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월경’ 경험, 시험관 아기 준비 중
자궁 질환으로 불임 겪는 여성들에게 희망
재원 마련 어려움에 기부 릴레이 이어져

삼성서울병원 박재범 이식외과 교수(왼쪽 두 번째)가 이식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서울병원]
삼성서울병원 박재범 이식외과 교수(왼쪽 두 번째)가 이식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서울병원]

【투데이신문 강현민 기자】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자궁이식팀이 지난 1월 35세 여성에게 자궁 이식에 성공, 이후 10개월 동안 거부반응 없이 안정적인 이식 상태를 유지 중이라고 17일 밝혔다.

현재 환자는 규칙적인 월경을 갖고 있으며, 최종 목표인 임신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식에 이어 임신까지 성공하면 자궁 질환으로 불임을 겪는 여성들에게는 희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서울병원에 따르면 자궁을 이식받은 여성은 MRKH(Mayer-Rokitansky-Küster-Hauser syndrome) 증후군 환자였다. 이 질환은 선천적으로 자궁과 질이 없거나 발달하지 않는 질환을 말하는데, 여성 5000명에 1명꼴로 발병하는 것으로 학계는 추산한다.

대개 청소년기에 생리가 시작하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난소 기능은 정상적이어서 호르몬 등의 영향이 없고, 배란도 가능하다. 이론적으로 자궁을 이식받으면 임신과 출산도 가능하다.

환자가 처음 병원을 찾은 때는 지난 2021년, 결혼 후 임신을 결심하고부터다. 당시는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자궁이식팀은 정식으로 팀을 꾸리고 관련 임상연구를 시작한 지 1년에 불과했을 때다.

삼성서울병원 자궁이식팀 [사진제공=삼성서울병원]
삼성서울병원 자궁이식팀 [사진제공=삼성서울병원]

환자의 적극적인 의지에 자궁이식팀도 호응했다. 국내 첫 사례인 만큼 법적 자문과 보건복지부 검토를 진행하고,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사까지 모두 마쳐 절차적 정당성을 갖춘 뒤 신중히 접근했다. 또한, 각자 전문 분야별 해외 논문과 사례를 조사해 이론적 배경은 물론 실제 이식 수술을 비롯해 이식장기의 생존전략, 임신과 출산까지 모든 과정을 준비하고 계획을 세웠다.

다만, 재원 마련이 관건이었다. 현재 국내 의료보험 체계에서 새로운 수술의 시도는 ‘임상연구’라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게 이식팀의 설명이다.

이런 소식을 듣고 후원자들의 따뜻한 기부가 릴레이가 이뤄졌다. 개인과 재단 기부자를 비롯해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작진 등 여러 후원자들이 연구비 기부에 참여했다. 드라마 제작진의 기부는 극중 채송화 교수의 롤모델이자 제작 자문을 맡았던 자궁이식팀 오수영 산부인과 교수와의 인연이 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어렵게 시작한 자궁이식 첫 시도에서 좌절을 맛 봤다. 지난해 7월 첫 이식, 생체 기증자의 자궁을 환자에게 이식했으나 이식 자궁에서 동맥과 정맥의 혈류가 원활하지 않아 2주만에 제거해야 했다.

이후 6개월 여 만인 올해 1월, 천금같은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뇌사 기증자가 나타난 것이다. 자궁이식팀은 지난 실패를 교훈삼아, 공여자의 장기 적출부터 이식에 최선이 되도록 전 과정을 면밀히 살폈다. 기증자의 자궁과 연결된 작고 긴 혈관 하나까지 다치지 않도록 정교한 수술이 자궁이식 초기 성공의 핵심 열쇠다.

자궁이식 연표 [자료제공=삼성서울병원]
자궁이식 연표 [자료제공=삼성서울병원]

남은 과제로 환자와 자궁이식팀 모두 아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자궁이식팀의 이동윤, 김성은 산부인과 교수는 이식 수술에 앞서 미리 환자의 난소로부터 채취한 난자와 남편의 정자로 수정한 배아를 이식한 자궁에 착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무사히 아이를 출산할 수 있도록 제반 사항을 점검 중이다.

박재범 이식외과 교수는 “자궁이식은 국내 첫 사례이다 보니 모든 과정을 환자와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간다는 심정으로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면서 “첫 실패의 과정은 참담했지만, 환자와 함께 좌절하지 않고 극복해 무사히 자궁이 안착됐다. 환자가 그토록 바라는 아기를 맞이할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이유영 산부인과 교수는 “환자와 의료진뿐 아니라 연구에 아낌없이 지원해준 후원자들까지 많은 분들이 도움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면서 “어려운 선택을 한 환자와 이를 응원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자궁이식은 지난 2000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세계 최초로 시도된 바 있다. 당시 환자는 이식 100일만에 거부반응으로 자궁 안착에 실패한 것으로 보고됐다. 최초 성공 사례는 2014년 스웨덴으로 자궁이식과 함께 출산까지 성공하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현재는 관련 근거가 쌓이면서 이식 성공 사례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지난 9월 미국에서 개최된 국제 자궁이식학회에서 전 세계에서 삼성서울병원 사례를 포함, 성공 사례는 109건에 이르는 것으로 발표됐다. 재이식 시도에서는 삼성서울병원의 이번 사례가 처음으로 알려졌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번 성공을 발판 삼아 또 다른 환자의 자궁이식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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