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용산구 화상경마도박장 입점저지’ 집회

   
 

【투데이신문 김두희 기자】살을 에는 듯한 한파가 조금 누그러진 6일 오후 5시, 용산구 한강로3가 롯데 시네마 옆 지상 18층, 지하 7층이라는 거대한 화상경마장 앞에 성심여자중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이날 용산 화상경마장 입점을 막기 위한 집회가 열렸고 그것이 이제 고작 열다섯, 열여섯 살인 학생들이 모인 이유다.
 
화상경마장 입점 예정지 건물 앞 천막 농성장에는 성심여중 학생들 뿐 아니라 ‘용산구 화상경마도박장 입점 저지 주민대책위’, ‘교육과 삶을파괴하는 경마도박장 확산 저지 범시민 공동대응 모임’, 용산구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대전 월평동 주민 대책위’, ‘충주주민대책위’, ‘순천주민 대책위’,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민주당 박범계, 정의당 정진후 의원 등 200여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학생들이 다니는 길목에 화상경마장 짓는 마사회  
 
주민 협의도 없이 들어선 경마장 용산구 주민들에게 이런 시련이 닥친 것은 지난해 5월부터다. 용산역 근처에 있던 기존 화상경마장이 주택가와 학교 등의 교육 시설 근처 건물로 이전한다는 사실을 용산구 의회 의원들을 통해 알게 된 것.
 
하지만 기존 화상경마장 이전은 이미 그 전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경마장 이전 소식을 알게된 때부터 시작된 주민들의 힘겨운 싸움은 벌써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대책위 등에 따르면 2009년 11월 한국 마사회와 주식회사 랜드마크디앤엠 간에‘용산 장외 신축 사업 매매를 위한 업무협약서’가 체결됐다. 시행사인 주식회사 랜드마크디앤엠이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3가 16-48, 96호에 건축 인허가를 받아서 준공하면 한국 마사회가 이를 매입하는 조건이었다.
 
3개월이 지난 2010년 2월 한국마사회가 농림축산식품부에 기존 한강로3가 40-590에서 한강로3가 16-48, 96호로 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 이전을 신청했다.
 
그리고 열흘 후인 같은 해 3월 10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새로 장외발매소가 들어설 지역 주민들의 의견수렴 과정은 커녕 사전에 알리지도 않은 채 이전승인처분을 발령했다.
 
그 후 용산 화상경마장 이전에 대한 계획은 거침없이 진행됐다. 화상경마장 이전에 대한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 주민들이 사태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은 일이 시작되고 3년 이상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난 뒤였다.
 
입점할 건물과 교육시설과는 상당히 거리가 가까워 교육환경에 악양향을 미칠 수 있는 조건이다.
 
입정 예정인 화상경마장과 성심여중고는 도보로 7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수치로는 200미터가 약간 넘는
다. 또한 성심여중고를 비롯해 용산신학교, 원효초등학교, 남정초등학교, 원효어린이집 등 교육 시설도 주변에 다수 위치하고 있다.
 
입점할 건물에서 신호등만 건너면 주택들도 상당히 많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빌라와 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차있으며 어린이집 운행 차량이 쉴새 없이 지나다닌다.
 
사태를 파악한 주민들은 지역 시민단체, 주민, 학부모, 성심여중고 교장 등을 중심으로 주민대책위가 구성됐고 지금까지 입점 저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하7층 지상18층 연면적 18,362제곱미터의 이 사건 장외발매소 건물
   
 경마도박장 바로 옆 건물 옥상에서 바라 본 마을과 학교 모습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날 집회에 참석한 성심여중고 교장 김율옥 수녀는 “더 이상 이런 자리에 서서 말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발언을 시작하며 “이 거대한 25층 건물과 우리를 볼 때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기억하게 한다”고 비유해 힘겨운 싸움이 되고 있음을 전했다.
 
이어 “우리는 처음에 교육환경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이번 일에 대해 공부하다보니 그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마사회는 (경마와 화상경마장을)레저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레저가 아니고 도박”이라고 주장하며 “도박은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관련된 가족과 사회가 피해를 받는 것”이라고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또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결코 향냄새가 나지 않는다”며 “마사회가 아무리 좋은 건물을 짓고 문화시설이라고 포장한다고 해도 화상경마장은 비린내 나는 생선일 수밖에 없으며 생선은 결국 썩는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입점 철회를 요청했다.
 
