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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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들링

이정애

여긴 눈사람이 모여드는 눈밭이에요.

콩물 덩얼덩얼한 목소리 두부할매 곁으로
건어물아재 머리를 주억거리며 걸어오네요.
그 옆 코다리삼촌 안짱걸음으로 다가옵니다.
만푸장 국수아지매와 61번 노점상 엄마도 모여서요.

우리는 겨울을 받아 안으며 어깨가 둥글어져요.
둥글게둥글게 눈을 굴리며
시장 골목에서 눈사람이 되어요.

작은 어깰 더 작게 오므리고
시멘트 장바닥에 새벽처럼 쪼그려 앉아요.
한데 붙으려는 건 서로에게 녹아들려는 것이죠.
녹아드는 건 눈사람의 으뜸가는 수완이잖아요.

극지란 시린 사람이 사는 오지여서
서로를 끌어안으면 가슴과 가슴은 따뜻해집니다.

졸린 눈을 털외투에 감추며
저마다 손난로 하나씩 호주머니에 넣고
신경통 쑤시던 간밤의 안부를 난전으로 펼쳐놓지요.

그럴 때 우리는
어쩌면 북극이 아닌 남극을 생각하죠.

빙하의 좌판 골목에
드문드문 유빙이 떠내려오면
언 살에 박힌 젖은 입술도 잠시 따뜻해집니다.

싸락눈만 한 마수걸이 흥정에 바구니 속 비닐봉지가
제비갈매기 부리처럼 부풀어 오르고
눈썹엔 흰 눈발이 달라붙어요.

물건값 후려치는 뜨내기 어깃장을
얼음 벼랑까지 내쫓기도 하지만
시도 때도 없는 마트 할인행사에는
하루치 추위가 서너 곱절로 세차게 몰려옵니다.

내일이 된다는 건 언 발 위에 언 발을 얹는 일입니다.

눈발은 아까보다 거세지고
손난로는 어느새 얼음처럼 차가워졌지만
어쩌겠어요, 파장이 될 때까진
어떡하든 견뎌내야 하는 아득한 설원인걸요.

조금씩 앉은 자리를 좁히는
눈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오늘은 따뜻한 설국 하나 태어납니다.

■ 당선 소감 / 이정애 (여. 1968년생. 프라마베라 에스테틱, 곰동네 쇼핑몰 대표)

△ 시 부문 당선자 이정애<br>
△ 시 부문 당선자 이정애

이제부터 생강나무 노란 봄

눈을 감으면 오히려 더 밝아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살아온 십여 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얼어붙은 골목을 수없이 배회했습니다. 겨울밤에는 숨 쉬는 모든 생명체와도 타협했습니다. 혼자 울면서 시각 장애인처럼 물속을 걸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생강나무 노란 봄입니다. 이 봄을 맞으려 그 숱한 계절을 견뎌 내왔습니다. 혼자라는 단어가 더불어라는 단어로 변했습니다. 함께 합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저, 너머 너머와도 함께 하겠습니다. 제 걸음에 더 많은 이들의 걸음을 보태서 걸어보겠습니다.

허들링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었습니다. 허들링할 수 있는 따뜻한 세계로 나가며 더 아름답게 사랑할 것입니다. 그 사랑을 처음 가르쳐 주시고 저라는 생명을 세상에 내보낸 박태순 여사님과 시의 주인공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김기택 교수님께서는 시에 대해 부단히 허들링을 해주셨습니다. 그 힘으로 버텨 여기까지 왔습니다. 언제나 시와 교수님은 혼연일체입니다. 또 한 계단 올라서면서 쉬지 않고 가겠습니다. 박형권 시인님, 김영식 시인님 그 많은 독려 고맙습니다. 제 옆에서 저를 이 길로 이끈 모든 분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진정 저를 존재하게 하는 모든 것에 고마움 표합니다. 바람의 인연으로 만난 내 아름다운 사람, 눈꺼풀에 앉은 오늘은 더 그립고 더 사랑합니다. 십 년간 공부한 동양고전은 제 정신세계를 확장시켜 시 창작을 풍요롭게 했습니다. 그 손을 잡아준 투데이 신문사와 박덕규, 김흥기, 최대순 시인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에너지를 다해 함께 달려준 모든 응모자님 수고하셨습니다.

■ 심사평 / 박덕규(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

흔한 잠언에 그치지 않은 구체적 정황

132인 예비시인의 시 411편을 읽고 올린 것이 28인 84편. 이를 두고 숙고해서 입상권을 좁히니 5인의 시들이 남았다. 그들 대표작이 각각 「긴급 전보의 시대」, 「철새들의 집」, 「달빛이 나를 데려간 시간」, 「적출하다」, 「허들링」 등이다. 모두 지나치게 긴 시일 뿐더러 매우 산문적이라는, 이즈음 한국시의 유행이나 관습을 답습하고 있다는 느낌이 앞을 가렸다. 그걸 헤치고 한 편 한 편 읽어가는 일이 조금 고통스럽기도 했는데, 그런 중에 나름의 시적 진실이랄까 하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이 피어올랐다.

「긴급 전보의 시대」는 디지털문명에 길든 시대의 감성을 ‘기계를 애무하는 메시지’에 담아 보이는 새로운 시도가 돋보였다. 그러나 그 언어가 시로 녹아들지 못하고 겉돌았다. 「철새들의 집」은 철에 따라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결국 집을 남기지 않는 철새와 공사판을 떠도는 인부의 처지를 서로 대비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설명하는 말이 지나치게 길고 세세해 시적 언어로서의 향기를 스스로 지워버렸다. 「달빛이 나를 데려간 시간」은 한 여행지의 광장에서 맞이하는 밤의 풍경을 묘사하는 언어들이 빛났다. 그러나 그 언어가 엇비슷한 형태와 의미로 반복되었다. 「적출하다」는 오래 쓴 덤프트럭을 폐차하는 현장에서 자본생산에 바친 노동의 희생을 읽어내는 무게 있는 시선이 돋보였다. 그러나 장황한 설명이 시상을 흐려놓았다.

「허들링」은 한겨울 시장 골목에 나앉아 있는 상인들의 모습을 남극 펭귄들의 허들링으로 이은 상상력이 돋보였다. 군데군데 설명이 길어지는 약점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일관된 흐름을 유지해 시적 형상에 도달했다. ‘시린 사람이 사는 오지에서는 서로를 끌어안으면 가슴과 가슴이 따뜻해진다’는 진술이 흔한 잠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상황’을 통해 진정성을 얻고 있었다는 점에 점수를 보탰다. 함께 보낸 시 「보릿돌 해녀」나 「까추」도 뒤지지 않았다. 「허들링」 외 2편을 당선작으로 올린다.

시가 일상적 삶의 내용으로 구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더는 싫어할 수 없는 시대다. 그러나 시가 생활문이나 논설문도 아닌데 자꾸 설명하고 가르치려 하는 건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압축하지 않고 생략하지 않는다면, 나아가 은유하지 않고 상징하지 않는다면 시가 시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다질 때가 아닌가 싶다. 시를 사랑하는 직장인 여러분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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