그의 총애를 받았던 그리스 청년 연인 안티누스를 상기시키는데요. 브론즈로 제작된 이 조각은 수면 아래에서 떠오른 조각상의 아름다움이 땅 위로 노출되면서 아름다운 소년 엘리엇의 모습과 교차시켜 이들의 연관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 프락시텔레스의 〈크니도스의 비너스(아프로디테)〉
△ 프락시텔레스의 〈크니도스의 비너스(아프로디테)〉

Q. 프락시텔레스는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조각가로 꼽히는데요. 미술사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 예술가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고대에는 신화 속의 여인을 주제로 조각된 작품이 다수를 이룹니다. 기원전 4세기경 프락시텔레스는 이를 대표하는 조각가입니다. 비너스상으로 여성의 인체미와 아름다움을 누드 조각으로 재현하면서 후대 작업된 비너스 조각에 많은 영향을 끼쳤죠. 그 대표적인 예가 〈멜로스의 비너스〉이기도 합니다. 프락시텔레스의 비너스 조각 탄생을 기점으로 비너스의 원본과 로마 복제본의 수가 증가했죠. 특히 다양한 포즈와 모습으로 여성적인 아름다움의 의미를 상징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프락시텔레스는 부드러운 곡선과 자연스러운 포즈의 여성 나체를 최초로 조각한 이로 알려져 있기도 하죠. 그의 〈크니도스의 비너스(아프로디테)〉(기원전 350년경)는 실물 크기인 최초의 여성 누드 조각상이자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적인 대리석 조각입니다.

보통 고대 인체 조각은 영웅적인 남성 누드를 중심으로 웅장하고 강인한 신체의 표본으로 인식됩니다. 입상이 주를 이루고요. 정면을 바라보지만 딱딱하면서도 경직직된 자세가 비례와 대칭적인 균형감을 보여줍니다. 남성적인 조각의 특징을 고착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었어요. 여인상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크레타섬의 조각품 중 하나인 〈오세르의 여인〉를 예로 들어본다면, 투박한 머리 장식과 눈코입의 단순성이 유독 돋보이는데요. 프락시텔레스의 비너스와 너무 다른 분위기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한 정면 각도에 규칙성이 느껴지는 절도 있는 단축법이 적용됐습니다.

이렇게 조각은 인체를 탐구하고 사실적인 재현을 통해서 인체미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갑니다. 그 과정에서 폴리클레이토스(Polykleitos), 프락시텔레스, 리시포스(Lysippos) 이 세 조각가의 작품으로 고대 조각의 변천사를 이해할 수 있고요. 요약하자면 인체 조각의 발전은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의 발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수학적인 측면과 직선에서 절제와 균형미, 비례의 조화에서 실제 인체를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신체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동작에 따라 만들어지는 곡선으로 가장 인간답고 인간과 닮아있는 형태로 제작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집니다.

프락시텔레스는 두 조각가 사이에서 연결고리가 된 것이죠. 이상적인 인체의 비례와 균형을 넘어서 곡선 형태로 최대한 우아미를 강조합니다. 사실적이면서 과장된 움직임에 생동감이 더해지는 생명력이 있는 인체의 형태로 좀 더 부드러워졌습니다. 고전 시기를 넘어가 헬레니즘기 미술의 특징이기도 한 프락시텔레스는 인체표현에 있어 인간의 내적 감성을 더했습니다. 즉 ‘감정’이 담긴 관능적인 여인의 누드 조각상을 다수 제작하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리시포스 이후로는 인간의 초상조각이 부각되면서 사실적인 인간의 모습, 특히 감정이 그대로 녹아든 모습의 인간과 닮은 형체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인간 초상화의 탄생을 알린 거죠.

△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포스터
△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포스터

Q. 퀴어영화에 그리스 조각을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품의 성별을 떠나 완벽한 예술 작품을 보면 마음이 사로잡히는 것처럼, 마음이 끌리는 데 있어 성별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만드는 걸로도 보이는데요.

네,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조각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에 대해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분하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고 남녀의 성별을 떠나서 생각해 볼 수 있죠. 성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의 틀과 경계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고대 인체 조각이 그 시작을 알렸다고도 할 수 있으니깐요.