대전 서구 의원인 민주당 박범계 의원도 이 자리에 참석해 응원의 말을 전했다.
 
박 의원은 “지역구 월평1동에 마사회가 운영하는 화상경마장 마권 장외발매소가 1991년에 입점해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우리가 못난 탓에 (화상경마장을 통해 마사회가)많은 돈을 벌었다. 그런데 최근 건물 전체를 매입해서 전체 규모로 시설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작년 연말에 마사회법 개정안이 올라왔는데 말이 안 되는 내용이라 막았다”며 “그동안 말산업의 지원과 육성을 농림축산부에서 맡아 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개정안이 올라와 농림부가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에 더해 한국마사회가 지원하고 육성하도록 길을 터주는 법안이 올라온 것”이라고 밝혔다.
 
박 의원은 “마사회는 과연 국민의 공기업으로서 국민들에게 공익을 제공하고 국민들에게 편의를 지원하는 공기업의 사명을 잊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하며 “이에 개정안을 발의했다. 학교와 주택가로부터 2㎞내에 화상경마장이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새로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 화상경마장도 2년 이내에 외곽으로 이전하는 것을 강제할 수 있는 법안을 제출했다”고 발언했다.
 
중독포럼 운영위원장 이해국 가톨릭대 교수는 “병원에서 느끼지만 중독자의 치료는 어렵다. 그런데 가장 어려운 정신건강문제는 바로 도박중독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교수는 “화상경마장은 경마장이 아닌 도박장이고 도박은 너무 자극적이라 한 번이라도 노출이 되면 바로 중독이 될 위험이 사행산업 중 가장 높다”고 말하며 “도박중독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도박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도박중독을 예방하기 정말 어려운 나라”라며 “우리나라처럼 화상경마장이 많은 나라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규탄했다.
 
이날 이미 이러한 피해를 고스란히 받은 대전 월평동 대책위 김대승 위원장도 앞으로 나왔다.
 
김 위원장은 “제일 마음이 아픈 것은 이렇게 추운 날씨 속에 어린 학생들이 길에 앉아서 집회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라며 “화상경마장이개장이 된다면 주변으로 불법오락실, 피시방, 퇴폐업소들이 난립하게 된다”며 대전 월평동에 빗대 설명했다.
 
이어 “학생들이 다니는 동선인데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학생들이 자라서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대전 월평동의 중고등학생들이 집에 와서 부모님에게 우리 월평동은 살 데가 못 된다고 말한다. (화상경마장으로 인해)환경이 나빠지다보니 집으로 올 때도 바로 직선 동선으로 오지 못하고 항상 우회해서 온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 위원장은 “국가가 과연 무엇인가, 국가는 곧 국민이다. 공기업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줘야되는데 고통과 피해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변 5개의 교회를 대표해 자리에 섰다는 홍준기 신창제일교회 목사는 “마사회가 교회에 거액의 헌금을 했고 그래서 교회들이 (이전 입점에 대해)찬성으로 돌아섰다는 말을 듣고 잠이 오지 않았다. 교회를 엉뚱한 곳으로 만들고 하나님도 이상한 분으로 만들었다”고 분개하며 “(거짓말을 통해)이런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작년 8월부터 용산구 전체 교회가 기도회를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같은 달에 3만 명의 교인이 (반대)서명을 했다”고 밝히면서 어떤 교회도 찬성의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역설했다.
 
홍 목사는 “목회를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게 도박중독이고 알콜중독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두 가지는 연계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엔 220만 명의 도박중독자가 있다. 220만 명과 관련된 가족들을 생각해야 한다. 한 사람의 도박중독자로 인해 한 가정이 파괴되고 무엇보다도 자녀들이 파괴된다”며 도박이 가지는 사회파괴력에 대해 주장했다.
 
   
 
학생들 “현명관 마사회장, 우리들의 꿈과 미래 지켜 달라”
이렇듯 화상경마장 이전 입점과 더 나아가 도박을 산업으로 규정하는 마사회를 규탄하는 어른들의 발언에 보태어 어린 학생들까지 나서 제 목소리를 냈다.
 
