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노란봉투법’ 국회 본회의 통과
반기는 노동계와 반발하는 경영계 대립 中
한 총리 “충분한 숙의 없이 처리돼 유감”
尹 거부권 행사 여부 주목...행사 시 3번째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0회국회(정기회) 제11차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0회국회(정기회) 제11차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을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다만, 노동계와 경영계의 갈등과 야당과 여당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등 양측의 입장이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어 본 회의를 통과한다고 해도 대통령이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 과정 속에서 노정, 노사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10일 정계에 따르면 지난 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등 야당은 노란봉투법 개정안 투표에서 174명이 참석해 찬성 173명, 기권 1명으로 통과시켰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에 불참함으로써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경영계도 산업 생태계의 무너짐을 우려하며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는 등 노란봉투법 중심의 갈등은 점입가경에 빠졌다.

지난해 9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동자들이 노란봉투에서 요구사항이 적힌 카드를 꺼내고 있다.&nbsp; [사진제공=뉴시스]<br>
지난해 9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동자들이 노란봉투에서 요구사항이 적힌 카드를 꺼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논란의 중심 ‘노란봉투법’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지난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참여한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에 대해 법원은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고, 시민들은 ‘노란봉투’에 성금을 담아 전달했는데 여기서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야당이 발의한 노란봉투법은 불법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하청노조가 원청업체를 상대로 교섭과 쟁의행위를 할 수 있게 보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노조법 제2조와 제3조 개정안이다.

노조법 2조는 근로자, 사용자, 노동쟁의 등에 대한 정의를 담고 있다. 개정안은 노조 교섭 대상이 되는 사용자의 범위를 넓히는 것에 방점을 뒀다. 기존 법안의 경우 직접적인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와만 교섭을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개정법에 따르면 사용자의 범위를 원청업체까지 넓힐 수 있다. 사용자의 개념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한 것인데, 이를 통해 하청업체 등 간접고용 근로자도 원청 사용자와 단체교섭 등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 노동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손해배상 청구 제한에 대한 내용이 담긴 3조의 경우 현행법에는 ‘사용자는 이 법에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이번 개정안에는 법원이 ‘적법하지 않은 행위’로 보고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그간 불법 파업의 경우 불법 행위의 집단성만 인정되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으나, 노란봉투법에 따르면 법원이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할 경우, 배상의무자별로 귀책사유 및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불법 파업 등으로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질 경우, 별도의 책임 범위 산정이 없는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막아 조합원 모두가 거액의 손해발생액을 부담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취지다.

한국노총 부산지역본부 조합원 3000여 명이 지난 10월 31일 오전 부산 부산진구 송상현광장에서 '노동탄압·노동개악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반기는 노동계

이번 노란봉투법 본회의 통과를 두고 노동계는 ‘시급한 민생현안’이라고 평하며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성명을 발표해 “노동자들의 숙원 과제였던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며 “개정안 통과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다단계 원·하청 관계에서 진짜 사장이 교섭함으로써 불필요한 쟁의 행위와 노사 갈등도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어 “쟁의 행위를 한 노조와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무자비한 손배 가압류 폭탄으로 보복했던 악덕 관행도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더 이상 무분별한 손배 가압류의 고통에 절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동자들이 없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정부와 여당은 ‘불법파업 조장법’을 운운하며 법안을 폄훼하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 요청을 중단하라”고 밝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논평을 통해 “현행 노조법은 그 목적과는 달리 오히려 노동 3권을 가로막는 수단으로 쓰여왔다”며 “오늘 개정으로 비로소 노조법이 제자리를 찾는 중요한 걸음을 내딛게 됐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면서 “현재 정부, 여당이 해야 할 것은 노조법 개정 저지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하고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즉각 공포를 시행하라”며 “노동3권 보장은 오랜 기간 국제사회의 주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이호준 상근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노동조합법 개정안 입법 중단 촉구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nbsp; [사진제공=뉴시스]<br>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이호준 상근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노동조합법 개정안 입법 중단 촉구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반발하는 경영계

