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작품을 알려야 할까요?” 최근 미술계는 유명 외국작가나 원로작가에 초점을 맞춰 전시, 홍보,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다보니 국내 전시에서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소수의 작가들만 주목받는,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미술계의 이러한 방식에 신진작가들은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신진 작가의 발굴과 지원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지원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좁은 문’으로 불릴 만큼 치열하다.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예술가로서 인정받기란 젊은 작가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신진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소개하는 코너를 통해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에 나서고자 한다. 팝아트스트 낸시랭과 김선 비평가가 작품에 대한 폭넓은 시각도 제공한다. 앞으로 온라인 갤러리 [영블러드]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뜨거운 예술혼을 만나보길 바란다.

# ART STORY 

Inside and outside of landscape-21_ 200x140 cm_ 천에 먹, 아크릴 채색_ 2012
Inside and outside of landscape-21_ 200x140 cm_ 천에 먹, 아크릴 채색_ 2012

하루하루 결이 다른 결을 만들어 가고자 노력하는 작가 김진욱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과 영국에서 서로 다른 미술 교육을 경험한 뒤 2012년 가을에 귀국해 비교적 늦게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학부 시절에 섬세하고 전통적인 수묵화 위주의 작업에 몰두하다가 졸업 후에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 보고자 독일로 유학을 갔습니다. 전혀 다른 문화와 교육 방법에 당황하고 현대미술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표류하듯 수면 위를 떠다니던 저는 점점 독일식 표현주의, 신표현주의 회화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거칠고 강렬하면서 과감한 시도의 작업들이 내면 깊이 파고들었고 저 멀리 어렴풋이 작은 섬과 같은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닿을 듯 닿을 수 없던 목적지는 신기루처럼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그러는 동안 초조함과 불안함으로 짙은 해무 속에 갇혀 막연함으로 작업들과 대면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시기에 결혼과 육아까지 겹치면서 작업에 집중하기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후 홀로 영국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무모한 욕심에 기약 없이 또 한 척의 배를 물 위에 띄웠습니다.

영국 유학 동안 독일에서 영감을 받은 독일 작가들의 표현주의 작업풍과 이미 한국에서 접한 전통 수묵화의 선적인 표현을 강조해 강렬하고 대담한 독일식 표현주의가 아니라 섬세하고 깊이 있는 저만의 작업 방식을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현대미술에서 더 이상 동서양의 이분법적 구별이 무의미하겠지만 문화적, 지리적 차이에서 오는 경험들을 작업 안에서 이종 교배하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던 것 같습니다.

# ARCHIVE

안과 밖

Tatort Haferfeld_ 170x134.5cm_ 캔버스에 목탄, 아크릴 채색_ 2003
Tatort Haferfeld_ 170x134.5cm_ 캔버스에 목탄, 아크릴 채색_ 2003

현재까지의 작업들은 독일과 영국 그리고 귀국 후의 작업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에 다른 실험적인 작업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흐름 안에서 서로 더 강하게 연결되는 작업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 작업은 독일에서 제작한 작업으로 한 잡지에 실린 기사의 내용을 보고 그 상황을 주관적 입장에서 재구성한 작업입니다. 20년 전 독일 북부의 한 작은 마을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그 사건을 맡은 법의관이 그 당시 채취한 DNA 샘플을 보관하다 과학이 발달한 20년 뒤에 비로써 범인을 밝혀냈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는 사건이 발생한 귀리밭에 희생자가 누워있는 사진이 함께 실려 있었고 저는 그 사진을 기본으로 그 안에 많은 주관적 해석들로 이미지들을 채워 넣었습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때론 자신의 내면과 공명하며 여운을 남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한 교감을 통해 형성되는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화면 안에 구성하고자 한 작업입니다. 이후 오랫동안 내면과 외부의 자극으로 만들어진 잔상들로 공간을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Inside and outside-Black mirror_ 185x120 cm_ 캔버스에 목탄, 아크릴 채색_ 2012
Inside and outside-Black mirror_ 185x120 cm_ 캔버스에 목탄, 아크릴 채색_ 2012

오랜 학교 생활 동안 세 번의 큰 환경의 변화로 저 자신에 대한 모습들이 온전하지 않고 작은 조각들로 부서져 그동안의 긴 여정 속에 파편처럼 박혀 있는 듯했습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 진행하려면 무엇이 나를 정당화할 수 있는지 찾아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작업은 영국 유학 생활 동안 제작한 작업입니다. 붕대로 온몸을 칭칭 감은 불완전한 대상이 칠흑 같은 검은 거울을 마주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독일에서 시작한 목탄 드로잉은 더 정교하게 다듬어졌고 공간의 구성은 한층 유기적으로 진화했습니다.