이번 영화에 등장한 헬레니즘 시기의 조각들을 보면 아름다운 인체 조각들의 향연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독 미소년의 아름다운 얼굴이 부각됐는데요. 연약한 신체 근육의 상체에 가늘고 긴 팔의 부드러운 곡선들이 눈에 띄죠. 기존에 생각했던 근육질의 강인한 남성성의 조각과 다르게 우아하고 묘한 매력을 지닌 조각으로 인체에서 드러나는 본연의 아름다움을 강조했어요. 거기에 대리석이나 청동 재료가 더해져서 생명력이 느껴지죠. 여기서 엘리오의 모습이 교차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성인이 되기 이전 미소년의 모습에서 남성성의 경계 지점을 말합니다. 성별과 연령을 초월해 인체의 곡선과 신체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포즈와 인물 표정이 모호함이라는 단어로 자유롭게 표현됐습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조각으로부터 고대 그리스 시대 자체를 다시 또 생각해 볼 수 있네요. 현재 지금과 비교해 보면 동성애에 개방적이고 관대했던 시대에 대한 놀라움이라고 할까요. 한 인간의 내면의 감정과 정신이 얼마나 자유롭게 형성되고 이를 혐오나 혹은 차별로 구별 짓는 우리의 현실과 다르게 어떤 편견도 없었던 시대상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그렇다면 고대 미술에서 동성애적 표현이 담겨있는 작품들도 상당수 있겠네요.

네. 신화와 문학을 바탕으로 한 동성애적 상징의 작품들이 도자기, 조각, 회화, 벽화 등으로 많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보통은 고대 그리스인의 동성애 관습, 관행 및 태도를 묘사하는 ‘그리스식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남성과 동성애 사랑을 탐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성적 영웅주의, 전투 장면, 죽음과 고통의 주제를 통해서 말입니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제우스와 가니메데,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알렉산더와 헤파이스티온이 그 주인공이기도 하죠. 그중에서도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은데요. 두 사람의 관계와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에도 있지만 고대문학에서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싸우는 전사이자 연인으로 그들을 언급합니다. 이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아킬레스로 전투에 등장해 트로이군을 물리치는 데 성공하는데요. 하지만 자신을 아킬레우스로 착각한 헥토르에게 살해당합니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소식이 아킬레우스에게 전해졌을 때, 이미 그는 너무 비탄에 잠겨 그의 비명 소리가 깊은 바다 깊은 곳에서 들렸다고 해요. 이에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에게 복수하면서 그들의 유대감과 우정이 그 이상의 의미로 보이기도 하죠.

△ 미국 크리스토퍼 공원에 설치된 조지 시걸의 〈게이 해방〉 [사진제공=뉴시스/AP] 
△ 미국 크리스토퍼 공원에 설치된 조지 시걸의 〈게이 해방〉 [사진제공=뉴시스/AP] 

Q. 동성 간 사랑을 묘사하는 작품이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자유로워졌다고는 하지만 엄격한 잣대나 동성애에 대한 관념은 아직도 보수적인 틀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현실이죠. 존중과 이해의 태도가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제자리기도 합니다. 1980년경 조지 시걸의 〈게이 해방〉이 떠오르는데요. 조각된 인물들을 보면 남성 커플과 여성 커플들이 살며시 눈을 감고 공원에 휴식이 취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1969년 스톤월 항쟁을 기념으로 세운 조지 시걸의 〈게이 해방〉은 논란을 일으키면서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조각들은 퀴어를 위한 사회적 공간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기물이 파손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작품에 페인트를 뿌리거나 흠집을 내는 등 비이성적인 행동들이 만연하기도 했습니다.

△ 미켈란젤로의 〈바쿠스〉
△ 미켈란젤로의 〈바쿠스〉

Q. 영화 속 인물들이 연상되는 예술 작품이 있다면.

미켈란젤로의 〈바쿠스〉에서 엘리오와 올리버의 모습이 떠올랐는데요. 아름다운 미소년과 어린아이의 짓궂은 장난처럼 보이는 이 조각은 1497년 디오니소스를 묘사한 조각입니다. 술에 빠져 취해버린 디오니소스와 같은 올리버의 모습, 포도를 감싸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한 어린 엘리오의 모습으로도 보이는데요. 이를 통해 모호하게 얽혀있는 감정과 관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Q. 이번 아트 토핑에서도 미술 작품이 영화의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고, 중요한 장치로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봤습니다. 아직 영화를 못 본 관객이나 영화를 본 이들에게 영화를 더욱 즐길 수 있는 팁을 소개해 주신다면.

영화를 보고 나니 어느 고즈넉한 이탈리아 시골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탈리아는 서양미술사를 펼치는 순간 만나게 되는 파르테논 신전과 고대 조각상들을 만날 수 있는 설렘 가득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도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줍니다. 또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 그리고 오롯이 나의 감정에 목소리를 귀 기울이게 해주는 영화입니다. 잠시 쉼이 필요한 이들과 어떠한 선입견 없이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고뇌하는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최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상설 전시관 ‘고대 그리스·로마실’이 신설되면서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라는 주제의 전시도 열렸으니 이번 기회에 관람을 추천해 드립니다. 신화와 인간, 고대의 삶과 죽음, 사후의 세계를 통해서 조각의 변천사부터 조각 자체만이 가지는 인간적 초상의 특징들, 신체적인 표현 등을 살펴보며 예술과 문화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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