경영계는 노동계와 달리 이번 노란봉투법 국회 본회의 통과에 대해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반발하는 모양새다. 특히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국회 본회의 통과와 동시에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경협은 “개정안의 경우 사용자 개념의 확대로 하청노조의 원청사업주에 대한 쟁의행위를 허용해 원‧하청 관계로 이뤄진 산업생태계를 붕괴시킬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동쟁의 범위가 확대될 경우 오히려 노사 갈등이 심화돼 파업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며 노동계와는 상반된 주장을 제시했다.

또 “손해배상책임 개별화는 노조가 불법파업을 하더라도 사용자는 사실상 손해배상 청구가 어려워진다”며 “이는 기업의 재산권 침해가 불가피하며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주주, 근로자, 협력업체 등으로 전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지금이라도 중단돼야 한다”며 이번 본회의 통과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대한상의는 “노란봉투법은 우리나라 산업현장의 근간과 질서를 흔들 것”이라며 “그간 쌓아온 법률체계를 심각하게 훼손해 국내 산업생태계뿐만 아니라 일자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명약관화하다”고 말헀다.

이어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인 노동경쟁력이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더욱 후퇴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며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결과로 나타날 위험이 있어 지금이라도 노란봉투법이 중단되는 것이 마땅하며 경제계는 이를 간절히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0회국회(정기회) 제11차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0회국회(정기회) 제11차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난처한 정부

정부도 이번 국회 본회의 상황을 두고 “민생과 거리가 있는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안건들이 충분한 숙의 없이 처리되는 상황이 답답하고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는 입장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6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어제 국회에서 야당은 여당과 충분한 협의 없이 우리 경제 및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끼칠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정부는 이번에 통과된 법안의 문제점과 부작용에 대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국익을 위한 방향이 무엇인지 검토할 것”이라며 “우리 헌법은 국회의원에게 국익을 우선할 책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국민들께서 걱정하시는 민생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국회의 지원과 협조를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도 노란봉투법 일방 처리를 두고 “노동정책을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비통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국회 본회의 의결 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정부는 그간 개정안의 법리적 문제와 현장에 미칠 악영향과 소수 강성노조를 위한 특혜 등 여러 문제점을 설명드리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표명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장관은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실질적 지배력이 미친다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한 교섭 요구와 폭력적인 파업이 공공연해질 우려가 있다”며 “결국 불법행위는 그 책임을 면제받게 되고, 그 결과 산업현장이 초토화돼 일자리는 사라지고 국가 경쟁력은 저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대법원이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한 적은 단 한차례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노동조합의 불법행위까지 보호하는 것은 많은 전문가들도 헌법상 노동 3권의 보호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고, 죄형법정주의에도 반해 위헌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법률안이 정부로 이송될 경우 대한민국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책임을 다할 것”이라며 거부권 건의에 대해 시사했다.

윤석열 대통령 [사진제공=뉴시스]<br>
윤석열 대통령 [사진제공=뉴시스]

고심 깊어진 尹

이렇듯, 노동계와 경영계, 여당과 야당, 그리고 정부까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 속에서 결국 선택은 윤석열 대통령의 몫이 됐다. 윤 대통령이 해당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지 여부에 이목이 집중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노란봉투법’ 거부권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10일 “대통령실에서는 정부로 이송돼 오면 각계 의견을 듣고 검토해 보겠다”며 “법률안이 아직 정부로 이송되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7월 대통령실은 “노란봉투법은 기존에 법들을 마치 지키지 않아도 되는 듯한, 그런 취지의 입법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바 있어 이번에도 해당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윤 대통령이 이번에도 실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세 번째가 된다. 앞서 지난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처음 거부권을 실시한 데 이어 5월에는 ‘간호법 제정안’에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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