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br>-&lt;착한 자본의 탄생&gt; 저자<br>-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
-<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기자와 친해지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내외부적 요인으로 쉽지 않았다. 먼저 내부적으로는 홍보팀이 사내 정보를 파악해서 기자들에게 선제적으로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의 홍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 우선 최고경영자가 홍보를 너무 현상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좋은 기사가 나와도 그 속에 본인이 부담스러운 표현이 있으면 그 기사는 나쁜 기사가 되고 홍보팀은 일을 못한 것이 된다. 좋은 기사는 반나절을 무사하게 하지만 나쁜 기사는 몇 달을 힘들게 한다. 이슈가 발생하면 십여 개의 방송과 백여 개의 신문과 인터넷 매체가 기사를 쓴다. 홍보팀이 기사가 안 나오도록 혼신의 노력을 해도 몇 군데서는 기사가 나온다. 그러면 이는 일을 못한 것이 된다.

고위 임원들이 기삿거리를 남발하는 경우도 많다. 각종 공개된 행사에는 회사 고위 임원들도 참석하게 된다. 이런 경우 홍보팀에서는 사전에 예상 Q&A를 만들어서 참석자들에게 가이드로 제공한다. 이때 기자들도 이미 이를 예상하고 사전에 질문 리스트를 준비했다가 취재한다. CEO들은 언론인의 특성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 있어서 큰 실수를 안 한다. 그런데 일반 임원들은 기자들이 경쟁사와 비교해서 유도 질문도 하고 가끔은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도 준다. 그러면 대부분의 임원들은 자기 회사가 잘하고 있고 본인도 유식하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얘기를 많이 한다. 이는 그만큼 대처 불가능한 기삿거리를 많아지게 하고, 기사가 나온 이상 홍보팀의 잘못으로 몰아간다. 또 기자들은 받은 명함으로 늘 개별적인 취재를 하므로 기사가 더 자주 더 세세하게 나온다.

내부적으로 힘든 세 번째 이유는 내부 협조다. 5대 그룹에서도 주력 기업 이외는 홍보 업무를 단순하게 생각한다. 기자들 잘 구워삶아서(?) 나쁜 기사를 못 나오게 하고, 좋은 기사를 자주 나오게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홍보 인원이나 예산 지원은 빈약하면서도 기대와 책임은 더 크게 가진다. 이런 기업들의 또 하나 특징은 중요 회의(정보)에서 홍보팀을 늘 소외시킨다. 홍보팀은 자주 전후 맥락도 모른 채 자기 회사 소식도 기사를 통해 알고선 허겁지겁 대처하게 된다. 이런 회사는 기사화가 우려돼 사전에 관련 부서에 자료 요청을 해도 대부분 무시를 당한다. 그리고 기사가 나오면 홍보팀에 대한 원망을 더 크게 한다. 기사가 나간 후에도 후속 취재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요청하면 팩트보다는 자기 부서 면피용 자료나 변명성 논리를 준다. 가끔은 기자들이 홍보팀이 답답하고 불쌍하다면서 제보받은 서류를 역으로 보여주면서 취재하기도 한다.

필자가 홍보를 하면서 초기 약 5년간 이런 일이 많았다. 홍보팀도 처음 만들었는데 경험해 보지 못한 국책사업 규모의 일이 시작돼 홍보 이슈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어려움에 대응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거대한 조직에 홍보팀의 요구가 반영되기는 너무 어려웠다. 결국 필자가 작심(作心)을 하고 홍보팀 역량 강화를 위해 대처한 방법은 약 네 가지였다.

우선 기자에게 정보를 쉽게 주는 임원, 은밀히 제보하는 임원, 홍보팀을 무시하는 임원은 특별 관리했다. 홍보팀도 모르는 회사의 깊은 정보가 기사화되면 참 당혹스럽다. 사람이 패션을 바꿀 수는 있어도 스타일은 못 바꾼다고, 나름 다양한 방법으로 제보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보 출처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다. 그리고 본인이 언론관계로 곤란한 일이 반드시 생긴다. 특히 대기업 임원은 회사가 장려하는 기사 외에 다른 기사에 이름이 나오는 것은 금기시된다. 결국 그 임원은 홍보팀에 SOS를 치게 된다. 이런 경우 요주의 임원에게는 확실한 다짐을 받는다. 전쟁에서는 우호적 관계가 중요하지만, 전투에서는 가는 말이 험해야 오는 말이 곱다. 물론 이런 일은 팀원들 모르게 나 혼자 해야 했다.

현대제철은 당진제철소에 총 12조원을 투자했다. 임시투자세액 공제 연장을 위해 홍보팀은 필요한 논리를 제공했고 당시 모든 언론사가 기사와 사설로 보도했다. [자료제공=ESG네트워크]<br>
현대제철은 당진제철소에 총 12조원을 투자했다. 임시투자세액 공제 연장을 위해 홍보팀은 필요한 논리를 제공했고 당시 모든 언론사가 기사와 사설로 보도했다. [자료제공=ESG네트워크]

