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사회복지회 강대성 회장<br>
△ 대한사회복지회 강대성 회장

과거에는 아는 척, 가진 척, 잘난 척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다 보니 아는 것도 세월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특히 최근에는 경험의 무가치화라는 단어가 마음에 쏙 들어온다. 대신 더불어 사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는다.

자기가 가진 것도 자신이 쓰지 못한다면 자기 것이 아니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고 베풀며 살아야 한다. 집안 옷장과 신발장을 들여다보자. 1년 동안 한 번도 사용 안 한 물건들이 많을 것이다. 이것 들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풍족해질까? 아니다. 나누면 비워지고 비워지면 더 큰 행복으로 채워진다.

사람들을 만나면 분위기를 사로잡느라 말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런데 진정한 고수는 경청하는 사람이다. 경청하는 사람은 잘난 척하는 사람을 인내력을 가지고 들어주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꽃같은 인품의 향기를 뿌리면서 넉넉한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늙어가는 것은 자신을 잘 숙성시켜 가는 과정이 돼야 한다.

요즈음 젊은 친구들과 만나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나 때는 말이야’라며 이른바 라떼 화법을 쓰면 꼰대가 돼 꺼리는 대상 1호로 지목될 수 있다. 지난 세월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청어(청년처럼 살아가는 어른)처럼 살아가야 한다. 

필자는 골프장에 갈 때마다 조그만 선물을 챙겨서 간다. 누구를 위한 선물일까? 바로 캐디를 위한 선물이다. 골프를 치는 시간은 대략 5시간가량 소요된다. 캐디와는 전생의 인연이 있어 만난 것이고, 5시간 동안은 동반자이고 조력자이다. 그래서 가자마자 선물을 주면서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동반자 모두 행복한 라운딩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라운딩을 하면서 대단한 분을 보게 됐다. 대기업 CEO로서 이제는 은퇴하고 골프를 즐기시는 분이다. 볼이 그린에 올라갔는데 볼보다는 그린을 보수하고 계시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그분들의 노고를 감사드린다며 무언가를 전해주고 대화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정말 존경심이 우러나는 순간이었다. 반대로 어느 유명한 아나운서는 골프장에서 캐디들 기피 1호라고 소문이 나 있다. 골프장에서는 골퍼로서 매너를 지켜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군림해 행동했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스스로 높은 담을 치고 사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자. 옛날 부잣집 담을 생각해 보자. 높게 쌓아 올린 담벼락 꼭대기에는 철사와 유리병 조각이 무장(?)돼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심이 후한 곳은 담이 없는 개방형인 것과 비교된다.

조선 세종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두루 거친 맹사성과 고승의 이야기는 담을 낮추는 삶이 무엇인지 느끼게 한다. 맹사성은 19살에 장원급제해 20살에 군수가 되자, 자만심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맹사성이 고승을 찾아가 군수의 리더십에 대한 질문을 했다. “군수로서 지표로 삼아야 할 것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오”라고 묻자 고승은 담담하게 “그것은 나쁜 일은 하지 않고 착한 일만 하시는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맹사성은 너무나 당연한 대답을 하는 고승에게 화를 냈지만 고승은 화를 내는 맹사성에게 아무런 말없이 찻잔에 차를 따랐다.  

​그런데 찻잔에 차가 흘러넘쳤고, 맹사성의 옷자락에까지 젖게 됐다. 그러자 고승의 행동에 더욱 화가 난, 맹사성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차가 넘쳐 바닥을 더럽히고 옷을 젖지 않습니까?” 그러자 고승이 웃으면서 “차가 넘쳐 바닥을 더럽히는 것은 알면서, 당신의 자만심 가득한 학식이 넘쳐서, 인품을 더럽히는 것은 왜 모르십니까?”라고 말했다. ​

이 말에 너무도 큰 부끄러움을 느낀 맹사성은 황급히 방을 나가려다가 출입문 문지방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아픔과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모르는 맹사성에게 고승이 다시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매사에 부딪히는 법이 없지요.” ​맹사성은 깊이 깨달음을 얻고는 교만을 버리고 조선 최고의 정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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