그림 속 검은 거울의 등장은 이후 현재까지 작업 안에서 이질적인 검은 원으로(때론 낯선 색의 원으로)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무심한 시간의 물리적 변화 속에서 매일 들여다보던 것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 거울처럼 느껴지고 내 뒤에서 꿈틀대며 자라나는 무엇인가가 신경 쓰여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은둔과 치유

Wings_ 200x122cm_ 장지에 먹, 아크릴 채색_ 2018<br>
Wings_ 200x122cm_ 장지에 먹, 아크릴 채색_ 2018

외국 생활을 마치고 처음 그림을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섬세한 선적 표현이 가능한 한지와 먹으로 재료를 바꾸고 조각난 이미지들과 반복적인 패턴들의 조합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동안 중첩된 또 다른 이미지들을 화면 안에 숨기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귀국 후의 생활도 만만치 않았고 어디에도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작업에는 커다란 날개가 달린 사람이 작은 화분을 들고 있고 오른쪽 아랫부분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는 이미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자기 몸을 감추는 생물들처럼 주변 환경과 비슷한 의태를 하고 숨어있는 듯 보입니다. 결국 저 자신을 스스로 격리시키고 휴식이 필요한 장소를 찾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업 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검은 원(구멍)과 달, 물방울 등의 이미지들은 불안이나 고립, 치유 등의 단어들을 대신합니다.

Night in the night-6_ 194x130.3cm_ 캔버스에 유채_ 2023

최근에 시도하고 있는 작업들은 다양한 색채를 사용하기보다 단색의 유화 물감으로 화면을 구성합니다. 먹이나 목탄으로 먼저 드로잉을 하고 일부분에만 채색하던 방법에서 선과 면의 경계를 없애고 수묵화 농담의 변화처럼 유화 물감의 두께 조절로만 밀도감을 표현하는 작업입니다.

주로 바탕을 어둡게 칠하고 보색 계열의 반대되는 색으로 단편적인 이미지의 잔상들을 공간 속으로 흩어지게 하거나 환영처럼 제시하고자 합니다. 화면 안의 응축된 에너지 혹은 다른 차원으로 연결된 탈출구처럼 보이는 검은 원(처음 작업안에 등장했을 때는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고자 했으나 더 이상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근원적인 물음의 대상)을 중심으로 매일 같이 해체돼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불완전한 세계를 지탱할 골격을 만들고자 합니다.

# ARTIST STORY

저는 반려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더디게 자라는 나무와 꽃들을 매일 들여다봅니다. 분명히 어제와는 조금 다른 듯 보이는데 그 차이를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지 끝에 무엇인가 새로운 연한 분홍빛이 비치는 듯하기도 하고 밤새 잎새에 붙어있던 작은 깍지벌레가 다른 이파리로 옮긴 듯도 합니다. 주기적으로 때맞춰 물을 주어야 살 수 있는 작은 화분 속 식물들은 전적으로 저에게 의존합니다.

저의 작업들은 식물을 기르는 것과 같습니다. 서로 교감하고 의지하는 것 신경 써서 돌봐야 하는 것들에 대한 수고로움을 기꺼이 실행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제와 비슷하고 내일은 아마 오늘과 비슷할 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작업은 그러한 미묘한 차이를 관찰하고 돌보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물들로 타인과 교감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ART CRITICISM   


김진욱 작가는 한지와 먹, 목탄, 아크릴의 재료들을 실험적으로 결합해 나가면서 ‘동양적이다’ 라는 전통적인 관념으로부터 개인의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작업하는 아티스트다. 김진욱은 인간이 가지는 불안, 고립 그리고 그 속에서의 치유의 관계를 끊임없이 성찰하며 수묵 특유의 정적이고 차분한 색채에서 짙게 내린 어둠의 강한 생명체를 휘몰아치게 하는 환상적인 색감의 에너지로 거칠면서도 강렬하게 공간을 거대한 형태를 구축한다. 공간의 깊이는 추상적인 형태로 구체화 되면서 몰입감을 한층 더 끌어올리고 섬세한 색채들과 형태들의 파동들이 묘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김진욱의 작업에 주된 소재인 외부적인 사건들이나 환경으로부터 파생돼 나오는 일상 그리고 내면 깊이 공명하는 여운들이 화면 속에서 공기 중의 파편들과 만나면서 충돌을 일으킨다. 화면을 빼곡하게 채워가는 반복적이고 조각난 이미지들의 조합이 판타지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면서 긴장감은 더해졌다. 선과 패턴들의 무한대로 증식되는 유기적인 관계들의 만남이다. 김진욱만의 초현실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장면이 더해져 거대하면서도 웅장한 형상이 완성된다.(김선 비평가)


김진욱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어지러웠다. 그의 작품은 예술에서 미니멀리즘(Minimalism)에 대한 반작용인 맥시멀리즘(Maximalism)이다. 즉, 맥시멀리즘은 과잉의 미학이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섬세하고 전통적인 수묵화 위주의 작업에 표현주의 작업풍이 돋보인다. 전통 수묵화의 선적인 표현을 강조해 섬세하고 깊이 있는 김진욱 작가만의 작업 방식을 구축한다. 작가는 ‘나의 작업들은 식물을 기르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표현했는데 작품들을 보면 많은 애정을 갖고서 열정을 쏟아부은 기록같다.

이와같은 맥시멀리즘 작업형태는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만큼 작가의 정신적 집중도 많이 필요하게 되는데 그 밸런스를 잘 유지해 나가길 희망한다. 한국 그리고 독일과 영국에서의 유학생활의 경험들이 앞으로의 작품들에도 위트 넘치게 시각적 향연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팝아티스트 낸시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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