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성범죄·마약 중대수사 받아도 소속 기관은 몰라
중대 범죄 수사 시작해도 공공기관 직원은 계속 근무

신당역 살인사건 피의자 전주환(32) [사진출처=뉴시스]

【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지난 2022년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가해자는 2018년 12월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한 전주환. 그는 입사 동기인 여성 직원 A씨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그는 공사 입사 당시 ‘음란물’ 유포 범죄 전력이 있었지만 결격사유 조회에서 배제되지 않았다. 입사 이후에는 운전자 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력도 있었다.

이 같은 사건을 계기로 공공기관 직원 임용 시 수사기관이 소속 기관에 이를 통보할 수 있는 법 개정 및 결격 사유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2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신당동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여가 지났지만 현재까지 중대 비위행위를 저질러도 기관이 결격 사유를 확인하는 근거는 아직 없다. 이에 따라 계속 부적격자가 채용 가능한 구조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4일 감사원이 내놓은 ‘공공기관 임용·징계제도 운영실태 분석’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 279개를 대상으로 임용 결격사유를 조회·검증하는지 점검한 결과, 6개 기관을 제외한 273개 기관이 결격사유를 조회하지 못하고 있었다.

국가공무원의 경우 임용 결격사유가 규정된 ‘국가공무원법’ 제33조를 근거로, 행정안전부가 운영하고 있는 행정정보공동이용시스템 등을 통해 임용 예정자의 범죄경력 등 결격사유 해당 여부를 확인한 후 임용하고 있다.

이에 성폭력 범죄나 스토킹 범죄 등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된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 미성년자 대상 성폭력 범죄·아동청소년법에 따른 성폭력 범죄 등으로 파면·해임되거나 치료 감호가 확정된 사람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자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않고서는 임용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반면 273개의 공공기관은 행정정보공동이용시스템이나 관계기관 등을 통해 결격사유를 조회·확인하지 못하고 있었고, 채용과정에서 임용예정자로부터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등만 제출받을 뿐 거짓말을 하더라도 이를 잡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전에는 보안업무규정 등에 근거해 공공기관 임직원을 상대로 범죄경력조회 등 신원조사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난 2020년 해당 규정이 개정되면서 신원조사 대상에서 ‘임직원을 임명할 때 정부의 승인이나 동의가 필요한 공공기관의 임직원’이 제외됐다.

현재는 공항·전력·통신 등 국가보안시설 등의 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한국공항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인터넷진흥원 등 일부 공공기관(76개)만 임용예정자에 대한 신원조사 의뢰가 가능한 상황이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재직 중 중대 비위행위에도 ‘솜방망이’ 처벌

임용 결격사유를 조회하지 못하는 문제와 함께 재직 중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중대 비위행위를 저질러도 정직 등 가벼운 징계만 내리고 계속 근무하게 하는 허술한 인사관리도 문제다.

준정부기관 및 기타공공기관 278개 중 141개 기관이 직원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거나 횡령·배임 또는 성폭력 범죄 등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직원이 경고·정직 등 징계만 받고 퇴직하지 않은 채 계속 근무하고 있다.

더욱이 몇몇 공사의 경우 범죄 행위로 형을 선고 받은 직원에 대해 ‘당연면직’ 즉 퇴직 조치를 규정하면서도, ‘직무수행에 지장이 없을 때에는 그렇지 않다’는 단서를 달아놓아 사실상 제도가 유명무실하다.

실제로 한국철도공사는 인사규정 제41조 제4호에 소속 직원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때’에는 당연히 면직된다고 규정하면서도 ‘직무수행에 지장이 없을 때에는 그렇지 않다’라는 단서를 두고 있다. 결국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직원에 대해 당연면직되지 않도록 운영하고 있다.

철도공사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없이 부주의(경과실)로 발생한 교통사고 등으로 당연면직되는 직원을 구제하는 차원에서 해당 단서 규정을 뒀고 횡령이나 폭력, 절도 및 성범죄 등과 같이 경제·사회질서 및 사회적 미풍양속을 해치는 범죄 행위 등에 대해서는 단서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공사는 지난 2020년 5월 특수상해로 징역형(1년), 집행유예(2년)를 선고받은 직원에 대해 당연면직 조치를 하지 않고 정직 3개월의 징계처분만 내렸다. 또 지난 2018년 11월 폭행으로 징역형(10개월), 집행유예(2년)를 선고받은 직원에 대해서는 징계 시효 도과를 이유로 징계처분도 없이 경고 조치만 했다.

