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이영민 편집인

2030 세계박람회 유치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결선투표가 필요 없을 정도의 압도적 표차였다.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막판 총력전을 펼쳤으나 사우디의 오일머니 파워에 고배를 마셨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지만, 처음부터 무리한 도전이었다는 냉혹한 평가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엑스포 유치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대통령의 외교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평창도 3전4기의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관심은 넉 달 남짓한 22대 총선으로 향하고 있다. 선거는 시대정신을 대변한다고 했다. 내년 총선을 관통할 유권자들의 판단 기준은 무엇이 될 것인가. 자본주의 성숙에 따라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분배의 문제가 아닐까. 공정하고 상식적인 분배, 더 큰 분배를 위한 변화와 혁신 말이다. 과연 지역구도 기반의 양당 정치에 찌든 정치인들에게, 기회주의적 망동을 일삼아 온 이들에게 시대정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여권발, 야권발 정계개편의 소용돌이가 가시화하고 있다. 이준석 신당과 이낙연·비명계 신당설 등 여야 가릴 것 없이 탈당과 창당의 관측·루머들이 난무한다. 자기정치가 최우선인 이들에게 홈그라운드의 무한한 이점을 버리고 새로운 정치세력을 도모한다는 것은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한 차선의 선택지에 불과하다. 어쩔 수 없는 처지에서 국민을 상대로 대단한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호도한다 해도 결국 유권자를 활용하는 것에 다름없다. 활용(活用). 충분히 잘 이용하는 것을 이름인데, 바둑에서는 이득을 얻기 위한 ‘버림’을 말한다.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갈증이 자칫 구태 정치인들의 자기정치에 활용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오히려 고착화된 양당정치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이들이 활용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것(長江後浪推前浪)이 세상의 이치라면 마지막 불쏘시개의 역할도 분명 아름답고 의미 있는 모습이 아닐까.

불출마나 험지출마 등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는 정치인들이 늘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온갖 기득권을 누려온 이들이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은 새정치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직간접적으로 정치권에 몸담으며 이삼십년을 버텼다면 이제 자식 보는 마음으로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 새로운 정치는 새로운 세대에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

한편, 제3지대에서 세력을 규합하며 새정치를 외치고 있는 이들은 스스로 지향하는 가치와 철학이 무엇인지 실체를 밝혀야 한다. 뚜렷하게 정체성을 드러내고 유권자들에게 당당하게 지지를 호소해야 한다.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정강정책을 세우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정치적 이상과 목표가 무엇인지,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어떠한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국민에게 소상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내 투쟁에 밀려 이탈한 인물들의 영입에 신중해야 한다. 새정치를 한다는 세력이 기껏 기존 정당에서 탈락한 인물들로 채워진다면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얼마 전 5선의 야당 중진의원이 모 방송사 유튜브에 출현해 인터뷰한 내용은 우리나라 정치 현실의 씁쓸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5선의 국회의원이 방송에 나와 국민들 앞에서 자신의 정치적 최종 목표가 국회의장이며, 목표에 도움이 된다면 어느 당적이든 좋다는 말에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졌다. 여야 정치인들에게 합리적이고 균형감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 그의 입에서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적나라한 민낯을 봤다.

선거 때면 항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분 나쁜 상념이 있다. 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차악을 선택해야 할까. 내년 선거에서는 뭔가 달라질 수 있을까. 엑스포 유치에 대한 바람보다 더 뜨겁게 달아올라야 할 한국 정치의 변화와 혁신에 국민들의 염원이 모아지길 기대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도 응답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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