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br>-&lt;착한 자본의 탄생&gt; 저자<br>-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br>
▲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
-<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현대제철의 당진 일관제철소 추진은 결코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네 번의 도전에 실패하고 결국 다섯 번째 도전에 성공했다. 그 자체가 우리나라 산업사의 한 역사다. 철강회사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고로 회사는 용광로에서 철광석을 코크스로 녹여 반제품(슬라브와 열연)과 제품(자동차강판, 후판 등)을 만든다. 전기로 회사는 수명이 다한 철(고철)을 전기로(爐)에서 전기(電氣)로 녹여 철근, 형강을 만든다. 압연 회사는 반제품을 다시 가열·압연해서 후판이나 자동차강판 같은 냉연 제품을 만든다. 고로 회사가 한 장소에서 압연까지 다 하는 경우를 ‘일관(一貫)제철소’라고 한다. 포스코의 포항·광양제철소와 현대제철의 당진제철소가 여기에 해당한다.

자동차용 강판이나 조선용 후판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일관제철소가 필요하다. 이러한 제품은 용광로 쇳물로 만든 고순도·고품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룹이 분할된 2000년 이전 현대그룹이나 이후 현대차그룹은 늘 고품질 철강 제품 부족에 시달렸다. 1973년 첫 쇳물을 생산한 국내 유일의 일관제철소인 포항제철은 공급 능력보다 수요가 많아 ‘배급’을 해야 할 정도였다.

이에 정부는 1978년 초 제2제철소(현 포스코 광양제철소) 건설을 선언했다. 현대그룹과 포항제철 간에 제2제철소 허가권을 얻기 위한 전쟁이 시작됐다. 독점 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와 경쟁을 통한 효율성 논쟁이 벌어졌다. 여론은 팽팽했으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규모의 경제를 통한 포항제철의 안정적 성장을 중시했다. 일관제철소 진출을 위한 현대그룹의 첫 번째 도전은 실패했다. 이후 정주영 회장은 1994년 7월과 1995년 9월 부산 가덕도에 일관제철소 건설을 연이어 추진했으나 정부에서 계속 불허했다.

현대자동차그룹 10년사 표지.&nbsp; “친환경 자원순환형그룹으로 새롭게 도약했다”고 공식 기록했다. [자료제공=ESG네트워크]
현대자동차그룹 10년사 표지.  “친환경 자원순환형그룹으로 새롭게 도약했다”고 공식 기록했다. [자료제공=ESG네트워크]

1996년 1월 현대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정몽구 회장은 취임사에서 일관제철소 건설 추진을 선언했다. 1997년에는 경남 하동으로 장소까지 확정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계속 공급 과잉을 이유로 불허했다. 이에 현대는 이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여론’밖에 없다고 보고 전국적으로 28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했다. 이번에도 정부는 불허했다. 그럼에도 정 회장은 독일 티센제철소를 방문해 합작투자 제안을 받아오고 그해 10월 28일에는 경상남도와 제철소 건설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IMF 외환위기로 스스로 접어야 했다. 20여 년간 부자(父子)에 걸친 네 번의 도전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때 발족한 ‘종합제철사업 프로젝트’ 단장이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이계안 부사장이었고 인천제철 한정건 이사도 한 멤버였다.

2004년 3월 정부는 당시 법정관리에 있던 당진 한보철강 매각을 발표했다. 다섯 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이전에는 정부를 통한 대결이었으나 이번에는 포스코와의 맞대결이었다. 포스코는 한보철강(부지)이 필요하지 않았으나 현대차그룹이 인수하는 것은 막아야 했다. 현대차그룹은 여기(한보철강 부지) 아니면 방법이 없었다. 사회적으로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이제 새로 갯벌을 매립하고 청정해안을 훼손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한보철강이 운영하던 부지는 이미 갯벌이 매립됐고 수심이 깊어 일관제철소 건설이 가능한 곳이었다.

치열한 인수 경쟁이 벌어졌다. 그 전 해에 2400억원에 유찰됐던 매각이 양사 간의 경쟁으로 9800억원이 됐다. 신(神)이 놀랄 정도로 금액이 똑같았다. 그런데 현대차그룹 INI스틸(구 인천제철, 현 현대제철)은 한보철강 종업원 승계와 임금 인상 등 부대조건에서 좋은 평점을 받아 최종 승자가 됐다.

고(故) 정주영 창업 회장의 혜안이 입증됐다. 1978년 포항제철과 제2제철소 허가 인수 경쟁이 진행될 때 정주영 회장은 당시 법정관리로 있던 인천제철을 인수했다. 인천제철은 전기로 회사로 건설용 철근을 생산하고 있었다. 정 회장은 “아무래도 철강회사를 하나 가지고 있어야 나중에라도 이를 기반으로 일관제철소 진출이 유리할 것이다”라고 인수 이유를 말했다. 정주영 창업 회장(1915~2001)이 인천제철을 인수했기에 한보철강 인수도 가능했고 일관제철소 건설도 가능했다. 도전 26년 만에 진출하고 32년 만인 2010년 당진제철소에서 첫 쇳물이 쏟아졌다. 오늘날 현대차가 세계 톱 3가 된 것에는 인하우스(In House) 제철소가 크게 기여하고 있다.

다시 2004년으로 돌아가서 홍보팀장의 역할을 고민하던 시기, 환경연구·운동 단체인 생태경제연구회와 문학동아리 마량앞바다 회원들의 도움으로 친환경을 홍보 콘셉트로 잡았다. 사보 <푸른연금술사>를 만들고 세계적인 환경 사진작가 베르트랑을 홍보영화에 출연시켰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철을 재활용하는 전기로 회사였다. 2004년 10월 21일 정몽구 회장은 한보철강 인수 후 첫 당진제철소 방문에서 일관제철소 진출을 선언했지만, 공식 발표는 2005년 5월 19일에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건설과 홍보는 2006년 10월 27일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기공식 이후였다. 홍보팀 입장에서는 논리적 모순에 빠졌다.