한전KPS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 받고 그 형이 확정된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자를 결격사유로 규정하면서도 지난 2021년 불법 촬영 혐의가 인정돼 법원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은 직원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 처분만 내린 사례가 드러났다.

노사가 해당 규정을 축소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선박연) 등 4개 연구기관은 인사규정에 ‘국가공무원법’을 적용한 면직 규정을 두고 있지만, 단체협약에서 ‘실형에 복역하게 된 경우’로 축소했다. 이로 인해 선박연은 지난 2021년 대법원에서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된 직원에게 징계시효가 만료됐고 단체협약 상 당연면직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유로 징계처분 및 당연면직 조치를 하지 못하고 경고 처분만 하게 됐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직원 중대행위 수사 받아도 소속기관은 ‘몰라’

이와함께 공공기관이 수사기관으로부터 직원의 범죄 관련 수사 결과를 통보받지 못해 징계 또는 당연퇴직 등 조치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공기관운영법 제53조의2에서 공공기관 임직원에 대한 수사사실 통보 범위가 ‘직무와 관련된 사건’으로 한정돼 있어 수사기관은 성범죄, 음주운전, 마약 등의 중대 비위행위도 직무와 관련된 범죄가 아니라는 이유로 해당 임직원의 소속 공공기관에 수사사실을 통보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공공기관은 당사자의 자진신고나 운전경력증명서를 통한 음주운전 확인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소속 임직원의 직무와 관련되지 않은 범죄 사실을 알 수 없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 임직원이 직무와 관련되지 않은 중대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거나 형을 선고 받더라도 소속 공공기관이 이를 파악하지 못해 당연퇴직, 징계처분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구체적 사례로 철도공사 소속 직원(차량정비 담당)이 지난 2021년 필로폰 투약·매매 등으로 징역형(1년 3개월)의 집행유예(2년)를 선고받는 등 2021년 이후 3차례에 걸쳐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나, 철도공사는 수사기관이 직무와 관련이 없는 사건이라는 사유로 수사 사실을 통보하지 않아 이를 알지 못했다. 결국 해당 직원이 직장에서 체포된 뒤에야 퇴직 조치를 내렸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소속 직원이 지난 2022년 교통사고로 피해자에게 상해(전치 4주) 및 승용차 파손(수리비 1500만원)의 손해를 입히고도 사고 현장에서 도주했고, 이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차량) 및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벌금형(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농어촌공사는 지난 2022년 광주광산경찰서(경비교통과)로부터 해당 직원에 대한 ‘공공기관 임직원 범죄 수사결과 통보’ 문서를 수신했지만, 수사 결과 통보 문서를 접수하기 전에 광주광산경찰서로부터 유선으로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통보하지 말아야 할 사건을 통보한 것 같아 회수 요청’한다는 연락을 받고 수사결과 통보 문서를 접수하지 않고 삭제했다. 이에 농어촌공사 감사실과 인사부는 해당 직원의 비위 사실을 파악하지 못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했다.

서울 종로구 감사원 전경 [사진제공=뉴시스]
서울 종로구 감사원 전경 [사진제공=뉴시스]

‘법 개정’ 필요성 의견 나와

직원 결격사유와 당연퇴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감사원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개선 의견을 조사한 결과, 279개 공공기관 중 182(62.5%)에서 법령상 근거 등 제도적 보완을 요구했다.

감사원은 “공공기관이 임용예정자의 결격사유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이 없어 부적격자가 공공기관 직원으로 채용되거나 당연퇴직 대상을 협소하게 규정해 범죄행위 등을 저지른 직원이 계속 근무하고, 수사기관의 공공기관 임직원에 대한 수사결과 통보 범위가 직무와 관련된 사건으로 한정돼 있어 비위행위자가 징계처분을 받지 않는 문제점에 대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기획재정부는 과잉침해 소지 문제를 언급했다.

기재부는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임용예정자의 자기 서약서 등을 통한 간접적인 확인을 넘어 직접 범죄경력을 조회하는 등 공권력의 행사를 통해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과잉침해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치권에서도 공공기관 인사·징계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토킹·디지털 성범죄자를 결격사유에 추가하고 공직유관단체 채용 시 범죄·수사 경력 조회를 허용하는 이른바 ‘전주환 방지법’을 대표발의한 양향자 의원은 본보에 “대다수 공직유관단체의 시대착오적 인사 규정으로 범죄자가 입사해도 여전히 필터링할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주환방지법’을 시작으로 공공기관 내 인사결격·징계 규정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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