두 번째 방법은 내부 정보를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홍보팀이 소속된 상위 조직을 바꾸는 것이었다. 내부 정보를 출입 기자를 통해 역으로 접하게 되는 굴욕을 극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고 했던가. 어떤 계기로 당시 본부장이 팀장인 필자에게 홍보 업무에 관한 여러 의견을 구했다. 나는 홍보팀이 회사 사업을 총괄하는 조직과 같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줬고 결국 그렇게 해서 기획실로 소속이 바뀌게 됐다. 그 이후 중요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회의록을 보고 예상 홍보 이슈를 찾아서 대비 할 수 있었다. 회사의 전략적 방향이나 경영 리스크를 예상하고 이와 관련한 우호적 논리를 만들어 여론을 조성했다. 임시투자세액공제율 연장이나 철스크랩 수출 허가제 도입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2003년부터 2013년까지 12회나 인상했다. 이때 산업계의 대응 논리는 매번 현대제철 홍보팀 한 직원(H)이 작성해서 전경련, 대한상의, 한국철강협회 등 15개 경제단체 연명으로 건의했다. 이런 건의서나 기사는 관련 부처 장관은 물론 대통령실 신문스크랩에 포함돼 정책 수립이나 집행에 반영된다.

세 번째 방법은 홍보팀원을 교육 시키는 것이었다. 홍보업무를 하기 전 과장 시절에 전력산업 구조개편 문제로 국회 보좌관을 자주 만났다. 그런데 이 분이 한전 손익계산서의 영업이익과 경상이익의 차이를 몰라서 정책 건의서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 홍보팀 조직이 커지면서 경력 직원을 채용했는데 대부분 현직 기자들이었다. 일단 홍보팀에 소속되면 재무제표 교육을 시키고 관련 수료증을 제출토록 했다. 그리고 월 1회 ‘본인이 작성한 PPT’로 세미나 발표를 하도록 했다. 세미나 주제는 초기에는 철강산업, 전기요금, 건설산업, 에너지 이슈 같은 회사 업무 관련으로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인문·사회적인 주제, 비트코인 같은 핫 이슈도 했다. 이런 교육을 통해 팀원들의 안목을 넓히고 성취감을 가지게 했다. 가끔은 외부 강사도 초빙했다. 실전 회계학 책 저자인 김수헌 대표, 하이투자증권 고태봉 본부장 같은 분들이 재능기부를 해줬다.

필자와 기획실 직원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nbsp;당진제철소에서 현장 교육을 받고 직원들과 교류를 통해 회사 비전에 대한 공감대를 이뤘다. [사진제공=ESG네트워크]<br>
필자와 기획실 직원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당진제철소에서 현장 교육을 받고 직원들과 교류를 통해 회사 비전에 대한 공감대를 이뤘다. [사진제공=ESG네트워크]

홍보팀 역량 강화를 위한 네 번째 수단은 현장 교육을 통한 공감대 형성이었다. 제철소를 건설하고 운영하기에 바빴던 당시 본사 조직에는 현장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가 없었다. 약 6개월간 매주 금요일 오후에 기획실(홍보팀) 직원들과 당진제철소에 가서 교육을 받았다. 원료 입고부터 쇳물 제조, 제품 생산·출하, 1차 고객사의 후처리 과정까지 전 과정을 세분해서 현장 담당자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항상 관련 현장 직원들과 같이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사내 커뮤니케이션, 공감대 형성이 조직의 힘의 원천이다. 지금도 당시 교육이 너무 힘들었다는 불평을 듣는데, 비교하기 좋아하는 기자들로부터 경쟁사 홍보팀원들과는 실력과 격이 다르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외부적인 어려움도 수없이 많았다. 우선 1997년 IMF 이후 언론사 경영환경이 급속도로 어려워졌다. 그 전에 언론사는 광고료와 구독료만으로도 대기업 2배의 월급을 줬다. 지조있고 비판적 DNA를 가진 천하의 인재들이 언론고시를 통해 기자가 됐다. 그러한 기자 정신은 민주화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IMF는 언론계 풍토를 너무 많이 변화시켰다. 언론사는 대기업 광고가 중요해졌고 대기업은 자기 회사에 대한 언론의 예리한 필봉이 둔해지기를 원했다. 설상가상 2000년대 초반부터 브로드밴드 인터넷의 보급이 급속히 이뤄지면서 인터넷 사용이 증가했고, 이에 따라 온라인 뉴스 및 언론 활동도 늘어났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되는 뉴스 서비스가 크게 확대됐고, 다양한 언론사들이 온라인에서 뉴스 콘텐츠를 제공하게 됐다. 시간이 갈수록 고정비 부담이 큰 기존 신문사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소규모 인터넷 언론사는 급증했다.

홍보팀 입장에서는 이러한 급변하는 ‘언론사 경영환경’에 대처하기도 어려운데 다양화된 기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부담도 커져갔다. 가끔은 언론사 내에서 잦은 루머로 입지가 어려워진 기자가 어떤 계기를 핑계 삼아 홍보팀을 희생양으로 잡고 나올 때도 있었다. 2016년 김영란법 시행 이후 더 잦아졌다. 이런 경우 신문사는 조직원 보호를 위해 기자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기자의 감정 실린 기사가 더 자주 크게 나온다는 의미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보면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기업의 음지도 많이 좁아지고 있고, 언론사도 긍정적인 역할 변화를 많이 하고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두 번의 보람이 여덟 번의 어려움을 덮어 줬다. 그래서 지치지 않는 열정을 쏟을 수 있었다. 깊이 있는 취재를 통한 팩트로 아픈 예방주사를 준 기자, 회사의 어려움을 알고 먼저 대처해 준 기자에 대한 감사함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