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이영민 편집인<br>
△ 투데이신문 이영민 편집인

지난달 6일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발표 이후 한 달 남짓. 의료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 휴학 등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됐고, 급기야 의대 교수들도 이달 25일 사직을 예고하고 나섰다. 정부는 교수들의 집단 사직 움직임에 행정명령을 검토하는 등 의정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의료현장에서는 수술과 입원 지연, 진료 취소나 진료 거절 등 환자들의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국민생명을 담보로 한 정부와 의료계 간 강대강 대치의 치킨게임이 현실이 되고 있다.

20년 가까이 동결된 의대 입학정원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5년간 1만 명을 증원하겠다는 정부 수요예측에 합리적 근거가 충분하다 해도 생사의 기로에 선 국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을 순 없다. 특히, 총선이 코앞인 상황에서 누가 봐도 선거용 포퓰리즘으로 오인하기 충분하다는 건 정책 추진에 큰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국민 건강권이 심각히 침해당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왜 지금이어야만 했나’라 묻는다면 뭐라 답할 것인가. 정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명분이 차고 넘친다 해도 하루하루 환자들의 피해 사례가 쌓여간다면 부정적 여론이 비등할 것은 누구나 예측가능하다.

의료계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들이 전문적 식견으로, 타당한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정부와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기 위해선 반드시 의료현장을 지켜야 한다. 환자를 돌보는 의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윤리다. 그 어떤 것도 우선될 수 없다. 국민 생명을 담보로 흥정한다는 비난만큼은 피해 가야 한다. 의사로서 우리 사회의 신뢰와 존경을 잃지 않길 바란다.

현재 의료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소득이나 지역에 따른 계층 간 의료서비스 격차를 완화하고, 의료비용 상승에 따른 포괄적 정책지원 및 기술 혁신에 발맞춘 서비스 개선 등에 대해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보건의료정책을 개선한다면서 정작 고통을 호소하는 국민들은 소외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마찬가지다. 국민을 볼모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법적 처벌을 불사하면서도 이번에는 반드시 의료 개혁을 이루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의료계 반발로 되레 의대 정원 확대 문제에 뒷걸음질 쳤던 문재인 정부의 실패가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 강경 일변도로 대응하고 있는 정부의 입장은 지난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러나 의료대란으로 인한 국민 피해가 하루가 다르게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언제까지 강공모드를 고수하기는 어렵다. 이제 20일 남짓한 총선에도 부정적 영향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국민 불편과 불안을 부추기는 미운 오리를 자처한다면 국민들의 지지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를 파국으로 몰아갈 의도가 아니라면 양측은 즉각 대화와 소통에 나서야 한다. 의사들은 하루속히 현장으로 복귀해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 어떤 명분도 고통에 신음하는 환자들에 우선할 순 없다. 정부도 의료계의 집단행동에 대해 전향적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의료공백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처벌 일변도의 고압적 자세는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최적의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

벼랑 끝에서 모두를 피해자로 몰아가는 치킨게임. 양보와 타협 없는 치킨게임에서 승자는 없다. 모두가 피해자로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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