성심여자중학교 학생회장과 부회장은 마이크를 잡고 현명관 마사회장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다.
 
이들은 “지난해 학교 근처에 화상경마장이 입점한다는 소식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해 입점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촛불집회를 하기도 하고 마사회 앞에서 학생들이 모여 학급이 돌아가면서 기도를 하기도 하고 정부 기관에 학생들의 이름으로 민원을 넣기도 했다. 또 다음 아고라 성명 등 많은 공감을 얻기 위한 모든 노력을 하고 지금까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다음 주에 학교를 졸업하지만 후배들은 얼마나 무섭고 초조할 것이며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은 남은 친구들이 얼마나 걱정되고 불안하겠나. 겉으로는 사행산업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도박”이라며 현명관 마사회장을 향해 “마사회장님도 저희와 같은 나이의 자녀를 키워봤을 것이고 손녀들도 있을 텐데 대한민국의 멋진 어른이시라면 학생들의 꿈과 미래를 지켜 달라. 제발 입점을 철회해주길 바란다. 성심여중의 모든 학생들을 대표해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성심여중 학생회장단의 낭독이 끝난 후 성심여고 학생회장도 교육부장관에게 부탁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실제로 화상경마장이 들어선 광주 동구 계림동 일대는 성인오락실 등 게임장 10여 곳이 들어선 도박의 거리로 변했다. 유흥업소도 그 거리에 따라 생겨 주민들의 삶이 황폐화됐다”고 화상경마장이 생기면 발생할 위험성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도박장(화상경마장)이 들어설 이곳(한강로3가)은 통학로이고 경마장 맞은 편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오고 가는 버스를 타고 다니기도 한다. 심지어 바로 앞의 거리를 통학로로 사용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자주 이용하는 영화관이나 대형 할인점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우리들을 지키기 위해 모든 어른들이 10달 동안 입점을 반대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고 우리들도 학생들끼리 반대서명을 받고 입점 반대 문화제나 기도회를 구성해 참여하는 등 뜻을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작년 9월 입점예정이던 것을 지금까지 막아오고 있으나 앞으로 일이 어떻게 전개될 지 알 수 없다”고 말하며 답답한 심경을 나타냈다.
 
마지막으로 “이 과정(마사회와 갈등)을 생명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해 배우고 사회에서 옳고 그름의 가치를 판별하고 올바른 양심과 사회 정의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삼겠다. 우리가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부장관님이 도와주길 부탁드린다”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이날 진행된 집회는 학생들과 지역 주민의 공연이 더해져 하나의 문화제처럼 꾸며졌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굉장히 나쁘고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정확히 알수 없어 답답한 마음들을 털어놓았지만 긍정적인 기운으로 풀어나가려는 용산구 주민들의 뜻을 엿볼 수 있었다.
 
추운 날씨에 서로를 걱정하며 학교 선생님들은 제 뜻을 표하려 집회에 참석해 차가운 길바닥에 앉아있는 학생들에게 옷 하나, 담요 하나라도 더 덮어주려 했고 학생들도 앞에 나온 국회의원, 집행위원장, 선생님 등 어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했다.
 
마사회 “마사회법 개정안? 국회의원들 일로 신경안 써”
 
비단 용산구 하나만의 문제가 아닌 전국적으로 퍼진 이 문제에 대해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반대하는 측은 일부분이다”라고 말하며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회피했다.
 
새로 이전할 화상경마장 건물과 학교가 너무 가깝고 학생들의 동선과 겹친다는 지적에는 “직접 이쪽으로 와서 확인하지도 않고 말하면 안 된다. 큰 길은 두 갈래이고 경마장이 입점하는 쪽 길은 하루에 학생들이 채 10명도 다니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중랑구에서는 오히려 문화시설로 인식하고 있다”고 용산주민대책위가 주장하는 주변 환경의 황폐화에 대해 반박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 등이 발의한 마사회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에 대해 묻자 “아직 발의만 된 것 아닌가. 국회의원님들이 하시는 일까지 우리는 모른다”라고 대답했다.
 
한편 이런 대책위의 반대 활동에도 한국마사회와 농림부는 학교정화구역 밖이라는 이유, 시설이전이 동일구역 내에서 이뤄지면 주민의 동의를 얻지 않아도 된다는 농림부의 지침만을 말하며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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