일관제철소는 불가피하게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물론 법적 기준은 충족하지만, 높아진 사회의 환경 인식 상 친환경으로 홍보하기에는 스스로가 용납이 안 됐다. 1년 여에 걸친 긴 고민이 이어졌다. <일관제철소-자동차 강판-폐차-고철-전기로에서 철근 생산-건설에서 사용-폐자재는 다시 전기로에서 재활용>이라는 개략적 흐름을 잡고 있었지만, 폐차 처리 부문만 현대차그룹이 직접 하지 않고 있어서 이를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2005년 11월 8일 자로 A종합지에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가 ‘자동차 리사이클링 센터’를 준공했다는 1단 기사가 나왔다. “이로써 현대·기아차는 제품 개발부터 생산, 폐차 및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친환경 기술연구시설을 확보하게 됐다.” 기사를 읽는 순간 나에게는 ‘유레카!’였다.

세계 최초(유일)의 자원순환형 그룹을 보여주는 도표. 현대제철 고로 제철소에서 만든 자동차 강판으로 만든 차가 폐차되면 리사이클링센터에서 분해 후 현대제철 전기로에서 다시 철근 등 제품으로 재탄생해 건설에 사용된다. 건물이 해체되면 다시 고철을 회수해서 전기로에서 재활용된다. 1톤의 철이 40회 재활용되고 누적 10톤의 역할을 하게 된다.&nbsp; [자료제공=ESG네트워크]
세계 최초(유일)의 자원순환형 그룹을 보여주는 도표. 현대제철 고로 제철소에서 만든 자동차 강판으로 만든 차가 폐차되면 리사이클링센터에서 분해 후 현대제철 전기로에서 다시 철근 등 제품으로 재탄생해 건설에 사용된다. 건물이 해체되면 다시 고철을 회수해서 전기로에서 재활용된다. 1톤의 철이 40회 재활용되고 누적 10톤의 역할을 하게 된다.  [자료제공=ESG네트워크]

현대차그룹 내에서 자원순환이 가능해졌다. 그렇게 해선 만든 홍보 논리가 ‘세계 최초의 자원순환형 그룹’이었다. 논리는 만들었는데 외부의 반응이 걱정됐다. 팀원들도 논리는 좋다면서도 내외부 평가를 걱정했다. 그러던 중 B경제지에서 2006년 3월 2일 자로 전면(全面) 4면에 걸친 기획기사 게재를 제안해 왔다. B경제지는 당시 업계 2위 기업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기획했는데 ‘4면 증면 기획’은 언론사 최초의 시도였고 첫 회가 현대제철이었다. 배경인 즉, 다보스포럼에서 B경제지 회장과 기아차 CEO가 만나 ‘당진제철소 건설 현황과 비전을 국민께 제대로 소개하자는 합의를 했다’고 전했다.

‘세계 최초의 자원순환형 그룹’을 조심스럽게 설명하니 담당 기자가 무릎을 쳤다. 산업부장과 편집국장도 좋다고 했다. 단순한 도표도 같이 소개했다. 문제는 회사와 그룹의 반응이었다. 당시 일관제철소 홍보에 관한 큰 지침은 경쟁사를 자극하지 말고 지시하지 않은 홍보는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조그마한 후발주자가 거대한 선발회사와 부딪쳐서 좋을 것이 없다고 본 것이다. 

기사가 나가고 질책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홍보는 혼나지 않으면 기본을 한 것으로 인식한다. 일관제철소 관련 기사는 그룹 최고 경영층에 항상 보고 된다. 처음 나온 논리라서 그랬는지, 그룹의 반응을 기다리다가 잊었는지 아무튼 질책이 없었다. 기사가 나가고 몇 개월 뒤 출입 기자단을 일관제철소 건설 현장으로 초대했다. 그런데 기술연구소 홍보관에 가니 ‘자원 순환형 그룹’ 도표를 멋지게 만들어서 전시해 놓고 기술연구소장이 아주 자랑스럽게 브리핑했다. 기자들도 기사로 소개를 많이 해줬다.

현대자동차그룹 10년사 중 자원순환형 사업구조 완성을 설명한 부분.&nbsp; [자료제공=ESG네트워크]
현대자동차그룹 10년사 중 자원순환형 사업구조 완성을 설명한 부분.  [자료제공=ESG네트워크]

이를 계기로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급기야 2011년 3월 ‘현대차그룹 10년사’를 발간하면서 “2009년 9월 현대자동차그룹 출범 이후 지난 10년 동안 자동차전문그룹에서 친환경 자원순환형그룹으로 새롭게 도약했다”고 기록됐다. 그리고 2011년 6월 현대제철 철강상 시상식에서 자원순환형그룹 홍보논리 개발로 유공자상 대상을 받았다. 그동안 누가 만들었는지 몰랐거나 홍보대행사에서 했을 거라고 짐작했었던 친환경 자원순환형그룹 논리의 작가가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현대차 양재동 사옥 안내데스크 스크린에는 필자가 퇴직한 2020년 말에도 이러한 내용이 5분마다 반복해서 안내되고 있었다.

이제 일관제철소 철광석 환원제인 코크스도 그린수소로 바뀌는 시대가 다가온다. 현대차는 세계 최고의 수소차 생산 회사다. ‘세계 최초의 자원순환형 그룹’이 수소 시대를 어떻게 담을지는 후배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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